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현질 전사
- 6권 24화
그림 구현이라는 희한한 능력을 갖고 있는 그 녀석의 성적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무식하게 많은 마력량을 갖고 있으니 만만찮을 거 같기는 했다.
하지만 이재우는 마력량이 많아서 그런지 허욕이 심했다.
당최 마력을 아껴서 효율적인 전투를 벌인다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참을성도 부족하고 주의가 산만하니, 잡몹들을 쫓아 산속을 누비는 게 적성이 맞지 않았을 테다.
의외로 형편없는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때마침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고, 저쪽에서 이재우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어? 벌써 다들 와 있었네?"
그는 펜리르 부대원들이 선 쪽으로 다가왔다.
그 기색이 몹시 피로해 보여 기철민은 질문을 던졌다.
"낯짝이 왜 그 모양이냐? 워낙에 잘나셔서 잡몹들 따위는 상대도 안 됐을 텐데."
"내 낯짝이 어떻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에이 씨!"
투덜거리는 이재우를 보고 김송근이 물었다.
"왜 성질이야? 몇 마리나 잡았는데?"
"몰라."
김송근이 재촉하는 말에 이재우는 마지못해 성적을 공개했다.
그가 잡은 몬스터는 30마리.
기철민의 예상이 맞았다.
이재우는 요리조리 산속으로 도망 다니는 잡몹을 잡느라고 열이 뻗쳤나 보았다.
"완전히 망했어. 그림이 부족한데다가 오랫동안 들고 다녔더니 구겨지고 먹이 번져서 엉망이 되어 있잖아. 로크를 불러냈더니 부리가 뭉툭해 아무것도 못 잡질 않나, 늑대를 불러냈더니 다리가 뭉개져 굴러다니질 않나, 암튼 엉망진창이었다고. 급하게 뱀을 그려서 불러냈더니만, 산속이라 날씨가 쌀쌀해서 빌빌거리더라고! 나 원, 그 바람에 마력만 진탕 낭비하고......."
기철민은 코웃음을 쳤다.
"네놈이 그렇지, 뭐.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 좋은 능력을 그렇게 거지같이 쓸 수 있지?"
"이 새끼가...... 너, 말 다했냐? 하여간에 그 주둥아리 좀 꿰매든지 어쩌든지 해라."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기철민은 빈정거리기를 그쳤다.
'이제 1등은 내 거다! 상이 뭔지는 몰라도 좋은 거였으면 좋겠는데.'
김태희가 없어서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괴물 같은 그 여자가 있었더라면 1등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몬스터 브레이크 때 사라져서 여태껏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그 여자가 최희인 걸까,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서지원이 돌아왔다.
"아이고, 헥, 헥. 내가 늦었나?"
"아직. 딱 정각이다."
"후유, 뛰어오느라 죽는 줄 알았네."
서지원은 이마에 솟아난 땀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헤실거리며 웃는 폼이 마법사다운 권위라고는 안 보였다.
마법사는 보기 드문데다가 다들 기괴한 화장을 하고 다니는 통에 상대하기 어렵다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서지원은 그런 것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서 솔직히 만만해 보였다.
그는 곧 헤헤거리며 다가와서 기철민이 먼저 묻고 싶은 말을 던졌다.
"다들 몇 마리나 잡았어?"
기철민은 우쭐해서 말했다.
"53마리."
"와! 많이 잡았네!"
"넌 얼마나 잡았냐?"
"나? 난...... 72마리."
서지원이 말한 숫자에 기철민은 기절초풍할 뻔했다.
"72마리라고? 어떻게?"
변변찮은 공격 마법도 없으면서 혼자서 무슨 수로 몬스터를 72마리나 잡았나 싶어서 묻는 말에 서지원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이 산은 지형이 험해서 벼랑이 많더라고. 몬스터들을 그곳으로 몰아서 떨어트려 죽였지."
"젠장!"
기철민은 혀를 찼다.
공간 마법이라니.
완전 사기적인 능력이다.
