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33화 (133/297)

# 133

현질 전사

- 6권 9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마찬가지로 강해지고 싶어 하는 기철민이나 최희도 거들어 주고 싶었다.

그들은 일신의 안위를 위해 돈을 쫓는 정대식 같은 인물과는 달랐다.

뭐가 다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정대식은 순수하게 힘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현질의 능력이 베풀어져야 한다고 느꼈다.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하기에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래, 이왕 약속한 것은 지켜야지. 1,000억 정도는 그래도 모을 수 있다. 일단은 펜리르 부대를 꾸려 가는 데 집중하고, 돈을 모아서 상점을 업그레이드해 내가 원하는 스킬을 획득한다. 그리고 부대원들이 충분히 강해졌다 판단되면 그들을 데리고 독립해서 나만의 공격대를 세우는 거야. 그러고 나면 그간 까먹은 돈을 얼마든지 벌어들일 수 있겠지. 그런 뒤에 공격대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나는 은퇴하는 거지.'

실로 빈틈없는 계획이었다.

자신의 목적과 자신이 관계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다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이 일을 다 해치우는 데 짧으면 5년, 길어 봤자 10년이다.

은퇴를 해도 아직 30대 중후반일 테니 충분히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었다.

정대식은 완벽한 미래를 구상해 놓고 코앞의 문제에 집중했다.

훈련을 가장한 면담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부대원들과 사이가 좀 더 친밀해졌고 그들의 능력을 어떤 방향으로 계발해 나가야 할지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물론 개인 면담이 아무런 의미가 없던 사람도 있었다.

고덕화와 김태희다.

어차피 이 둘은 면담을 하기 전에도 전투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으므로 정대식은 일단 그들에 대한 문제는 접어 두기로 했다.

그리고 개인 면담을 다 끝낸 시점에서 단체 훈련 공지를 날렸다.

- 내일 아침 9시까지, 타이탄 공격대 본부 로비에 집합한다. 우리가 갈 곳은 SW8D이다. 목적은 B3 구역까지의 진입이고, 훈련이지만 임무를 수행한다고 생각하고 임해라. 던전에 대한 정보는 각자 분담해 조사해 오도록 한다. 만약 정보가 부족할 시에는, 다들 각오하도록.

Chapter 33. 세 번째 훈련

그날은 아침부터 안개가 짙었다.

정대식은 타이탄 공격대 본부 로비의 휴게실 의자에 앉아서 김밥을 통으로 씹어 먹었다.

곧, 그 안개 속에서 펜리르 부대원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없이 정대식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고, 정대식은 그들에게 오는 길에 사 온 김밥을 한 줄씩 건넸다.

다들 그걸 붙잡고 씹어 먹는 가운데 정대식은 바나나 우유를 빨아 입 안에 남은 김밥을 삼키고는 말했다.

"자, 그럼 숙제는 다들 해 왔겠지. 차례대로 말해 봐라. SW8D는 어떤 곳이냐?"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기철민이었다.

그는 품에서 휴대폰에 연결된 휴대용 홀로그램 영상 장치를 틀고 말했다.

"이건 작년에 외인부대에서 맵핑한 SW8던전의 3차원 지도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던전은 빌드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총 세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가 가야 하는 B 섹션은 8층까지 있습니다. 말씀하신 B 구역의 3층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별다른 장애물은 없지만 빛이 별로 없는데다가 빌드형이라 시야가 어둡고 한정적입니다. 게다가 각 방과 복도마다 폐쇄되어 있어 정찰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몇 번 공략이 된 던전이라 맵도 나와 있고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공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상세하지는 않습니다. 언데드 던전이라는 것은 서울에 있는 S5D과 같지만 거기와는 다르게 아이템 드롭률이 낮아서 인기가 없는 던전이라 그렇습니다."

기철민이 허미래를 눈짓하자 그녀가 곧장 입을 열었다.

"어, B 구역에 주로 서식하는 것은 구울입니다. 1층에는 구울 병사들이, 2층에는 구울 부대가 출몰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3층부터는 구울 나이트가 나옵니다. 구울들은 내구성이 별로라 잡기 쉽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구울들이 갖고 있는 무기는 대부분 독성을 지니고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구울 부대 같은 경우에는 궁사들이 끼어 있어 장거리 공격에도 능한 편이죠. 특히 이 화살의 독이 강력합니다. 스치기만 해도 독에 감염되어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행동 불능 상태가 되죠.

그리고 구울 나이트는 보통 전신을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다니는데, 트롤 못지않은 재생력을 보입니다. 일단 쉽게 부서지지만 도로 붙어서 멀쩡해지기 때문에 터닝이 필수적입니다. 구울 나이트는 피어와 독무 저주 등등, 몇 가지 강력한 디버프 기술을 구사합니다. 특히 주의할 게 저주죠. 일단 한 번 걸리면 해제하기도 어렵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불리합니다."

다음으로 입을 연 사람은 김태희였다.

"구울은 감염에 주의해야 하고 신속하게 처리를 해야 합니다. 구울 나이트뿐만 아니라 보통의 구울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일어나니 죽이고 나면 끝인 몬스터들과는 성질이 좀 다르죠. 구울을 사냥할 때 최악의 경우는 후퇴를 하는 겁니다. 보통의 몬스터는 영역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어 일단 한 마리를 죽이고 나면 그 영역은 한동안 비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구울은 터닝을 하지 않는 이상 도로 되살아나니까 돌아가는 길에 또 싸워야 합니다.

