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64화 (164/297)

# 164

현질 전사

-7권 15화

일단은 국내에 하나 남아 있는 뢰마저도 국가 기물 금고에 처박혀 있지 않은가?

그 정보를 광필두가 알아내기는 힘들뿐더러, 설령 알아낸다 하더라도 국가 기물 금고를 습격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뢰를 가질 방법은 없었다.

국가에서 7성 무구를 이미 세 개나 갖고 있는 광필두에게 그걸 내줄 리가 만무하다.

해외에 있는 무구부터 먼저 모으려 들지도 모르나, 제이드 팔머의 경우에는 상상도 못할 거액을 요구할 것이고, 듀라한의 경우에는 러시아 반군의 우두머리라고 하니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였다.

러시아는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불운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

가뜩이나 불안정하던 러시아 정부는 붕괴되었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각성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사실상 독재 정부인지라 하루가 멀다 하고 쿠데타가 일어나 수시로 수장이 바뀌었다.

반군 세력만 해도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어, 현재 러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땅덩어리 중의 하나였다.

각성자들이 몬스터를 잡을 생각은 않고 권력을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사방이 몬스터 둥지요, 전쟁터였다.

그런 곳에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짓인지라, 듀라한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찾는다 하더라도 듀라한은 결코 무구를 내주려 하지 않을 게 뻔했다.

더욱이 반군 우두머리라면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는 말인데, 마갑을 빼앗으려면 그자들을 다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러시아 반군들은 대부분이 각성자들이라 제아무리 파워 랭킹 15위의 광필두라 하더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븐 스타를 세 개나 가진 광필두의 랭킹 순위가 어찌 되는지가 궁금했다.

정대식은 충동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광필두 랭킹이 어떻게 되지?"

<공식 랭킹이라면 201위입니다.>

"어? 왜 랭킹이 더 내려갔어?"

<7성 무구를 모으고 있는 그의 행동이 반사회적인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방패를 손에 넣은 것이 알려지면 순위가 더 내려갈지도 모릅니다.>

"파워 랭킹은?"

<그건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13위에 근접할 것입니다.>

"13위라, 전에 15위였으니 생각만큼 높아지진 않네."

<그만큼 파워 랭킹의 상위권에 위치한 인물들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정대식은 자신의 순위도 한번 확인해 보았다.

"나는? 지금 몇 위야?"

<공식 랭킹 298위, 파워 랭킹 77위입니다.>

"헛? 그새 제법 올랐잖아?"

<펜리르 부대의 부대장으로 승격했고 몬스터 토벌에 공헌했으며, 올인원이 되셨으니까요. 또한 정대식 님의 존재로 인하여 타이탄 공격대에 후원자가 늘고 있어 타이탄 공격대의 순위 역시도 상승하고 있으니, 조만간 공식 랭킹이 100위 가까이, 파워 랭킹이 20위 가까이 오르게 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엔트로피는 조금 아쉽다는 듯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언데드 퀸을 처치하고 얻은 에메랄드 스톤을 공식적으로 처리했더라면 이미 그 정도 순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랭킹 순위보다는 돈 버는 게 더 중요하니까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말해 랭킹 순위가 오르는 것은 순전히 시간 문제였다.

내버려 두면 알아서 상승할 테니 거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띠리링~

정대식은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엔트로피가 냉큼 말했다.

<스카우터 한미란 씨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해 있습니다. 읽어 드릴까요?>

"아니, 됐어. 지금 바로 전화할 테니까. 넌 이만 들어가 있어."

엔트로피는 실체화를 해제해 사라졌고 정대식은 휴대폰을 들어 한미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미란 씨? 괜찮으시면 오늘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한미란은 수화기 너머에서 발랄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저녁 식사 어떠세요?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뵙죠. 제가 살 테니까.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생각하며 정대식은 약속 시간을 잡았다.

* * *

한미란이 불러낸 곳은 뜻밖에도 대학가 앞의 허름한 생선구이 집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역사와 전통이 있어 보이는 그곳에서 한미란이 정대식을 향해 손짓했다.

"여기, 여기요!"

한미란은 멋대로 주문을 하더니 생긋 웃으면서 "삼치 정식이랑, 소주 한 병 괜찮죠?"라고 말했다.

얼결에 고개를 끄덕인 정대식은 괜한 기대감을 갖지 않게 하려고 곧장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하지만 일전에 주신 스카우트 제의는 거절해야겠습니다."

한미란은 잠깐만 있어 보라 손짓하고 종업원이 가져 오는 소주를 따 소주잔에 꼴꼴 따랐다.

그리고 혼자 자작을 하더니만 "캬!" 하는 소리를 내고 정대식의 잔에도 술을 채워 주었다.

"장한나가 어떤 제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건네 드린 것만큼 좋은 조건은 아니었을 텐데요?"

한미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면, 장한나 씨와 개인적인 약속이라도......?"

정대식은 고개를 저었다.

"장한나 씨와 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개인적인 약속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장한나가 유혹해서 잠자리를 한 것은 맞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딱 거기까지였다.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기대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다.

