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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122화 (122/297)

# 122

현질 전사

- 5권 22화

그들은 경악한 채로 훈련장 중앙에서 벌어진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대식 역시도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분명히 기철민의 공격이 김태희의 몸에 맞았다.

지금쯤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든 어쩌든 해야 했다.

하지만 김태희는 멀쩡했다.

멀쩡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트레이닝복이었다.

앞섶이 갈라져 옷으로의 기능을 잃어버린 채였다.

하지만 옷 안에 드러난 하얀 앙가슴에는 아무런 상처도 나 있지 않았다.

정대식의 시선은 곧 기철민에게로 돌아갔다.

그의 모습은...... 참혹했다.

기철민은 공이에서 튀어나온 철심이 몸 곳곳에 가 박힌 모습이었다.

몬스터와 싸워도 저런 꼬락서니는 안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철민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문 채로 정신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는 기철민을 보고 선 김태희의 낯빛이 창백했다.

아마 그녀도 기철민을 그런 꼴로 만들 작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철민이 검을 거두어들여 자신의 공격을 막아 내리라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기철민은 방어보다 공격을 택했다.

그 이유를 짐작기는 어렵지 않았다.

기철민은 마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마력 회복 포션으로 채워 놓은 양이라고 해 봤자, 기술 하나만 쓸 수 있는 정도였을 테다.

그러니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공격할 수 없다 판단하고 무모한 짓을 감행한 것이었다.

김태희는 감정을 억누른 목소리로 말했다.

"항복해."

기철민은 입술을 푸르르 떨었다.

그리고 피 섞인 기침을 한 번 하고는 대답했다.

"아니...... 싫어."

그때였다.

보다 못한 강영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다.

"이 대결은 중지다!"

그러자 기철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뇨, 싸울 수 있습니다!"

정대식은 이를 악물었다.

'저 얼간이가...... 미친 거 아냐?'

기철민은 누가 봐도 지금 당장 쓰러져야 하는 판국이었다.

방어구 덕택에 급소는 피했는지 몰라도 철심이 그의 몸 곳곳에 박힌 상태였다.

심지어는 뺨에까지 철심이 박혀 있어 까닥했으면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물론, 뺨에 철심이 가 박힌 것만으로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기철민이 말을 할 때마다 그게 움직여서 더 그랬다.

기철민은 계속 싸우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피를 한 바가지 토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채로 버티고 서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국 심판인 강영후가 승패를 결정지으려는 순간이었다.

"항복합니다."

별안간 김태희가 절구를 내려놓으며 항복 의사를 밝혔다.

기철민은 눈을 크게 떴고,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펜리르 부대에 들어가고자 하는 집념에선 내가 졌다."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기철민이 까무룩 기절했다.

강영후가 서둘러 소리쳤다.

"방어막 거둬! 힐러!"

여수희가 방어막을 치우자마자 힐러와 팔용대를 비롯한 외눈박이 부대원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그들이 쓰러진 기철민의 몸에서 철심을 빼고 치료 포션을 들이부었다.

힐러도 곧 힐을 썼다.

기철민을 둘러싼 동료들 가운데는 최선도 있었다.

그녀를 발견하고 정대식은 기분이 좀 묘해졌다.

최선이 준 마기전 때문인가 싶었지만 단순히 그뿐만은 아닌 듯했다.

그의 눈앞에는 일전에 본 그녀의 미소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

정대식은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어 최선의 생각을 떨쳐 냈다.

그러고 기철민이 실려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강영후가 한 손을 들어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훈련장 중앙에서 나오는 김태희를 보고 말했다.

"정말로 항복할 셈인가? 펜리르 부대에 들어가고 싶은 건 자네도 마찬가지일 텐데."

김태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한 말을 번복할 수는 없죠."

강영후는 김태희의 항복 선언을 받아들이고 말했다.

"펜리르 부대원 최종 선발전의 승자는 기철민이다. 이로써 펜리르 부대원을......."

"잠시만요!"

정대식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강영후가 당혹해 입을 다물자 정대식은 그에게 고개를 조금 숙여 사과하고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가능하다면...... 김태희도 제 부대로 데려갈 수 없겠습니까?"

김태희의 눈이 커지고 강영후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정대식은 빠르게 말했다.

"부대원의 숫자는 부대의 성격과 부대장의 재량에 맡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펜리르 부대는 던전 공략이라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니 부대원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겁니다. 더욱이, 제가 선발한 부대원은 총 여섯 명. 여기에 한 명을 보탠다고 해도 저까지 포함해 여덟 명이니 그 수가 많다고 할 수는 없죠.

또한, 여기 김태희 씨는 단독 임무를 맡아 여태까지 혼자서 활동하고 있었으니 다른 대원들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녀의 거취가 기존 부대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으니, 펜리르 부대에 들어와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정대식이 조목조목 하는 말에 강영후도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김태희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고, 그녀는 약간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저, 저야 뭐...... 절 펜리르 부대에 받아 주신다면 기쁠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기철민과 김태희, 이 두 사람을 전부 다 제 부대로 넣겠습니다."

그리하여, 펜리르 부대원이 확정되었다.

