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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141화 (141/297)

# 141

현질 전사

- 6권 17화

정대식은 마력을 손 안에 으스러트렸다.

그러자 그 안에서 매우 밝고 환하며 청명한 마력이 흘러나와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건......!'

몸을 휩싸고 도는 마력은 지독한 무더위 속에서 바닷바람을 맞는 것 같은 청량함을 안겨 주었다.

곧 짙은 충족감이 찾아들며 마력이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대단하다......!'

이건 절대 서지원의 수준으로는 만들 수 없는 마력석이었다.

정대식은 거기에 대한 생각을 일단 접어 두었다.

어느새 주위가 어두컴컴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분노한 허미래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죽으라고!"

콰르르르르르르!

짙은 어둠이 유령들을 일시에 집어삼키고 독무를 날려 보냈다.

회오리치는 마력의 세찬 움직임에 정대식은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나비?'

사방에 검은 나비 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진짜 나비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허미래의 마력이다.

나비 떼 한가운데 선 허미래는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나비 날개처럼 시커멓게 돋아나 있었고, 이마에는 새카맣게 일렁이는 마력이 더듬이처럼 솟구쳐 나와 있었다.

가히 몬스터라 해도 믿을 만한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일이 어찌 된 건지를 깨달았다.

늘 소극적으로 찔끔찔끔 힘을 쓰던 허미래가 복구한 마력을 일시에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으악! 이게 뭐야?"

"허미래, 너 괜찮은 거냐?"

대원들이 평소답지 않은 허미래를 보고 당혹해하는 가운데 그녀가 쏟아 낸 검은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게 언데드 퀸을 휩쓸었고 언데드 퀸은 유령을 잔뜩 불러내어 그 마력에 대항하고 있었다.

다행히 허미래는 이성을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정대식이 "허미래! 괜찮나?" 하고 묻자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보...... 보지 말아요!"

아마 기괴해진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허미래가 창피해할수록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시간을 끌었다간 허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관계로 정대식은 서둘러 말했다.

"언데드 퀸을 붙들어 놓을 수 있겠나?"

"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부탁한다. 빨리 끝낼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 줘!"

파르르르르르르!

검은 나비 떼가 언데드 퀸을 에워싸서 연거푸 모이는 유령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독무도 검은 나비 떼의 군무에 휩쓸려 사방으로 퍼지지 못하고 있었다.

처치할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에 정대식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자신이 세운 어떤 가설을 엔트로피에게 물어보았다.

"엔트로피! 반격권의 목표물을 바꿀 수 있나?"

정대식의 질문이 뜻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엔트로피가 즉각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좋아! 펜리르 부대원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정대식은 고덕화, 김송근, 기철민, 이재우, 그리고 서지원과 김태희를 보고 말했다.

"언데드 퀸은 말 그대로 언데드 퀸이라 한 방에 처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단번에 언데드 퀸을 끝장낼 수 있는 일격이 필요해! 하지만 나조차도 그만한 공격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게 뭐죠?"

다급한 맘에 질문을 던지는 대원들을 보고 정대식은 짧게 말했다.

"날 공격해라!"

"예?"

"뭐라고요?"

"갑자기 무슨 그런......!"

정대식을 구하기 위해 도망칠 기회를 날려 버리고 되돌아온 대원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기껏 자신들이 살리려 애쓰고 있는 정대식을 자기들 손으로 공격하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정대식은 눈을 빛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설마 너희들 손에 죽으려고 그런 명령을 내리겠어? 방법이 있으니 날 믿고 시키는 대로 해!"

대원들이 계속 주저하자 정대식은 으름장을 놨다.

"내 명령을 한 번 어긴 것으로도 모자라 두 번이나 어길 참이냐!"

결국 그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 기철민이 나서 말했다.

"무슨 수가 있는 거겠죠.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어떡하면 됩니까?"

정대식은 대꾸했다.

"서지원과 김태희를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내가 신호하면 각자가 갖고 있는 최고의 공격을 내게 가한다. 그러고 나서 내 신호를 따라 서지원이 날 언데드 퀸 앞으로 날려 보내! 그게 전부다. 그럼......."

정대식은 대원들에게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 엔트로피에게 눈짓했다.

<반격권.>

"와라!"

곧장 기철민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천노참격!"

동시에 고덕화의 공격이 터졌다.

"백년풍진!"

김송근이 만들어 낸 다섯이나 되는 분신들도 공격을 해 왔다.

"5분형...... 일점파격!"

마지막으로 이재우의 서번트가 공격을 가했다.

"작품명, 죽음의 낫을 든 사신!"

넷이나 되는 헌터들의 공격이 한 번에 닥쳐들자 제아무리 강철 신체에 배틀 슈트를 입고 있는 정대식이라 하더라도 그 충격이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대식은 내장이 뒤집히는 느낌에 피를 컥, 토했다.

그러나 작전은 예정대로 이루어졌고, 서지원이 공간 마법을 써서 정대식을 순식간에 언데드 퀸의 코앞으로 날려 보냈다.

"공간 이동!"

"크아아아아아악!"

정대식은 괴성을 지르며 바로 눈앞에 선 언데드 퀸의 미간에 주먹을 질러 넣었다.

그러자 그의 몸에 축척되었던 대원들의 공격력, 그들의 공격을 통해서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 왔던 마력이 고스란히 그의 주먹에 휩싸여 언데드 퀸에게로 날아갔다.

