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현질 전사
- 6권 23화
정대식은 아주 미량의 마력을 연거푸 마기전으로 흘려보내 매우 조그만 마기장을 만들었다.
그것은 거의 바둑돌만 한 크기로 마력탄처럼 레드캡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나 겨냥이 잘못되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부딪치고 말았다.
파사삭!
풀숲이 부스럭대는 소리를 듣고 고라니를 뜯어먹던 레드캡들이 일제히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별 볼 일 없는 놈들이었으나 이런 깊은 산속에서 주둥이에 피칠갑을 하고 있는 몰골을 보아하니 꽤 오싹했다.
머리에 새빨간 모자를 쓴데다 피로 물든 돌출된 긴 엄니, 빨갛고 긴 손톱이 갈고리처럼 휘어 있어 더 그렇게 보였다.
정대식은 은신을 쓴 채로 숨을 죽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무적권 한 방에 놈들을 몰살시킬 수 있을 테지만, 정대식은 마기전을 쓰는 데 수련이 필요했다.
마기전은 위력적인 무구였으나 그만큼 엄청난 마력을 소모했다.
저런 하찮은 레드캡 잡는 데 그런 마력을 쓰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정대식은 적은 마력으로도 마기전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마하고 싶었다.
'크기가 작은 마기장을 날려 보내는 것까지는 되는데 자동 소총 같은 게 아니라서 그런지 목표물을 맞히기가 힘들다. 엔트로피, 이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스킬이 있나?'
<조준이 있습니다.>
'좋아, 그걸 구입하겠어.'
<조준 스킬을 획득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정대식은 즉시 조준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가 집중해 바라보는 레드캡의 관자놀이에 조준점이 표시되었다.
정대식은 그곳을 향해 마기전을 착용한 왼손을 뻗었다.
"마기장."
파바바밧!
바둑돌만 한 마기장이 연거푸 그쪽으로 날아갔다.
크기는 작아도 마력이 밀집되어 어지간한 마력탄 못지않았다.
그것들이 정확히 레드캡의 관자놀이로 날아가 단번에 꿰뚫었다.
"끼루룩!"
레드캡 한 마리가 단말마를 외치며 쓰러지자 다른 레드캡이 정대식을 발견하고 괴성을 질렀다.
곧 고라니를 뜯던 레드캡 여덟 마리가 우르르 정대식에게로 달려들었다.
정대식은 연거푸 마기장을 발사했으나 관측 스킬의 레벨이 낮아서 그런지, 아니면 이 스킬이 원래 그런 것인지 조준점이 한 번에 한 마리씩밖에 표시가 되지 않았다.
정대식은 레드캡을 피해 몸을 날리며 소리를 질렀다.
"엔트로피! 조준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면 한 번에 여러 마리를 맞출 수 있나? 아니면 뭐, 더 그럴싸한 스킬은 없어?"
<다중 조준 스킬을 획득하십시오.>
"엉뚱한 데다 돈 쓰게 하면 가만 안 둔다! 다중 조준 스킬을 구입해!"
<다중 조준 스킬을 획득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다중 조준!"
정대식은 발 빠르게 레드캡을 피해 달아나며 새로운 스킬을 시동했다.
그리고 뒤로 몸을 날리며 마기장을 발사했다.
파바바바밧!
연거푸 날아간 마기장이 공중에서 방향을 틀었다.
그것들은 레드캡들의 머리에 생성된 여러 개의 조준점으로 흩어졌고, 곧 레드캡의 관자놀이를 박살 내놓았다.
"좋았어!"
정대식에게 미처 와 닿기도 전에 레드캡들이 시체가 되어 바닥을 굴렀다.
정대식은 소량의 마력으로 다수의 몬스터를 한 번에 처치한 데 만족했다.
하지만 엔트로피의 어드바이스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정대식은 오만상을 쓰며 엔트로피를 나무랐다.
"처음부터 다중 조준 스킬이 있다고 말해 줬으면 조준 스킬은 구입하지 않았을 거 아냐! 아니, 애초에 비슷한 스킬인데 왜 굳이 따로 분리가 되어 있는 거지? 돈을 이중으로 받아먹으려는 수작 아냐?"
