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27화 (127/297)

# 127

현질 전사

- 6권 3화

최선은 조심스레 부정했다.

"아뇨......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아시다시피, 타고난 마력량이나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그 능력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죠. 그, 펜리르 부대의 마법사께서는 공간 마법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다고 들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정대식은 섣불리 좋아했다가 실망해 혀를 쯧, 찼다.

머리 나쁜 마법사인 서지원은 보기 드물게 공간 마법을 쓸 줄 알았으나 근거리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가 주로 쓰는 마법을 봐도 그렇다.

그는 주로 공간 분리나 공간 전이 마법을 쓰고는 했는데, 멀어 봤자 몇 미터 정도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는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행여 마법에 오류가 일어나 누군갈 다치게 할까 봐 그런 것 같았다.

정대식은 질문을 바꿨다.

"하지만 서지원이 포탈 제작자와 같은 능력을 가진 것은 확실하죠?"

"제 생각에는...... 온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어도 비슷한 것 같아요. 포탈 제작자를 알고 있는 언니에게 물어보면 더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음, 그럼 최희 씨는 언제 돌아오는 거죠?"

"이번엔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고 그랬어요."

무슨 비밀스러운 임무라도 맡아서 멀리 갔나 보다고 짐작하며 정대식은 포탈 중앙으로 발을 옮겼다.

포탈은 만들어 놓았다 해서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막대한 마력을 잡아먹기에 몸에 소지하고 있는 것들, 옷이나 가방 등을 옮기기에도 벅찼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을 함께 옮기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포탈을 쓰는 사람들은 각자 갖고 있는 마력으로 공간을 이동해야 했다.

이게 바로 포탈이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였다.

최선도 자신만의 마력을 가지고는 포탈 이용이 안 되는지 마력석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걸 움켜쥔 채로 말했다.

"마력을 바닥에 그려진 진으로 흘려 넣으세요. 그리고 시동어를 외치면 자동으로 마력을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까?"

"간혹 있기는 해요. 한두 번쯤은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연습하면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어요. 먼저 해 보세요."

정대식은 최선이 말한 대로 마력을 바닥으로 쏟아부었다.

그러자 포탈이 환하게 빛을 냈다.

정대식은 포탈에 충분한 마력이 전달된 것을 보고 최선이 말한 시동어를 읊었다.

"공간 이동."

말을 하기가 무섭게 머릿속에 어떤 지식이 주입되었다.

단순히 포탈과 마력만으로 작동이 되는 게 아니라, 이동자가 어느 정도는 공간 이동에 대해 이해하고 마력을 그대로 운용해야 했다.

시동어는 그 방법을 알려 주는 입력어에 불과했다.

그 방법이 꽤 어려웠으므로 정대식은 왜 간혹 사람들이 실패를 했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신중하게 마력을 자신의 세포 하나하나에 밀어 넣었다.

곧 포탈이 작용하며 그의 몸이 공중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으!"

격심한 어지럼증이 덮쳐 왔다.

단순히 어지럼증이라고 말하기에는 힘든 감각.

마치 던전에 들고 날 때의 위화감을 몇천 배로 키워 놓은 것 같았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전혀 낯선 풍경이 보였다.

'성공했나?'

정대식은 포탈에서 물러섰고, 곧이어 최선이 뒤따라왔다.

그녀의 표정도 별로 좋지 못했다.

"멀미가 심하네요."

정대식이 말을 하자 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으로 가는 입구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안정화가 그만큼 완벽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포탈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진을 복잡하게 그릴 수 있어서 좀 덜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요? 그럼 이제 어디로 가죠?"

"이쪽으로 오세요."

정대식은 최선을 따라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있는 곳은 웬 산중턱이었다.

오래된 유적처럼 보이는 성터가 듬성듬성한 숲 너머로 보였고 산등성이에 군데군데 집들이 보였다.

그 집들은 대부분 창고 같아 보이는 큰 건물을 따로 갖고 있었다. 이따금 거기에서 불꽃이나 연기가 치솟는 걸 보아하니 거기가 대장간인가 싶었다.

최선은 발길을 옮기며 말했다.

"이곳은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명장이신 그레고리우스가 계시는 곳이에요. 여기 보이는 촌락에는 전부 그레고리우스 님께 기술을 전수받기 위한 제자들이 살고 있죠."

그레고리우스라면 정대식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장장이였다.

최희도 몇 번이나 무구를 그에게 맡긴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의 인연으로 정대식을 여기에 보낸 모양이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전부 제자들이란 말입니까?"

"그래요. 그레고리우스 님은 제자를 널리 받고 계시거든요. 물론 오래 남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요."

최선은 빠른 걸음으로 오솔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렇게 몇 개의 집을 지나 칠이 다 벗겨진 붉은 지붕 집 앞에 다다랐다.

그 집의 문을 똑똑 두드리고 최선은 서툴게 입을 열었다.

"Guten Tag......."

곧 문이 열리며 안에서 흰 수염이 풍성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가 뭐라 뭐라 떠드는데, 독일어 같았다.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최선은 그럭저럭 알아듣기는 하는 모양인데 의사소통이 그렇게까지 원활해 보이지 않았다.

정대식은 답답해서 궁리 끝에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나랑 링크하고 실시간으로 번역 좀 해 줘."

<알겠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엔트로피를 보고 남자는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곧 껄껄 웃더니 감탄하는 투로 말했다.

