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23화 (123/297)

# 123

현질 전사

- 5권 23화

"이미 나와는 여러 번 봐서 알겠지만, 정식으로 다시 인사하지. 난 펜리르 부대를 도맡게 된 부대장, 정대식이다. 알다시피 트리플리스트...... 아니, 지금은 쿼드러플이지. 네 가지 계열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딱히 포지션을 특정할 수 없어. 탱커, 딜러, 버퍼, 힐러까지. 모든 역할을 아우를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주종은 탱커와 딜러라고 할 수 있겠군. 내 소개는 여기까지다. 그럼 차례대로 한 명씩 말해 볼까?"

정대식의 권유에 따라 그의 오른쪽에 서 있던 허미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 저기...... 저, 저는 허미래입니다."

정대식이 그 말을 끊고 말했다.

"대원들끼리는 말을 놓는다. 쓸데없는 존댓말을 붙여 봤자 의사소통에 제한이 생길 뿐이지. 어차피 전투 상황에 들어가면 존댓말 할 정신도 없을 테고."

"어, 그럼......."

"경어는 내게만 붙인다. 계속해."

천성이 순진한 허미래는 아직 낯선 인물들에게 말을 놓는 것을 상당히 힘겨워했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으음...... 저는...... 아니, 나는 외인부대에서 온 허미래라고 해. 포지션은 디버퍼이고...... 일부 버프도 가능은 하지만 주력은 디버프야, 디버프. 주로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봉쇄하거나...... 느리게 하거나...... 함정을 치거나...... 그런 일들을 해."

허미래는 곧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잘 부탁해."

다음 순서는 서지원이었다.

그는 눈이 가느스름하면서 피부가 뱀파이어처럼 창백하고 머리가 덥수룩했다.

얼굴에는 요란한 화장을 하고 있고 발끝까지 닿는 긴 로브를 걸치고 있어 누가 봐도 나 마법사요, 하고 외치는 거 같은 차림새였다.

보통 마법사들은 그와 같이 한눈에 마법사라고 알아볼 수가 있었는데, 마법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주문을 얼굴 혹은 몸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란한 화장처럼 그려져 있는 그 주문을 통해서 마법사들은 낭비 없이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부릴 수가 있었다.

"나는 서지원. 원래는 프랑켄슈타인 부대에 있었고...... 누가 봐도 마법사지. 주특기는 공간 마법이고, 마력 배터리 제작에도 재주가 있는 편이야."

그렇게 말을 하며 서지원은 걸치고 있는 로브를 펼쳐 보였다.

그 안에 촘촘히 매달려 있는 마력석들이 보였다.

마력석은 마정석을 가공해 만드는 물건으로 안에 마력을 저장해 놓을 수가 있었다.

비록 일회용이라고는 하지만 마력석을 제작할 수 있다니, 상당히 귀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입을 연 사람은 고덕화였다.

그는 개량 한복 같아 보이는 헐렁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옷차림 때문인지 선비처럼 점잖은 인상이었다.

키도 상당히 크고 체격도 좋아서 펜리르 부대에서는 가장 덩치가 컸다.

그의 등에는 옷차림만큼이나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물건이 짊어져 있었다.

고덕화는 대원들의 시선이 몽땅 거기에 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로 입을 열었다.

"난 고덕화...... 다들 알다시피 크툴루 출신이다."

이번에 부대 자체가 와해되어 버린 크툴루 부대는, 지난번 마지막 사냥에서 참혹한 일을 겪었다.

뜻하지 못하게 정체불명의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아 부대장이 도륙당하고 나머지 부대원들도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한 꼴을 당했던 것이다.

고덕화는 고작 세 명 살아남은 크툴루 부대의 생존자 중 한 명으로, 그래서 그런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나는 주로 원거리 공격을 담당하는 딜러지만, 근거리 공격도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천강벽수선으로 간단히 정찰을 하거나 물건을 운송하는 것도 가능하지. 전후를 전부 커버하는 딜러라고 보면 될 거야."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이라 밝힌 물건이 그가 등에 짊어진 무구였다.