자신의 조작 능력 따위는 펜리르 부대 내에서도 정말이지 별 볼 일 없었다.
기철민은 자신의 평범함에 내심 한탄을 했다.
그때 수풀을 헤치며 정대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 내가 좀 늦었군."
정대식의 몸에는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아마 그 역시도 몬스터 박멸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시선이 그가 갖고 있는 카운터로 향했다.
기철민이 빤히 보는 것을 깨닫고 정대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몇 마리나 잡았지? 성적을 말해 봐."
각자 카운터를 내밀자 그것을 확인해 보고 정대식이 말했다.
"서지원이 제일 많이 잡았군."
"아하하, 열심히 했습니다."
"좋아. 그럼 약속대로 보상을 하겠다. 어디 보자...... 그 로브가 좋겠군."
정대식은 서지원이 입고 다니는 로브를 가져갔다.
마법사 협회에서 지급하는 그 로브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A급 아이템으로 모든 계통의 마력에 저항성을 갖고 있어 꽤나 쓸 만했다.
두께가 두껍고 질겨서 화살 따위도 곧잘 막아 내는 모양이었다.
정대식은 그걸 손에 든 채로 가볍게 무슨 말을 읊었다.
"영구 강화."
파아아아아아-.
은은한 빛이 정대식의 손에서 번져 나와 로브에 스며들었다.
그걸 도로 서지원에게 건네고 정대식이 말했다.
"로브의 성능이 강화되어 있을 거다. 이건 영구적으로 적용되는 거라는 점 알아 두고."
"와! 가, 감사합니다!"
기철민은 분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자신이 1등을 했으면 자신의 컴포즈 메탈 검에 영구 강화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영구 강화라.
그건 인챈트의 일종일 텐데, 대장장이도 아닌 정대식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인가?
그가 가진 강화계 능력이 더욱 강해진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계열의 능력을 추가로 획득한 것인가?
기철민은 충동적으로 물었다.
"그것도 전에는 못 보던 능력인데요. 혹시 다른 능력을 더 획득한 것입니까?"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영구 강화하고는 별개의 능력이지만...... 잡몹들 잡으러 다니다보니까 이놈들 쫓아다니는 일이 적잖이 피곤해서."
정대식은 곧 이재우와 김송근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들 같은 능력이 있으면 편하겠다 싶어서 소환계 능력을 새로 얻었다."
"소환계라고요?"
그 말에 다들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소환계는 귀하기로 따지자면 마법사 못지않았다.
소환계에서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는 헌터는 더더욱 보기 드물었다.
소환이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마력을 필요로 하기에, 보통 7, 8등급의 별 볼 일 없는 헌터라면 하급 정령 몇 마리 불러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4, 5등급 수준이라면 상급 정령을 불러낼 수 있어서 굉장한 위력을 발휘했다.
"소환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좀 헤매기는 했지만...... 아무튼 일단 불러냈더니 잡몹 잡는 데는 그만한 게 없더군."
"그래서, 몇 마리나 잡았습니까?"
김송근의 질문에 정대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한, 300마리?"
다들 경악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열두 시간 만에 300마리라니.
그만한 잡몹을 어떻게 일일이 찾아내 죽였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놀라는 와중에도 기철민은 어렴풋이 의문을 품었다.
'편하겠다 싶어서 소환계 능력을 얻었다고? 그럼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무슨 능력이든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철민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역시, 정대식의 옆에 붙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정대식에게는 분명 강해지는 비법이 있었고, 본인 입으로도 그걸 나눠 주겠다고 했으니 분명히 자신도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수고했다. 내일도 같은 게임을 할 테니까 이만 푹 쉬도록."
정대식이 하는 말에 고덕화가 보기 드물게도 질문을 던졌다.
"이 근방의 몬스터를 혼자서 300마리나 잡으셨는데, 내일 잡을 만한 몬스터가 있겠습니까?"
