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34화 (134/297)

# 134

현질 전사

- 6권 10화

기철민은 칼질 몇 번으로 구울을 단번에 토막 내었고, 김태희도 절구 한 방으로 구울의 머리를 완전히 뭉개 버렸다.

고덕화도 무심한 표정으로 천강벽수선을 몇 번 후려치는 것만으로 구울 두 마리를 한꺼번에 처치했다.

김송근도 연거푸 만들어 낸 분신 두 개로 구울을 두 마리 자빠트렸으며, 그렇게 쓰러진 구울을 이재우가 만들어 낸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망치로 내리쳐 산산조각을 냈다.

김송근은 이재우의 작품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도대체 저건 뭐야?"

"아, 일단 서번트라고 해 두지."

"되게 못생겼네...... 아니, 정확히는 못 그렸네.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저건 망치야?"

이재우의 서번트는 고블린처럼 작달막했으나 본인의 몸뚱이보다 더 큰 망치를 들고 있었다.

서번트가 그걸로 쓰러진 구울을 내리쳐 죽였던 것이다.

이재우는 뿌듯한 표정으로 우쭐거리며 말했다.

"무기를 같이 구현화하면 더 강하지 않을까 싶어서."

정확히는 윤현민이 조언해 준 바대로였다.

이재우는 상상력도 부족하고 그림 실력도 별로라서 그동안은 뱀, 거인, 스켈레톤 등등 몇몇 그림으로 돌려 막기를 하고 있었다.

한데 이번에는 정대식의 잔소리와 윤현민의 조언에 힘입어 무기를 든 난쟁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그림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거인보다 훨씬 낫군."

김송근의 칭찬에 이재우는 헤벌쭉 웃었다.

거기다 대고 기철민이 초를 쳤다.

"설마 전기톱 든 살인마 같은 걸 그려 갖고 온 건 아니겠지?"

"저 자식이 진짜......."

정대식은 시끄럽게 구는 녀석들을 무시하고 열쇠를 찾아 다음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다음은 복도였고 또 구울 몇 마리가 나왔으나 펜리르 부대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꽤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1층을 주파해, 2층으로 가는 계단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는 구울 부대가 나온다. 지금과는 달리 난이도가 올라갈 테니 정신들 바짝 차리고, 대형을 정비한다. 내가 가장 선두에서 탱킹할 테니 기철민과 김태희가 2열에 서라. 김송근과 이재우가 3열, 고덕화와 서지원이 허미래를 중간에 두고 4열이다. 그럼 올라간다!"

계단을 올라가서 닫힌 문을 열어젖히자 느닷없이 너른 홀이 나왔다.

먼지가 가득한 그곳에는 구울 부대와 그 부대를 이끌고 있는 구울 나이트가 있었다.

"아니?"

정대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던전은 구울 나이트를 보려면 최소한 3층까지는 올라가야 했다.

한데 제 구역도 아닌 이곳에 왜 구울 나이트가 와 있는 것일까?

게다가 구울 부대는 그 숫자가 상당했다.

보통, 헌터들이 사냥을 할 때 부대라고 칭하는 것은 적게는 4마리, 많게는 8마리 정도의 무리를 이르는 것이었다.

공격대가 진짜 군대가 아니듯이, 던전에 들어오는 헌터 부대, 팀, 파티의 인원도 보통 그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레이드 정도나 되어야 몇십 명 정도를 넘어가고 공격대 전원이 움직여야 몇백 단위가 되기에, 헌터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대의 숫자란 10마리 이내다.

엄밀히 말해서 부대라기보다는 분대라고 부르는 게 마땅한 규모라는 소리다.

당연히 2층에 있는 구울 부대라는 것도 10마리 이하로 예상을 하고 있었다.

한데 눈앞의 구울들은 거의 중대 정도의 규모였다.

얼추 잡아 봐도 100마리쯤 되는 구울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는데다가 그들을 이끌고 있는 구울 나이트까지 있었다.

그들은 마치 집합이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회랑에 모여 있다가 입구에 선 펜리르 부대를 발견하고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와 눈이 딱 마주치고 빠르게 외쳤다.