그건 마치 부채처럼 생겼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선녀의 부채처럼 생긴 모양새였다.

접혔다 펴는 형태가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지도 않았다.

손잡이는 대나무처럼 마디진 나뭇가지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것은 부챗살도 마찬가지였다.

얄팍하게 펼쳐진 살 위에 비단처럼 윤이 나는 천이 덮여 있고, 가장자리가 깃털로 장식된 모양이었다.

아무리 봐도 무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뭐, 크기가 보통 부채의 몇 배로 더 크기는 했다.

대략 1m 정도의 길이에 가장 넓은 자리가 60cm 정도라 고덕화가 그걸 등에 짊어지고 있어도 어깨너머로 형태가 잘 보였다.

그때 문득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툴루 부대에 택견하는 놈이 한 명 있다더만, 그게 너였나 보지?"

말을 꺼낸 사람은 머메이드 부대 출신의 이재우였다.

그는 과장스레 몸을 흔들며 "이크, 에크, 이크" 하고 고덕화를 놀려 댔다.

그 모습을 보고 정대식은 여수희가 골칫거리를 데려가 줘서 오히려 고맙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고덕화는 이재우의 놀림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다른 대원들만 눈살을 찌푸렸을 뿐이다.

이재우는 호응을 받지 못하자 김샜다는 식으로 피시식,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뒤 말을 이었다.

"다음은 나지? 내가 어느 부대에서 왔는지는...... 생략하지. 여태껏 이 부대 저 부대를 전전했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 하지만 최악은 역시 마지막에 있던 머메이드 부대였어. 머메이드라니, 이름부터가 얼빠지지 않나?"

이재우를 여수희가 떠넘기다시피 한 이유가 있었다.

이재우는 벌써 네 차례나 부대를 옮긴 전적이 있었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어떤 부대에 들어가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펜리르 부대라는 이름은 아주 근사하지. 진짜 잘 지었어요, 부대장! 센스 있으시네."

너스레를 떤 이재우는 곧장 말을 이었다.

"나는 종이 술사이고, 내 능력에 대해서는 뭐...... 굳이 설명하긴 귀찮고. 소환 술사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겠네. 부대장님과 마찬가지로 전천후라고나 할까? 소개는 이만하지. 어차피 사냥하러 가면 알게 될 테니까."

이재우는 으스대며 말을 아꼈다.

그를 부대원으로 고르면서 관련 자료를 상세하게 살펴본 정대식은 그의 능력이 전에 없이 특이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비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희귀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만약 포텐을 터트린다면 정대식 자신을 제외하고 펜리르 부대에서 가장 강한 인물이 될는지도 몰랐다.

그다음이 김송근이었다.

그는 이재우의 뒤에 이어 말을 한다는 것이 불쾌한 듯했다.

하지만 순서가 오른쪽 방향으로 돌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

김송근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내 이름은 김송근이고...... 원래는 외눈박이 부대였어. 알고 있겠지만 외눈박이 부대에 있을 때는 정보수집을 주로 했어. 그렇다고 내 공격력이 달린다는 소리는 아니고. 근거리 공격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지. 내 능력은 분신술이니까."

그도 이재우 못지않게 희귀한 능력자로 자신의 몸을 여러 명으로 나눌 수가 있었다.

몇 명까지 나누는 게 가능한지는 확인되어 있지 않지만 꽤 여러 명으로 분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다음 차례로 김태희가 입을 열었다.

"난 김태희."

그녀는 오늘 같은 날에도 트레이닝복을 걸친 채였다.

그나마 강당에 있을 때는 타이탄 공격대에서 지급하는 롱코트를 걸치고 있었으나 지금은 벗어 버린 상태였다.

그 커다란 절구는 어디 따로 두었는지 보이지 않았기에, 집에서 뒹굴던 백수 한 마리가 집 밖에 기어 나온 몰골이었다.

"난 소속 부대가 없었고...... 내 능력은 선발전에서 봤을 테고."

소개는 그게 끝이었다.

