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현질 전사
- 6권 19화
정대식이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엔트로피는 즉각 필요한 뉴스를 전달해 주었다.
<지금 서울을 비롯한 경기 지역 곳곳에 몬스터가 출몰하고 있습니다. 각 언론사들은 이것이 세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가 터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던전 공략의 시기와 상관없이 몬스터가 튀어나온다면 몬스터 브레이크로 보는 것이 옳겠지요. 그리고 전방에 심각한 교통 정체가 발생한 상태입니다. 정확히는.......>
"몬스터다! 다들 전투 준비해!"
주의 집중 스킬로 몬스터의 기척을 감지해 낸 정대식은 운전대를 잡은 김태희에게 말했다.
"밟아!"
부아아아아아앙!
김태희가 액셀을 있는 힘껏 밟으며 단번에 다른 차들을 추월해 나갔다.
오래지 않아 엔트로피가 경고한 대로 고속도로로 가는 입구가 꽉 막혀 있었다.
그곳에 차들이 우르르 모여 서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꺄아아아아!"
"괴물이다!"
"몬스터야!"
정대식은 곧장 엔트로피를 날려 보내고 지프 지붕 위로 올라갔다.
시야가 높아지자 고속도로 위에 오거 여러 마리가 멈춰 선 차들을 밀어내며 난동을 부리는 광경이 보였다.
곧 엔트로피가 놈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 그들의 수와 무장 상태를 링크된 의식을 통해 보내 주었다.
정대식은 곧 그 사실을 다른 대원들에게 전달했다.
"상대는 오거 여덟 마리다! 거리가 있으니 원거리 공격부터 쏟아부은 다음에 진입한다! 고덕화, 허미래!"
마찬가지로 지프 위에 올라선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을 휘둘렀다.
"풍창파벽!"
콰아아아아아아아!
거세게 일어난 바람들이 오거들을 후려쳤고, 그 틈을 타 허미래가 검은 나비 떼를 날려 보냈다.
검은 나비 떼가 오거들을 에워싸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하는 사이, 정대식이 기철민과 김태희를 데리고 놈들에게로 달려갔다.
"내가 탱킹할 테니까 닥치는 대로 처치해!"
"알겠습니다!"
<도발.>
"적의 집중!"
정대식이 스킬을 써서 어그로를 끌자 고덕화와 허미래의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오거들이 우르르 그에게 달려들었다.
정대식이 그들의 주의를 끌며 한 놈씩 상대하는 동안 기철민과 김태희가 양옆으로 찢어져 나머지 오거들을 도륙했다.
"천랑비검!"
"거성진화!"
파창! 콰아앙!
방금 언데드 퀸을 상대하고 온 탓일까?
기철민이나 김태희의 공격은 거침없었다.
언데드 퀸에 비하면 오거쯤은 상대도 안 된다는 듯이 단칼에 오거들을 작살냈다.
정대식도 거칠 게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거 여덟 마리가 모조리 쓰러졌다.
그때였다.
쐐애애애애액!
굉음을 내뿜으며 전투기가 날아갔다.
그 전투기들이 인근 야산 언저리에 폭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김태희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군대가 출동했다는 것은 초대형종이 있다는 소린데...... 아직 헌터들이 도착하지 않았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쪽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던전 안에서 듣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현실과 환상이 일그러져 뒤섞이고 뭉개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김태희가 정대식을 쳐다보았다.
정대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별안간 머리를 칭칭 동여매고 있던 머리칼을 풀어헤쳤다.
휘오오오오!
때마침 강풍이 불어 닥치며 김태희, 아니 최희의 머리칼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그녀는 몸을 낮추었고 그러자 딛고 선 자리가 푹 꺼졌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최희는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쳐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보고 기철민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어딜 간 거죠?"
"김태희는 본인이 할 일을 하러 갔다. 그보다는......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신경 써야 할 것 같군."
