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현질 전사
-7권 4화
순식간에 3km 가까이를 흘러간 뒤였다.
엔트로피가 잭오랜턴으로 시야를 밝히자, 상당히 너른 공간이 보였다.
뻥 뚫린 광장 같은 곳이었는데 거기서 별안간 링크가 끊어졌다.
"엔트로피?"
정확히는 엔트로피의 실체화가 해제되어 버렸다.
정대식은 엔트로피가 모종의 공격을 받았다고 추측했다.
엔트로피를 구성하고 있던 마력이 일시에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다.
정대식은 약간의 시간 텀을 두고 다시 엔트로피를 불렀다.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다시금 실체화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엔트로피는 순전히 정대식의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그의 마력이 동나지 않는 이상은 공격을 받아도 그에게서 재구성될 수 있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하수가 흐르는 터널 끝에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에.......>
"아스모데우스가 있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석션을 당했나?"
<그런지도 모릅니다.>
"좋아, 알겠어. 일단은 놈이 도사린 곳까지 가 봐야겠군."
정대식은 펜리르 부대원들에게 물길을 따라서 지하 깊숙한 곳의 동공까지 가게 될 거라는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는 차가운 지하수에 빠져야 한다는 생각에 울상을 한 부대원들을 향해서 왼손을 가볍게 튕겼다.
"마기장."
부웅!
정대식은 비누 거품처럼 피어오른 마력 구체를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큼 적절히 키웠다.
그리고 그걸 대원들의 머리에 하나씩 씌웠다.
그렇게 간단히 산소마스크를 만들어 씌우고 앞장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첨벙!
얼음장 같은 지하수가 전신을 덮쳐 왔다.
배틀 슈트에 체온 보호 기능이 있기는 해도 그 차가움을 채 다 막아 주지는 못했다.
물살이 상당히 거세어, 정대식은 순식간에 휩쓸려 갔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통해 운디네를 소환하여 부대원들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거나 빠른 유속에 겁먹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으햐! 이거 꽤 재밌는데?"
"후룸라이드라도 탄 것 같잖아?"
머리에 산소마스크도 쓰고 있겠다, 속도도 적당하겠다, 부대원들은 어느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순식간에 물살을 따라 떠밀려, 그들은 엔트로피가 물 밖으로 나간 곳까지 다다랐다.
그곳에서 정대식은 운디네를 써서 자신과 부대원들을 물 바깥으로 밀어냈다.
푸확!
물 밖으로 나간 정대식은 전신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산소마스크를 해제하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어느새 희미해진 잭오랜턴의 빛을 보고 다시 불빛을 불러내었다.
"잭오랜......."
그때였다.
"그우우우우우우웅!"
낯익으면서도 낯선 울음소리가 들리며 무언가가 그에게로 치달아 왔다.
어슴푸레하게 밝혀진 잭오랜턴의 불빛 아래 달려오는 것은 다름 아닌.......
"소강두!"
* * *
"우워어어어어엉!"
완전히 미노타우르스화 된 소강두가 입에 거품을 문 채로 쿵쾅거리며 정대식에게로 달려들었다.
말이 달려든 것이지 그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정대식은 황급히 몸을 굴려 그의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나 다시금 몸을 일으켰을 땐 미친 소처럼 덤벼드는 소강두에게 가슴을 들이받히고 말았다.
쿠웅!
"헉."
강철 신체와 배틀 슈트의 보호대 덕분에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명치에 둔중한 충격이 찾아들며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혔다.
소강두의 박치기에 두 발이 번쩍 들리며 몸이 뒤쪽으로 휙 날아갔던 것이다.
쾅!
정대식은 동굴 한쪽 벽에 보기 좋게 가 처박혔다.
후두둑, 돌가루가 떨어져 내리고 정대식은 먼지를 일으키며 곧장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러자 그가 앉았던 자리에 소강두가 다시금 와서 머리를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굉음이 울리며 동굴 벽 한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정대식은 아연실색해 소강두를 바라보았다.
