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39화 (139/297)

# 139

현질 전사

- 6권 15화

정대식은 서지원을 보고 물었다.

"저 복도는 엔트로피의 말대로 왜곡되어 있다. 공간 마법이라면 너도 쓸 줄 알지. 저 복도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나?"

서지원은 몹시 당황하며 말했다.

"그, 그것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 저기에 공간 왜곡이 걸려 있다면 다시 한 번 공간 왜곡을 걸어서 제자리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공간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복구 마법을 쓰든지요. 하지만 공간 마법과 공간 마법이 부딪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는......."

서지원이 하는 말을 듣고 이재우가 몹시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잘못하면 영 엉뚱한 데로 이어지는 거 아니야? 자신 없게 말하는 꼴이 엄청나게 위험하게 들리는데."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일단 시도해 봐. 나머지는 출구를 뚫을 때까지 언데드 퀸을 막는다."

그렇게 말한 정대식은 한 호흡을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건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다. 보스몹은 전혀 예상에 두지 않았으니까. 저게 왜 여기까지 내려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접근하는 건 위험하다. 저건 전신이 독과 저주로 점철이 되어 있어 닿는 것만으로도 해를 입는다. 그러니까 최대한 거리를 두고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로막는 데 초점을 두겠다."

그러자 허미래가 질문을 던졌다.

"그, 그렇지만 방어막을 쳐줄 사람이 없는데요. 서지원은 길을 복구시켜야 하는데 무슨 수로 언데드 퀸이 접근하는 것을 막죠?"

"그건 허미래 너와 내가 한다. 내가 탱킹으로 최대한 언데드 퀸을 막아 볼 테니 네가 디버프를 걸고, 나머지가 공격을 막는다. 명심해라, 절대로 언데드 퀸을 직접 공격하지 마! 날아오는 공격만 막아! 우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서지원이 길을 뚫을 때까지 버티는 거다!"

정대식이 강조하는 말에 대원들이 대답했다.

"예!"

"그럼 내가 신호할 때까지 대기해라!"

정대식이 그 말을 할 때쯤에 여유롭게 계단을 내려오던 언데드 퀸이 회랑 바닥에 다다랐다.

사방에는 언데드 퀸이 뿌린 반딧불이 흩어져 있었고 그게 회랑을 밝히는 촛불마냥 환하게 빛을 뿌리고 있었다.

정대식은 언데드 퀸을 주시하며 허미래를 등 뒤에 바짝 붙인 채 왼쪽으로 고덕화와 기철민을, 오른쪽으로 김송근과 김태희를 보냈다. 이재우는 허미래의 후방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공격으로부터 서지원을 보호하는 동시에 서번트를 불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자 늘어선 펜리르 부대를 쭉 훑어본 언데드 퀸이 문득 입을 쩍 벌렸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악!"

"크악!"

피어가 터지고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기가 무섭게 마치 그 소리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반딧불이 우르르 날아왔다.

사방팔방 날아드는 그 빛이 불길하여 정대식은 마기전을 사용했다.

"마기장!"

우우우우웅-.

왼손으로부터 뻗어 나간 그의 마력이 방어막처럼 너르게 퍼졌다.

그 방어막에 반딧불이 와 닿기가 무섭게 마치 폭탄처럼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콰광! 쾅! 쾅! 콰앙!

녹색의 폭발이 일어나며 시야가 자욱하게 가렸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공격이 날아들었다.

<옵니다.>

엔트로피의 경고가 날아들고 불길한 소음이 귓전을 긁었다.

쉬리리리릭!

* * *

연기 사이로 긴 채찍이나 촉수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날아와 마기장을 꿰뚫었다.

정대식의 마력이 그리 많지가 않아 마기장이 얄팍해서 첨단에는 약했다.

"조심해라!"

정대식이 외치는 가운데 다섯 가닥의 공격이 그의 왼쪽을, 또 다른 다섯 가닥의 공격이 오른쪽을 휩쓸었다.

후우우웅!

때를 맞춰 허미래가 디버프를 했다.

"슬로우!"

정체 모를 공격이 느려지며 방어에 여유가 생겨났다.

고덕화의 천강벽수선이 강풍으로 그 공격을 밀어냈고, 기철민도 검을 들어 거기에 맞섰다.

김태희도 절구를 휘둘러 그 공격을 막아 내는 새 김송근이 분신 둘을 불러다가 그 촉수와도 같은 뭔가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게 휘리릭 도로 감기며 김송근의 분신을 허공으로 낚아채 갔다.

곧 연기가 가시고 정대식은 그 공격의 정체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손톱!"

언데드 퀸은 너풀거리는 소매 아래 거대하고 흉측한 두 손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거기에서 길게 자라난 손톱이 채찍처럼 꿈틀거리며 김송근의 분신을 찢어발겨 놓고 나머지 대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정대식은 더 이상 마기장이 소용없음을 알고 언데드 퀸에게로 육박해 들어갔다.

놈의 약점은 오로지 미간뿐!

그곳을 노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정대식은 마지막 남은 마력을 쥐어짜 냈다.

그리고 땅을 박차 올라 언데드 퀸의 안면으로 날아올랐다.

"마기포!"

콰아아아아아아!

그의 마력이 눈부신 일섬이 되어 언데드 퀸에게로 날아갔다.

그러자 언데드 퀸이 눈을 히떡 뒤집으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

그 소리는 아까의 피어와는 달랐다.

그렇다고 덜 위력적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언데드 퀸이 비명을 지르자 언데드 퀸의 뒤쪽에서 시커먼 연기 같은 게 확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것은 수십, 수백 개의 유령이었다.

그게 마치 갑옷처럼 언데드 퀸을 감싸고돌아 마력포를 대신 맞았다.

