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50화 (150/297)

# 150

현질 전사

-7권 1화

Chapter 37. 소리 없는 등장

올인원이 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무언가가 급작스레 달라지지는 않았다.

정대식이 올인원이 됐다는 사실을 딱히 떠들고 다니지 않은 탓이다.

그는 열두 시간의 게임을 계속했고, 그동안 대원들에게 대상 지정 상태 증진 스킬을 고루 걸어 주었다.

엔트로피가 스킬 갱신을 위해 날아다닐 동안, 정대식은 새로이 획득한 기본 스킬을 시험하며 마찬가지로 사냥을 다녔다.

'기본 스킬들은 말 그대로 각 계열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들이군. 특정한 효과를 지니진 않아도 강화처럼 두루 적용이 가능해.'

이 스킬들의 특징은 마기전을 닮아 있었다.

강화든 구현이든 변화든, 얼마만한 마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었다.

즉, 강화 레벨이 1이라도 자신이 갖고 있는 마력을 전부 투입한다면 그 강도가 올라간다.

물론 말이 갖고 있는 마력을 다 쓰는 것이지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오늘 내가 운동으로 체력을 다 소모해 버리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같았다.

이론적으로는 격렬한 신체 활동으로 체력을 전부 소진해 버릴 수는 있지만, 단시간에 그렇게 하려면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마력 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마력을 다 써 버려야지, 라는 생각만으로 다 써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 정도의 집중력, 혹은 의지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효율 면에서도 굳이 기본 스킬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기본 스킬은 어디까지나 기본이므로, 다른 스킬과 조합해 쓸 때가 더 효과적이었다.

정대식의 경우, 전신에 강화를 걸어 싸우기보다는 강철 신체라는 패시브 스킬, 혹은 강력권이라는 액티브 스킬에 강화를 더해 싸우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소리다.

변화나 구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신이나 조작, 방출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굳이 다른 예를 들라면 소환이었다.

소환은 스킬을 구입하면 어떤 환경에서는 특정 개체를 부르는 게 가능했다.

운디네 소환이 그렇다.

메마른 사막에서라도 운디네 소환 스킬을 쓰면 효용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일단 부를 수는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 스킬인 소환은 주위의 환경에 따라 좌우됐다.

만약 숲에서 그냥 소환을 쓰면 놈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죽은 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던전이라면 레이스나 와이트 따위가 소환되기 쉬웠다.

그러나 마력을 다량 투입한다고 해서 상위 존재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수가 늘어날 뿐이다.

정대식은 이 기본 스킬을 익히기 위해 돌아다니며 자기 자신에게도 상태 증진 스킬을 부지런히 사용했다.

어디까지나 이번 사냥의 목적은 훈련에 있었다.

그렇기에 올인원이 됐다는 사실에 들떠 있기보다는, 그로 인해 획득한 기본 스킬 수련에 매진했다.

수련에 매진한 것은 부대원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당일에는 상태 증진 스킬의 효과를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열두 시간 동안 꼬박 사냥을 하고 돌아와, 몹시 피로한 상태에서 잠들었다 깨어나 보면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건 사냥을 나가 보면 확연히 드러났다.

정대식이 어떤 종류의 상태 증진 스킬을 걸어 주었느냐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달라졌던 것이다.

정대식이 근력 증진 스킬을 걸어 주면, 다음 날은 명확히 힘이 좋아져 있었다.

체력 증진 스킬을 걸어 준 다음 날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았고, 민첩 증진 스킬은 어제보다 빠른 발을 선사해 주었다.

그것은 마력에서 가장 크게 드러났다.

대부분의 헌터가 가장 크게 부족하다 느끼는 것이 마력이다 보니, 정대식은 다른 신체 상태 스킬을 한 번씩 걸어 주고 난 다음에는 마력 증진 스킬에 집중했다.

이틀 연속으로 마력 증진 스킬을 걸어 주었더니 사흘째에는 다들 큰 폭으로 늘어난 마력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대식이 열두 시간 게임의 상품으로 내건 영구 강화도 제 몫을 톡톡히 했다.

부대원들은 그의 상품이 뭔지를 알고 나서는 마치 짠 것처럼 서로 돌아가며 1등을 했다.

덕분에 다들 최소 한 번씩은 영구 강화 스킬의 혜택을 받았다.

마력을 증진시키는 대신, 다른 데 집중한 사람도 있었다.

다름 아닌 이재우였다.

그는 타고난 마력량이 방대했기에, 굳이 마력량을 더 늘릴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는 보다 효율적으로 마력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오감을 향상시키게끔 했다.

오감은 전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몬스터의 약점을 간파하는 등, 전투 상황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모든 헌터들에게 중요하지만, 대장장이나 마법사, 연금술사나 소환 술사와 같이 손재주와 집중력이 필요한 능력자들에게 보다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재우의 오감 수치를 대폭 올려놓았더니 전보다 전투에 임하는 태도가 훨씬 좋아졌다.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는 대신 이성적인 사고를 했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림 실력도 대폭 늘어 말 안 듣는 사춘기 소년 같은 모습은 옅어지고 한결 헌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 * *

몬스터 박멸을 위해 천연 자원 보호 구역에 들어온 지도 열흘 째.

열두 시간의 게임을 마치고 다시 베이스캠프에 모인 대원들에게 정대식은 칭찬을 했다.

"다들 카운터 숫자가 대폭 늘었군. 이제 100마리쯤은 어렵잖게 잡을 수 있게 됐어."