쐐애애애애애애액!

타이탄 공격대에서 분야별 최고 실력자라 불리는 이들의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송곳처럼 언데드 퀸의 미간을 찔러 들어갔다.

언데드 퀸이 정대식의 영혼을 집어삼키려고 입을 쩍 벌렸으나 정대식의 공격이 더 빨랐다.

"캬아아아아아아아!"

언데드 퀸의 단말마가 공간을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정대식의 주먹이 물렁한 언데드 퀸의 미간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러자 언데드 퀸의 머리통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마치 다 식어 빠진 재를 걷어찬 느낌이었다.

"꺄아아아아아............!"

언데드 퀸의 단말마가 메아리쳐 돌아오는 가운데, 언데드 퀸의 몸뚱이가 전부 재가 되어 흩어져 갔다.

아스라하게 날리는 잿가루가 마치 눈송이 같아 보였다.

정대식은 휘날리는 재 속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일시 회복한 마력을 모조리 다 짜내어 반격권에 써먹었더니만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이 없었다.

그가 진이 빠져 꿇어앉은 앞에 언데드 퀸의 왕관과 심장이 떨어져 내렸다.

떨그렁!

언데드 퀸의 거대하고 화려한 왕관은 갖은 진귀한 금속과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언데드 퀸의 심장은 불길한 보랏빛을 띤 채 아직까지도 쿵쿵, 뛰고 있었다.

서서히 그 빛이 가시는 것을 정대식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니, 등 뒤에서 김태희가 재를 헤치며 다가왔다.

그리고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왜, 왜 나를 작전에서 제외한 겁니까?"

정대식은 그녀를 돌아보고 힘없이 웃었다.

"대원들의 공격도 견뎌 낼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하지 못하는데. 거기에 네 공격까지 더해지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뭐라고요?"

약간 멈칫하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반문을 던지는 김태희를 향해 정대식은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 세계 최고의 헌터......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SS급의 각성자, 슈퍼스타 최희의 공격을 감당해 낼 자신은 없다고."

그 말을 듣고 김태희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사실 정대식도 아까 마력석을 받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었다.

그녀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고 이능을 쓰는 법도 달라서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 마력석 안에 깃든 마력이 낯익은 것을 보고 비로소 눈치를 챘다.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정대식을 보고 김태희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변장을 하고 있었기에 그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기분 탓인지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 같기도 했다.

"역시 너는......."

김태희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정대식도 굳이 묻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것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 * *

정대식이 고개를 돌리자 언데드 퀸이 사라진 자리의 허공이 일그러지며 무언가 눈부신 빛이 피어올랐다.

공중에 떠 팽글팽글 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정석이었다.

"에메랄드 스톤이다......!"

정대식은 맑은 녹색 빛을 띠고 있는 마정석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관측 스킬을 썼을 때 녹색 표시가 떠 있기에 대충 녹색 계열 마정석이 나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선명한 에메랄드색이 나올 줄은 몰랐다.

색을 보나 순도를 보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에메랄드 스톤이었다.

곧 빛을 뿌리며 나타난 마정석이 아래로 툭 떨어졌고 정대식은 손을 내밀어 그것을 낚아챘다.

그러기가 무섭게 은은한 녹색 빛이 파문처럼 주변으로 확 퍼져, 던전 안의 공기를 일시에 바꿔 놓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죽은 자들의 소굴에 걸맞게 음울하고 역겨운 공기가 맴돌았는데, 그게 싹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던전 안을 뒤덮고 있던 어둠도 한결 가셔서 밝은 방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허미래가 쏟아낸 마력도 갈무리가 되어, 그녀 역시 평소의 모습대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보기 흉한 모습을 부대원들에게 보이고 말았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부대원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 허미래. 너 왜 그래?"

"아까 일 때문이라면 신경 쓸 필요 없어. 근사했다고!"

기철민과 김송근이 번갈아 하는 말에 허미래가 빽 소리를 쳤다.

"모, 몰라요!"

정대식은 마정석을 챙겨 들고 한없이 울적해하는 허미래에게로 다가가서 말했다.

"오늘 잘해 줬어. 네가 아니었더라면 언데드 퀸을 처치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거다."

"아니에요. 그보다는 좀, 떨어져 주세요."

허미래는 정대식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 말이 과분해서라기보다는, 창피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우울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허미래가 평소에도, 전투 상황에도 소극적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의 마력이 강력한 만큼, 특정한 모습으로 형상화되니 마력을 과다하게 쓰면 그게 본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썩 보기 좋다고는 할 수 없어 아무래도 여자로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도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놓고도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 마음 먹기 나름이라, 섣불리 위로를 하기 보다는 시간이 약이라 판단하고 정대식은 허미래와 거리를 두었다.

"획득한 아이템을 챙기고 여기서 철수한다."

그들이 획득한 것은 돌처럼 검게 변한 언데드 퀸의 왕관과 심장, 구울 나이트의 각종 무구들이었다.

열쇠도 있었으나 보스몹을 처치한 이상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다른 층으로 가 봤자 던전 전체가 터닝되어 당분간은 몬스터가 없을 것이다.

획득한 아이템은 몬스터 부산물에 비해 부피도 적고 가짓수도 얼마 안 됐지만 값어치는 몬스터 부산물과 비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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