정대식은 저쪽에서 하이에나와 비슷하게 생긴 짐승 위에 올라탄 오거 부대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광경을 보았다.
놈들은 길을 막고 있는 차들을 쾅쾅 짓밟으며 치달아 왔다.
고속도로 밑에서도 오거들이 어슬렁거리고 나타나는 것을 보아하니, 근방에 오거가 나오는 던전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일단은 이놈들을 좀 치우자! 서지원, 허미래! 놈들의 발을 늦춰! 내가 탱킹을 계속할 테니 기철민이 날 따라와라! 이재우와 김송근, 고덕화는 밑에 있는 오거 놈들을 상대해!"
정대식의 명령에 따라 대원들은 각자 흩어졌다.
정대식은 기철민과 단둘이서 육박해 오는 기승 오거 부대를 맞닥뜨렸다.
"공간 분리!"
선두에 선 오거와 부닥치기 일보 직전에 서지원의 마법이 그들을 도왔다.
달려오던 오거 부대가 두 쪽으로 쭉 갈라졌고 그 가운데로 뛰어들게 된 정대식과 기철민은 놈들의 옆구리를 곧장 후려갈겼다.
"무적권!"
"천랑비검!"
콰과과광!
번-쩍!
놈들이 탄 짐승들이 시커먼 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지고 그 위에 타고 있던 오거들이 아래로 굴렀다.
그러나 수가 꽤 많아서 연거푸 달려오는 오거들은 여전히 짐승에 탄 채였다.
놈들이 휘두르는 무식한 타격 병기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들었다.
슈와앗!
<신속.>
"강력권!"
정대식은 엔트로피의 도움으로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 오거의 턱주가리를 날려 버리는 데 성공했다.
콰과광!
"크아악!"
오거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뒤따라 달려오던 또 다른 오거에게 부딪쳤다.
사이좋게 나가떨어지는 그 오거들을 무시하고 정대식은 연거푸 닥쳐드는 오거들 사이를 누비며 놈들의 머리를 정확히 노려 주먹을 날렸다.
그때마다 폭발이 일어나며 오거들의 머리가 새카맣게 그을렸다.
정대식은 놈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몸을 틀어 주먹을 내뻗었다.
<강화.>
"무적권!"
퍼버버버벙!
한 번에 다섯 차례의 공격이 터져 오르며 정확히 세 마리의 짐승과 두 마리의 오거가 절명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머지 오거들이 정대식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마찬가지로 무적권에 우르르 쓰러져 버렸다.
'오거 정도는 그래도 마기전 없이 잡을 만하군.'
마기전의 위력이 대단하기는 했으나 마력량을 다량 잡아먹어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지금과 같이 소진된 마력을 마력석으로 간신히 채워 놓은 판국에, 마기전을 펑펑 써 댔다가는 또다시 알몸뚱이 신세가 될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스킬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싸우고 있었다.
정대식이 뒤를 돌아보자 기철민도 막 오거 한 마리를 작살낸 참이었다.
그는 오거의 피가 튄 얼굴을 닦으며 정대식 쪽을 돌아보다가, 안색을 흐리면서 말했다.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줄 방법이란 게 있다면, 지금 해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대식이 대답 대신 뒤를 돌아보자 몇 개나 되는 오거 부대가 달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일부는 짐승에 올라탔고 일부는 달리고 있었는데, 그 수가 상당했다.
그러나 문제는 오거가 아니었다.
"저길 좀 봐!"
고속도로 밑의 도로에서 오거와 싸우던 김송근이 경악해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은 김태희, 아니 최희가 날아간 야산 부근이었다.
그쪽에서 웬 거대한 게 걸어오고 있었다.
"거인...... 거인이다! 그렌델이야!"
오거와 비슷한 외형을 하고는 있으나 그 덩치가 훨씬 크고 모양새도 이질적인 괴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대형종이었다.
집 한 채를 훌쩍 넘는 키에 땅에 끌릴 듯 긴 팔다리가 털 없는 녹색의 고릴라와 같은 인상이었다.
