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16화 (116/297)

# 116

현질 전사

- 5권 16화

도리어 지나치게 서로가 가까우면 그게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예쁘장한 여자 헌터를 사이에 두고 공격대가 완전히 두 쪽이 난다든가, 은근한 신경전으로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폭망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교 활동을 할 게 아니라 임무 수행을 할 거라면 도리어 대원들끼리 데면데면한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일단 강자이기만 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부대원이 강하다면 균형 같은 것도 상관없었다.

그는 현질로 어떤 능력이든 사들일 수가 있었다.

빈 부분이 있다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메꿀 수 있으니 강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고민을 할 자신이 없었다.

정대식은 자신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을 무엇보다 큰 가치로 여기고 살아왔기에,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므로 섣불리 어떤 사람을 평가해 부대원으로 들이기보다는, 차라리 실력 하나만 놓고 평가하는 게 맞다고 생각되었다.

그렇다 보니, 리스트의 작성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정대식은 다음 날 곧장 자신의 부대원 후보 목록을 강영후에게 제출했다.

* * *

"다들 모였나?"

정대식과 부대장들은 강당만큼이나 널찍한 훈련장에 모였다.

타이탄 공격대 본사의 지하에 지어진 그 훈련장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능을 마음껏 훈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소인지라 사방이 초강력 합금 강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에서 무장한 상태로 모인 일동을 보고 강영후가 손에 든 리스트를 펄럭거렸다.

"미리 공지했다시피 여기 있는 리스트가 정대식이 원하는 인물들이다."

정대식이 고른 부대원은 총 여섯 명.

프랑켄슈타인 부대의 서지원, 크툴루 부대의 고덕화, 외눈박이 부대의 김송근, 에키드나 부대의 박솔지, 머메이드 부대의 이재우, 외인부대의 허미래였다.

사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허미래를 고르는 데는 제법 고민을 했다.

외인부대의 하나뿐인 디버퍼를 빼 오는 게 내키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디버프는 버프에 비해 귀한 능력이다.

타이탄 공격대에서도 디버퍼는 허미래 한 명밖에 없었다.

아니, 허미래가 평소 감추고 있는 능력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그녀 한 명뿐일 것이다.

버퍼의 역할은 정대식이 충분히 대신할 수 있었으므로, 다른 종류의 보조 능력자는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별수 없이 허미래를 명단에 넣었다.

서지원과 고덕화는 이미 해체될 부대의 대원들이라 데려오는 데 문제가 없었다.

김송근과 박솔지, 이재우 그리고 허미래.

이 네 사람이 현재 소속된 부대가 있는 상태였으므로, 부대장이 그들을 내주는 데 반대를 한다면 그들과 겨루어 대원들을 빼앗아 와야 할 상황이었다.

정대식은 네 명이나 되는 능력자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별로 긴장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가볍게 몸을 풀고 있으려니 강영후가 각 부대장들을 보고 말했다.

"이 명단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서길 바란다."

정대식은 네 명의 부대장을 전원 상대할 각오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명의 부대장만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외눈박이 부대장 팔용대와 에키드나 부대장 정승채였다.

강영후는 나머지 부대장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다른 부대장들은 부대원들을 정대식의 부대로 보내는 데 동의하는 것인가?"

머메이드 부대장인 여수희는 "골칫거리를 데려가 준다니 저는 고맙죠."라고 냉랭하게 대꾸했고, 김시온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여수희는 몰라도 김시온이 순순히 허미래를 내어 줄 작정이라고 하니 더 미안했다.

정대식은 그녀에게 살짝 목례를 해 보이고 앞으로 나섰다.

그가 먼저 상대하게 된 인물은 에키드나 부대의 정승채였다.

심판은 강영후가 맡기로 했는데, 한쪽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거나 패배를 인정할 경우 게임을 끝내기로 했다.

정승채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손목을 우둑우둑 꺾으며 앞으로 나온 그는 정대식을 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강자들만 골라서 리스트에 올려놓았던데?"

정대식은 고개를 까닥였다.

"그랬죠."

"그럼 잘 알겠군. 타이탄 공격대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은 우리 부대장들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렇더군요."

정대식은 담담히 대꾸했다.

"욕심 같아서는 부대장들을 전부 휘하로 데려오고 싶었습니다만. 뭐, 다른 부대도 운영해야 하니까 그건 안 될 일이겠죠."

"그래 봤자 너보다는 강하지 않다...... 이건가? 자신만만한 태도인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겨루어 보면 또 모를 일이니까요."

"그래, 실제로 겨루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그럼 시작하지."

정승채는 손을 까닥이며 선공을 정대식에게 먼저 양보했다.

정대식은 사양 않고 가볍게 달려들어 갔다.

시험 삼아 잽을 날리자 정승채가 그 정도는 가볍게 피했다.

정대식은 연거푸 주먹을 날렸고, 그것은 모조리 빗나갔다.

'과연, 신속의 정승채인가!'

에키드나 부대는 재빠른 임무 수행과 안전한 귀환으로 이름난 부대였다.

에키드나 부대를 도맡은 정승채가 빠른 몸놀림을 자랑하는 인물이었기에,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그의 속력을 맞추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승채는 타이탄 공격대에서 가장 날렵한 대원들을 골라 가졌다.

그들은 바람같이 빠른 발로 순식간에 던전을 주파하기로 유명했고, 어지간해서는 부상도 입지 않았다.

웬만한 몬스터의 공격은 죄다 피해 버리는 탓이다.

'슬슬 본격적으로 해 볼까?'

정대식은 목소리를 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엔트로피가 공중에 나타나자 정승채가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엔트로피인가?"

정대식은 씩 웃고는 엔트로피에게 명령했다.

