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35화 (135/297)

# 135

현질 전사

- 6권 11화

그걸 입에 물고 북 찢자, 반짝거리는 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구울 나이트의 시커먼 재가 회색으로 변해 흩날렸다.

"키아아아아......!"

이윽고 구울 나이트의 비명도 사그라지고 나중에는 형체, 아니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정대식은 몸 안의 마력이 쭉 빨린 기분에 좀 비틀거렸다.

마기전은 마력 소모가 심해서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구울 나이트를 만날지 누가 알았겠는가?

기운 빠져서 잠깐 멍했던 정대식은 곧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직 구울 병사들이 남아 있었기에 놈들을 다 쓰러트려야 했다.

정대식은 다시금 주먹으로 무적권을 휘갈기며 구울 병사들을 뭉개 나갔다.

* * *

"헉, 헉......."

"후우, 훅, 후......."

"흐아, 으아...... 아, 죽겠다!"

이재우가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벌러덩 드러눕는 가운데, 다른 대원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제자리에 주저앉거나 어깨를 푹 늘어트렸다.

그들 주위로는 100여 마리나 되는 구울들의 시체가 가득 흩어져 있었다.

놈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죽일 때는 긴장해서 모르겠더니, 마지막 한 놈을 쓰러트리고 나자 전신이 저릴 정도로 극심한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었다.

기진맥진한 것은 정대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머리를 죄고 있는 마스크를 벗어 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 공기 중에 구울 나이트가 뱉어 낸 독무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이마에 엉겨 붙은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왜 구울 나이트가 2층에서 등장하는 거야?"

혼잣말처럼 뇌까리는 소리를 듣고 몬스터에 대해 조사를 해 왔던 허미래가 지레 찔려 말했다.

"3층, 3층에서 구울 나이트가 나오는 게 확실합니다......! 적어도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랬어요."

정대식도 미리 이 던전에 대해서 기본적인 조사를 해 왔기에 그녀를 탓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이 던전은 난이도가 꽤 높아서 완전 공략이 된 것이 네 번밖에 없었다.

게다가 몬스터 부산물이 안 나오는 곳이기에 일반 헌터들의 출입이 전무하다시피 한 곳이었다.

언데드는 부산물을 얻을 수 없는 대신에 희귀한 아이템을 드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확률이 희박하기 때문에 썰자팟이나 막공에는 인기가 없어서 사실상 그다지 알려진 바가 많지 않은 던전이었다.

그러니 별안간 2층에서 구울 나이트가 나온대도 그렇게까지 이상할 것은 없었다.

몬스터들은 대부분 지정된 구역, 또는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으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재수가 없었나 보죠. 아무튼 다 쓰러트렸으니 된 거 아닙니까?"

기철민이 하는 말에 정대식은 일단 이곳을 세이프 포인트 삼아 재정비를 했다.

한바탕 구울을 쓰러트렸으니 당분간은 여기에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을 것이다.

구울이 쏜 화살에 살갗이 스친 고덕화는 해독 포션을 마셨고, 다소 생채기를 입은 기철민과 김송근은 치료 포션을 마셨다.

이어 부대원 전부는 만의 하나의 상황을 위해서 마력 회복 포션도 섭취를 했다.

그렇게 대원들을 쉬게 해 놓고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가 있던 자리에서 다음으로 갈 열쇠를 찾아냈다.

그걸 들고 정대식은 고민에 빠졌다.

'계속 전진할 것인가, 여기서 후퇴할 것인가?'

애초에 목표는 3층까지 가는 것이었다.

거기서 구울 나이트를 격퇴하는 것이었으니, 이미 구울 나이트를 격퇴한 지금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구울 나이트를 상대한 건 정대식이었고, 다른 대원들은 구울 병사들과 싸우느라 구울 나이트와는 싸워 볼 여력이 없었다.

게다가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 소득 없이 빈손으로 가는 셈이었다.

물론 훈련이 목적이라 수입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고, 그레이브 키퍼나 언데드 퀸 같은 굵직한 몬스터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얻을 확률도 극히 낮았다.

그래도 구울 나이트를 쓰러트리고 100마리가 넘는 구울들을 쓰러트렸는데, 이대로 완전 빈손으로 돌아가기는 아쉬운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그간의 일대일 훈련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오늘은 부대원들의 호흡이 꽤 잘 맞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서도 다들 침착하게 대처하여 큰 부상 없이 위기를 극복해 냈던 것이다.

이왕 합이 맞은 김에, 좀 더 전투를 해서 이 감각을 익혀 놓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마기포의 사용으로 내 마력량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구울 나이트와 또 마주친다면 혼자선 쓰러트리기가 어려울 거야. 아니, 뭐...... 쓰러트릴 수야 있겠지만 그땐 마력이 바닥날지도 모르지...... 게다가 이상하게 예감이 나빠.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어서인지 기분이 영 찜찜한 게.......'

정대식은 자신의 감을 믿고 돌아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다.

그러던 그때 의외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늘 아웅다웅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이재우와 기철민이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아까 벌어졌던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이 자못 진지해 보였다.

그러다 보니 김태희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구울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 그녀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여전히 그 얄팍한 트레이닝복 하나에다가 타이탄 공격대에서 지급하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는데 몸에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과연, 강영후가 숨겨 왔던 전력답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아직도 여력이 많아 보였다.