곧장 입을 다물어 버려, 기철민이 머쓱해 하며 마지막 순서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난 기철민. 외눈박이 부대에서 왔고, 근거리 딜러다. 주무기는 뭐, 다들 봐서 알겠지만 검이지. 개인적으로는 이 부대에 꼭 들어오고 싶었으니까, 여기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네. 잘 지내보자."

기철민은 정말로 펜리르 부대에 소속된 게 기쁜 모양이었다.

원래 성격은 더럽게 까칠한 주제에 잘 지내보자는 둥, 입 발린 소리를 잘도 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태세를 전환할 수 있는 녀석이기는 하지만 참 적응이 안 됐다.

그건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인지 어쩐지, 허미래는 활짝 웃으며 "으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대부분 별 반응이 없었다. 심지어는 같은 부대였던 김송근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썰렁하구만.'

이런 연회장에서 자기소개는 해 봤자였다.

이건 서로 안면을 익히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정대식은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배는 적당히들 채운 것 같고, 통성명도 이만하면 됐으니 이제 슬슬 친목을 다지러 가 볼까?"

몇 시간 후, 그들은 던전 앞에 와 있었다.

정대식은 팔에 마기전을 끼우며 얼이 빠진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뭐 해? 준비하지 않고."

그 말에 다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친목을 다진다고 해서 가평이나 어디 놀러라도 가나 보다 생각한 모양인데, 어림없는 소리였다.

'시간 낭비할 겨를이 없다. 얼른 1,000억을 모으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정석을 모아들여야 해. 내가 하루라도 빨리 상점을 업그레이드하는 편이 이 녀석들한테도 낫겠지.'

정대식은 채비를 마치고 양 떼를 몰아가듯 대원들을 던전 안으로 집어넣었다.

"자! 빨리빨리 움직인다!"

* * *

퍼버버벙!

"아르르르르!"

고음의 소리를 내며 허공에서 스프리건이 흩어졌다.

정대식은 스프리건이 흩어진 자리에서 다시금 쇄도하는 포워르를 후려쳤다.

퍼벙!

"케엑!"

염소 대가리를 한 포워르는 얼굴을 뒤덮은 털이 검게 그을린 채 뒷걸음질을 쳤다.

그 뒤로 무려 세 마리나 되는 포워르가 우르르 몰려와 정대식은 마기전을 찬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마기장!"

퍼엉!

그의 마력이 방패처럼 넓게 펼쳐져 닥쳐드는 포워르 부대를 뒤로 밀어냈다.

놈들이 우르르 나동그라지는 걸 보고 틈바구니로 뛰어들어 끝장을 내려는데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

뒤를 돌아보자 허미래가 스프리건에게 집어삼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정대식은 황급히 그쪽으로 마기장을 날렸다.

둥근 구체로 쏘아져 나간 마기장이 허미래의 몸이 닿기 무섭게 정대식은 정신을 집중했다.

"방어!"

파아앙!

허미래를 감싸고 돈 마기장이 폭발하듯 주변으로 확 퍼지며 일렁거리는 유령 형태를 한 스프리건을 밀어냈다.

그러나 안개처럼 특정한 형태가 없어 다시금 꾸물꾸물 모여들고 있었다.

정대식은 주위 상황을 재빨리 둘러보고 서지원에게 소리를 쳤다.

"서지원! 뭐 하는 거야!"

정대식이 방어를 맡긴 서지원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포워르에게서 대원들을 보호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대원들은 대오를 지키지 않았다.

각자 제멋대로 싸우고 있어 서지원이 방어력이 효과 있을 만한 범위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협조를 해 주지 않으니 마력만 낭비하고 있는 꼴이었다.

정대식은 이를 악물고 다시 전방을 쳐다보았다.

나가떨어졌던 포워르가 다시 태세를 갖추고 달려들고 있어 그는 주먹을 내뻗었다.

"무적권!"

콰과과과광!

"캬하악!"

"뀌에엑!"

포워르 다섯 마리가 일시에 머리가 터져 죽자 나머지 놈들이 주춤거렸다.

정대식은 그 틈을 타 옆쪽에 서 있던 이재우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탱커 역할을 도맡으라 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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