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52화 (152/297)

# 152

현질 전사

-7권 3화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본뜬 분신을 만들되, 여러 나이 대의 분신을 만들 수가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연령을 쪼개어 분신을 만드는 식이었다.

그래서 분신을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전투 능력이 감해졌다.

나중엔 어린아이나 노인밖에 못 만드니 그리될 수밖에 없었다.

김송근이 하는 말을 듣고 이재우가 그 새를 못 참고 이죽댔다.

"그럼 대형화시키면 늙은이가 되냐?"

김송근은 이재우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이 단순하니까 네가 만들어 내는 구현체가 그 모양인 거야!"

이재우는 입술을 삐죽거렸으나 정대식의 눈치를 살피느라 항변을 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서 이재우의 말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김송근의 분신은 크게 만들려고 하면 연령대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재우의 서번트처럼 거인 같은 걸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김송근의 분신은 어디까지나 분신이라, 인간 수준의 체급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대식은 일전에 윤현민이 한 말을 떠올리며 그 부분을 어떻게 보강할 방법이 없을까 짧게 고민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이 정도면 됐어. 이쪽으로 불러 모아."

정대식은 김송근의 분신들에게 은신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소환을 써서 놈을 불러내고 김송근의 분신을 도우라고 명령한 뒤, 맵핑 스킬을 획득했다.

<맵핑 스킬을 구입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정대식은 즉시 그 스킬을 엔트로피에게 적용했다.

"맵핑."

정대식은 은신 상태가 된 열두 명의 분신을 놈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여보냈다.

동시에 은신으로 몸을 감추게 한 엔트로피도 뒤를 따르게 했다.

엄밀히 말해 김송근의 분신은 미끼였다.

진짜 정찰은 순전히 엔트로피가 하는 것이었다.

엔트로피를 보내야 그녀가 보는 것을 정대식도 볼 수 있었고, 동굴 안의 지형이 어떠한지도 맵핑 스킬을 통해서 측정이 가능했다.

엔트로피가 맵핑을 발동함에 따라, 만들어지다 만 홀로그램 맵이 다시금 구성되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실시간으로 그 홀로그램 맵 정보를 부대원들에게 보내며 엔트로피의 시야를 통해 동굴 안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동굴 입구 근처는 아까 드론으로 살펴보았기에 낯익었다.

문제는 공간이 별안간 넓어지는 데부터였다.

거기에서 드론이 망가져 버렸으니.......

'있다, 드론의 잔해다.'

정대식은 컴컴한 동굴 바닥을 구르고 있는 드론 잔해를 확인했다.

동굴은 전체적으로 매우 어두워서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의 빛이 미약하게 스며들고는 있었으나 조만간 암흑에 휩싸일 것 같았다.

그럼 엔트로피의 시야로도 관찰할 수 있는 게 없으므로, 새로운 스킬을 구입해야 했다.

'엔트로피, 잭오랜턴 스킬을 획득해.'

<잭오랜턴 스킬을 획득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그때였다.

또 무언가 번개같이 날아와 엔트로피를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그것은 엔트로피를 노린 게 아니었다.

엔트로피를 앞서가던 분신 중 한 명이 그 공격을 맞았다.

파앗!

소리 없는 비명이 터지며 분신 하나가 사그라졌다.

분신이 없어진 자리에 무언가 휙 하고 다시 움직였으나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정대식은 엔트로피가 발각될 것을 각오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엔트로피!"

<잭오랜턴.>

파아앗!

눈부신 불덩어리가 허공에 나타나고 별안간 동굴의 상황이 환히 보였다.

헌터 세 명이 물이 졸졸 흘러가는 바닥을 딛고 서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 틈바구니로 은신을 건 분신들이 지나가는 중이었다.

휘리리릭!

'이런!'

잭오랜턴의 불빛으로 서번트의 위치과 머릿수는 알아냈으나 분신들 또한 발각이 나고 말았다.

은신 스킬이 분신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서번트들의 공격이 곧장 분신들에게 날아갔다.

