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61화 (161/297)

# 161

현질 전사

-7권 12화

퀴스(넓적다리 가리개)라고는 해도 사이드윙(무릎 측면 보호대)과 폴린(무릎 보호대), 그리브(정강이받이), 서버튼(발등 가리개)에 이르기까지, 오른쪽 다리 한 짝을 다 감싸다시피 하는 형태였다.

뱀브레이스가 폴드런(어깨받이), 어퍼 캐논(팔 가리개), 쿠터(관절 보호대), 로어 캐논(팔뚝 가리개), 건틀릿(장갑)이 다 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기전은 엄밀히 말해서 갑옷의 형태를 완벽히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골격만 있는 형태라고 해야 할까?

쿠터나 폴린 같은 부분은 제 형체를 다 갖추고 있었으나 퀴스, 폴드런 등은 뼈대만 있어 신체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즉, 방어구처럼 생기기는 했으나 방어구처럼 쓰고 있지는 않았다.

여태껏 공격용으로만 마기전을 사용하던 정대식은 라이트 퀴스를 받아들고 그것을 살펴보면서 희미하던 의구심이 확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방어구처럼 생겼는데. 공격과 방어가 다 되는 무구인 것인가? 방어구로 제 기능을 못하는 건 파츠가 다 갖추어지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내가 사용법을 모르는 탓일 수도 있겠군.'

정대식은 그걸 한번 착용해 보았다.

한쪽 팔에만 끼우는 형태인 뱀브레이스와는 달리, 다리에 그걸 끼고 있으려니 상당히 걸리적거렸다.

불편하기까지 해서 도무지 어떻게 써먹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어떻게 사용을 하는 겁니까?"

장한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리도 정확히 몰라요. 그게 두 짝 다 있으면 모를까."

"나머지 한 짝은 어디 있죠?"

"그것도 몰라요. 알았으면 진즉에 수거해 왔겠죠."

"사용법도 모른다면서, 이게 M급의 무구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마력의 주입량에 따라 그만한 방출이 일어나니까요. 음...... 끼고 해 보긴 위험한 것 같고. 벗어 보시겠어요?"

정대식이 시키는 대로 라이트 퀴스를 벗어 놓자 장한나가 그걸 손으로 잡고 마력을 한번 주입해 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약간의 마력을 흘려 넣자 레프트 뱀브레이스가 작동될 때처럼 전류와 같은 마력의 빛이 흐르며, 그게 바닥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로켓 추진기처럼 발사가 됐다.

"으악!"

하마터면 그걸 놓쳐 버릴 뻔한 정대식은 황급히 마력을 거둬들이며 그걸 움켜잡았다.

다행히 라이트 퀴스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불상사는 면했다.

정대식은 이게 어디서 방출이 되는 건가 살펴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이건...... 공격 도구입니까, 아니면 비행 도구입니까?"

"그것도 모르겠어요. 라이트 퀴스 한 쪽만 그렇게 방출이 되는 거면, 공격용 같기도 하고 두 쪽 다 방출이 되는 것 같으면 비행 도구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구색을 맞춰 놓아야 이게 진짜 어떤 물건인지를 알 수 있겠군요."

"그렇죠. 사실상 이게 M급으로 분류된 것도 완성형이 됐을 때의 성능을 짐작한 거죠. 보시다시피 이 파츠 하나로는 별 쓸모가 없어요."

최선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

단순한 성능만을 놓고 본다면 B급 정도의 물건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얼마만한 마력량을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등급 측정이 불가능한, M등급 수준의 무구가 된다고 말을 했던 것이다.

"일단 이것은 제가 가지고 가 보겠습니다. 어쩐지 마기전의 다른 파츠를 마저 모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구가 제 기능을 하려면 완전한 모습을 갖춰야 할 테니까요. 다 모으고 나면 얼마만한 위력의 무구가 될지 궁금하긴 하네요."

"그건 모아 봐야 아는 일이죠."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왠지 광필두가 7성 무구를 다 모으려 드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그 역시도 7성 무구의 완성형, 궁극기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짐작해 보던 정대식은 내심 고개를 흔들었다.

'단순한 수집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나만 해도 마기전이 완성되고 나면 그 성능이 얼마만한지 일단 써 보고 싶을 테니까 말이야.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힘을 어디다, 어떻게 쓸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겠지.'

최희를 비롯한 헌터들의 생리를 생각해 보면 그냥 단순히 강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걸 수도 있었다.

정대식은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고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와 야마환, 그리고 마기전의 라이트 퀴스 파츠를 아공간에 털어 넣었다.

그런 뒤 국가 기물 금고를 걸어 나오면서 장한나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면 저녁 식사나 함께하죠."

장한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녁 식사요?"

"서로 알아 온 지도 꽤 됐잖아요? 저녁 식사 정도는 같이할 만하지 않습니까?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요."

장한나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저는 좋아요."

Chapter 40. 협상의 하룻밤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부탁해 여자와 함께 가기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달라고 말했다.

