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28화 (128/297)

# 128

현질 전사

- 6권 4화

그레고리우스가 마력의 불길을 피울 수 있는 데는 그가 쓰는 풀무도 한몫을 하는 듯했다.

보통 물건이 아닌 듯, 그레고리우스의 마력이 불어넣어지자 웅웅거리며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몇 번인가 더 그 풀무를 써서 불길을 키워 놓고, 정대식의 마기전을 안에 집어던져 넣었다.

화르르륵!

마기전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고 정대식은 좀 긴장했다.

행여 마기전이 망가지지는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레고리우스가 맨손을 쑥 화덕 속에 집어넣었다.

정대식은 하마터면 외마디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순전히 그의 마력으로 지핀 불이니 그레고리우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레고리우스는 놀란 정대식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 속을 몇 번 뒤적거려 마기전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마력의 불길에 달궈져 새파랗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마기전을 몇 번 주물럭거리더니 인챈트 스크롤을 움켜잡고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인챈트 스크롤이 불타며 반짝이는 재가 마기전 위에 흩뿌려졌다.

그러면서 마기전의 빛깔이 알록알록하게 변했다.

'잘 되고 있는 건가? 마기전이 무지개 색이 되는 건 싫은데.'

그때 그레고리우스가 한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게.」

정대식이 순순히 손을 내주자 그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다른 손에는 마기전을 든 채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몸에서 마력이 스윽 딸려 나갔다.

'어어?'

정대식이 주춤하며 어깨를 꿈틀거리자 그레고리우스가 씩 하니 웃었다.

「방대한 마력이군. 게다가 이건...... 놀라워. 자네, 네 가지나 되는 능력을 갖고 있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니까 명장 소리를 듣는 거지.」

그레고리우스는 곧 정대식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서서히 빛이 가시고 있는 마기전을 모루 위에 놓은 뒤 자그만 손 망치로 톡톡 두드렸다.

분명히 아무런 힘도 가하지 않은 채, 살짝 두드리는 것 같은데 망치와 마기전이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데엥! 데엥-!

마치 큰 종이 부딪치는 것 같은 소음에 깜짝 놀라 있으려니 그레고리우스가 다시금 마기전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잠시간을 기다렸다 도로 끄집어냈다.

「이제 식기만 기다리면 돼. 아마 전보다 성능이 더 좋아졌을 거야. 마력도 덜 잡아먹을 거고. 뭐, 원래 이 무구는 많은 양의 마력을 필요로 해서 별 차이는 없겠지만 말이야.」

정대식은 조금 기다렸다 마기전을 돌려받았다.

"감사합니다."

「별일 아니었어.」

"사례는 어떻게......?"

「겨우 인챈트 하나 한 걸 가지고 돈을 받긴 그렇지. 최희의 부탁이니 특별히 무료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옆에서 잠자코 있던 최선이 디멘션 포켓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걸 받아 들고 그레고리우스는 아주 기뻐했다.

「오! 한국의 전통 과자! 그렇잖아도 이게 생각나던 참이었는데. 잘 먹겠네.」

그건 약과였다.

고급스럽게 포장된 약과 한 상자를 사례 대신 남겨 두고 돌아 나오려는데, 갑자기 그레고리우스가 두 사람을 붙잡았다.

「잠깐만, 주고 싶은 게 있군.」

그는 집으로 되돌아가 위층에서 한참을 부스럭거렸다.

그리고 작은 종이 상자에 무언가를 잔뜩 담아 가지고 나왔다.

「저 아이에게 입혀 주면 좋을 것 같아서.」

뜻밖에도 그건 인형 옷이었다.

그것도 딱, 엔트로피의 사이즈만 한.

이런 게 어디서 났나 싶어서 놀라 쳐다보자 그레고리우스가 쑥스럽게 웃었다.

「죽은 아내 취미가 인형 놀이였거든. 그녀가 수집한 인형은 대부분 원하는 사람에게 보냈는데 옷가지나 물건들이 많이 남았어. 안에 신발이나 모자 같은 것도 있으니까.」

정대식은 얼떨떨하게 그걸 받아 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에...... 엔트로피? 너도 감사하다고 해야지?"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아 가지고 두 사람은 대장간을 나왔다.

정대식은 프릴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인형 옷을 보고 과연 엔트로피가 이걸 입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그 걱정은 접어 둔 채 조용한 오솔길을 되돌아 나가며 최선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선 씨는 마기전이 전신 방어구의 일부라는 사실을 몰랐나요?"

"예, 말씀드렸다시피 우연히 손에 넣은 거라서요...... 하지만 언니라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그걸 정대식 씨에게 주는 편이 어떻겠느냐고 말을 하자, 언니가 묘한 말을 했었거든요."

"뭐라고 했죠?"

"뭐라더라...... 그거라면 7성 무구에 버금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했어요."

"7성 무구라고요?"

정대식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요즘 헌터 사회는 광필두가 7성 무구를 모으기 시작한 일로 시끄러웠다.

그가 신급의 아이템을 가져서 절대자가 되려 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문까지 도는 지경이었다.

한데 마기전이 세븐 스타에 버금가는 물건이라고?

"이 완갑만 놓고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마기전은 쓰는 사람의 마력에 따라 성능 차이가 많이 나는지라 비교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어요. 누가 쓰느냐에 따라 B급에서 SSS급을 오르내리니까 말이에요. 제가 M급이라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성능을 종잡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지,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마기전을 다 모으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7성 무구 한 개와 비슷할 거라는 겁니까?"

