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현질 전사
-7권 6화
"분신술?"
아스모데우스가 나뉘는 모습은 정대식에게만 보이는 게 아닌 듯했다.
허미래가 당혹해 뇌까리자 김태희가 앞으로 치고 나가며 말했다.
"아뇨, 하나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환영입니다! 지금부터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도 믿지 말아요!"
김태희는 그렇게 경고하며 다섯 명의 최희 중 하나의 머리통에 절구를 꽂아 넣었다.
그것은 힘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스러졌고 김태희는 곧장 다음 최희에게로 덤벼들었다.
그건 실로 최희와 최희가 싸우는 꼴이었으나 그걸 쳐다만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대식은 육박해 들어오는 아스모데우스를 맞이해 엔트로피를 무장시켰다.
"구현!"
<변화.>
"강화!"
파아아아앗!
철갑으로 몸을 둘러싼 엔트로피의 오른손은 장검으로, 왼손은 방패로 바뀌었다.
엔트로피는 방패가 된 왼손으로 최희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곧장 오른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내찔렀다.
그다음 순간 벌어진 일에 정대식은 놀라서 제자리에 굳어 버리고 말았다.
<커억.>
"엔트로피!"
어느새 최희가 손에 든 단창, 즉 호라갈레스로 엔트로피의 목을 뚫어 놓고 있었다.
엔트로피는 단말마를 내뱉으며 입에서 피를 한 바가지는 토해 놓았다.
그 피의 양이 어마어마해 정대식은 혼란을 느꼈다.
엔트로피가 피를 흘리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퍼엉!
엔트로피의 실체화가 해제되어 버리고 정대식은 직접 아스모데우스를 맞닥뜨렸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강력권으로 최희의 턱을 치려 했으나 최희는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공격을 피해 버렸다.
그리고 정대식의 가슴팍으로 깊숙이 들어와 호라갈레스로 옆구리를 찔렀다.
"헉!"
정대식은 숨을 삼키며 몸을 회전시켜 팔꿈치를 최희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곧장 무적권을 썼으나 최희는 마치 형체가 없는 것처럼 훌쩍 날아 그 공격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피해 버렸다.
정대식도 옆구리에 치명상은 피했으나 배틀 슈트가 찢어진 상태였다.
'모습이야 최희를 흉내 낸 것이라고 해도...... 저 몸놀림은 어떻게 된 거지? 영락없는 최희잖아?'
정대식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스모데우스를 노려보고 서 있자 환영을 두 채나 없애 버린 김태희가 소리쳤다.
"부대장님! 뭘 보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아스모데우스는 정확히 부대장님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일 겁니다! 저놈은 부대장님의 의식을 이용해 환영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부대장님이 걱정하는 상황이 그대로 현실이 된다는 말입니다!"
정대식은 반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내 생각과 싸워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본인의 부정적인 생각과 싸워야 해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기철민이 잇새로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데 어떻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곤란을 겪고 있기는 허미래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허미래는 그야말로 새파랗게 질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김태희가 재빨리 달려가서 그녀를 도왔으나 정대식이 보기에는 최희가 허미래를 공격하고 있는 꼴이라 아무리 해도 허미래로서는 그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차! 이런 생각 자체를 하면 안 되지! 내 눈에 보이는 이 모든 건 환영이다...... 다 거짓이라고!'
그러자 엔트로피가 피를 토한 것도 이해가 갔다.
아스모데우스는 정대식의 잠재의식 밑바닥에 있는 상황, 즉 동료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상황을 가져와서 환영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실제로 엔트로피는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설사 입었다 하더라도 실체화가 사라질 뿐, 피를 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대식은 다시금 달려 들어오는 최희와 싸우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전환하려고 애를 써 보았다.
하지만 최희는 정대식이 알고 있는 헌터 중에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천둥과 벼락을 끌어내렸으며 유일무이한 SS급 헌터로 슈퍼스타라 불리는 절대자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보다 더 강해지려고 애쓰고 있었다.
조만간 최희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것이다.
누구도 도달한 적 없다는 SSS급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런 사실만이 대두되어, 도무지 자신의 공격에 쓰러지는 최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정대식이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려 봐도 그의 의식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어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마력은 무서운 속도로 닳아 가고 있었다.
마력석으로 한 번 마력을 보충했는데도 소용이 없어, 정대식은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맘먹었다.
"마력 강탈!"
슈우우우웃!
아스모데우스가 끌어모으고 있는 마력 중 일부가 정대식에게로 되돌아왔다.
정대식은 다시 한 번 마력 강탈을 썼으나 레벨 1이라 그 양은 미미했다.
'이걸론 안 돼! 어떻게든 최희의 환영을 물리쳐야 한다! 어떡하면 되지? 어떡해야 생각을 전환할 수 있지? 실제로도 이거라면 최희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만이 아스모데우스를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그게 뭐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정대식의 뇌리에 별안간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돈! 돈이 있으면...... 만약 내게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 있다면, 그래서 현질을 엄청나게 할 수 있다면 제아무리 최희라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정대식은 즉시 외쳤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부우웅.
다시 실체화가 되어 나타난 엔트로피를 보고 정대식은 의식을 보냈다.
'지금 당장 마력 강탈 스킬을 100으로 만들어!'
<마력 강탈 스킬을 Lv10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990억을 차감합니다.>
'구현, 변화 스킬도 마찬가지다!'