「이만한 재주의 능력자는 오래간만이군!」

엔트로피가 남자의 말을 번역해 주어 정대식은 편안하게 입을 열 수가 있었다.

"최희 씨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 인챈트 문제로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네. 들어들 오시게.」

정대식은 남자의 안내로 최선과 함께 아담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차 한 잔과 쿠키를 내주어 그걸 감사히 받아 들고 말했다.

"저는 정대식이고, 이쪽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최희 씨의 여동생 분인 최선 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쪽 분은......?"

「만나서 반갑네. 내가 바로 그레고리우스라네.」

"그레고리우스 씨라고요? 그 명장이신......?"

「맞아.」

"죄송합니다. 더 나이가 많은 분일 거라고 생각을 해서."

「각성자들은 알다시피 나이가 많기 어렵지. 확장 현실 세계가 시작된 지 이제 겨우 10년이 아니던가? 나 정도면 나이가 많은 거야. 내가 올해로 45세니까.」

남자는 백발에 하얀 수염으로 얼굴이 뒤덮여 있었다.

그렇기는 해도 선량해 보이는 눈매나 반듯한 입가가 왠지 모르게 젊어 보였다.

아마도 그에게서 풍기는 청량한 기운 때문인 것 같았다.

대단히 마력이 넘치는 사람인지 가만있어도 그 기운이 은은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별로 시간이 없으니 본론을 서두르지. 인챈트를 하고 싶다고?」

"예, 제가 최희 씨의 호의로 인챈트 스크롤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는 이걸 다룰 만한 대장장이를 찾는 것이 힘들어 최희 씨에게 소개를 부탁드렸었습니다. 그게 설마 그레고리우스 씨일 줄은 몰랐습니다만......."

정대식은 좀 머쓱해졌다.

단순한 인챈트라면 한국의 장인을 만나는 것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한데 최희가 이쪽을 소개해 주는 바람에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명검으로 토끼를 잡는 셈이었다.

'기철민이 올 때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정대식이 마기전과 인챈트 스크롤을 내어놓자, 그레고리우스는 신중하게 그것을 살펴보았다.

그는 "흐음" 하고 턱을 쓰다듬더니 뜻밖의 질문을 했다.

「자네가 갖고 있는 건 이거 하나뿐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리 봐도 이건 전신 방어구의 일부 같은데.」

"아, 그렇습니까?"

정대식은 자연스레 최선을 돌아보았다.

그녀에게서 받은 물건이라 마기전에 대한 유래는 최선이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최선도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제가 저걸 손에 넣었을 때에도 저 부위 하나뿐이었어요."

「이걸 어디서 손에 넣었지?」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 때 우연히 갖게 된 거예요. 그 후로 쓸모가 없어서 방치해 두고 있었죠. 그러다가 정대식 씨가 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언니에게도 의견을 물어보고 갖다 드린 거였어요."

"그랬군요. 그럼 세트를 갖추지 못하면 인챈트를 할 수 없습니까?"

정대식의 질문에 그레고리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아. 단지 내가 이것과 비슷한 물건을 다른 데서 본 적이 있거든.」

"비슷한 물건이라니요?"

「정확히는 다른 파츠라고 해야 하나? 이게 완갑(腕甲)의 한 짝이라면 내가 본 건 각갑(脚甲)이었지.」

정대식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그걸 어디서 보셨습니까?"

「무슨 경매장에서 봤을 거야. 지금은 어떤 호사가의 손에 넘어가 있지. 아마도 미국의 대 재벌인 팔머 가의 손에 들어가 있을 걸?」

그레고리우스의 말에 따르자면 미국의 억만장자인 제이드 팔머가 그 다리 부분의 파츠를 사들였다고 했다.

그는 던전에서 나온 온갖 아이템을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개중에서도 갑옷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마 다른 파츠를 전부 모아들일 작정으로 그걸 사 갔던 거겠지. 지금쯤 몇 개 정도 모았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군요."

마기전이 전신 갑옷의 일부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왕이면 모든 파츠를 다 모아서 완전한 마기전을 갖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마기전 하나의 위력이 이만한데 전신 갑옷을 다 모으면 얼마만한 위력일까? 아마도 엄청나겠지? 말로만 전해지는 L등급의 무구가 될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할 거야. 마기전 하나만으로도 쓰는 게 벅차다 싶을 정도로 마력을 잡아먹는데, 전신 갑옷이라면? 기 빨려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정대식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인챈트를 부탁했다.

그레고리우스는 마기전과 스크롤을 들고 대장간으로 나갔다.

대장간에는 수제자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어린 소년이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단야로를 치워 놓고 그레고리우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화덕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데 화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불을 땔 만한 어떤 도구도 보이지 않아서 일반적인 대장간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가 풀무를 붙잡고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하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타올라라!」

콰아아아!

풀무에서 그가 불어넣은 마력이 시퍼런 불길로 변해 화덕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것이 곧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보통 불길이 자아내는 열과는 다른 성질의 불이었다.

단순히 뜨거운 게 아니라 거기에서 엄청난 빛과 힘이 느껴졌다.

'우와!'

다른 대장장이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신비 금속을 다루기는 하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불을 썼다.

그러나 보통의 대장장이와 같이 단야로에 불을 피워 놓고 거기에 마력을 불어넣는 식이었지, 오로지 마력만으로 불을 지피지는 않았다.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불이 금방 꺼져 버릴 것이다.

온전한 마력의 불은 엄청난 마력량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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