"아뇨, 한 개라면 현재의 마기전으로도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하죠. 제가 말씀드린 것은 7성 무구가 다 모였을 때 나타난다는 여신급 아이템을 말하는 거예요."

최선은 마기전을 다 모으면 여신급 아이템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정대식도 그 생각을 했던 참이기는 했다.

그럼 최희는 자신이 마기전의 나머지 파츠를 다 모아서 완성할 거라 생각하고 이걸 넘겨준 것일까?

"......마기전을 온전하게 갖춘다 하더라도 사용은 또 다른 문제지요."

"예, 그렇기는 하죠. 무기 하나하나가 절대적인 위력을 갖는다는 7성 무구의 완성판 정도의 위력을 내려면...... 글쎄요......."

"여신급 아이템이 괜히 여신급 아이템이 아니죠. 신이나 쓸 수 있을 법한 무기니까 그런 거겠죠."

인간의 마력량으로는 소화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정대식은 마기전의 나머지에 대한 관심을 깨끗이 접었다.

완갑 한 짝으로도 충분한 성능을 내고 있었고 사용이 약간 버겁다 싶을 정도로 마력을 많이 잡아먹었기에, 다른 파츠가 욕심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둘은 오래지 않아서 포탈로 되돌아왔다.

정대식은 포탈로 이동하기 전에 최선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동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보답으로 언제 한 번, 식사라도 함께......."

"아뇨...... 그럴 수는 없어요."

최선은 딱 잘라서 거절을 했다.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지 않기로 했으면서도, 단칼에 돌아오는 거절에 조금쯤은 마음이 상했다.

정대식은 찌질하게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이유를 물었다.

"별다른 의미는 아니고, 그냥 감사를 표시하고 그런 것인데도 안 되나요?"

"......언니가 있으니까요."

"예? 최희 씨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최선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뱉듯이 말했다.

"언니가 정대식 씨를 마음에 두고 있으니, 용건 없이 따로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대식은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최희 씨가 절 좋아한다고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거겠죠. 지난번의 일이라면, 그건 최희 씨가 직접 찾아와 말했습니다. 저에게서 올인원이 되는 방법을 찾으려던 거라고요. 최희 씨와 전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그건 핑계일 뿐이에요."

"아니, 저번에도 저더러 도리어 최선 씨를 만나 보라고 등 떠밀지 않았습니까? 절 좋아한다면 어떻게......."

최선은 별안간 고개를 들고 정대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언니는 아무 남자나 제게 들이밀 사람이 아니에요. 언니가 정말로 괜찮다고, 본인과 사귀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한 거예요."

"그렇다고 최희 씨가 절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보면 알아요. 제 언니니까요. 아무튼, 그런 이유로 식사는 같이 못할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최선은 그렇게 말하고 먼저 포탈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겨진 정대식은 황당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최희의 행동이 뭔가 묘하다고 느꼈던 건 내 착각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정대식도 그 자리를 떠났다.

Chapter 32. 뜻밖의 조언

돈을 모으는 것보다 펜리르 부대원들을 결속시키는 게 더 시급하다고 판단한 정대식은 가장 큰 걸림돌이 이재우라고 판단했다.

다른 사람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적어도 본인의 기분을 컨트롤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재우는 그러질 못했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다혈질에 관심종자이기까지 하니, 다른 대원들과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전투 시에 동료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김송근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최소한 성격은 좋았다.

기철민은 성격은 나빠도 전투에서는 유능했고, 서지원이나 허미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해서 타인에게 밉보일 만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고덕화...... 고덕화, 그의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라 일단은 제쳐 두고, 정대식은 이재우부터 먼저 어떻게 해 보기로 했다.

"엔트로피, 이재우에게 연락해 줘. 오늘 집에 방문하겠다고, 이야기 좀 하자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너풀너풀한 옷 좀 어떻게 안 되겠어?"

어처구니없게도 엔트로피는 그레고리우스가 선물한 인형 옷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현재 인형과 유사한 모습을 한 엔트로피는 원래가 맨몸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민망하다거나 춥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는데, 엔트로피는 마치 그러한 감정을 느꼈었던 것처럼 인형 옷을 즐겨 입었다.

가뜩이나 인형처럼 생겼는데 옷까지 그렇게 고풍스러운 걸 입으니까 더 인형 같았다.

무표정한 얼굴이 프릴에 둘러싸여 있으니 꼭 비스크 인형처럼 보였다.

한편으론 좀 섬뜩하기도 했다.

살아 움직이는 인형 같아 보여서 처키니 뭐니 하는 걸 연상시켰다.

그래서 정대식은 엔트로피의 옷차림에 불만을 드러내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옷 좀 어떻게 하라는 말도 깡그리 무시한 채로 이재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은 곧 왔다.

<답신이 왔습니다. 읽어 드릴까요?>

"됐어, 그냥 링크해."

정대식은 인형 옷을 걸친 엔트로피가 사람 말씨를 흉내 내어 메시지를 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링크만 하면 엔트로피가 원하는 정보를 즉각 머릿속으로 전송해 줄 수 있었기에 이쪽이 더 편리했다.

- 갑자기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오시는 건 좋은데 집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서요.

"상관없어. 지금 간다고 다시 보내."

<알겠습니다.>

정대식은 근처 슈퍼에서 산 음료수 세트를 들고 이재우의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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