정대식은 김송근에게 소리쳤다.

"상대하지 말고 달려! 안으로!"

김송근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분신들을 동굴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게 했다.

김송근의 분신들은 엔트로피와는 달라서 거리가 벌어지면 조종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그나마 눈에 보이면 나은데 눈에 안 보이면 그게 매우 어려운 모양이었다.

결국 서번트들의 공격에 분신 셋이 추가로 사라졌다.

놈들이 바닥의 돌덩이를 던지고 발밑을 미끄럽게 하여 서번트들을 방해했으나, 그냥 소환으로 부른 거라 제대로 된 형체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엔트로피, 앞서가라!"

정대식은 잭오랜턴을 앞세우고 그 뒤를 엔트로피가 따르게 했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동굴을 따라 날았고 남은 분신 여덟이 줄줄이 뒤따라 달려왔다.

헌터들은 그 뒤를 쫓아왔으나 길이 좁아서 엔트로피나 분신들만큼 재빠르게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들은 곧 별안간 뻥 뚫린 공간에 다다랐다.

동굴 바닥을 흐르는 지하수가 급격히 불어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소였다.

천장은 낮았고 바닥은 깊어서 실제로는 벼랑 위에 서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서 또 다른 헌터, 아니 서번트 두 명이 습격해 왔다.

'여기까지가 한계군.'

정대식은 분신들에게 서번트 다섯 명을 상대하게 하고 엔트로피를 물이 떨어지는 벼랑 아래로 보냈다.

엔트로피는 물길을 따라 얼마간을 날며 맵핑을 계속했으나 5km 링크의 한계에 걸려 멀리 가지 못했다.

정대식은 8km까지,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 보라고 말했다.

곧 8km에 다다르자 엔트로피의 실체화가 해제되고 말았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홀로그램 맵이 훨씬 더 구체적이 되었다.

정대식은 대원들은 바라보며 말했다.

"정찰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가 한계다. 좁은 입구가 이어지다가 통로가 넓어지는 곳에 세 명, 물길을 따라 더 들어간 곳에 두 명, 그리고 벼랑이 있고 아래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

정대식의 설명에 마찬가지로 홀로그램 맵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재우가 물었다.

"아스모데우스는 어디 있는 걸까요?"

"더 깊은 곳에 있겠지. 놈을 찾으려면 아무래도 지하수를 따라 이동하는 수밖에 없겠다."

정대식은 숨어 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지시했다.

"입구는 좁아서 일렬로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통로가 넓어지는 곳에서 서번트를 맞닥뜨릴 때가 중요해. 일단은 나, 고덕화, 기철민, 김송근, 이재우, 허미래, 서지원, 김태희 순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서번트가 나타나면 일단은 내가 상대하게 될 테지만, 각자 상황에 맞게 움직여라."

서지원은 김태희와 또 나란히 서게 되자 울상이었다.

정대식은 그것을 무시하고 말했다.

"명심할 것은 서번트들은 우리와 같은 헌터라는 것이다. 듣자 하니 7, 8등급의 헌터들로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스모데우스에게 조종당해 이성이 없는 상태니, 각성 스크롤로 그들을 서번트에서 해방시키는 데 집중한다. 그러고 나면 서지원이 헌터들을 밖으로 이동시켜. 할 수 있겠지?"

"예!"

"그럼, 진입하자."

* * *

펜리르 부대원들은 기척을 죽인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입구는 상당히 좁아서, 입구를 가리고 있는 넝쿨을 걷어 올리고 허리를 잔뜩 구부린 후에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일단 입구를 통과하고 나니 내부는 상당히 넓었다.

몇 발짝을 더 걸어가자 허리를 펴고 걸을 만한 수준이 됐다.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통로를 따라서 잡석들을 밟으며 걷기를 얼마간, 공기가 습해지며 사방이 어두워졌다.

바닥에 지하수 밟히는 소리만 차박차박 울리는 가운데, 정대식은 서번트가 선 곳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지 신호를 보냈다.

그는 손짓으로 서번트 세 명이 있다는 사실을 표시하고 대기하라 명령했다.