정대식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단지 지금은 몸담고 있는 공격대도 있고, 챙겨야 할 사람들도 있고, 목표한 바도 있으니 굳이 해외로 나가고 싶지는 않네요. 사실을 말하자면 몇 년쯤, 한국에 더 머문다고 해서 제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차차 생각해 봐도 늦지 않겠다 싶더군요."

"흐음, 올인원의 자신감인가요?"

정대식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른 헌터들이야 시간이 흐르면 나이가 먹으면서 전투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지만, 정대식은 아직 젊었고 유일무이한 올인원이라는 존재였다.

올인원으로서의 능력을 이용해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질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 당분간은 여기서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다가, 맘이 내키면 그때 가서 해외로 이주하는 것을 생각해 봄직했다.

"저야 아쉬운 노릇이지만 뭐,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언젠가 이적할 생각이라면 꼭 제게 먼저 알려 주세요. 누구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정대식 씨에게 딱 맞는 자리를 찾아 드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에요."

"물론입니다."

"자! 그럼 술이나 마셔 볼까요?"

한미란은 정대식의 거절에도 기분 좋게 술잔을 부딪쳤다.

한미란은 허름한 생선구이 집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의 미인인데다가, 새침데기인 장한나와는 달리 털털해서 대화하기 좋은 상대였다.

게다가 헌터들 사이에 발이 넓어서 정대식이 모르고 있거나 관심 없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광필두 씨 이야기 들었어요?"

"조디악 공격대의 공대장 말이군요? 세 번째 7성 무구 이야기라면...... 예, 알고 있습니다."

"어머,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난 나밖에 모르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식통이었네?"

너스레를 떤 한미란은 곧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도 광필두와 싸운 박태산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죠?"

"왜요, 광필두와 결투를 하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했습니까?"

"다친 정도가 아니에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능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고요."

정대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이능이란 건 기본적으로 신이 하사하는 게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사라질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뭐, 아직까지는 소문에 불과해요. 그게 광필두 때문인지도 확실하지 않고요.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아마조네스 공격대의 여진주 씨 있잖아요?"

"예, 7성 무구 중 활을 갖고 있던 분 말이죠?"

"제가 다리 건너 그분이랑 아는 사이라, 최근에 잠깐 만나 뵌 적이 있어요. 광필두가 한창 박태산에게 공개 결투를 요청해서 시끌시끌할 때 말이에요. 여진주 씨는 광필두와 맞대결 이후 지금은 은퇴한 상태인데...... 광필두가 세 번째 7성 무구를 손에 넣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요."

"이상한 말이요?"

"그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까 이상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광필두는 신의 선택을 받은 각성자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예?"

"악신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라는 소리를 했어요. 그래서 그가 7성 무구를 다 모으면 큰일이 날 거라고 말이에요."

어쩐지 등골이 섬뜩해지는 소리였다.

신이 아닌 악신이라.

단순히 그 표현에서 오는 오싹함이 아니었다.

정대식은 각성자들의 신이 단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대식만 해도 보통의 신과는 다른 신의 선택을 받지 않았던가?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 데모크리토스다.

재물과 탐욕, 대가의 신이라 하면 선한 신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생각하기에 따라 악신으로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다.

정대식은 애써 동요를 감추며 말했다.

"그냥 표현이 그런 거겠죠."

"예, 뭐. 저도 그래서 큰 신경을 안 썼죠. 그 싸움 이후로 여진주 씨가 약간 넋이 나갔다고 해야 하나?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요. 광필두에게 활을 빼앗기자마자 상심이 컸는지, 그렇게 아끼던 공격대도 일시에 해산하고 당장에 은퇴해 버렸으니까요.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사냥을 떠나거나 하지 않았다더군요. 심지어는 같은 헌터들도 만나지 않는대요. 아마조네스 부대장이 몇 번이나 그녀를 찾아갔는데, 문전박대를 했다더군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7성 무구를 다 모으면 무슨 일이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광필두가 그걸 그저 소장하고 있으려고 모으는 건 아닐 거잖아요?"

"하지만 그걸 다 모으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벌써 세 개나 되는 7성 무구를 모았으니, 지금부터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그들이 광필두가 세븐 스타를 완성하는 걸 방해하겠죠. 무엇보다 7성 무구 중의 하나인 창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첫 번째 몬스터 브레이크 당시에 소실되어 영영 찾을 수 없었으니까."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광필두가 7성 무구를 다 모으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저 컬렉션에 지나지 않았다.

무구 하나하나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다고는 해도,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무구를 한꺼번에 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광필두 씨에 대한 것은 두고 볼 일이죠. 광필두 씨가 7성 무구를 모아들이는 바람에 개인적인 전력은 상승했는지 몰라도, 조디악 공격대 내부 사정은 엉망진창이에요."

"그래요?"

"당연하죠. 생각해 보세요. 광필두 씨는 본래 조디악 공격대의 우두머리였던 강철우 씨를 해치우고 그 자리에 오른 거예요. 당연히 조디악 공격대 내부에서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죠. 어찌어찌 무력으로 그 불만을 누르고 공대장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사분오열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죠.

실제로 지난번 몬스터 토벌 때 몇몇 팀들은 광필두 씨의 명령을 무시하고 움직였다는군요. 제가 들은 바로는 많은 헌터들이 조디악 공격대에서 이탈해 새로운 공격대를 꾸릴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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