이놈들을 완전히 쓰러트리려면 던전을 공략하는 수밖에는 없죠. 언데드 퀸을 쓰러트리고 마정석을 획득해야지만이 던전 전체가 터닝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러고 나면 새로운 언데드 퀸이 나타날 때까지는 구울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1층까지는 기본 대형을 유지하면서 싸우다가, 2층부터는 구울 부대가 나타나는 관계로 팀플레이가 중요해질 겁니다. 구울 부대 자체가 팀플레이를 하는 관계로, 역할 분담이 확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빌드형 던전이라 공간에 제약이 있습니다. 지나친 공격이나 물량 공세로 길을 봉쇄한다든가, 공격 범위를 제한한다든가 하는 일을 주의해야 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김태희는 약간 자조적인 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즉, 펜리르 부대와 같이 아직 손발 안 맞는 부대는 더 조심을 해야겠죠."

이외에 고덕화가 보급품을 챙겨와 그것을 점검하고 목록을 정대식에게 넘겨주었다.

김송근은 일반적인 지급품 외에 터닝 스크롤과 해독 포션 등, 부대에 주어지는 예산으로 외부에서 구입해야 하는 품목을 확인하고 마찬가지로 목록을 정대식에게 넘겨줬다.

이재우는 기록용 촬영 장비와 독가스 공격에 대비한 마스크, 그 외 전자 기기 장비를 점검하고 이상 없음을 알렸다.

서지원은 마법사라서 터닝용 주문을 준비하느라 다른 준비는 도맡아 할 겨를이 없었기에 사전 준비에서 제외됐다.

정대식은 부대원들의 준비가 그럭저럭 잘됐음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이번 사냥은 언데드 소굴로 들어가는 것이고, 훈련이기 때문에 별다른 지원 팀이 없다. 언데드에게서 얻는 아이템은 내가 갖고 있는 디멘션 포켓으로 옮기면 되고, 언데드니까 짐꾼도 필요 없지. 그런 관계로 힐러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해독 포션과 치료 포션, 각성 포션을 평소보다 더 많이 챙겼으나 각자 세 개씩밖에는 지급되지 않으니까 다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럼 장비 챙겨서 출발한다."

지원 팀이 없었으므로 대원들은 각자 필요한 장비와 물품을 나눠서 짊어졌다.

그리고 지프 두 대에 나눠 타고 던전으로 출발했다.

* * *

SW8던전은 입구에서부터 으스스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런 소감을 가진 것은 정대식뿐만이 아니었던지 김송근이 오만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구울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네."

기철민도 검을 절그럭거리면서 투덜거렸다.

"구울은 베는 맛이 영 별로란 말이야."

그러자 어김없이 이재우가 깐죽거렸다.

"그래 가지고 슬라임은 물컹거려서 어떻게 쓰러트리냐? 스톤 고렘은? 이빨 빠지겠네?"

"입 좀 닥쳐라."

이런 시답잖은 소리들을 지껄이며 마지막 점검을 마친 펜리르 부대는 던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기철민이 예고한 대로 던전 안은 매우 어두컴컴했다.

공기는 시취로 얼룩져 탁했고 사방에서 음산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으으으."

겁이 많은 서지원이 몸을 부르르 떠는 가운데, 부대원들은 대형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던전 자체가 건물의 형태를 한지라 어둡기는 해도 걷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독무 대비용으로 각자 쓰고 있는 마스크에 부착된 라이트만으로도 충분히 앞을 볼 수가 있었다.

정대식의 경우엔 배틀 슈트 자체에 발광 기능이 있기도 했다.

공간도 꽤나 넓어서 사람 열 명은 충분히 나란히 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이미 각 방과 복도가 문으로 막혀 완전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대식은 혹시나 싶어 엔트로피를 보냈다.

엔트로피는 얼마 가지 못해 멈춰 섰고 정대식은 링크 영상을 통해서 띄엄띄엄 서 있는 세 마리의 구울과 함께 단단히 잠긴 철문을 볼 수가 있었다.

"전방에 구울 세 마리가 있다. 내가 어그로를 끌 테니, 김송근 네가 처치해. 그리고 명심해라. 오늘 네가 운용할 분신은 다섯 명까지다. 그 이상은 절대 안 돼! 일단은 세 명만으로 집중해서 싸워라."

"알겠습니다."

정대식과 김송근은 앞서 달려 나갔고 곧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는 구울이 보였다.

구울은 제각각 흩어져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정대식이 적의 집중 스킬을 쓰자 일제히 이쪽을 쳐다봐 왔다.

"키이이이이!"

"키아아아아!"

구울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자 김송근이 시킨 대로 침착하게 분신술을 구사했다.

"3분형!"

파바밧!

김송근의 몸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세 개의 분신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은 정대식을 노리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구울을 한 마리씩 맡았다.

본체인 김송근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분신을 조종해 구울들을 한꺼번에 쓰러트렸다.

퍼버벅!

퍼억!

구울 한 놈은 메치기를 당해 허리가 동강 났고, 또 한 놈은 얼굴이 날아갔으며, 다른 한 놈은 두 팔이 뽑혔다.

정대식이 바닥을 구르는 구울들을 주먹으로 쳐서 불태워 없앴다.

분신들을 다시 거두어들인 김송근에게 정대식은 칭찬 한마디를 해 줬다.

"그래, 그런 식으로만 싸워."

"아, 알겠습니다."

불타 버린 구울 몸에서 열쇠가 굴러 나와 정대식은 그걸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곧 뒤따라온 부대원들과 함께 문으로 가 열쇠를 써서 그곳을 통과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너른 방이 나타나며 거기에 멍청하니 서 있던 열 명의 구울이 한 번에 이쪽을 돌아보았다.

"키이이이이!"

"허미래!"

"포스 오브 그래비티!"

구울들의 움직임이 묶여 버리자 정대식은 각자 흩어져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다들 신속히 가까이 서 있는 구울들에게 실력 발휘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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