그렌델은 손에 큼지막한 방망이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미 붉은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이미 희생양이 있었던 게 분명해서 정대식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때, 엔트로피가 정대식의 주의를 끌었다.
<정대식 님, 헌터들이 있습니다.>
정대식은 링크된 엔트로피의 시야를 통해서 그렌델의 진행을 방해하는 몇몇 헌터들을 보았다.
엔트로피에게 주위를 살피게 하니 그렌델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오거와 싸우고 있는 헌터들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거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 7, 8등급의 헌터들인 것 같았다.
실력은 대단치 않았으나 어떻게든 오거를 해치우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다들 흩어져 있으니 저대로 놔두면 개죽음당하는 꼴이다. 저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대적해야 해!'
"엔트로피! 헌터들에게 가서...... 바로 저 사거리! 은행이 있는 교차로 쪽으로 모이게 해! 그곳으로 이동해서 다 같이 힘을 합쳐 그렌델을 상대한다!"
<알겠습니다.>
"서지원! 허미래와 같이 그렌델이 있는 쪽으로 가! 그곳에서 오거를 처치할 동안 시간을 벌어 줘!"
"알겠습니다!"
"네!"
서지원이 공간 전이로 허미래와 같이 그렌델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나머지는 각개 전투로 달려드는 오거들을 쓰러트려 나갔다.
몇몇 오거들은 쓰러트릴 수가 있었으나 몇몇 오거들은 그들을 지나쳐 사방팔방으로 달려갔다.
아마 여기저기 흩어진 보다 손쉬운 먹잇감, 즉 일반인들을 노리는 것이다.
마땅히 쫓아가 처치해야 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렌델을 상대하는 게 더 급했다.
놈은 이동하는 것만으로 마을을 박살 내고 있었다.
본인을 훼방 놓고 있는 헌터들에게 단단히 약이 오른 것인지, 되는 대로 건물을 걷어차 부수고 차를 집어던지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정대식은 나머지 부대원들을 손짓했다.
"다들 교차로로 간다! 이동해, 이동해!"
* * *
정대식의 명령에 따라 남아 있던 부대원들은 신속하게 교차로로 달려갔다.
교차로는 버려진 차들로 혼잡했다.
정대식은 마기장을 써서 단번에 그 차들을 그렌델이 다가오는 방향의 도로로 밀어냈다.
콰창장창!
유리가 박살 나고 보닛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일시에 밀려난 차들이 겹겹이 쌓여 길을 막았다.
정대식은 차 몇 대를 앞으로 끌어와 급한 대로 엄폐물을 만들었다.
그러고 있노라니 왼쪽에서 헌터 두 명이 후닥닥 달려오는 게 보였다.
정대식이 손짓하자 헌터들이 그가 숨은 엄폐물 뒤로 달려와 말했다.
"다, 당신이 그 인형처럼 생긴 걸 보낸 겁니까?"
"예, 제가 이쪽으로 전령을 보내 헌터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헌터가 하는 말에 대꾸하자, 비니를 푹 눌러쓴 다른 헌터가 말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몬스터들이 던전 밖으로 튀어나온 거죠? 진짜로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난 겁니까?"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보는 게 맞겠죠."
그러자 수염 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들은 아무래도 저 야산 밑에 있는 던전에서 튀어나온 게 틀림없습니다. 전 그쪽으로 가는 길이었거든요."
"나는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다고요."
비니가 울상을 하며 중얼거리는 말을 무시하고 수염이 재빠르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 던전에는 여러 종류의 오거와 거인이 있습니다. 저놈의 그렌델은 문제도 아니라고요. 더 큰 놈이 도사리고 있어요. 이게 몬스터 브레이크면 그것도 튀어나올 텐데."
"그 던전의 보스몹이 뭡니까?"
"탈로스입니다."
탈로스는 일전에 정대식이 갖고 있는 방어구의 재료가 되는 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