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현질 전사
-7권 8화
문제는 정대식의 욕심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는 엔트로피처럼 자신의 마력으로 그들을 온전히 무장시킬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아이템을 구입해 인챈트를 하고, 새로운 무구나 장비를 끊임없이 마련하는 것으로 부대원들을 더 강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 그러나 거기엔 막대한 돈이 든다. 신비 금속으로 제작한 무구의 가격은 실로 천문학적이지. 사실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어. 아다만티움이나 미스릴로 만들어진 전신 방어구는 그 소재의 값어치만으로도 SS급에 준하니까.
여유가 된다면 그런 아이템으로 무장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내 마력을 덧씌워야 한다. 그럼 당연히 무구의 성능도 더 올라갈 테고, 내가 뜻하는 바대로 다변적인 공격을 할 수 있어.'
공격대를 비롯하여 몬스터를 상대하는 헌터의 무리는 각자의 포지션을 갖는다.
능력의 특성이나 방향에 따라서 탱커, 딜러, 버퍼, 힐러 등등으로 나뉘는 것이다.
그러나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경험이 풍부하면 할수록 여러 포지션을 아우르게 되어 있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탱커라도 방어만이 가능하고 공격을 할 수 없다면 반쪽짜리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어설픈 방어와 어설픈 공격을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잘하는 게 낫다.
그런데 둘 다 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애초에 정대식이 듀얼리스트, 트리플리스트로 각광받았던 것도 여러 포지션을 한꺼번에 소화 가능하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강영후가 다중 포지션이 가능한 대원들만을 선발하여 외인부대를 꾸린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정대식이 노리는 것도 그런 부분이었다.
만약 펜리르 부대원 한 명 한 명이, 올인원과 흡사한 능력을 갖게 된다면 앞으로 정대식이 만들어 갈 부대, 혹은 공격대는 세계 최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능력의 형태가 하나로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질로 불가능한 게 없다 하더라도 부대원 각자가 타고난 개성을 뭉개 가면서까지 다중 능력자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각자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여러 포지션이 소화가 가능한 만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형태의 유동성이 필요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에고 웨펀으로 키우려 했던 경우가 그 해답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대원들이 어떤 무구를 갖추고 있든지 간에 거기에 내 마력을 덧씌워 구현, 변화하거나 방출, 혹은 조작한다면 다양한 형태의 공격과 방어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마력을 부여하는 방향에 따라 부대원들이 전원 탱커가 될 수도, 전원 딜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 또 다르게는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며 싸울 수도 있는 거고.'
그렇게 하려면 부대원 전원을 무장시킬 수 있을 만큼 광대한 마력과 높은 수준의 스킬이 필요했다.
그만한 능력을 갖추려면 당연히 엄청난 돈이 있어야 했다.
더불어 정대식은 만약의 사태를 위한 비상금을 남겨 두길 원했다.
급박한 상황에 돈이 없어서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지 못한다거나, 스킬을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거나 하는 상황이 또 생겨서는 안 됐다.
'내 문제는 과거에도 돈이었고 현재도 돈이고 미래도 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정대식은 치밀어 오르는 한숨을 내리눌렀다.
그런데 그때, 공대장으로부터 호출이 날아왔다.
잠시 자기 사무실로 올라오라는 메시지를 받고 정대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정대식은 발길을 옮겨 강영후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곳에선 강영후가 미리 차를 준비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음, 왔나? 이리 앉지."
강영후의 맞은편에 앉게 된 정대식은 곧장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보아하니 펜리르 부대원들의 실력이 크게 상승했더군. 정말이지 놀랄 만한 일이었어. 한 달 만에 전원의 등급이 올라가다니...... 봤는지 모르겠지만 타이탄 공격대 게시판이 그 이야기로 시끄러워."
"그렇습니까?"
정대식은 짐짓 점잔을 뺐다.
게시판에 일어난 난리는 이미 엔트로피를 통해 들은 바였다.
익명 게시판은 완전히 벌통이 따로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의리고 뭐고 펜리르 부대에 자원할 걸 그랬다고 통탄하는 글에서부터, 정대식이 불법 포션을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 어린 글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이야기가 다 있었다.
펜리르 부대원을 선발할 때 박솔지로부터 한 번 퇴짜를 맞았던데다가, 부대원 선발전에도 그리 많은 지원자들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에 정대식은 은근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건 펜리르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특히 죽을 고생을 하며 펜리르 부대에 들어온 기철민의 경우에는 본사 건물에 들어올 땐 시선 처리부터가 달랐다.
기철민이 갖은 애를 써 가며 펜리르 부대에 들어오려 한 것을 비꼬는 대원들이 몇몇 있었던 것이다.
김태희가 항복을 선언해 준 덕분에 펜리르 부대에 들어온 것을 두고 자존심도 없냐는 둥, 대놓고 빈정거리는 치들까지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렇게까지 한 기철민의 선택이 옳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기던 말들은 쏙 사라진 상태였다.
