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현질 전사
- 6권 7화
타이탄 공격대 내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이재우는 이렇게 자신을 추켜세워 주는 사람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몹시 쑥스러워하는 기색이었으나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대식 역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자신에게 향하는 호의를 싫어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재우 형은 뭘 그리느냐에 따라 능력이 전천후겠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가?"
"당연히 그렇죠! 완전 멀티 포지션이지. 고렘 같은 걸 만들어 내면 탱커 역할을 할 수 있고, 가고일 같은 걸 그려 내면 원딜인 거고, 전사를 그려 내면 근딜인 거 아니에요? 게다가 아이템도 맘대로 만들어 낼 수 있죠. 제가 생각해 봤는데 오히려 장비를 그려서 구현화해 내는 쪽이 더 효율이 좋을지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형은 특별하게 무구를 갖출 필요도 없다고요. 그때그때, 상황이 닥칠 때마다 거기에 맞는 무구를 만들어 내면 되니까요."
윤현민은 흥분해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줄줄이 떠들었다.
"만약에 몬스터가 독가스를 뿜어내면 형이 방독면을 그려서 대원들에게 나눠 줄 수 있죠. 동료들이 부상을 입으면 치료 포션을 그려서 상처를 낫게 할 수도 있고요. 얼마나 구체적인 명령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서번트는 어때요? 마법이나 주술 따위를 쓰는 서번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펜리르 부대에 대원이 한 명 더 생기는 거라고요!"
"하하, 그런 건 어려워. 그 정도가 되면 자기 의지로 움직이는 걸 만들어 내야 한다는 건데, 내가 구현해 낼 수 있는 건 그림이라서 그렇게까지는 안 돼. 내가 직접 조종을 하는 거라...... 같은 맥락에서 포션 같은 것도 어려워."
"글은 안 돼요? 그 왜, 스크롤 같은 것도 비슷한 측면이 있잖아요. 어차피 종이 위에 있는 것을 구현화할 수 있는 거라면, 글도 가능하지 않겠어요? 글과 그림을 합쳐서 구현화할 수 있다면 더 복잡한 기능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흐음......."
윤현민은 헌터나 이능에 대해 엄청나게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발상이 대담하고 자유로웠다.
심지어는 이재우도 본인의 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눈치였다.
정대식이 듣기에도 윤현민의 말은 꽤 그럴싸했다.
이재우가 마력의 낭비 없이 집중력 있는 구현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윤현민이 한 말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이 녀석, 별생각 없이 불렀는데 꽤 쓸모 있잖아?'
윤현민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긴 정대식은 한 번 슬쩍 흘려 보았다.
"우리 부대에는 특이한 능력자가 많지. 희귀한 이능을 보유한 것은 서지원도 마찬가지인데?"
"아! 그렇죠. 공간 마법을 쓸 줄 아니까. 엄청 대단하죠. 대식이 형이 올인원의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면, 그 형은 포탈 제작자의 이름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죠."
"그 정도란 말이야? 내가 요전에 포탈을 이용해 봐서 아는데, 그 정도까지는 안 되겠던데. 포탈 제작자는 먼 거리의 공간 이동을 가능케 한다고. 하지만 서지원은......."
내심 정대식도 서지원에게 그럴 가능성을 점쳐 보고 있었으나, 일부러 모르는 척 윤현민을 떠봤다.
그는 당장 열을 내며 말했다.
"아뇨! 공간에 관계하는 이능이라는 건 종류가 어떤 것이든 간에 궁극적으로는 같은 거예요. 공간을 분리하는 거나,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무언가를 이동시키는 것이나 실은 별다를 바 없다고요. 다만 대규모로 그런 일을 하려면 엄청난 양의 마력이 필요하겠죠. 음, 그 부분에 있어서 좀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대식이 형이나 재우 형은 워낙에 마력량이 넘쳐나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제약이 없겠지만......."
정대식은 서지원이 마력석을 제작할 줄 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부족한 마력량을 채우기 위한 방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마력량을 늘려 주면 하루아침에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포탈 제작자에 준하는 능력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법사로서 응용력이 떨어지는 것도 충분히 커버를 할 수 있었다.
머리가 비상하다면 적은 마력량으로도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마법을 운용해 보다 강해지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서지원의 경우에는 그게 안 됐다.
차라리 마력을 많이 쓰더라도 단순하게 공간 마법에만 집중하는 게 맞았다.
"펜리르 부대에서 또 특이 능력자는 분신 술사! 김송근 형이 있잖아요!"
"그래? 분신 술사는 찾아보면 은근히 있는 것 같던데."
이재우의 말에 윤현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종이 술사나 공간 마법사보다는 흔한 편이기는 하지요. 그래도 국내에서 세 명뿐인 능력자라고요. 그만하면 충분히 특이하죠."
이재우는 윤현민의 현란한 말솜씨와 분석력에 상대가 중3짜리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신이 나서 다른 대원들의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특이하면 뭐 해. 김송근 그 녀석은 사실을 말하자면 전투에 젬병이야. 여태껏 외눈박이 부대에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분신 술사니까 머릿수를 메워 정보를 수집하는 건 잘해도 몬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데는 취미가 없다고."
그렇게 말한 이재우는 혼자 홀짝거린 술기운이 올랐는지 벌게진 얼굴로 정대식을 보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송근은 진짜 잘못 뽑으신 거예요. 외눈박이 부대장이 왜 선발을 반대하고 나섰겠어요? 그 자식이 이런 특수 부대의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요."
