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20화 (120/297)

# 120

현질 전사

- 5권 20화

훈련장은 먼저 와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소식을 듣고 지원자들의 대결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 외에는 어제와 같이 전투의 여파로 인해 벌어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진행 인력이 몇몇 나와 있었다.

개중에는 마력 보급용 배터리를 주렁주렁 달고 나온 여수희도 있었다.

"준비는 다 됐나?"

강영후의 명령으로 미리 준비를 갖추고 있던 김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짓으로 지원자 네 사람을 불렀다.

기철민과 다른 두 사람은 남자였고 김태희 하나만 여자였는데, 몰골이 참 가관이었다.

무릎이 다 늘어난 삼선 트레이닝복 한 장만 덜렁 걸치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래 가지고 되겠느냐고 한 소리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본인이 방어에 자신이 있으니 저런 꼬락서니로 나왔을 것이다.

설령 방어구를 갖추지 않고 싸우다 다친다고 하더라도 본인 탓이라는 생각에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강영후는 곧 구경꾼들을 물러서게 하고 여수희에게 충격 흡수용 방어막을 준비해 두라고 일렀다.

그리고 주위에 들리도록 지원자들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네 사람은 새로이 창설되는 펜리르 부대에 들어가기 위해 지원했다. 오늘 있을 대결은 단순히 펜리르 부대원을 선발하기 위한 것으로, 설령 탈락한다 하더라도 원래의 부대로 복귀하여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만약 대결에서 이긴다면 펜리르 부대원으로 여기 있는 정대식 부대장의 휘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강영후는 잠시 정대식을 소개하듯 돌아보았고, 정대식은 지원자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 숙여 보였다.

강영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오늘의 선발전은 시간을 끌지는 않겠다. 대결 방식은 간단하다. 토너먼트 식으로 마지막까지 승리한 자가 펜리르 부대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대결은 한쪽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거나 항복을 선언하면 끝이다. 각자 가진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되, 만약 지나치게 위험하다 판단되면 내가 개입하여 대결을 강제 종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둬라. 그럼...... 시작하지."

강영후가 물러서자 김시온이 지원자들에게 다가가 가위바위보를 시켰다.

같은 가위를 낸 두 사람이 한 조로 묶이고, 나머지 두 사람이 또 다른 조가 되었다.

"공정성을 위해 두 조의 대결은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김시온은 각 조를 훈련장 양쪽으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여수희가 수도를 틀라고 소리쳤고, 곧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마력을 실어 훈련장 전체를 방어막으로 뒤덮었다.

그러나 요전번과는 달리 그 방어막은 가운데가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각 조가 다른 조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집중해서 싸울 수 있게 함이었다.

전투 공간이 좀 줄어들기는 했으나 두 사람이 활동하기에는 그리 좁지 않았다.

곧 강영후의 신호가 떨어졌다.

"시작해라!"

"워후우우우!"

"휘이이익!"

"파이팅!"

대결이 시작됨에 따라 구경을 나온 대원들이 각자 발을 구르며 소리쳐 응원했다.

특히 기철민이 속한 1조에 환호성이 쏠렸는데, 기철민과 상대하게 된 대원 때문이었다.

그는 호두까기 부대 소속으로 거기 부대장이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분위기가 매우 장난스러웠다.

그래서 부대원이 다른 부대에 지원했어도 거리끼지 않고 악담 섞인 응원을 퍼붓고 있었다.

"야, 김영수! 무서워서 똥이나 지리지 마라!"

"떨어져서 돌아오면 흑역사 갱신인 거 알지?"

"자다가 이불 차고 싶지 않으면 잘 싸워라!"

김영수라 불린 그 대원은 오만상을 쓰며 호두까기 부대원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기철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싸울 거냐, 말 거냐?"

김영수는 흠칫해 사과했다.

"아, 미안."

그는 곧 씩 하니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그럼, 먼저 간다!"

김영수는 땅을 박차며 옆구리에 붙여 들고 있던 창을 앞으로 내찔렀다.