다들 기철민이 지나가면 부러움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부끄러움이 어린 시선을 피하거나 했기에, 기철민은 거만하게 턱을 들고 한껏 빈정거리며 돌아다녔다.
아무튼 간에 이 모든 성과는 펜리르 부대원 전원이 돈과 시간을 희생해 가며 뼈 빠지게 노력한 결과다.
한 치의 부정함도 없이 떳떳하게 이룬 성과였으므로 정대식은 당당하게 말했다.
"공대장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다들 열심히 한 덕분입니다."
"그래......."
정대식은 강영후가 펜리르 부대원들을 강하게 만든 방법을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저 자신이 획득한 또 다른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고 대답할 작정이었다.
만약 다른 부대원들에게도 같은 일을 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받는다면, 딱 잘라 거절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대식이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끝까지 이끌어 가겠다고 마음먹은 펜리르 부대원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정대식이 타이탄 공격대의 공대장도 아니고, 타이탄 공격대 전원을 끌고 가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이, 강영후는 그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다른 말을 꺼냈다.
"자네, 올인원이 된 것인가?"
생각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 말도 조만간 나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정대식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습니다."
"역시 그렇군. 그러니까 펜리르 부대원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겠지."
"맞습니다."
강영후는 입꼬리를 약간 들어 올렸다.
"이거, 난감하게 됐군. 계약서를 새로 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쓸 생각인가?"
저번에 부대장으로 승진을 하면서 정대식은 타이탄 공격대와의 계약서를 재작성했다.
다른 부대장들이 받는 대우와 같은 조건에다 정대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세금 면제 혜택과 올인원의 가능성에 따른 추가적인 조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항을 재조정해서 재계약에 협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되지도 않아 정대식이 올인원이 되어 버렸으니 강영후로서는 예의상으로라도 재계약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대식은 그 걱정을 일축해 놓았다.
"아닙니다. 계약 조건은 그대로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래?"
"다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게 무언가?"
"차후에 제가 공격대를 창설하게 된다면, 펜리르 부대원들을 데리고 나갈 수 있게끔 해 주십시오. 즉, 장차 펜리르 부대의 독립을 보장해 달라는 말입니다."
강영후는 어떤 저항도 없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정대식이 그러한 말을 꺼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 같았다.
"자네 능력으로 키워 낸 인재이니 자네가 데려가는 게 마땅하겠지. 그 점에 있어서는 이의가 없네. 타이탄 공격대의 후원을 받겠다는 전제 조건이 유효하다면 말이야."
"그 부분은 문제없을 겁니다."
"좋아. 그렇다면 나로서도 거리낄 게 없지."
이로써 이야기가 다 끝난 것 같은데 강영후는 깍지 낀 손을 주무르며 답지 않게 시간을 끌었다.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도 하려나 싶어서 정대식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기다리다 못해 차를 한 모금 홀짝일 때쯤, 강영후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최희, 아니지. 김태희는 어떤가?"
"예?"
강영후는 짐짓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김태희가 펜리르 부대에 들어가고자 한 목적이 무언지는 잘 알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만."
"그 목적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것 같나?"
"그게 올인원이 되는 것이라면......."
정대식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다가 최근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떠올렸다.
자신이 마력을 덧입혀, 전천후가 되게끔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올인원에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희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 수도 있는지라, 정대식은 잠시 멈칫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엇비슷하게는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러자 강영후가 매우 묘한 표정을 했다.
최희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애석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중적인 감정이 엇갈리는 그 표정을 강영후는 서둘러 감추었다.
금방 평소같이 무표정한 기색으로 되돌아간 그는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던 손깍지를 풀고 말했다.
"그녀에겐 잘된 일이군, 알겠네. 이만 가 봐."
"그럼......."
정대식은 고개를 꾸벅해 보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곰곰이 반추해 보니, 강영후와 최희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희 쪽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강영후 쪽은.......
정대식은 무심코 생각했다.
'라이벌인가?'
그 단어를 떠올리고 만 정대식은 흠칫 놀라서 아무도 없는데 고개를 붕붕 저었다.
'무슨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야. 공대장님이 라이벌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애초에 난 최희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감정이 있는 쪽이라면 오히려.......'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최선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를 떠올리자면 최희를 별개로 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자매였고 보통의 자매보다 더 끈끈한 사이인 것 같았다.
최선은 최희에게 복잡한 감정이 있어 보였지만 그게 오히려 두 여자의 긴밀함을 보여 주는 듯했다.
정대식은 억지로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누가 상대이든지 간에 괜한 마음을 가질 때가 아니야. 최선은 그저 알고 지내는 동료,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어야 해. 최희 역시 지금의 내겐 그저 펜리르 부대원인 김태희일 뿐이다. 그녀가 내게 바라는 것도 오로지 강해지는 방법이겠지.'
정대식은 적당한 때를 봐서 자신의 구상을 김태희에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기대가 되었다.
적어도 싫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우 기뻐할 거라는 생각에 정대식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 *
링링링~.
퇴근길에 오른 정대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다가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