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현질 전사
- 6권 14화
김송근이 못 참고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정대식은 그들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김송근도, 구울 나이트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대식은 찰나의 순간, 오른손으로 김송근을 확 떠밀었다.
"우왁!"
놀란 김송근이 자빠지고 정대식은 왼손으로 구울 나이트의 팔을 붙잡았다.
구울 나이트의 소름 끼치게 차가운 감각이 손바닥을 타고 흘렀으나, 그것을 무시하고 정대식은 왼손에 낀 마기전을 작동시켰다.
"마기력!"
파츠츠츠츠츠츠!
강력한 마력이 전류처럼 구울 나이트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키아아아아아!"
구울 나이트가 비명을 질렀으나 놈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마기력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몸이 마비된 것이다.
그 틈을 타 정대식은 구울 나이트를 앞으로 밀치며 재빨리 몸을 옆으로 굴렀다.
거의 동시에 고덕화가 미뤄 두었던 일격을 터트렸다.
"백년풍진!"
콰콰콰콰콰콰콰콰!
천강벽수선에서 시커먼 바람이 용틀임을 하며 쏟아져 나와 구울 나이트를 후려쳤다.
"키에에에에에......!"
그 바람에 맞기가 무섭게 구울 나이트가 햇빛을 맞은 뱀파이어처럼 재가 되어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김송근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고, 정대식도 식겁하긴 마찬가지였다.
김송근은 자신을 신경 쓰지 말고 공격을 하라고 무작정 소리쳤지만 만약 김송근도 같이 그 공격을 맞았더라면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콰우우우우...... 사라락, 사라락.
백년풍진이 그치고 남은 자리에는 회색의 재만이 풀풀 날릴 뿐.
구울 나이트의 형체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놈이 쓰던 무구는 제자리에 남았다.
구울 나이트의 투구와 갈고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정대식은 터닝 스크롤을 찢으라 명령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좀 전에 그가 한바탕했던 자리에도 열쇠와 함께 투구와 해머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획득한 아이템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대식은 재빨리 다른 구울 나이트를 처치하려고 몸을 돌렸다.
한데 깜짝 놀랄 광경이 눈앞에 보였다.
'어엉?'
어느새 김태희와 서지원이 구울 나이트를 처치하고 이재우와 기철민, 허미래 쪽을 나누어 돕고 있었다.
김태희가 이재우의 철갑 기사와 함께 구울 나이트를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고, 기철민과 허미래, 서지원이 적절히 구울 나이트를 견제하며 밀어붙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얼마 가지 않아 구울 나이트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김태희, 실력을 숨기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정대식은 어렴풋이 김태희가 자신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혹은 능가하는 실력자가 아닌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강영후가 단독 임무를 맡겨 숨겨 두었을 정도의 인물이니 보통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했다.
정대식은 어느 쪽을 도와야 하나 고민하다가 기철민과 허미래, 서지원 쪽으로 달려갔다.
그쪽이 머릿수는 많아도 구울 나이트를 단박에 처치하기는 어려워 보여, 그쪽으로 달려가며 간단히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교란!"
정대식의 스킬 사용에 구울 나이트가 혼란스러워하며 엉뚱한 곳을 공격했다.
그 틈을 타서 서지원이 공간 분리로 구울 나이트를 어디로도 가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그러자 당장에 기철민이 검을 휘두르며 날아올랐다.
그런 그에게 정대식은 스킬을 사용했다.
"강화!"
정대식의 마력이 기철민에게 쏟아지고, 기철민의 공격이 작렬했다.
"천노참격!"
번-쩍!
그의 검기가 일섬이 되어 구울 나이트를 후려쳤다.
구울 나이트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십자로 쩍 하니 쪼개어졌다.
곧 구울 나이트가 재가 되어 산산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김태희 쪽에서도 구울 나이트의 비명이 울렸다.
돌아보니 김태희의 가시 돋친 절구 공이가 구울 나이트의 투구를 완전히 우그러트려 놓았다.
곧장 절구를 뽑아 들며 몸을 한 바퀴 돌린 김태희가 뒤쪽으로 최후의 일격을 먹였다.
"블랙홀!"
카가가가가가가강!
회전하는 공이가 전기톱처럼 구울 나이트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마지막 구울 나이트까지 절명하고, 회랑에 다시금 침묵이 내려앉았다.
......안도의 침묵은 아니었다.
다들 구울 나이트를 다 처치했다는 기쁨도 잊어버린 채, 멍하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건 정대식도 마찬가지였다.
정대식은 회랑에서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참에 선 무언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사지를 누덕누덕하게 기운 여자처럼 보였다.
이목구비가 섬뜩할 만큼 선명하고 안색이 새파란데, 머리에는 높은 왕관을 쓰고 몸에 신부와 같이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
그 인상적인 모양새만 봐도 그 몬스터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기는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 신음하듯 그 사실을 입에 올렸다.
"언데드 퀸......!"
Chapter 34. 언데드 퀸
정대식은 위풍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 퀸을 보고 혼란에 빠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보스몹이 이곳엔 왜?'
원래대로라면 언데드 퀸은 보스몹이 있어야 할 8층, 이 던전의 가장 꼭대기 층에 자리하고 있어야 했다.
다른 헌터들이 언데드 퀸과 싸우다 도망치며 유인하지 않는 이상은 다른 층에서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7층이나 6층도 아니고 겨우 2층에서 언데드 퀸과 마주치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구울 나이트가 2층에 출몰한 것만 봐도 이상했다.