서지원의 반격도 뜻밖이었고, 허미래는 아직 본인의 능력을 반의반도 내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고덕화나 김송근 역시도 멀쩡해서 설령 구울 나이트를 또 마주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비로소 부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중이다. 여기서 그냥 돌아간다면 오늘 훈련은 하나마나다. 계속 진행한다!'

그렇게 결심하고 정대식은 박수를 몇 번 쳐서 부대원들의 주의를 모았다.

"자, 다 쉬었으면 가자!"

"옙!"

정대식은 열쇠로 닫힌 문을 열었고, 그러자 기나긴 복도가 보였다.

희한하게 그 복도에는 횃대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 횃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불은 아니라서 독이라도 태우는 것 같은 초록색의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독무에 대비한 마스크를 고쳐 쓰고 라이트는 끈 채, 앞을 경계하며 나아갔다.

"엔트로피."

정대식은 혹시나 싶어서 엔트로피를 복도의 끄트머리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대식의 주의 확장 능력으로도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그렇게 복도 끝에 다다랐을 때 그곳은 마찬가지로 막혀 있었다.

제아무리 애를 써도 부서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 보이는 철문이 굳게 잠겨 있어, 어떻게 앞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흠......."

정대식은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게 있나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던전에 따라서 함정이나 미로, 수수께끼 같은 게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혹 이것도 그렇지 않나 싶어서 부대원들과 함께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엔트로피에게 부탁해도 마찬가지라, 결국 정대식은 문을 부숴 보기로 했다.

"......기철민. 이거, 자물쇠 자를 수 있겠어?"

정대식의 주문에 기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한번 해 보죠."

깍듯하게 상관 대우를 해 주는 모습이 좀 어색했다.

정대식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고, 검을 뽑아 든 기철민이 신중하게 자물쇠를 노렸다.

"후우......."

곧 그는 살짝 내리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천래일섬!"

번-쩍!

빛이 번쩍이며 자물쇠를 가른 그 순간.

화르르르르륵!

별안간 벽에 늘어서 있던 횃대의 불꽃이 확 부풀어 올랐다.

곧 횃대에서 뛰어내린 불덩이들이 몸을 일렁거리며 이쪽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불이 아니었어! 이건 스펑키다!"

스펑키는 불과 같은 모습을 한 몬스터로, 사실상 생명체라기보다는 그냥 불덩이와 마찬가지였기에 정대식의 주의 확장으로도 감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당장 뒤쪽에 서 있던 서지원과 허미래가 스펑키의 공격을 받았다.

화악 몸을 부풀리며 터져 오르는 스펑키의 불꽃에 둘은 반격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바로 대처를 한 사람은 고덕화였다.

"풍전등화!"

화아악!

짧고 강하게 파도처럼 불어치는 바람에 스펑키가 뒤로 후루룩 날려 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더 크게 덩치를 키운 스펑키들이 우르르 날아오자 정대식이 소리쳤다.

"서지원!"

"고, 공간 분리!"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서지원의 방어로 스펑키들이 두 방향으로 우르르 흩어졌다.

그 틈을 타 허미래가 디스터브를 사용해 스펑키들이 이리저리 헤매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결코 없어지지는 않았다.

이놈들은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불과 같아서 평범한 공격이 안 통했다.

빙결계 공격이 아니면.......

그때, 정대식의 머릿속에 깜빡 잊을 뻔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나 지금, AAA급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지!'

정대식은 허공에 헛손질을 하고 있는 부대원들을 밀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파이어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너클 글러브를 낀 주먹을 날렸다.

"무적권!"

콰과과과광!

무적권이 작렬하며 거기에 맞은 스펑키들이 정대식의 주먹에 힘없이 사그라져 버렸다.

'과연! 화룡의 뼈로 만든 물건답다!'

그의 너클 글러브는 이른바 불 속성 아이템이었다.

보통 불을 잡는 법은 두 가지였다.

물을 쓰든지, 더 큰 불로 잡아먹든지.

정대식의 너클 글러브가 더 강력한 화염의 힘을 가졌기에 스펑키가 맥을 못 추고 사라진 것이다.

정대식의 활약으로 스펑키는 사람을 놀라게 한 것에 비해서는 별 볼 일 없어져 버렸다.

오래지 않아 스펑키가 모조리 사라져 복도가 다시금 어둠에 휩싸였다.

정대식과 부대원들은 꺼 두었던 라이트를 켰고 복도 한가운데 떨어져 있는 열쇠를 찾았다.

"됐어요!"

이재우가 얼른 그 열쇠를 집어 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다시 넓은 회랑이었다.

이번은 아까보다 더 넓었다.

일종의 로비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광장처럼 너른 홀 양쪽에 3층으로 가는 계단이 둥글게 이어져 있었다.

그 계단 끄트머리가 만나는 곳이 테라스처럼 약간 앞으로 돌출되어 있었고, 근사한 기둥이 그곳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말을 탄 구울 나이트가 다섯 마리나 버티고 서 있었다.

"키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아!"

구울 나이트들은 침입자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녹색으로 번뜩이는 눈을 부릅뜨고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서 무섭게 육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투가닥! 투가닥! 투가닥!

놈들이 다 말에 타고 있는지라 위치상 펜리르 부대원들이 불리했다.

게다가 말조차도 보통 말이 아니라서 생김새가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정대식은 급한 대로 엔트로피를 날려 보내고 부대원들에게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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