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현질 전사
-7권 2화
'그나저나, 김태희가 오면 내가 올인원이 됐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나? 뭐, 전투가 벌어지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만.......'
정대식은 김태희가 최희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그러자 불현듯 최선이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소리가 생각이 났다.
'언니가 정대식 씨를 마음에 두고 있으니, 용건 없이 따로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심코 그 생각을 하고 만 정대식은 머리를 부르르 흔들었다.
'말도 안 돼. 최선 씨가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무슨 불경한 생각이라도 한 사람처럼 정대식은 황급히 그 생각을 털어 버렸다.
그리고 엔트로피를 불러내 아스모데우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녀를 마주 보게 된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심장이 뛰며 입이 바짝 말랐다.
* * *
다음 날 아침.
강영후의 예고대로 김태희가 보급품을 실은 지프를 손수 끌고 베이스캠프에 나타났다.
"김태희!"
부대원들은 그녀가 최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서슴없이 다가갔다.
그도 그럴 것이 최희는 본인의 모습이 아닌, 김태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봉두난발한 머리에 트레이닝복과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절구를 짊어진 모습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대원들도 전부 그녀를 김태희로 대하고 있었다.
아마도 부대원들 간에 암묵적인 동의라도 있었나 보다.
"여! 살아 돌아왔네?"
"우리가 이 산속에 처박혀 있을 동안 혼자서 어딜 갔다 온 거야?"
"아무튼 다시 보니 반갑네."
너 나 할 것 없이 인사 한마디씩을 건네는 가운데, 김태희는 입술을 끌어 올려 빙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뒷전에 서서 기다리는 정대식에게로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펜리르 부대원 김태희, 복귀했습니다."
그 말은 아마도 자신을 김태희로 대해 달라는 언질일 터였다.
정대식 역시도 그럴 작정이었기에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공대장님께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예."
그렇게 대답을 하며 김태희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대식은 그녀와 눈을 맞추지 못한 채 비스듬히 서서 말했다.
"아스모데우스라고?"
"그렇습니다. WJ3D에서 탈출한 놈이 이곳까지 도망쳐 온 것 같습니다. 헌터 열 명을 인질로 데리고요."
"열 명이나?"
"이동하는 사이에 더 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중엔 타이탄 공격대원도 한 명 끼어 있습니다."
"그게 누구지?"
정대식의 질문에 김태희는 잠시 주저했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게 누구냐면......."
"누구기에 말을 끄는 거냐?"
김태희는 나오는 한숨을 삼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외인부대의 소강두입니다."
소강두라는 말에 일이 어찌 된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보나마나 또 적을 상대하다가 흥분해서 5단계 이상으로 변신을 했던지, 이성을 잃어버렸던지 했을 테다.
그런 소강두의 정기를 빨아내고 서번트로 전락시키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외인부대는 정부의 요청으로 몬스터 소탕 작전에 자원한 헌터들을 이끌고 근방에서 작전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제가 아스모데우스의 환영에 발이 묶인 사이, 놈이 소진된 사력을 채우려고 그들을 습격했어요. 외인부대는 다른 헌터들이 대피할 시간을 버느라고 후퇴를 미루고 있다가 당한 겁니다."
"외인부대의 다른 사람들은 무사한가?"
"다소 부상을 입기는 했으나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소강두와 다른 헌터들의 상태가 어떠한지는 알고 있나?"
"글쎄요.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서번트가 되었으니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여간에 소강두 그 녀석......."
정대식은 치밀어 오르는 욕설을 삼켰다.
한 번 이성을 잃어 큰일 날 뻔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제정신을 잃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다시 온 사방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펜리르 부대원이 그랬으면 진짜 가만 안 뒀다고 정대식은 이를 갈았다.
"이번 작전은 구조와 사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되겠군."
"그렇습니다."
정대식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작전 계획을 세웠다.
* * *
아스모데우스 사냥에 있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놈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몸을 감추어 버린데다가, 환영과 은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안다니 추적하기가 생각만치 쉽지는 않을 터였다.
그나마 서번트를 여럿 데리고 있으니 그들이 흔적을 남겼으리라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내 펜리르 부대원들은 베이스캠프의 지원 팀이 갖고 있던 드론과 김태희가 가져온 드론을 조립했다.
그 드론들과 함께 엔트로피를 날려 보내 아스모데우스가 있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게 했다.
엔트로피를 뒤따라 이동하면서 정대식은 링크된 시야로 아스모데우스가 있는지를 살폈다.
하지만 몇 시간에 걸친 수색에도 불구하고 천연 자원 보호 구역이 워낙에 방대해 놈이 숨었을 만한 장소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주의 확장을 쓰려고 해도 잡몹이 흩어져 있는데다가 거리상 한계가 있었으므로 큰 도움이 안 됐다.
'이래선 안 되겠어.'
정대식은 궁리 끝에 소환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마력을 다량 끌어모아 소환을 시동했다.
"소환!"
파아아아-.
물결처럼 정대식이 가진 마력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다.
며칠 간의 수련으로 마력 수치는 36에서 무려 40으로 증가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뭐가 소환되어도 상당한 수를 불러낼 수 있을 터였다.
그것을 이용해 광범위한 지역을 낱낱이 수색한다면 아스모데우스를 찾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후우."