<조준 스킬과 다중 조준 스킬은 서로 다른 스킬입니다.>
"뭐가 다르다는 거야?"
<조준 스킬은 업그레이드를 할수록 조준 거리가 늘어납니다. 다중 조준 스킬은 업그레이드를 할수록 더 많은 목표물을 조준할 수 있게 됩니다.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어이구, 그래. 알았다."
정대식은 타이탄 공격대에서 지급받은 카운터를 들고 레드캡 시체로 다가갔다.
이 카운터를 쓰면 자동적으로 사냥한 몬스터가 표시되어 베이스캠프의 지원 팀에 그 정보가 전송이 됐다.
그럼 정대식이 자리를 뜨고 나서도 짐꾼들이 와서 알아서 몬스터 사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경험상 마력 증진 스킬은 마력을 모조리 소진할수록 더 효과가 좋아진다. 잡몹을 잡으면서 마력을 다 쓰려면 열두 시간 동안 부지런히 쫓아다녀야 되겠군.'
정대식은 부대원들과 같이 게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부대장인 그가 베이스캠프에서 놀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역시도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부대원들이 미처 가지 못하는 곳을 누비며 잡몹들을 모조리 잡아들일 계획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달려 볼까!'
* * *
"끄르르륵."
기철민은 내리꽂았던 검을 도로 뽑아냈다.
그러자 피거품을 내뱉으며 그렘린이 절명했다.
주위에는 그가 도륙한 그렘린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다.
기철민은 이마에 솟아난 땀을 훔치며 대충 마릿수를 세 보았다.
'놓친 놈은 없는 것 같군. 그럼 카운터를 해 볼까.'
기철민은 쓰러진 그렘린 사이를 돌아다니며 카운터를 했다.
여태까지 그가 잡은 몬스터의 수는 총 53마리.
잡몹만 잡았다 치더라도 혼자 잡은 것치고는 상당한 숫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마력량도 다 닳아 버렸고 몹시 피로했다.
마침 돌아갈 때가 되기도 했다.
'20분만 있으면 열두 시간이 끝난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야겠군. 그나저나, 다른 녀석들은 얼마나 잡았을까? 내가 제일 많이 잡았어야 하는데. 그래야 보상을 받지.'
기철민은 베이스캠프를 향해 가볍게 달렸다.
아직은 정대식이 자신에게 해 준 처치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평소와 아무 다를 바 없어 속은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기철민은 정대식의 헌터 시절을 다 지켜봐 왔다.
돈을 밝히는 놈이기는 해도 이런 수작을 부릴 만큼 치졸한 성격은 아니었다.
기철민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무리를 해 가면서까지 정대식의 옆에 붙어 있는 게 아니겠는가?
기철민은 소집 시간을 5분 남겨 놓고 베이스캠프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이미 고덕화가 와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시간을 꽉 채울 셈인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기철민은 고덕화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야, 몬스터 많이 잡았어? 몇 마리나 잡았냐?"
고덕화는 말수가 적어 말 붙이기가 어려운 인상이었다.
크툴루 부대에 있다 와서 그런지 세상의 불행이란 불행은 다 짊어진 사람처럼 칙칙했다.
소심한 허미래도 이 녀석에 비하면 밝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적어도 그녀는 시종일관 울적해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고덕화는 기철민의 질문에 대답 대신 카운터를 내밀었다.
그걸 보고 기철민은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애써 삼켰다.
'50마리? 좋았어! 내가 더 많이 잡았군.'
기철민은 지나치게 기뻐하는 티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왜 이거밖에 못 잡았어? 네 천강벽수선은 이런 잡몹들 상대하기에는 제격 아닌가?"
고덕화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여긴 숲이 깊어서 천강벽수선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다."
"왜? 아, 나무가 쓰러지니까?"
"그래. 천연자원보호구역이라 벌목을 했다간 처벌받는다."
정부는 각성자들이 이능을 써서 자연을 훼손하거나 건물을 무너트리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는 데 아주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이 일대가 국립공원이라 제아무리 몬스터 퇴치를 위해서라지만 함부로 숲을 파괴할 수는 없었다.
