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13화 (113/297)

# 113

현질 전사

- 5권 13화

너클답게 손등 뼈 부분이 단단한 재질로 강화되어 있었는데 무려 용의 뼈를 갈아 만든 거라고 했다.

용의 뼈는 현존하는 모든 물질을 통틀어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가공하는 것이 쉽지 않아 용의 뼈를 다룰 수 있는 장인은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셋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용의 뼈가 들어간 아이템은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용이라는 몬스터의 몸값 자체가 엄청나게 높은 데다가, 인건비도 무시무시하다 보니 용에 관계된 모든 아이템이 천문학적인 금액을 자랑했다.

장한나는 이 너클 글러브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그걸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이 다루었다.

정식 명칭으로는 드래곤 본 글러브라고 하면서 가격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기도 어렵다는 식이었다.

아무튼 장한나가 호들갑을 떨 만큼 대단한 물건이기는 했다.

여기에 들어간 뼈가 파이어 드래곤, 화룡의 것이기에 이 무기는 빼도 박도 못하는 화 속성이었다.

그리고 그만큼의 화력을 자랑했다.

이 너클로 치는 자리에 족족 폭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얼마만한 마력이 주입되느냐에 따라 폭발의 규모가 달랐는데, 아마 강화 강력권과 결합하면 폭탄이 터지는 것과 다름없는 위력을 발휘할지도 몰랐다.

또한 화기에 강력한 내성을 갖고 있었다.

정확히는 호환성이라고 해야겠다.

드래곤의 브레스가 아닌 이상, 그 어떤 불길이든지 간에 너클 글러브가 모조리 집어삼킬 수가 있었다.

그것을 도로 방출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파이어 애로우와 같이 불꽃을 쏘아 낼 수도 있었다.

화력에 관계된 것이라면 거의 모든 일이 가능했다.

장한나가 장담한 대로 비록 S급 아이템은 아니라고는 하나 AAA급 아이템 두 가지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란 게 끝 간 데가 없는 관계로,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AAA급 아이템이 이 정도 수준이면 S급은 어떻다는 말이지? SS급은? 훨씬 더 대단하겠지?'

정대식은 무구를 갈아 치워 훨씬 산뜻해진 모습으로 국가 기물 금고를 나섰다.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생전 연락 않던 기철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지금 어디냐?

"그건 왜 물어?"

-다름이 아니고, 인챈트를 해 줄 만한 사람을 찾았어. 네가 최희한테 부탁했다며? 최선이 같이 가주겠다는데 오늘 가 보면 된다고 그래서. 시간 되면 같이 가지?

"전에도 말했지만 난 괜찮아."

-이 기회를 놓치면 또 기다려야 할 거야. 그럴 바에야 그냥 이번에 가지 그래?

"아니, 난 내 무구에 인챈트를 할 생각이 없어."

-아니, 왜?

정대식은 국가 기물 금고에서 새 아이템을 뜯어 왔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배틀 슈트도 너클 글러브도 빌린 물건이다.

설령 배틀 슈트에 자가 수복 기능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인챈트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대식은 운전하는 중이고 해서, 대충 대꾸했다.

"그냥, 내 무구에다 그걸 쓰기에는 아까워서. 팔아 치울까 하고."

-판다고? 너 제정신이냐? 이건 돈 주고도 못 사는 물건이야! 그만큼 귀한 거라고. 근데 그걸 팔겠다고?

"그만큼 비쌀 거 아냐? 아무튼, 난 됐어. 너나 가서 해."

-나 원, 알겠다. 네가 알아서 할 문제지만 나중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그냥 놔두라고 충고하고 싶네. 그럼 끊는다.

기철민과의 통화를 끝내고, 정대식은 집으로 가려던 마음을 바꿨다.

이왕 새로 무구를 받았으니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만약 배틀 슈트의 자가 수복 기능이 신통찮은 것 같으면 인챈트 스크롤을 쓸 작정이었다.

인챈트 여부를 판단할 겸, 새 무구에 익숙해질 겸,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내 말했다.

"엔트로피, 여기서 가장 가까운 던전이 어디지?"

"지금 링크해서 그 던전에 대한 정보를 전부 보내 줘. 바로 거기로 갈 거니까. 아, 그 던전이 어디 있는지 길 안내도 좀 해 주고."

<알겠습니다. 지금 유턴하십시오.>

엔트로피의 말에 정대식은 고개를 들었다.

마침 유턴 신호가 들어온 참이라 서둘러 1차선에 붙어 핸들을 꺾었다.

부아아아앙!

명쾌한 소리를 내뿜으며 차가 돌았고, 정대식은 신나게 엑셀을 밟았다.

* * *

새 무구의 시험 차 들른 던전에서 정대식은 신나게 사냥을 했다.

화염이 뻥뻥 터지는 너클 글러브는 호쾌한 맛이 있어서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던전에서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배틀 슈트 역시 민첩을 더해 주는 효과가 있어 그야말로 날아다니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보스몹이 있는 곳까지 다다라, 엉겁결에 던전 공략까지 마쳐 버렸다.

'얼떨결에 마정석을 챙겼네.'

정대식은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마정석을 허공에 던졌다 도로 받았다.

검은색에 가까워 보일 만큼 새빨간 마정석이었다.

순도는 높을지 모르나 깃들어 있는 마력이 별 볼 일 없어 그리 값어치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2, 30억쯤은 족히 나올 것이다.

'이것만큼은 변장수를 통해서 처분할 수 없겠지?'

그가 다루는 것은 주로 몬스터 부산물인지라 아이템 종류도 받기 싫어했다.