"서지원, 방어막! 허미래, 구울 나이트에게 디버프를 써! 고덕화, 네가 먼저 공격하고 끝나면 기철민과 김태희가 나와 함께 돌격한다! 이재우와 김송근도 공격 준비해! 우리가 놓친 놈들을 잡아!"

"예!"

다들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신속하게 작전이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구울들의 반응도 빨랐다.

구울 나이트가 손짓하자 뒤쪽에서 구울 궁수들이 쏘는 화살이 비처럼 날아왔다.

그 광경을 보고 서지원이 목청 높여 소리쳤다.

"공간 분리!"

우우웅-.

펜리르 부대와 구울 부대 사이의 허공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날아오는 독화살들이 펜리르 부대의 머리 위 허공으로 날아들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선제공격에 실패하자 구울 나이트가 피어를 발했다.

캬아아아아아-------!

구울 나이트의 눈이 '번쩍!' 빛나면서 귀를 따갑게 하는 기묘한 소리가 울렸다.

순간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거리고 눈앞이 아득해지며 움직이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그 바람에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의 피어가 터지기 전에 허미래가 제대로 디버프를 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 피어가 먼저였다면 구울 나이트가 박차고 들어올 텐데, 다행히 정신을 차릴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간신히 피어의 여파가 사라지고 고개를 들어 보니 구울 나이트가 허미래의 디버프 스킬, 네팅에 걸려 움직임이 봉쇄된 상태였다.

그 틈을 타 정대식은 앞으로 튀어나갔다.

<강화.>

"강력권!"

아직 피어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철민의 2열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으나 정대식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구울 나이트를 쓰러트리는 게 먼저였다.

이렇게 구울들이 바글거리는데 구울 나이트가 계속 멀쩡하다면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될 터였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구울 나이트에게 공격을 가했다.

콰과과과광!

정대식의 주먹이 불을 내뿜었고 구울 나이트의 머리통에서 장대한 폭발이 일었다.

강화 강력권은 정대식이 가진 모든 스킬을 통틀어 가장 공격력이 높았기에, 그는 성공을 자신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폭발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대형 송곳처럼 커다란 칼이 옆에서 날아왔다.

쩌엉!

정대식은 얼어붙었고, 그 칼을 위에서 아래로 쳐내는 김태희의 절구를 보았다.

퍼뜩 고개를 돌리자 김태희가 곧장 절구의 방향을 돌리며 다른 쪽 공이로 구울 나이트를 후려쳤다.

그제야 정대식은 어찌 된 일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런! 허미래의 디버프 효력이 채 끝나기 전에 공격을 가해서 효과가 덜했어!'

허미래의 네팅은 단순히 몬스터의 움직임을 거추장스럽게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게 일시적으로 마력의 흐름을 봉쇄시키기에 정대식의 공격도 덩달아 위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구울 나이트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만 급급해 미처 그 부분을 계산하지 못했다.

김태희가 따라와 주지 않았더라면 칼에 어디가 꿰여도 꿰였을 것이다.

"고맙군!"

정대식은 짧게 감사를 표시했으나 이미 구울 나이트는 다른 구울들을 앞세워 뒷전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정대식과 김태희, 비로소 정신을 차린 기철민은 이미 구울들에게 포위되다시피 한 상태였다.

이러다간 대형이 완전히 뭉개질 수 있었으므로 정대식은 구울들의 전열을 흩트리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

<도발.>

"적의 집중!"

엔트로피의 도움으로 어그로를 끈 정대식은 자신에게로 덤벼드는 무수한 구울들을 닥치는 대로 쳐냈다.

이따금 무적권을 쓰기도 했으나 보통은 그냥 너클 글러브로 마구잡이로 후려쳤다.

어차피 이놈들은 방어력이 별반 없어서 그냥 쳐도 바닥에 막 쓰러졌다.

정대식에게 어그로가 끌린 틈을 타 기철민과 김태희가 몰아치듯 구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기철민의 검광이 번쩍이는 가운데 김태희가 구울들을 고기 다지듯 절구로 다지고 있었다.