엔트로피는 금세 말을 들어주었고, 정대식은 장한나와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럴싸한 분위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많이 보였다.

장한나와 안내된 자리에 앉고 보니 자신들도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대식은 식사를 주문하고 말했다.

"이런 덴 별로 와 보질 않아서 영 어색하네요."

"그런가요?"

"제가 어떤 곳에 살고 있는지 보셨을 텐데요."

"아, 그 여관방 말이군요."

장한나는 우아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입가심 삼아 시킨 와인을 홀짝거렸다.

그 모습이 꽤 익숙해 보여 정대식은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장한나 씨는 이런 레스토랑에 자주 오시겠죠?"

"글쎄요? 전 바빠서 이런 곳에 들를 만한 일은......."

"남자 만날 때뿐인가요?"

장한나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네, 뭐. 소개팅 같은 걸 할 땐 으레 이런 곳에 오기 마련이죠."

"그렇군요. 참고해야겠네요."

정대식은 싱긋 웃고 주문한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이프 사용이 서툴렀다.

칼이라고는 사냥칼밖에 잡아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장한나가 후후, 웃으며 그의 스테이크를 자신의 접시로) 가져가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덜어 주었다.

정대식이 고맙다고 말하고 그 고기를 받아먹으니, 장한나가 은은한 불빛에 촉촉이 젖은 눈을 하고 말했다.

"그런데...... 저를 이런 곳으로 초대한 이유는 뭐죠?"

"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그게 뭔데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말해 봐요."

정대식은 장한나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정대식은 전에 없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마정석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장한나는 멈칫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마정석 구매라고요?"

"그렇습니다."

현재, 마정석은 몇몇 공기업만이 구매를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공식 인증받은 구매소를 운영하고 모든 헌터들은 거기에서 마정석을 처분하고 정산금을 받았다.

공격대도 마찬가지였다.

공격대가 획득한 마정석은 각 지역 업체의 직원이 파견을 나와서 가져갔다.

헌터가 본인이 획득한 마정석을 보유하고 있을 수는 있어도, 사사로이 거래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대량으로 구매할 수도 없었다.

장한나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했다.

"마정석을 구매해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는 거지요? 현재 마력 발전이 한창 개발되고 있는 중이라지만...... 정대식 씨가 거기에 개입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설령 개입되어 있다 해도 정대식 씨 개인이 마정석을 사들여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장한나는 문득 눈을 번뜩였다.

"설마, 마정석에서 마력을 추출해 내는 방법을 찾아내기라도 한 건가요?"

정대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정석에 마력이라는 에너지가 깃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마정석은 석유를 대체할 신에너지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정석에서 마력을 추출해 내고, 그것을 다시 전기 에너지로 생산해 내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마정석은 지구에는 없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웠으며, 마력을 추출하는 과정에도 반드시 마력이 개입되었다.

그러니 일부의 각성자들만이 마정석을 다룰 수 있었는데, 이 과정 또한 쉽지가 않았다.

옐로 스톤이나 레드 스톤과 같이 흔해 빠진 마정석에서 생산해 낼 수 있는 마력의 양은 얼마가 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마력량을 채울 정도는 되어도 수백만 가구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말이다.

기존의 발전소를 대체할 만한 전력을 생산하려면 적어도 크리스털급 이상의 투명도에 직경이 30cm는 넘는 크기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마정석 안에 깃들어 있는 마력량을 소화해 낼 수 있을 만한 각성자는 별로 없었다.

최희 정도까지는 안 되더라도 S급 이상의 헌터여야 한다는 말인데, 그런 헌터가 발전소에 틀어박혀 전기 생산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너지를 무한대로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라도 발명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마력 발전에 대한 연구 개발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조만간 마력 발전이 현실화될 거라 생각하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정석은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값어치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마정석을 구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니, 장한나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정대식은 그 이유에 대해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았다.

아니,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현질과 상점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정대식은 약간의 협박조를 곁들여 말을 했다.

"오늘 국가 기물 금고에서 SSS급의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와 M급의 무구 두 개, 야마환과 마기전의 라이트 퀴스를 받아 오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이 정도로는 미국이나 중국에서 온 제안에 비해서 약소하다고 느껴집니다.

그 사실은 장한나 씨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제아무리 값어치 있는 무구라고 하더라도, 마기전은 일부분일 뿐이고 아머와 링은 대여일 뿐이니까요. 엄밀히 말해 제 재산이 아니죠."

"......."

장한나는 입을 꾹 다물었고 정대식은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지금은 몸담고 있는 공격대도 있고, 거느리고 있는 대원들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한국을 떠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정석 구매 자격은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그 말인 즉, 마정석 구매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다면 당장에라도 해외로 떠나겠다는 말인가요?"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 수밖에는 없다는 거지요. 제가 세계 유일, 전대미문의 올인원이라는 사실은 장한나 씨가 강조한 부분이 아닙니까? 그런 제게 마정석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권한조차 주지를 못한다면...... 제가 여기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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