"링크해서 보조한다."

<알겠습니다.>

굳이 엔트로피를 실체화해서 보여 줄 필요는 없었으나, 기선 제압을 위해 정대식은 그렇게 했다.

엔트로피가 있으면 아무래도 두 명을 한 번에 상대하는 기분을 불러일으키기에, 집중력을 흩트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대식은 뱃속에서 마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엔트로피도 그의 의지에 동조해 스킬을 시동했다.

<신속.>

"무적권!"

두 가지 스킬이 한꺼번에 발동되며 그의 주먹이 정승채의 각 신체 부위를 노리고 작렬했다.

1초에 다섯 번의 공격을 가하는 무적권에 신속을 더하자, 두 번의 공격 기회가 더 생겼다.

정확히 일곱 차례의 공격이 정승채에게로 쇄도해 들어갔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빠른 주먹을 맞닥뜨리고도 정승채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발을 놀렸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으억!"

허공에서 터지는 불꽃에 정승채가 식겁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곧 일곱 번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며 정승채를 둘러쌌다.

'으윽, 좀 심했나?'

정대식은 무구를 교체하고 아직까지 그것을 타이탄 공격대에 선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승채는 정대식의 너클 글러브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기습적인 폭발에 휘말렸으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 점을 생각해 일부러 강화를 쓰지 않았는데.......

훅!

폭발이 가시고 불꽃이 가시는 자리에서 암기가 쑥 튀어나왔다.

정대식은 하마터면 코를 베일 뻔하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날리는 불똥을 휘감으며 제자리로 돌아간 그 암기는 정승채의 손아귀에 휘감겨 그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드롭 와이어!'

정승채가 쓰는 무기는 보통의 헌터들이 쓰는 무기와는 좀 달랐다.

그것은 기다란 와이어처럼 보였는데, 양 끄트머리에 물방울 모양의 암기가 달려 있었다.

생긴 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으나 부대장들과의 일전을 대비하며 과거 자료 영상을 봤던 정대식은 그게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잘 알았다.

'저게 급소를 찾아내 파고든다는 무기인가?'

정승채에게는 바람같이 빠른 몸놀림 외에도 타고난 재능이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전투 감각이었다.

정승채는 아주 어릴 적부터 여러 종류의 격투기를 수련해서 신체 능력과 전투 스킬이 뛰어났고, 오랜 단련으로 감각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다.

그는 처음 보는 몬스터라고 하더라도 기가 막히게 급소를 찾아내어 공략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은 아마 상대가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정승채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코나 귀가 날아간다 하더라도 염려하지 마. 타이탄 공격대엔 뛰어난 힐러가 많으니까 금방 붙일 수 있을 걸!"

그의 말끄트머리에서 다시금 공격이 재개되었다.

쐐애애액!

가느다란 와이어는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공격의 궤도를 읽을 수 없었다.

끄트머리에 달린 암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건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한 크기인데다가 신속의 이능까지 가미가 되어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민첩 스킬이 발휘된 상태에서도 그걸 피할 재간이 없어 정대식은 급한 대로 왼손을 펼쳐 휘둘렀다.

"마기장!"

부우웅!

정대식은 왼팔에 최선이 준 마기전을 끼우고 있었다.

그 마기전이 성능을 발휘해 그의 주변으로 마력장이 생겨나 일종의 방어막처럼 닥쳐드는 모든 공격을 튕겨 내버렸다.

카가강!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암기가 허공으로 날아갔으나 정승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암기를 날리는 동시에 정대식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육탄 공격을 시도했다.

"으윽!"

정대식은 정승채에게 팔이 붙잡힌 순간 부유 신체를 발동했다.

그의 몸무게가 세 배 가까이나 무거워졌으나 놀랍게도 정승채는 정대식을 메쳤다.

'으악!'

정대식은 속으로 비명을 삼키며 땅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순간 부유 신체의 작용으로 그의 몸이 다시금 가벼워져 지구로 얻어맞는 꼴이 되는 것은 면했다.

정대식은 누운 채 발로 정승채를 걷어차려고 했으나 역시나, 정승채가 더 빨랐다.

정대식의 공격을 피한 정승채가 그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레슬링 기술을 걸었다.

정대식은 그런 정승채의 팔을 꽉 붙잡고 다시 마기전을 썼다.

"마기력!"

"으아악!"

정승채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놀라서 정대식의 다리를 놓쳤다.

그러나 금세 정신을 차리고 이번엔 현란한 발기술로 쉴 새 없이 주먹을 날려 왔다.

정대식은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피했으나 몇 방은 별수 없이 얻어맞았다.

아무리 해도 정승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젠장! 민첩에 돈을 좀 쓸 걸 그랬나!'

정대식은 후회하다가 생각을 바꿨다.

그와 싸우는 척하다가 일부러 걸려들어, 좀 더 강한 마기력을 흘려 넣어 그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강력권을 쓸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기전의 존재에 대해 인지한 정승채는 정대식의 술수에 걸려들지 않았다.

정승채는 치고 빠지는 식으로 정대식의 손에 절대로 붙잡히지 않았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데 입가엔 비웃음까지 매달려 있어 약이 있는 대로 올랐다.

'제기랄!'

정대식은 속으로 욕설을 터트리며 애먼 주먹을 허공에다 휘갈겼다.

그때마다 폭음이 일어나며 폭발이 터졌지만, 정승채는 이미 거기에 익숙해져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능숙하게 그걸 피했다.

'위험하니까 강화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 내가 너무 만만히 봤다. 강화를 안 쓰면 안 되겠어!'

정대식은 자신의 알량한 판단을 반성하며 엔트로피에게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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