"그렇잖아도 내일은 베이스캠프를 옮기게 될 거다. 우리 부대는 아침 일찍 따로 움직이게 될 거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열두 시간 후에 베이스캠프에 다시 합류한다. 상황을 봐서 그런 식으로 구 DMZ 일대를 대대적으로 청소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만 해산!"
* * *
개인 천막으로 돌아온 정대식은 착용한 무구와 장비를 벗어던졌다.
무려 열두 시간 동안 무장한 채 산속을 누볐더니 상당히 피곤했다.
그래도 마력량을 다 소진했으니, 푹 쉬고 다시금 마력량을 회복하고 나면 수치가 올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하나씩 상태를 향상시키고 시간이 더 있으면 가능한 마력량을 늘릴 작정이었다.
아마 이 몬스터 박멸전을 마치고 돌아가면 자신도, 펜리르 부대원들도 꽤 많이 강해져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소환계 능력은 상당히 편리하네. 왜 진즉 이걸 획득 안 했을까?'
정대식이 사냥을 하면서 새로이 획득한 스킬은 운디네 소환이었다.
잡몹들을 쫓아다니며 마기전 사용을 연습하다 보니, 사냥은 주먹 위주로 하게 됐다.
잡몹들이 대상이라 굳이 공격 스킬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사방이 숲이라는 사실이었다.
바닥에 마른 낙엽이 잔뜩 깔려 있었고, 길이 아닌 곳을 헤치고 다니다 보니 사방이 수풀이라 불이 나기에 딱 좋았다.
주먹으로 몬스터를 칠 때마다 사방팔방 불똥이 날려 하마터면 산불을 일으킬 뻔했던 것이다.
게다가 일일이 잡몹들을 쫓아다니기가 상당히 귀찮았다.
레드캡이나 그렘린, 노커 같은 경우에는 덩치가 사람보다 작고 날렵한데다가 위장에도 능숙해서 상대하기 짜증스러웠던 것이다.
이제는 엔트로피가 대신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나, 엔트로피의 모습 자체가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대원들의 마력 증진 스킬을 한 시간마다 갱신하느라고 바빴기에 본격적으로 전투에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재우나 김송근처럼 무언갈 불러내는 게 어떤가 싶어서 소환 스킬을 획득하게 됐다.
이왕이면 너클 글러브와는 반대 속성이 좋겠다 싶어서 물 속성을 택하다 보니 운디네 소환 스킬을 고르게 된 것이다.
'좀 더 상위 스킬을 획득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정령왕까지는 안 되더라도 상급 정령 정도라면 제법 위력이 있을 거야.'
하지만 소환 스킬 획득에는 조건이 붙었다.
하급 정령 소환 스킬을 레벨 10까지 찍어야지만이 중급 정령 소환 스킬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급 정령 소환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중급 정령 소환 스킬이 레벨 10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령왕을 소환하기까지는 꽤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정령왕 정도를 부르려면 보통의 마력량 가지고는 안 된다.
지금의 정대식 수준으로는 정령왕을 부르자마자 도로 돌려보내야 할 판국이다.
'일단은 마력량을 늘리는 게 시급하긴 한데......'
상점을 업그레이드한다고 1,000억씩이나 썼더니만 스킬 업그레이드에 10억씩이나 써 대는 게 적잖이 아까웠다.
'지금 수준의 마력량도 적지 않은데. 최소한의 자금으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낼 순 없을까?'
정대식은 소환 스킬과 비슷한 종류의 스킬을 여러 개 찾아보았다.
상점이 레벨 6으로 업그레이드되다 보니 전보다 다양한 스킬이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개중에는 유태훈과 같이 언데드를 만들어 내는 네크로맨서의 스킬도 있었고, 이재우의 구현 스킬이나 김송근의 분신, 혹은 환영 스킬도 있었다.
하지만 획득한 보람이 있을 만큼이 되려면 레벨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니, 돈을 몇십억씩 투자해야 했다.
더불어 많은 양의 마력도 필요로 했다.
'흐음.......'
정대식은 머릿속으로 에고 웨펀에 대한 구상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