그리고 엔트로피를 불러내 앞세우고 링크된 의식으로 상세히 지시를 내렸다.

그런 뒤, 펜리르 부대원들을 뒤에 남겨 놓고 엔트로피를 먼저 날려 보냈다.

<교란.>

"잭오랜턴!"

엔트로피의 등장과 느닷없는 불빛에 놀란 서번트들이 일제히 엔트로피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교란으로 인해 그 공격은 모조리 빗나갔다.

엔트로피를 따라 안으로 뛰어든 정대식은 서번트들이 엉뚱한 곳을 공격하는 틈을 타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엔트로피가 때맞춰 보조 스킬을 시동해 주었다.

<다중 조준.>

"마기장!"

슈슈슉!

마기전에서 쏘아져 나간 둥근 구체 형태의 마력이 정확히 세 명의 서번트에게 직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용이 아닌 포획용으로 에키드나 부대장 정승채와 싸울 때도 써먹었던 수법이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마기장은 서번트들의 몸에 가 닿자 안으로 흡수되듯이 쑥 사라졌다.

곧 도넛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며 서번트들의 양팔을 꽁꽁 묶어 버렸다.

마치 꽉 맞는 튜브에 끼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으어억."

"우와아."

세 명의 서번트들은 무미건조한 소리를 내뱉었다.

서번트가 된 헌터들은 얼굴에 표정도 없었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도 의미 불명이었다.

정대식은 펜리르 부대원들에게 들어오라 명령하고 스킬을 사용했다.

"각성."

정대식은 이미 각성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라 스크롤이 따로 필요 없었다.

세 명의 서번트에게 각성 스킬을 사용하자 그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앞으로 푹 쓰러졌다.

정대식은 치료 스킬을 한 번씩 사용한 뒤 서지원을 손짓했다.

"서지원, 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내보내."

서지원은 즉시 공간 이동으로 세 사람을 동굴 바깥으로 내보내 놓았다.

행여 같은 헌터들과 싸우는 꼴이 되지나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던 펜리르 부대원들은 간단히 일을 처리하는 정대식을 보고 감탄하는 동시에 허탈해했다.

"인질이 열 명 넘게 있다는 소리를 듣고 어떡하나 고민했는데, 부대장님만 있으면 문제없겠어요."

"그러게요. 훈련의 성과를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기철민과 김송근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정대식이 말했다.

"훈련의 성과라면 같은 헌터가 아닌 몬스터를 상대로도 시험해 볼 수 있을 거다. 그럼 계속 간다."

통로 끄트머리에 이르러 정대식은 앞서와 비슷한 방법으로 손쉽게 서번트를 제압해 헌터로 되돌려 놓았다.

서지원이 그 사람까지 밖으로 내보내고 나자, 정대식은 잭오랜턴을 깜깜한 벼랑 밑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지하수가 콸콸 흐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제법 굵직한 물줄기가 세차게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시커먼 어둠 속에서 시퍼렇게 흐르는 그 물을 보고 허미래가 겁에 질려 물었다.

"어떻게 이 물길을 따라가서 아스모데우스를 찾는 거죠?"

정대식은 간단히 말했다.

"헤엄쳐 간다."

"헉."

"정말요?"

"진심이십니까?"

"전 헤엄칠 줄 모르는데요."

놀란 대원들이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정대식은 그 말을 무시하고 엔트로피를 날려 보냈다.

지하수가 흐르는 통로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맵핑해서 정보 전송해."

<알겠습니다. 맵핑.>

엔트로피가 곧 어둠 속으로 날아가고 홀로그램 맵이 갱신되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점차 커져 가는 홀로그램 맵을 보며 지형을 살폈다.

링크된 시야로도 살펴보니까 엔트로피가 어느새 물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마 숨 쉴 만한 공간이 없는, 완전히 물에 잠긴 터널인 모양이었다.

그곳을 한참을 휩쓸리다시피 헤엄쳐 간 엔트로피가 다시 물 밖으로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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