프랑켄슈타인 부대에서 온 서지원, 크툴루 부대 출신의 고덕화. 외눈박이 부대의 김송근과 기철민, 머메이드 부대와 외인부대의 이재우, 허미래. 그리고 김태희와 정대식.

이렇게 여덟 명이 바로 펜리르 부대가 되었다.

Chapter 30. 첫 번째 훈련

"......정식으로, 펜리르 부대라 칭하고 위와 같은 임무를 맡긴다. 그리고 타이탄 공격대의 정식 대원 정대식을 부대장으로 임명한다."

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터지는 가운데 단상 위에 선 정대식은 강영후로부터 정식으로 부대장 임명장을 받았다.

임명장을 옆구리에 끼자 강영후가 펜리르 부대를 상징하는 자주색 인장을 손등에 새겨 주었다.

그것은 이리가 보름달을 보고 울부짖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붉은색과 파란색이 섞인 색깔이 특수 부대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었다.

타이탄 부대에는 또 다른 특수 부대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게 바로 외인부대다.

외인부대의 색깔은 푸른색이 더 많이 들어간 보라색이었으나, 펜리르 부대는 반대로 붉은색이 보다 진해 거의 자주색으로 보였다.

정대식은 강영후와 악수를 나누고 강당에 모여 있는 타이탄 공격대원들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런 뒤 제자리로 돌아가자 강영후가 펜리르 부대원도 한 명 한 명 불러 임명장을 건네주고 인장을 새겨 주었다.

보통은 부대장까지만 불러올리는 모양이라, 부대원들을 따로 챙기는 모습에서 강영후가 펜리르 부대에 걸고 있는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펜리르 부대 창단식이 끝나고 뒤풀이를 겸한 연회가 열렸다.

분위기는 정대식과 기철민이 입대식을 치른 그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대식은 연회장으로 나아가 한곳에 모여 선 펜리르 부대원들을 보며 감개무량한 기분을 느꼈다.

'타이탄 공격대에 가입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헌터가 된 것 자체가 어제의 일처럼 느껴졌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가 버렸는지, 헌터가 된 지 벌써 1년 가까이가 지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한데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나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조금쯤 변했을까 싶었지만, 정대식은 내심 고개를 흔들어 부정했다.

오로지 강해지기만을 울부짖는 바보가 되었다면 또 모를까.

그의 목표는 여전히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단순한 부자가 아니다, 갑부다!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갑부가 되어 마천루를 발아래 두고 산다면, 신도 부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러니 다른 신도 아니고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에게 선택을 받은 거겠지.'

정대식은 쓸데없는 생각을 접어 버리고 펜리르 부대원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은 아직 서로를 서먹하게 보고 있었다.

여태 각자 다른 부대에 있었기에 그리 친하지 못한 것이다.

정대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창단식 전에 한 번 모였어야 하는 건데, 그간 사냥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그러지를 못했다.

펜리르 부대원 선발전이 끝나고, 정대식은 한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사무실을 지정받고, 필요한 의복과 무구, 장비를 채우고 각 대원들의 개인 요청 사항을 확인하는 등 펜리르 부대의 일로도 바빴으나, 실은 돈을 벌러 다니느라 더 바빴다.

정대식은 일전에 엔트로피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현질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엄청난 금액의 상점 업그레이드를 계속해 나가야 했다.

상점을 Lv6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돈은 무려 1,000억!

1,000억, 10억도 100억도 아닌 1,000억이었다.

실로 경악할 만한 금액이었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정대식은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던전에 쫓아다녔다.

그러면서 계속 본인의 상태 수치를 향상시키고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며 레벨을 상승시켜 나갔다.

그래야지만 더 값어치 있는 마정석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상점에 직접 마정석을 판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정대식은 1,000억을 모으겠다는 장대한 꿈을 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벌리는 돈을 소소히 투자해 상점 레벨 5 수준에서 획득할 수 있는 여러 능력으로 한참을 버텼을 테다.

그러나 현질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라 생각되어 상점 업그레이드를 서두르고 있는 거였다.

거기에는 엔트로피의 성장 문제도 있었다.

엔트로피의 레벨이 올라서면서 그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정대식과 링크하여 정찰을 돕고 스킬 발동을 대신해 주고 있으니 상당히 편리했다.

이런 엔트로피가 직접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정대식이 원하는 에고 웨펀의 형태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셈이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이유로 상점 업그레이드를 하기 위해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다녔다.

그 와중에 펜리르 부대를 창설하는 데 필요한 온갖 일까지 다 처리를 해야 했으니 얼마나 바빴겠는가?

덕분에 대원들과 사사로운 시간을 가질 여유를 찾지 못했다.

아마 대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대식이 각자 할 일을 떠맡겨 놓은 터라 친목을 쌓을 겨를이 없었을 터였다.

그런고로 함께 모인 펜리르 부대원들의 분위기는 영 썰렁했다.

정대식에게 뼈 있는 농담 한두 마디 던질 법한 기철민조차도 조용했다.

그는 정대식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은 말을 편하게 했는데 이제는 엄연히 부대장과 대원으로 직급이 나뉜 것이다.

전처럼 틱틱거리며 행동했다간 부대 내 서열을 해칠 수 있었으므로, 정대식에게 친근하게 굴지 못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허미래 역시도 마찬가지인지라, 정대식은 이제라도 대원들을 좀 친해지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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