구울 부대가 떼거지로 나타나질 않나, 구울 나이트가 한꺼번에 다섯 마리나 등장하질 않나, 돌이켜 보니 이상한 점투성이였다.
그게 언데드 퀸이 등장하는 전조였나 보다.
'혹시 이 던전이 공략된 지가 오래되었나? 시기를 놓쳐 몬스터가 던전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것인가?'
그게 가장 가능성이 높았으나 그럼 이 던전에 대해서 조사를 할 때 그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대원들의 조사가 미흡하여 그 사실을 놓쳤거나, 그게 아니라면 던전 공략의 시기와 상관없이 던전이 터지려는 것이다.
'몬스터 브레이크!'
불길한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정대식은 지금 원인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망을 칠지, 아니면 대적을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자마자 당연히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방금 전에 구울 나이트와 일전을 마친 후다! 다들 마력을 소진했을 테고 나부터도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반격권을 쓰느라고 일격을 허용하기까지 했으니...... 언데드 퀸을 상대할 만한 상태가 아니야!'
정대식은 망설이지 않았다.
괜한 욕심에 머뭇거리다가는 부대원들이 몰살할 수도 있었다.
정대식은 즉시 엔트로피를 앞으로 날려 보내며 외쳤다.
"퇴각한다! 도망쳐!"
그러자 김태희가 그를 휙 돌아보고 으르렁거렸다.
"도망이라니......!"
"우리 상대가 아니다, 명령이다!"
김태희가 아쉬운 듯 불만을 삼키는 가운데, 다른 대원들은 지체 않고 명령을 받아 입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구울 나이트가 떨어트린 아이템을 집을 엄두도 못 내고 너른 회랑을 내달리는데, 바로 코앞에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혀 버렸다.
정대식은 멈칫거리는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멈추지 마!"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엔트로피를 불렀다.
엔트로피가 즉각 그의 의식에 반응해 스킬을 사용했다.
<강화.>
"강력권!"
꽈아아아아아앙!
정대식의 주먹이 닫힌 문에 부딪치고 엄청난 폭음이 일었다.
주먹이 찡, 하고 떨리며 아파 올 정도의 공격이었으나 문은 크게 한 번 뒤흔들릴 뿐, 미동이 없었다.
정대식은 혼자만의 힘으로 문을 부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했다.
"허미래, 문에다 디버프를 걸어! 김태희, 내 공격에 바로 연이어 공격한다. 그다음이 기철민, 바로 너다! 준비해!"
허미래가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왔다.
엔트로피가 그녀에게 강화를 걸었고, 허미래가 문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디버프를 걸었다.
"위켄!"
우우우웅-.
디버프로 인해 문이 진동하고 정대식은 다시 강화 강력권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귀를 찢는 굉음이 문을 두드리기가 무섭게 김태희가 그 무시무시한 절구의 공이를 말 그대로 갖다 박았다.
"우주 충돌!"
꽈아아아아앙!
문이 우르르르 떨리며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흔들렸다.
때를 놓치지 않고 기철민이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정대식이 그에게 버프를 가했다.
"강화!"
"천노참격!"
쩌-억!
마침내 철옹성 같은 문이 두 쪽으로 갈라져 버렸다.
정대식은 그 문을 걷어차고 대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마지막으로 회랑을 벗어나며 뒤를 돌아보자, 언데드 퀸은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이 문을 부수는 동안 공격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회랑 밖으로 못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든가?'
정대식은 달리면서 대원들에게 마력 회복 포션을 마시라고 주문했다.
가진 마력 회복 포션을 몽땅 털어 마시고 스펑키가 늘어서 있던 긴 복도를 달렸다.
그리고 맞은편의 문을 박차고 들어간 순간.
제일 앞서 달리던 이재우가 경악해서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그들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이 박차고 나왔던 회랑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들이 나간 문으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그러자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으로 찾아들었다.
엔트로피가 그 생각을 말로써 표현했다.
<공간이 왜곡되었군요.>
복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휘어져 이어진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도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언데드 퀸이 그들이 달아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문을 부수느라 애꿎은 마력만 낭비했어!'
정대식이 낭패해 있자 언데드 퀸이 여유롭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으로 반디 같은 불빛이 흩뿌려졌다.
그것은 마치 작은 스펑키처럼 보였다.
언데드 퀸을 장식하는 베일처럼 너울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데 예쁘기는 해도 절대로 좋은 현상은 아닐 터였다.
언데드 퀸이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오자 초조한 듯 김송근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정대식은 대답 대신 스킬을 썼다.
"관측."
언데드 퀸에게 승산이 있는지 알아보려 관측 스킬을 썼는데, 기분만 더 암담해질 뿐이었다.
언데드 퀸의 등급은 무려 4등급!
정대식이 제 컨디션이었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만한 수준이었다.
생명력은 당연하게 가득 차 있었고 약점이라 할 만한 부위도 딱 한 군데뿐이었다.
다름 아닌 미간이다.
미간의 한 점만 붉은색이었고 나머지는 대부분이 푸른색이었는데, 손이나 발과 같이 신체의 끝부분이 더 강했고 몸의 중심부 쪽으로 올수록 그 색깔이 옅어졌다.
공격을 한다면 몸통을 노려야 하고, 일격을 가한다면 미간을 노려야 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정보로는 언데드 퀸을 쓰러트릴 만한 가망성이 생기지는 않았다.
'안 돼...... 안 돼. 이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이제 겨우 손발이 맞기 시작했는데 이런 데서 부대원을 잃을 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