마정석은 더 그럴 것이다.

마정석은 취급이 까다로워 음지에선 별로 거래가 되지 않았다.

무조건 공식 거래소를 찾아가야 했는데, 그놈들은 가격을 후려치기로 유명했다.

어차피 자기네들이 아니면 사 줄 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배짱을 부리는 것이다.

'쳇, 사기꾼 놈들한테 넘기려니 배가 다 아프네. 돈이 급한 것도 아닌데 일단 좀 묵혀 둘까?'

하지만 묵혀 둬 봤자 팔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정석으로 전기를 생산해 내는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을 한다면 또 모를까.

마정석이 전례 없는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어 인류 문명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기술의 개발 속도가 못 따라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마정석으로 전기를 생산해 내는 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설이 필요했다.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된 지 이제 막 10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대식은 던전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타면서 엔트로피에게 물었다.

"어이, 엔트로피. 근방에 마정석을 처분할 만한 데가 있는지 알아봐 줘."

<마정석 처분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도 당장 할 수 있습니다.>

"응? 그게 뭔 말이야?"

<상점이 Lv5로 업그레이드됨에 따라, 판매 항목이 새로 생겼습니다.>

"판매라고?"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정대식은 당장 말했다.

"그것 좀 지금 당장 보여 줘."

정대식의 명령에 따라 엔트로피가 새로 생성되었다는 판매 창을 열었다.

여태까지는 정대식이 상점에서 일방적으로 구매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판매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야, 이게 웬일이야! 이거 되게 편리하겠는데?"

감탄을 하던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너 이런 게 생겼으면 진즉 이야기를 해 줬어야지. 왜 입 다물고 있었어?"

<지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시치미를 뚝 떼는 엔트로피를 한바탕 노려보고 정대식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판매할 아이템을 판매 창으로 던지십시오. 그럼 감정이 이루어지고 가격이 매겨집니다. 그 금액이 흡족하다면 판매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아니면 취소를 선택하십시오.>

"좋아. 어디......."

정대식은 손에 들고 있던 레드 스톤을 허공에 뜬 판매 창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판매 창에 걸리듯 레드 스톤이 딱 멈추더니 주위로 기묘한 빛이 맴돌았다.

아마도 그게 감정을 하는 과정인 것 같았다.

가격은 순식간에 책정이 되었다.

정대식은 입을 딱 벌렸다.

"헉! 레드 스톤이 73억이나 한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아니, 시세보다 배 가까운 가격이잖아?"

비록 옐로 스톤이 아닌 레드 스톤이라고는 하지만, 투명도가 떨어져서 가격을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다.

몇십억 후반대로 가려면 블루 스톤은 되어야지 가능한 것이다.

투명도에 따라서 100억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옐로, 레드, 블루, 이 세 종류의 마정석으로 벌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데 73억이면 상당한 가격이었다.

늘 말도 안 되는 바가지를 씌우는 상점이기에 더 그랬다.

정대식은 믿기지 않는 기분으로 질문했다.

"이렇게나 비싼 상점이라면 분명히 형편없는 가격을 책정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엔트로피가 설명했다.

<이쪽 세계에서는 마정석의 값어치가 저평가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마력 쓰는 법을 잘 모르는 탓이겠지요.>

"그럼 실제로는 레드 스톤이라도 이 정도 값은 한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 금액도 결코 후한 가격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대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만약 마정석이 저평가되어 있다 치면, 앞으로는 그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말이다.

잘만 투자하면 대박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부분은 좀 고민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일단 레드 스톤을 처분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다른 아이템도 좀 살펴봤다.

"내가 지금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을 확인할 방법은 없어?"

<있습니다. 지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엔트로피는 즉각 정대식이 소지하고 있는 모든 아이템 목록을 공중에 띄웠다.

정대식의 것이 아닌 배틀 슈트와 너클 글러브는 제외되어 있었으나 방금 잡은 몬스터 부산물에서부터 소지하고 있는 여러 장비, 하다못해 걸치고 있는 속옷 한 장까지 전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정대식은 시험 삼아 몬스터 부산물 하나를 꺼내어 판매 창에 던져 보았다.

한데 이것은 가격이 형편없었다.

"이건 왜 또 이래? 이게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몬스터 처리소에 들고 가면 적어도 몇백만 원은 나오는 부위란 말이야! 그런데 고작 몇십만 원이라고? 가격 후려치기가 너무 심하잖아?"

열을 내는 정대식을 보고 엔트로피가 무심하게 설명했다.

<마정석의 가격이 높게 책정되는 것과 정확히 반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몬스터 부산물의 값어치가 고평가되어 있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엔트로피의 말이 옳았다.

마정석에서는 에너지를 뽑아내는 것이 어렵지만 몬스터 부산물을 이용하기는 생각보다 쉬웠다.

즉, 현재 시점에서는 몬스터의 부산물이 더 많은 쓰임새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공격대가 생겨나 대량의 몬스터 사체가 유통되거나, 이정연의 말처럼 몬스터의 가축화가 현실화된다면 몬스터 부산물의 값어치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쳇, 알겠어. 이건 판매 취소다. 몬스터 부산물은 앞으로도 계속 변장수를 통해 거래하는 게 좋겠군."

<그러십시오.>

정대식은 내친김에 곧장 변장수를 만났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의 똘마니가 대신 왔으나 거래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그 똘마니를 어르고 달래어 더 많은 가격을 받아 냈다.

변장수는 뱃속에 구렁이가 열댓 마리쯤 들어 있어 협상이 어려웠지만 새파란 애송이 정도는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 부산물을 처리하고 났더니 15억이라는 추가 수입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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