"우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유령들의 음산한 단말마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언데드 퀸이 죽음의 독무를 토해 냈다.

정대식이 이 던전에 대해 조사할 때 알아본 바에 따르면 언데드 퀸의 독무는 말 그대로 살인 가스였다.

살에 닿으면 뼈까지 녹아 버리는 초강력 독가스였다.

그것 앞에서는 얼굴에 쓴 마스크도 소용없었다.

마력포가 무위로 돌아가고 독무를 눈앞에서 맞게 된 정대식은 부상을 각오했다.

어느 정도는 배틀 슈트와 마스크가 막아 줄 거라 생각하고 두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로막던 그때였다.

"풍창파벽!"

후우우우우웅!

등 뒤에서 강력한 바람이 불어와 독무를 언데드 퀸 쪽으로 날려 버렸다.

다름 아닌 고덕화였다.

그가 위기의 순간에 정대식을 도와준 것이다.

정대식은 미처 고맙다고 말할 겨를이 없었다.

그가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이번에야말로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왼팔을 앞으로 뻗었다.

"마력포!"

콰아아아아아아아!

재차 마력포가 언데드 퀸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영혼들의 철통 방어로 마력포가 다시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이런......!"

더 이상은 마기전을 쓸 만한 마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는 공격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언데드 퀸이 거느린 유령들의 수가 대폭 줄어든 것을 보고 정대식은 주먹을 휘감았다.

다시 독무를 쓰려 해도 시간이 필요할 터!

언데드 퀸이 다른 수작을 부리기 전에 처치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거침없이 언데드 퀸에게로 뛰어들었다.

엔트로피가 그런 정대식을 거들어 주었다.

<강화.>

"강력권!"

콰아아아아앗!

그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 나갔고, 유령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강력한 공격력의 강력권에 별 소용없이 흩어져 버렸다.

다음 순간 그의 주먹은 여전히 공격력을 간직한 채로 언데드 퀸에게 가 닿았다.

꽈앙!

비록 미간은 비껴갔으나, 정대식의 주먹은 정확히 언데드 퀸의 안면을 후려쳤다.

그러나 터진 것은 언데드 퀸의 비명이 아닌 정대식의 비명이었다.

"크아아아아아!"

그는 명치를 직격해 들어오는 영문 모를 통증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와중에도 언데드 퀸 코앞에 나자빠져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몸을 데굴데굴 굴려 옆으로 빠져나왔다.

하나 가슴의 격통은 점점 더해만 갔다.

정대식은 제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커, 커컥!"

그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언데드 퀸에 대한 정보 하나를 떠올렸다.

언데드 퀸이 진짜 무서운 것은 그 몸에 두르고 있는 강력한 저주다.

구울을 생산해 내는 언데드 퀸은 자신을 공격하는 자의 영혼을 상처 입힌다.

즉, 언데드 퀸을 공격하면 할수록 다친다는 말이다.

이 고통이 쌓이면 이윽고 구울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데드 퀸을 상대해서 살아남으려면 신성이나 정화 능력이 깃든 무기를 써야 했다.

급한 맘에 그 사실을 무시하고 공격했던 정대식은 호된 대가를 치르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큭...... 배틀 슈트만 믿고 덤볐다가 죽을 뻔했군!'

배틀 슈트의 성능은 훌륭했으나 언데드를 상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싸구려 방어복이라도 신성수를 뿌리거나 축복 한 번 받은 게 더 효과적인 것이다.

그 사실을 무시하고 터닝 스크롤만 가져온 것은 애초에 언데드 퀸을 상대할 작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대식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력을 다 썼다! 마력 회복 포션도 이제 없어! 어떡하지?'

정대식이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그에게 관심을 잃은 언데드 퀸은 대원들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었다.

마력을 소진하기는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라 그들의 방어력은 신통찮았다.

고덕화는 더 이상 능력을 쓰지 못하고 천강벽수선을 무슨 파리채처럼 휘두르며 간신히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손톱을 막고 있었다.

기철민도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손톱과 여기저기서 터지는 소형 스펑키로 고전하고 있었다.

김태희는 그나마 여력이 있어 보였으나 김송근을 지키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김송근은 아까 구울 나이트와 싸우며 마력을 죄다 써 버린지라 더 이상은 분신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도 호신용 무기를 꺼내 들고 맨몸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그나마 마력량이 많은 이재우가 성스러운 철갑 기사를 만들어 내어 정대식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철갑 기사는 사람이 아니고, 이재우의 의도에 따라 어느 정도 신성력을 띠고 있는지라 언데드 퀸의 독무를 맞거나 직접적인 공격을 가해도 이재우에게는 타격이 없었다.

그러나 언데드 퀸을 끝장내기에는 공격력이 달렸다.

기댈 데라고는 서지원뿐이었다.

그가 이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서지원! 아직도 멀었나!"

정대식이 외치는 소리에 서지원이 진땀을 뻘뻘 흘렸다.

"잠시만...... 잠시만요!"

그가 얼굴과 몸에 그린 마법진이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아마 그가 새긴 공간 마법을 총동원하는 모양이었다. 허미래가 서지원이 집중할 수 있도록 펄펄 날아드는 스펑키를 이리저리 내쫓고 있었다.

그때였다.

"공간 복구!"

다 갈라진 목소리로 서지원이 외치자 부서진 문 너머로 보이는 복도가 일렁였다. 그것은 셰이크처럼 한 번 뒤섞이더니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성공한 거예요?"

허미래의 질문에 서지원이 진이 다 빠져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그, 글쎄요. 직접 가 보기 전까지는......."

정대식은 앞뒤 가리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다들 달려! 복도로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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