그들이 미처 처치하지 못한 구울들은 후열의 이재우와 김송근이 처치하고 있었다.

이재우가 만들어 낸 서번트 두 마리와 김송근의 분신 세 명이 차근차근히 구울들을 작살냈다.

그런데 그때, 구울 나이트가 다시 신호를 보내는 게 보였다.

"서지원!"

정대식이 고함을 치자 서지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법을 펼쳤다.

"공간 왜곡!"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까처럼 펜리르 부대원들이 선 허공이 일렁거린다 싶더니만, 날아오는 화살들이 그곳으로 쑥 집어삼켜졌다.

그리고 도로 반대 방향으로, 다시 말해 구울들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퍼버버벅!

퍽! 퍽!

자기네가 쏜 독화살에 맞아서 구울들의 전열이 우르르 무너졌다.

그 틈을 타 아까 피어에 당하는 바람에 공격을 못하고 있던 고덕화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풍창파벽!"

콰아아아아!

몰아치는 강풍에 구울들이 비틀거리고, 그사이 정대식은 기철민과 김태희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마기전을 썼다.

"마기장!"

우----우웅!

그가 앞으로 내뻗은 왼손에서 펼쳐진 마기장이 거대한 벽처럼 늘어선 구울들을 와르르 밀어냈다.

밀쳐진 구울들이 우르르 쓰러지고 그 바람에 다른 구울들에게 깔리며 놈들의 상태가 엉망진창이 됐다.

결국 보다 못한 구울 나이트가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캬아아아아아!

한바탕 피어를 내뿜어 펜리르 부대를 주춤하게 한 후, 앞으로 뛰어 들어온 구울 나이트는 곧장 정대식을 노렸다.

정대식은 재빨리 외쳤다.

"엔트로피!"

<관측.>

구울 나이트의 생명력과 등급, 약점, 강점 등이 일목요연하게 표시가 되었다.

정대식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정수리와 왼쪽 가슴 부분이 약점 부위임을 확인하고 마기전을 찬 왼팔을 옆으로 휘둘렀다.

"상대 잘못 골랐어! 마기장!"

쩌엉!

구울 나이트의 칼과 정대식이 장방패처럼 뽑아낸 마기장이 부딪쳐 굉음을 냈다.

정대식은 왼팔을 있는 힘껏 밀어내 구울 나이트를 떨쳐 버리고 곧장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강력권!"

콰아아앙!

그러나 무장하고 있는 건 구울 나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놈이 재빨리 들어 올린 원방패에 공격이 가로막히고 거기서 불꽃이 터져 올랐다.

콰아아아!

구울 나이트가 정대식을 상대할 동안 전열을 가다듬은 구울 병사들이 다시 일어나 난립하기 시작했다.

서지원과 허미래, 그리고 고덕화가 놈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잘 막아 내고는 있었지만 워낙에 수가 많았다.

정대식이 구울 나이트를 홀로 상대하고 있어 구울 병사와 싸우는 것은 순전히 부대원들의 몫이었다.

'얼른 이놈을 쓰러트려야......!'

정대식은 이를 갈며 구울 나이트와 몇 차례나 공방을 했다.

하지만 구울 나이트라는 놈이 만만치가 않았다.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달리, 소규모 던전이라면 보스몹도 해 먹을 수 있을 만한 놈이라 지능적이면서도 강했다.

게다가 피어와 독무를 효율적으로 쓰고 있어 시간을 끌면 정대식이 불리했다.

'안 되겠다!'

정대식은 마지막 층에 갈 때까지 아껴 두기로 했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의 칼을 막아 내고 있던 마기장을 일시에 거두었다.

그리고 구울 나이트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새, 강력권을 놈의 안면에다 한 번 휘갈겼다.

그리고는 곧장 연이어 마기전을 사용했다.

"마기포!"

콰아아아아아아아!

눈을 찌르는 섬광이 솟구치는 칼날과 같은 형태가 되어 구울 나이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키아아아아아아아!"

구울 나이트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재가 되어 흩어지는 가운데, 정대식이 때를 놓치지 않고 터닝 스크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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