그것은 길이가 3m나 되는 창으로 손잡이까지 모조리 쇳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어 엄청나게 무거워 보였다.

하지만 신비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기라도 한지, 김영수는 그 거추장스러워 보이는 무기를 한 몸처럼 능란하게 다루었다.

"격세지감!"

기철민은 쑥 들어오는 창을 칼 몸을 옆으로 미끄러트려 흘려보냈다.

그리고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순식간에 김영수 가까이로 바짝 붙었다.

"천광쇄도!"

"어억!"

기철민은 팔꿈치를 휙 들어 올려 밑에서부터 위로 검을 올려 쳤다.

하마터면 얼굴이 두 쪽이 날 뻔한 김영수가 식겁해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창을 짧게 쥔 쪽으로 팔을 틀어 팔꿈치로 기철민을 가격했다.

마찬가지로 팔꿈치로 그것을 막아 낸 기철민은 김영수가 어느 틈에 거리를 벌린 것을 보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창이 무서운 기세로 그가 선 자리를 찔러 들어왔다.

"세대 차이!"

파바바바밧!

마치 창이 수십 개로 늘어난 것 같은 잔광이 일었다.

김영수가 창에 실어 넣은 마력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이었다.

기철민은 재빨리 그 공격을 피했으나 어느새 어깨받이에 깊숙이 베인 자리가 남았다.

기철민은 다시금 거리를 좁혀들면서 김영수의 주의를 흩트리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너, 그 기술 명은 어떻게 된 거냐!"

김영수는 신이 나 소리쳤다.

"그냥 아무거나 외치는 거지! 눈치챘어?"

"멍청한!"

헌터들이 기술 명이니 시동어니 주문이니 외치는 것은 일종의 자기약속일 뿐이다.

집중력을 증진시키고 동료들에게 자신이 어떤 능력을 사용할 것인지 예고하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니 김영수처럼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동료들이 개의치 않는다면 상관없긴 했다.

그러나 진지하게 그를 상대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짜증 나는 노릇이었다.

"기술이란 이런 식으로 쓰는 거다! 천래일섬!"

번-쩍!

기철민이 들고 있는 검에서 섬광이 일었다.

방어막 밖에서 그를 지켜보던 정대식은 한마디 말로 그 대결을 정의했다.

'저쪽은 간격 싸움이군.'

김영수는 창이라는 긴 무기를 갖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무기가 길면 공격에 유리하다.

3m짜리 창은 팔 길이와 합쳐지면 거의 4m에 육박하는 공격 범위를 가지는 것이다.

반면 기철민은 장검이기는 하나 상대적으로 김영수의 창보다는 짧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당연히 공격의 범위가 좁아서, 기철민이 김영수를 공격하려면 그의 공격 범위 안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즉, 간격이 넓으면 넓을수록 김영수가, 좁으면 좁을수록 기철민이 유리한 것이다.

두 사람도 그 사실을 알고 서로의 공격 범위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김영수는 어떻게든 기철민을 멀리 떨어트리려고 했고, 기철민은 반대로 따라붙으려고 하고 있었다.

총 마력량이나 타고난 능력의 범주는 김영수가 조금 더 뛰어날지 몰라도, 그래 봤자 기철민에게 일격을 허락해 버리면 소용이 없을 터였다.

기철민이 마력으로 갈아 낸 검기는 날카로웠고, 최근 무기를 바꾸면서 한층 더 예리해진 듯했다.

일단 공격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김영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데 있다.

김영수 역시 장난스러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력만큼은 만만찮았다.

그는 교묘한 발놀림으로 계속해서 기철민을 따돌리고 있었다.

기철민은 그간 쌓아 온 경험과 인내를 바탕으로 끈덕지게 따라붙고 있었다.

어쩌면 이 싸움은 간격이 아닌, 참을성과 집중력의 대결이 될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정대식이 알기로 기철민은 그 분야에 있어서는 남부럽지 않았다.

'잘하면 기철민이 이기겠어.'

어찌 보면 2조의 인물들과 부딪치지 않은 것은 기철민으로선 행운이었다.