정대식이 하는 말에 김송근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100마리가 아니라 200, 300마리도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철민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일대에 몬스터가 얼마 남지 않아서 100마리지, 만약 더 많은 몬스터가 있었더라면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잖아도 정대식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사냥을 다니지 않고 있었다.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실력 또한 나날이 상승하고 있었으므로, 정대식이 몬스터를 잡으러 나가면 부대원들이 잡을 게 없어지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그는 베이스캠프에 남아 스킬 운용을 연습하고 몬스터 사냥은 부대원들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만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정대식은 부대원들의 말에 긍정하며 말했다.

"슬슬 이곳에서 철수해도 될 것 같다. 내일 하루 동안 남아 있는 몬스터가 없는지, 일대를 샅샅이 뒤져서 소탕하고 타이탄 본대와 합류하도록 한다."

현재, 타이탄 공격대는 부대별로 나뉘어 강원도 일대의 몬스터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몇몇 부대는 이미 임무를 마치고 본대가 있는 강릉으로 갔다 하니, 정대식도 내일 밤에는 펜리르 부대를 이끌고 그곳으로 갈 작정이었다.

"그럼 오늘의 1등은 고덕화로군. 고덕화."

"여기 있습니다."

정대식은 그가 내미는 천강벽수선에 영구 강화를 걸어 주었다.

벌써 두 번째 영구 강화를 받은 천강벽수선은 예전과는 다르게 기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하는 그와 함께 부대원들을 천막으로 돌려보내고, 정대식도 이제 그만 쉬려고 엔트로피와 함께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지원 팀을 도맡고 있는 팀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정대식 씨, 잠시만요. 방금 전에 공대장께서 지령을 보내 놓으셨습니다."

"지령이라고?"

"단말기를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팀장의 말대로 그의 휴대폰으로 홀로그램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정대식은 확인해 보겠다,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개인 천막으로 들어가 무구를 풀었다.

그리고 메시지를 재생시켰다.

파앗!

휴대폰에서 쏘아져 나온 빔이 허공에 A4 용지만 한 크기의 홀로그램을 재생했다.

미니어처 크기의 강영후가 정대식을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정대식, 김태희에게 들었다. 그녀의 정체를 눈치챈 것 같더군. 내가 그렇게 들키지 않게끔 하라고 했는데.......

역시, 최희가 펜리르 부대에 들어올 수 있게끔 도운 것이 강영후인 모양이다.

하긴, 최희는 타이탄 공격대에 속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어 놓은 상태였다.

제아무리 그녀라도 강영후의 도움 없이 정체를 숨긴 채 펜리르 부대에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되어서 미안하네. 최희가 꼭 펜리르 부대에 들어가야겠다고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만 한 전력은 따로 없으니까 그걸로 넘어가 주지?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녀가 펜리르 부대에 있는 한은, 최희가 아닌 김태희일 뿐이니까. 본인도 김태희로 있겠다고 약속했고.

헛기침을 한 강영후는 이윽고 본론을 꺼냈다.

-아무튼, 최희...... 아니, 김태희가 내일 오전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그럼 그녀와 합류하여 새로운 임무를 도맡도록 해라. 관련 내용은 첨부 파일로 보내 놓았으니 확인하길 바란다. 필요한 보급품도 김태희 편으로 보냈다. 참고로 이 모든 일은 모레까지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사흘 뒤, 타이탄 공격대는 전원 귀환할 테니까. 펜리르 부대도 합류하도록. 그럼 이만.

홀로그램이 자동으로 꺼지고 정대식은 첨부된 자료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어느 던전에서 튀어나온 보스몹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본래는 김태희가 그놈을 잡으러 갔다가 애석하게 놓쳐 버린 모양이었다.

그놈은 추종자를 이끌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도망쳤다.

그게 이곳이라 판단되어, 김태희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다.

'아스모데우스라.'

데빌의 일종인 이 몬스터는 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인큐버스와 서큐버스, 뱀파이어 같은 것들이 득시글거리는 던전의 보스몹이었다.

이런 형태의 몬스터는 언데드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로, 정화와 각성 계열의 스크롤이나 아이템을 지참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는 모습으로 변신하거나, 환영을 보여 주거나 하면서 정기를 빨아먹는다...... 특히 마력을 강탈하는 석션을 주의해야 하는군. 정기를 다 빨리고 나면 놈의 서번트가 된다. 벌써 몇몇 헌터가 당한 모양인데.'

언데드 퀸 역시도 상대의 영혼을 집어삼켜 구울 나이트를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었다.

이 아스모데우스도 비슷한 것 같았다.

'아마 아스모데우스에게 끌려간 헌터들 때문에 김태희가 이놈을 놓친 거겠지. 그렇잖으면 이 정도 몬스터를 놓치진 않았을 거야.'

정대식은 아스모데우스를 상대하는 것보다 넋이 나간 헌터들을 상대하는 것이 더 까다로울 거라고 예상했다.

그 외의 위험 요소는, 아스모데우스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정도일까......?

아스모데우스는 그 모습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첨부 문서에도 아스모데우스의 형태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았다.

분류 또한 불명확해서 온통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아스모데우스와 싸우는 모습이 찍힌 영상 자료가 있기는 했다.

던전 공략 시 촬영을 한 모양인데, 전자 기기에는 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들 투명 인간과 싸우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번거로워 보이기는 하네.'

그래도 별걱정은 안 됐다.

슈퍼스타 최희가 이쪽으로 오는데다가 정대식은 물론이거니와 부대원들의 전력까지 강화되지 않았는가?

아스모데우스는 등급으로 따지자면 5등급 수준이라 지금 상태로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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