'이성을 잃은 수준이 아니라 이건 완전히 몬스터가 되었잖아?'
2m가 넘는 체격으로 몸이 커진 소강두는 소의 머리에 인간의 팔, 그리고 소의 뒷다리를 하고 있었다.
전신엔 굵고 억센 털이 빡빡하게 나 있었고, 이마에는 수소의 휘우듬한 뿔이 앞으로 솟구쳐 있었다.
거기에 잘못 받치면 숨이 막히는 걸로 끝나지 않을 테다.
옆구리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는 것이다.
정대식은 소강두의 뿔에 꼬치처럼 꿰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말았다.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제기랄.'
소강두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서 입에는 거품을 씩씩 흘리고 있었다.
완전히 짐승과 다름없는 모습이라 이마에 있는 특이한 표식이 아니었다면 못 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소강두는 평소에도 이마에 문신 비슷한 삼각형 무늬가 있었는데, 눈앞의 미노타우르스에게도 그게 있었다.
그것만이 이 미노타우르스가 소강두라는 사실을 알아볼 만한 근거였으므로, 과연 레벨 1짜리 각성으로 그를 제정신으로 돌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난처한 상황에 빠진 것은 정대식뿐만이 아니었다.
소강두와 함께 나머지 서번트들이 펜리르 부대원들을 습격한 것이다.
그 수는 총 여덟!
통로 쪽에서 넷을 처치한 것을 생각해 보면 김태희의 짐작대로 도망치며 수가 둘이나 더 늘었다.
각자 알아서 서번트를 상대해야 할 판국이라, 과연 그들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도, 그간의 훈련이 성과가 있었나 보았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우왕좌왕하던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침착하게 대처를 하고 있었다.
당장에 서번트들을 공격하기보다는, 요령 있게 공격을 피하며 어떻게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씩 하니 웃었다.
'이제야 제법 내 부대원들다워 보이는데?'
그러나 그 기쁨을 오래 만끽할 수는 없었다.
소강두가 양손에 들고 있던 유성추를 날려 온 것이다.
카르르르르- 콰광!
정대식은 유성추가 날아가 명중한 자리가 폭발하듯 깨부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속으로 재빨리 그 공격을 피했으나 유성추는 집요하게 그를 노리고 날아들며 사방의 벽을 난자해 놓았다.
그때마다 벽이 우르르 떨리며 돌가루와 바위가 떨어지니 이러다 동굴이 무너지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정대식은 며칠 동안 베이스캠프에 머물면서 연습해 보았던 것을 시도해 보았다.
"엔트로피!"
의식이 링크되어 있기에 엔트로피는 즉시 정대식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구현.>
정대식의 뜻에 따라 엔트로피는 구현 스킬을 시동했다.
그러자 엔트로피의 주변으로 마력의 빛이 모여들며 그것이 철갑으로 구현화되었다.
파아아아앗!
마력이 실체의 형태를 띠고 엔트로피를 감싸고 났을 때, 엔트로피의 모습은 전신에 철갑을 걸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비록 엔트로피가 어린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어 용맹해 보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중요한 건 외관이 아니었다.
성능이다.
정대식은 즉시 다음 스킬을 시전했다.
"변화!"
파아아앗!
정대식이 두 번째 스킬을 가하자 엔트로피의 왼손이 변화했다.
왼손이 마치 총부리처럼 길게 자라났다.
마력의 푸른빛이 가시자 그것은 명백히 기관 단총으로 보였다.
정대식은 쉬지 않고 곧장 다음 스킬의 시동어를 말했다.
"강화!"
파아아아앗!
마지막으로 엔트로피의 전신에 강화가 더해지고 나자 그녀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전투에 적합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무언가 불길한 기분을 느낀 듯, 소강두가 괴성을 지르며 유성추를 날렸다.
"우워어어어어어!"
부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날아온 쇳덩어리가 정대식의 앞을 가로막은 엔트로피에게 직격했다.
콰앙!