2조의 인물들은 1조의 인물들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쪽은 서로 마주 보고 선 기세조차도 범상치 않았다.

* * *

2조에서 상대를 응시한 채 선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미동이 없었다.

1조가 굉음을 내며 격렬히 싸우는 와중에도 침묵했다.

그들이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어, 공격할 타이밍을 찾아 상대를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2조에 속한 트레이닝복의 여자, 김태희는 아까는 보지 못한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절구처럼 생겼는데, 절구라기에는 모양이 꽤나 흉측했다.

양쪽 공이 부분에 메이스처럼 굵은 가시가 촘촘히 솟구쳐 나와 있어 거기에 한 대 맞기라도 했다간 어떤 꼴이 될지 상상하기가 싫을 정도였다.

여자를 상대하고 있는 남자, 신대훈의 무기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마치 거북이처럼 전신을 두터운 방어구로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방어구의 모양새가 특이했다.

마치 여러 가지 크기의 원방패를 이어 붙여 만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등과 배에는 거북이 등딱지처럼 커다란 방패가 붙어 있었고, 가슴과 어깨에는 중간 크기의 방패가, 팔과 허벅지, 정강이 등에는 보다 작은 크기의 방패가 붙어 있었다.

물론 수십 개의 방패를 몸에 붙이고 있을 만큼 신대훈의 체격이 컸다.

사냥터에서 잘못 보면 오거인가 착각할 지경으로, 타이탄 공격대의 소문난 덩치인 팔용대와 맞먹을 정도였다.

거기다 부피가 큰 방어구를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거대해 보였다.

반면 트레이닝복 달랑 하나 걸친 김태희는 체구도 아담했다.

키는 기껏해야 160cm 정도?

몸무게는 50kg에도 못 미칠 것같이 호리호리했다.

그 몸으로 무식하게 생긴 쇳덩어리를 들고 거대한 덩치를 마주 보고 있으니 참으로 희극적이었다.

둘은 서로를 견제하며 한동안 주의 깊게 호흡했다.

그러다가 신대훈이 먼저 반 발짝을 옮겼고, 김태희가 따라서 발길을 옮겼다.

그들은 돔 안에서 천천히 빙글빙글 돌았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상태로 게처럼 옆으로 발길을 옮기다가, 이윽고 김태희가 먼저 땅을 박찼다.

"핫!"

짧은 기합성을 내뱉으며 김태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거의 자기 키를 넘길 만큼 높이 솟구쳐 오른 그녀가 절구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꽤 위력적인 공격이었으나 신대훈은 한 팔을 들어 간단히 그 공격을 막았다.

쩌엉!

쇠와 쇠가 부딪치는 굉음이 울리고, 김태희가 별안간 외쳤다.

"거성진화!"

쩌저정!

김태희를 도로 튕겨 내려던 신대훈이 식겁해 다른 한 팔도 들어 올렸다.

그녀가 시동어를 외치기 무섭게 절구가 폭발하듯 커진 것이다.

정확히는 거기에 촘촘히 박혀 있던 가시가 더 튀어나왔다고 봐야 되겠다.

"이익!"

신대훈은 발을 쾅! 굴리며 여자를 허공으로 던져 냈다.

그러자 김태희가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절구로 남자 쪽을 가리켰다.

"초신성 폭발!"

파바바바바밧!

이번엔 절구의 가시들이 신대훈 쪽을 향해서 쏘아져 나갔다.

말이 가시지, 그건 하나하나의 크기가 성인 남자의 손바닥을 넘는 길이였고 굵기는 볼펜만 했다.

암기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흐읍!"

신대훈은 그것을 튕겨 내며 앞으로 돌격했다.

그리고 땅으로 떨어진 김태희를 짓밟을 듯 발을 크게 들어 올렸다.

"골리앗 진공!"

콰아아아아앙!

김태희는 재빨리 몸을 굴려 그 공격에서 벗어났다.

빗나간 공격은 애꿎은 훈련장 바닥을 내리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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