<구현, 변화 스킬을 Lv10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1,960억을 차감합니다.>
'강화, 강화도 업그레이드해!'
<강화 스킬을 Lv10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970억을 차감합니다.>
정대식은 외쳤다.
"마력 강탈!"
콰아아아아아앗!
아스모데우스가 갈취해 간 마력이 몽땅 정대식에게로 되돌아왔다.
레벨 100짜리 마력 강탈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지, 순식간에 정대식의 마력량이 한계까지 차올랐다.
정대식은 그 마력량을 다시 몽땅 쏟아부으며 시동어를 외쳤다.
"구현!"
<변화.>
"강화!"
파아아아아아앗!
마치 폭풍처럼 마력이 휘몰아치며 엔트로피를 감싸고돌았다.
눈부신 마력의 빛이 엔트로피를 몇 겹으로 휘감았고, 그 기세에 최희의 모습을 한 아스모데우스가 주춤해 뒷걸음질을 쳤다.
이윽고 빛이 가라앉았을 때 엔트로피의 모습은...... 거대한 병기와도 같았다.
레벨 100짜리의 방대한 구현과 엄청난 변화, 그리고 강화가 더해진 엔트로피는 원래의 형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철갑이 겹겹이 덧씌워진 모습이 항공모함 같은 게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서 뻗어 나온 포신은 플라즈마 포처럼 양쪽이 갈라져 있었다.
레일과 같은 형태를 띤 거기에서, 공격이 쏟아져 나왔다.
----------------------------!
소리는 없었다.
시야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는 섬광만이 일순 번뜩였을 뿐이다.
단말마 같은 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대식은 눈부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
다음 순간,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엔트로피는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정대식은 경악해 있는 최희를 마주하고 있었다.
곧 그 모습이 흔들리며 마치 물감처럼 스르륵 녹아내렸다.
그것은 다른 부대원들이 상대하고 있던 환영도 마찬가지였다.
별안간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던 적이 사라져 버리자 부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어중간한 자세를 한 채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사라졌어."
기철민이 묻는 말에 허미래가 반쯤 넋이 나간 투로 뇌까렸다.
아무래도 그들이 싸우고 있던 것은 아스모데우스의 환영인가 보았다.
본체는 정대식을 마주하고 있었다.
최희의 모습이 무너져 내리고 아스모데우스는 환영의 힘을 잃어버렸다.
그 바람에 아스모데우스의 흉측한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 보여,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욱......."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아스모데우스의 진짜 모습은 거대한 애벌레 같아 보였다.
검은 털이 전신에 돋아나 있는 집채만 한 애벌레의 몸뚱이에 수십 개의 얼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제각기 기괴한 표정을 한 그 얼굴들이 한꺼번에 울부짖었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으나 김태희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아스모데우스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무섭게 절구를 휘두르며 돌진해 들어갔다.
"초신성 폭발!"
파바바바바밧!
공이의 가시들이 아스모데우스의 전신으로 날아가 꽂혔다.
아스모데우스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며 그 얼굴들에 붙어 있는 수십 개의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마력이 쑥 딸려 가는 게 느껴졌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정대식은 즉시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린 기철민과 허미래도 돌진해 들어갔다.
"위켄 디펜스!"
"천광 쇄도!"
"크워어어어어어어어!"
아스모데우스의 울부짖음이 한층 더 격해지는 가운데,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앞세워 돌진했다.
"구현!"
<변화.>
"강화!"
파아아아앗!
엔트로피의 모습이 다시금 변화했다.
비록 아스모데우스의 환영 속에서 만들어 냈던 그 모습은 아니었으나, 환영의 힘을 잃어버리고 맨몸을 드러낸 놈을 상대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았다.
<강화 강력권.>
엔트로피는 거대한 망치같이 둔중한 형태가 된 오른손으로 강화 강력권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그것이 엄청난 충격을 일으키며 아스모데우스의 얼굴 수십 개를 단번에 박살 내놓았다.
그리고 그 공격에 연이어 정대식의 너클 글러브가 불을 뿜었다.
"강화 강력권!"
쿠과과과광!
화르르르르륵!
깨져 나간 아스모데우스의 얼굴들 위로 폭발이 일어나며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털과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피어오르며 아스모데우스가 몸부림을 쳤다.
"끄어어어어어어......!"
놈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불속에서 뒹굴었다.
환영이 사라지며 좁아진 굴 안이 쾅쾅 울리면서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가만있다간 부대원들이 타 죽을 판국이라, 김태희가 절구를 겨냥해 들었다.
"고통을 끝내 주지."
그녀는 불나방처럼 춤을 추듯 허공을 날아 절구를 휘둘렀다.
* * *
아스모데우스를 끝장내고 남은 것은 검게 그을린 거대한 시체와 놈이 갖고 있던 아이템, 환영의 서클이었다.
정대식은 그을음이 묻은 그것을 들어 아공간 안에 털어 넣고 서둘러 운디네를 불렀다.
"운디네, 소환."
부그르르르!
허공에 물거품 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대식은 운디네를 써서 주변의 불씨를 꺼트렸다.
그런 뒤 소환을 해제하고 부대원들을 돌아보자 김태희가 묘한 얼굴로 선 것이 보였다.
정대식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미미하게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올인원이 됐다."
그 말을 듣고 기철민과 허미래도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올인원이 됐다는 말입니까?"
"어, 언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