그 말에 정대식이 잠자코 술잔을 기울이자 윤현민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마도 아닐 거예요. 그 형은 전투가 체질에 안 맞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체급이 안 맞는 거예요."
"그게 뭔 소리야?"
"생각해 보세요. 분신 술사라는 건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분신을 몇 개나 만들어 내는 거잖아요? 그렇담 수가 얼마가 되었든 결국에는 인간 사이즈라는 거죠. 하지만 몬스터는 대부분 덩치가 크잖아요."
그 부분은 정대식도 염두에 두고 있던 바였다.
정대식은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 말이 옳아. 아마 김송근을 오늘 우리가 들어갔던 던전과 같이,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소형종 몬스터와 붙여 놓았으면 잘 싸웠을 거야. 특히 그런 소형종은 떼로 몰려다니는 경향이 강하니까 김송근의 분신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겠지."
정대식이 김송근을 칭찬한다고 느낀 건지 어쨌는지, 이재우가 반박을 했다.
"그 자식의 문제점은 그뿐만이 아녜요. 자신의 분신을 갖고 갈피를 못 잡는다고요. 항상 다른 사람의 공격 범위에 기어 들어가 훼방을 놓잖아요? 우리로선 어느 게 진짜 김송근인지 모르니까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단 말이에요."
"그 부분은 너와 마찬가지야. 부담감을 갖고 긴장한 탓에 필요한 수보다 더 많은 수를 만들어 내니까 컨트롤이 안 되는 거라고. 내가 보기에 김송근은 셋이나 넷, 많아도 다섯 정도까지만 분신을 만드는 게 맞아. 그럼 훨씬 더 전력이 올라갈 거야. 김송근이 그래 보여도 격투기를 수련한 몸이라 체술은 잘 써."
빈틈을 타 고기를 집어먹고 있던 윤현민도 때를 놓칠세라 말했다.
"거기에다가 체급을 높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저야 능력자가 아니니까 가능한지 안 한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 형이 만들어 내는 분신의 덩치를 크게 키울 수 있다면 훨씬 더 강해질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윤현민을 보고 이재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근데 넌 타이탄 공격대 내에 첩자라도 심어 놨냐? 어떻게 우리 부대원들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
"그거야, 타이탄 공격대는 SNS 홍보를 열심히 하는 터라...... 그리고 제가 헌터 마니아거든요. 헌터에 대한 정보는 뭐든지 모으고 있어서, 타이탄 공격대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공격대와 거기에 속해 있는 대원들 특성은 거의 다 알고 있어요. 물론 정확한 수치 같은 건 잘 모르죠. 전혀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공격대에 대해서도 모르고요.
조디악 공격대도 그렇잖아요. 그렇게 규모가 커도 내부 추천이나 스카우트로만 대원들을 모집하니까 속사정을 알 길이 없어요. 거긴 같은 공격대 대원들 얼굴도 다 모르던데요, 뭐. 그러니 광필두, 그 헌터가 그런 짓을 저지를 수도 있었던 게 아닐까요?"
관심 가는 인물의 이름이 나와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광필두 그놈은 진짜로 7성 무구를 다 모으려는 건가? 그걸로 뭘 하려는 거지?"
"그거야 본인만이 알 일이죠. 어쩌면 그냥 수집욕인지도 모르고요. 그렇지만 7성 무구를 다 모으려는 건 확실한 거 같아요. 최근에 세 번째 무구를 놓고 또 결투를 신청했거든요."
"세 번째 무구를 가진 사람이라면......."
"솔플로 활동하고 있는 박태산이라는 사람이에요. 지금은 은퇴하고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광필두가 공식적으로 그와 세븐 스타를 놓고 대결할 것을 요청했거든요. 그런데 박태산이 어디 있는지 알고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공식적으로 말하면 그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고 그냥 던져 본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군."
"그리고 저......."
윤현민은 좀 주저하다가 말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돼요?"
"뭐가?"
"그...... 펜리르 부대원들 말이에요. 다들 재우 형과 같이 대단한 능력자들이니까 왜 뽑았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김태희 누나랑 허미래? 그 누나는 왜 뽑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나마 김태희라는 그 누나는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 뭔가 굉장한 능력을 감추고 있나 보다 하겠는데, 허미래 그 누나는......."
윤현민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난감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미안하지만 외인부대에 있을 때부터 좀 부족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디버퍼가 드물기는 하지만 재우 형이나 다른 특이 능력자들처럼 희귀한 것도 아니고, 마력량도 대단찮은 것 같던데."
이재우는 우습게도 윤현민에게 당장 눈을 부라렸다.
"뭐야, 너. 우리 부대장님 안목에 문제가 있다, 이거야?"
"아뇨, 아뇨!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꼭 대답 안 해 주셔도 돼요."
윤현민이 깨갱해 입을 다물었으나 정대식은 순순히 말했다.
"어쩌면 허미래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몰라."
"허미래가요?"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반응하는 이재우를 보고 정대식은 말을 이었다.
"허미래의 마력이 왜 검은 나비 형상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글쎄요?"
"다른 사람의 마력과 비교해보면 손쉬운 일이지. 나조차도 내 마력이 특정한 형태를 띠고 있진 않아. 그건 그만큼 허미래의 마력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총 마력량을 따져보면 이재우, 너보다는 적을지도 모르겠지만 위력에 있어서는 월등하다는 거지."
"그렇습니까?"
"또한 잠재력에 있어서도 높이 평가할 만 하지.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지만, 허미래는 본인의 능력을 계발하기에 따라 지금과는 다른 포지션이 될 수도 있어."
이재우는 뜻밖이라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래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