아니, 정확히는 엔트로피가 그 유성추를 팔을 휘둘러 도로 튕겨 냈다.
그리고 왼팔의 기관총을 쏘아 내며 곧장 소강두에게로 날아갔다.
투다다다다다다!
소강두에게 마력탄을 날리며 가까이 접근한 엔트로피는 곧장 스킬을 사용했다.
<강력권.>
콰과광!
비 오듯 쏟아지는 마력탄을 막느라고 팔을 교차한 채 서 있던 소강두의 미간에 강력권이 직격했다.
그러나 엔트로피의 무게가 가벼워서 그런 것인지, 강화가 더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소강두는 잠시 비틀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금세 기력을 회복하고 엔트로피에게 뿔을 갖다 박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대식에게는 그 잠시로도 충분했다.
"다중 조준, 그리고 마기장!"
소강두가 엔트로피를 상대하는 사이, 그의 목과 양손, 양발에 다중 조준 스킬을 적용한 정대식은 작은 구슬 형태의 마기장을 날렸다.
그것이 즉각 작은 도넛 형태가 되어 소강두의 사지에 휘감겼고, 정대식은 그 즉시 다음 수를 사용했다.
"마기력!"
파츠츠츠츠츠!
소강두의 목과 양 손목, 발목에 끼워진 마기장이 마기력으로 인해 서로 이어졌다.
족쇄에 사슬이 연결된 셈이다.
마기력은 대략 한 뼘 정도의 길이밖에는 되지 않았으므로, 소강두는 구속구에 매인 꼴이 되어 앞으로 자빠지고 말았다.
콰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구른 소강두는 구속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어찌나 힘이 센지 마기력이 끊어질 듯 말 듯했다.
그 전에 소강두의 정신을 되돌려야 했으므로, 정대식은 서둘러 스킬을 썼다.
"각성!"
파아아아아-.
은은한 빛이 번져 소강두를 뒤덮었으나 소강두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각성!"
다시 한 번 더 스킬을 써 봐도 마찬가지였다.
소강두의 변신은 풀리지 않았고, 다급해진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말했다.
"엔트로피, 각성을 업그레이드해!"
그러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날아왔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정대식은 얼빠진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뭐?"
<잔액이 부족합니다.>
그때 마기장과 마기력에 붙들린 채로 소강두가 몸을 날려 왔다.
그의 어깨에 부딪친 정대식은 뒤로 나동그라졌고, 순식간에 자신이 만들어 낸 마기력의 사슬에 목이 짓눌리는 꼴이 되었다.
"큭!"
정대식은 다리를 힘껏 걷어 올리며 소강두를 머리 위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몸을 굴려 자리에서 일어나 콜록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데 왜인지 아까보다 훨씬 더 힘이 달리는 게 느껴졌다.
'왜 이러지?'
가급적 마력을 아끼며 마기전을 써 왔는데, 마력을 펑펑 낭비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마력이 달리며 덩달아 모든 신체 상태가 저하되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석션이구나!'
아스모데우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이 공간 자체에 석션이 적용되어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마력을 뺏기게 될 테니 어물쩍거릴 수가 없었다.
'각성은 돈이 없어서 업그레이드가 안 되고...... 내 각성이 통하지 않는다면 각성 스크롤도 소용이 없을 거야.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각성이 먹혔는데 소강두에게는 각성이 먹히질 않는 거지? 이만하면 충분히 정신을 차릴 텐데?'
의문하던 그제야 정대식은 소강두의 의식이 없는 것이 단순히 아스모데우스의 술법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번트가 된 상태에서 거의 최종 단계로 변신을 했군. 그 바람에 서번트가 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이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거야. 이건 대체...... 어떡해야 하지?'
그때였다.
마기장과 마기력으로 만든 족쇄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치던 소강두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처구니없게도 다음 단계의 변신을 꾀했다.
"9단계...... 변신."
'뭐?'
정대식은 깜짝 놀랐다.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도 변신이 가능한 것인가?
그럼 이성을 잃은 게 아니라는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