기철민은 고덕화를 흘깃 보고 말을 이었다.
"사냥하면서 좀 어땠어? 평소하고는 달리 잘 되는 거 같더냐?"
"아니, 똑같았는데."
"그치?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마력을 증진시킨다는 거지?"
"두고 보면 알겠지."
"두고 봐야 하는 건가?"
기철민이 투덜거리고 있는 사이 저쪽에서 김송근과 허미래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김송근이 진저리를 치며 허미래를 앞지르고 있었고, 허미래는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그 뒤를 따라왔다.
기철민은 김송근을 보고 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봐! 사냥은 어땠어? 몇 마리나 잡았냐?"
김송근은 몸을 부르르 떨며 뒤따라오던 허미래를 노려보았다.
"어유, 말도 마라. 허미래, 쟤 땜에 완전 망쳤다."
곧이어 도착한 허미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왜 내가 가는 방향으로 온 거야?"
"의도한 바는 아니었어요......."
"허미래가 신경 쓰여서 한 40마리 정도밖엔 못 잡았어. 너흰 당연히 더 많이 잡았겠지?"
김송근은 울상을 한 채 줄곧 허미래 때문이라고 구시렁거렸다.
그러자 연거푸 죄송하다고 말하던 허미래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는지 별안간 눈을 번뜩였다.
"죄송하다고...... 했잖아요!"
푸확!
허미래의 시커먼 마력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고 김송근이 기겁을 했다.
"이봐! 이러니까 네 탓이라는 거야!"
"흑흑흑...... 저도 제 맘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으아아아앙!"
허미래의 울음소리가 피어처럼 사방으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지난 번, 언데드 퀸을 상대하면서 마력을 다량 방출한 후로 허미래는 본인의 마력을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툭하면 주체 못할 마력이 쏟아져 나오니 몹시 난감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 이유에는 허미래의 울적한 기분도 한몫을 하는 듯 했다.
기철민은 황급히 그녀를 달랬다.
"야, 야, 김송근 저 얼간이 말은 무시해! 괜히 질투 나서 그래. 질투 나서."
"흑흑흑흑흑......."
기철민은 그녀를 필사적으로 달래면서 김송근을 엄청 눈치 주었다.
김송근은 평소에는 좋은 녀석인데 지나치게 솔직해서 가식이라곤 없는 성격이었다.
김송근은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허미래에게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아우, 그래!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됐냐?"
"그, 그게 사과하는 태도는 아니잖아요...... 으아아아앙!"
"야, 이 멍청아!"
기철민이 김송근을 밟아 주는 새 고덕화가 그녀를 도닥였다.
희한하게 기철민이 갖은 말로 애를 쓸 땐 울음을 안 그치더니, 고덕화가 몇 번 머리를 쓸어 만져 주니까 금방 뚝 그쳤다.
뭐 저런 계집애가 다 있냐, 고 기철민은 속으로 짜증을 냈다.
'마력이 강력하면 뭐해. 제 뜻대로 컨트롤하지도 못하는 거.'
기철민이 보기에 펜리르 부대에는 유독 잘난 능력을 갖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놈들이 많았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기철민으로선 몹시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허미래의 우울함조차 기철민에게는 투정으로 느껴졌다.
'내가 저만한 마력을 갖고 있으면 트롤처럼 생겼다 하더라도 감사합니다, 하겠다.'
어쨌든 간에 허미래의 진면목을 잠시나마 보았으니, 그녀가 얼마나 많은 몬스터를 잡았는지 신경이 쓰였다.
몇 마리나 잡았느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괜히 질문했다가 심기를 건드릴까 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슬쩍 눈물을 닦을 휴지를 건네주는 척하면서 카운터를 들여다보았다.
'20마리? 생각보다 별 볼 일 없군.'
기철민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고덕화나 김송근의 성적이 자신보다 부진한 것을 보아하니, 자신의 53마리가 최고 기록일 가능성이 높았다.
남은 사람이라고는 서지원과 이재우뿐인데, 서지원 그 녀석은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이라 공격력은 별 볼 일 없었다.
문제는 이재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