정대식은 소환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서 사방에 기묘한 수런거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발밑의 낙엽이 들썩거리고 수풀이 흔들리며 자갈이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대식은 어느샌가 사방에 가득한 존재감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려 했으나,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급 정령이라 보이지 않는 것인가? 어찌 되었건 땅의 하급 정령인 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정대식은 의식을 집중해 명령을 내렸다.
'아스모데우스를 찾아라! 불결하고 큰 힘을 가진 환영의 괴수를 찾아내!'
파사사사삭!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사방팔방으로 맹렬히 달려 나갔다.
곧 산 전체가 세찬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들썩거렸다.
그러자 놀란 새들이 하늘로 후르륵 날아올랐다.
그 새들이 불만스레 우짖는 소리를 들으며 정대식은 링크된 엔트로피에게 말했다.
'엔트로피, 너도 수색을 계속해라.'
<알겠습니다.>
약 한 시간 뒤.
정대식은 놈들이 특정한 장소로 모여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놈들은 정대식의 마력으로 소환되어 있기에, 그들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정대식은 놈들이 모인 장소로 엔트로피를 보냈다.
엔트로피와의 링크가 5km까지 유지가 되기에, 정대식 역시도 링크가 끊어지지 않도록 거리를 둔 채로 그 뒤를 따랐다.
곧 링크된 시야에 깊은 계곡이 보였다.
깎아지른 산비탈 사이로 숨어 있는 계곡은 워낙에 가팔라서 한여름에도 야영객들이 찾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그 계곡의 한 지점에 동굴인 것 같은 좁은 입구가 보였다.
사람이 다닐 만한 장소에 위치해 있지 않았고, 계곡의 큰 바윗돌과 우거진 수풀에 가려 있어 야생 동물이 아니고서는 드나들 일이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한데 입구에 풀이 밟히고 진흙이 묻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발자국이다. 역시, 아스모데우스라면 몰라도 서번트의 흔적까지 지울 순 없었겠지.'
정대식은 위치를 특정하고 엔트로피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엔트로피를 통해 지원 팀에게 동굴의 위치를 보내고 펜리르 부대원을 호출했다.
그런 뒤 주의 깊게 이동해 동굴 가까이로 접근했다.
그는 입구가 보이는 근처 나무 위에 올라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드론이 '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드론은 두 개 조로 나뉘어 하나는 일대의 지형을 맵핑했고, 다른 하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정찰을 했다.
어떤 통신망이든 접속이 가능한 엔트로피가 있기에, 정대식은 그녀를 통해서 동굴 안으로 들어간 드론이 촬영하고 있는 영상을 바로 볼 수가 있었다.
동시에 드론이 측정한 지형 정보가 홀로그램 맵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동굴의 내부가 생각보다 넓어. 어쩌면 지하 깊숙한 곳까지 연결되어 있겠는데...... 앗!'
동굴 안으로 들어간 드론은 애석하게도 멀리 가지 못했다.
화면에 잡히지 않은 무언가가 번개같이 날아와 드론을 후려친 것이다.
드론은 맥없이 망가져 버렸고 화면도 끊어져 버렸다.
홀로그램 맵도 구성되다가 말아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드론을 후려친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인간의 무기였다고 생각하면서 정대식은 서번트가 된 헌터들이 아스모데우스를 호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동굴에 다른 입구가 있어야 하는데. 만약 입구가 하나라면 서번트가 된 헌터들을 상대하며 아스모데우스를 찾는 수밖에는 없다.'
동굴에 다른 입구가 있다면 뒤로 돌아가 아스모데우스를 직접 타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입구가 하나뿐이라면 그곳을 지키고 있는 헌터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들을 몬스터처럼 죽여 없앨 수는 없으니 상황이 난처해지기 쉬웠다.
동굴 안이라 움직임도 제한적이라 더욱 그랬다.
함정을 치거나 유인을 하거나 해서 포박을 하는 게 불가능하니, 힘으로 꺾어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가급적 다치지 않게 생포를 해야 했다.
'차라리 아스모데우스 한 마리면 일이 간단한데. 서번트가 된 자들을 보호해야 하니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려.'
"부대장님."
"왔나."
오래 걸리지 않아서 정대식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 근처로 펜리르 부대원들이 도착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타이탄 공격대 단말기로 그동안 수집한 정보를 보내 주었다.
산 위로 날아간 드론으로 살펴본 바로는, 동굴에 다른 입구는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지형을 볼 때 동굴이 상당히 깊을 수도 있다는 사실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동굴 안이 어떠한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다. 드론을 보내 봤지만 파괴당하고 말았지. 그렇다고 다짜고짜 진입을 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몬스터로 오인해 헌터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정찰을 해야 해."
정대식은 김송근을 불러냈다.
"김송근, 가급적 네 분신들을 작게 만들어 낼 수 있나?"
"음...... 해 보겠습니다."
"대략 열두 명 정도. 그 정도 인원이 필요하다."
김송근은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짜냈다.
"......12분형!"
스르르르륵!
김송근의 몸에서 분열되듯 여러 명의 분신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대략 60cm 정도의 크기로 레벨 5 시절의 엔트로피만 해 보였다.
외양은 왜인지 어린아이들이었는데, 김송근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은 듯 말했다.
"분신을 작게 만들려고 하면 늘 연령대가 내려가서......."
김송근의 분신술에는 다른 분신 술사들과 구별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