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69화 (169/297)

# 169

현질 전사

-7권 20화

뽀드득, 뽀드득!

그들은 발밑에 쌓인 눈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기가 오래지 않아 사방에서 위어울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눈안개가 걷히며 전방에 위어울프 떼거리가 나타났다.

위어울프는 키는 사람만 했으나 덩치는 평범한 남자의 두 배 정도였고, 흉악한 발톱을 드러낸 채로 길쭉한 주둥이에서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거기에 촘촘히 박혀 있는 이빨 사이로 붉은 혀가 날름거리는 꼴이, 오랜만에 찾아든 사냥감을 보고 흥분한 게 분명해 보였다.

"간다!"

"디스터브!"

"풍창파벽!"

허미래의 디버프가 전방의 위어울프를 교란시키는 새 고덕화의 천강벽수선이 세찬 바람을 내뿜었다.

곧 그 바람의 잔영이 여인의 모습을 갖추었고, 천강벽수선에 깃든 실라이론이 옷자락을 휘두르듯 거센 바람을 몰아쳤다.

콰아아아아!

"키이잉!"

"캐앵!"

"깽깽!"

거기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전방의 위어울프들이 허공으로 짚단처럼 붕 날아올랐다.

천강벽수선의 바람이 단순히 위어울프들을 후려친 게 아니라 그들을 휘감아 던져 버렸던 것이다.

실라이론이 천강벽수선에 깃듦으로 해서 그 위력이 한층 더 강해진 거였다.

그 광경을 보고 이재우가 경박한 휘파람 소리를 내뱉었다.

"휘~익! 대단한데!"

허미래의 디버프와 고덕화의 선공으로 위어울프들의 대열이 무너지며 놈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양쪽에 기철민과 김태희를 거느린 채로 달려가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사용했다.

"다크 미스트!"

후우우우우욱!

정대식이 그 말을 외치기 무섭게 그에게서 검은 안개와 같이 짙은 어둠이 쏟아져 나와 파도처럼 위어울프들을 덮쳤다.

그러자 어둠에 익숙할 위어울프들이 난생 처음 어둠에 공포를 느끼고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캐갱!"

"캥캥캥!"

아수라장이 된 위어울프 틈바구니로 김태희와 기철민이 동시에 뛰어들었다.

"초신성 폭발!"

파바바바바밧!

김태희가 휘두른 절구에서 수십 개의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튀어 나갔다.

본래도 위력적인 공격이지만 실라페와 운다인의 능력이 더해지자 무서울 정도가 되었다.

빙철심이 날아가 박힌 자리가 쫘자작, 얼어붙으며 위어울프들의 주둥이가 깨지거나 팔이 터져 버리거나 했던 것이다.

그 뒤를 이어 기철민이 번개 같은 속도로 위어울프들 사이를 누볐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가지가 달아난 위어울프들이 단말마를 지를 틈도 없이 우르르 쓰러져 죽었다.

곧 발목에 빛나는 고리, 탈라리아를 끼우고 있던 기철민이 제자리로 돌아와 경탄성을 내질렀다.

"제기랄! 이게 뭐야?"

얼핏 들으면 욕설 같았으나 상기된 얼굴은 명백히 웃고 있었다.

기철민은 팔을 크게 휘둘러 검에 묻은 피를 떨쳐 내며 소리쳤다.

"야, 이 늑대 새끼들아! 나랑 같이 춤추자고!"

기철민은 다시금 시야에서 사라졌고, 잠시 후 위어울프 사이에서 여기저기 피 분수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김태희와 기철민이 신들린 듯 위어울프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사이, 좀이 쑤신 이재우와 김송근이 발을 동동 굴렀다.

"젠장! 나도 재미 좀 보고 싶은데......!"

"신나는 건 저놈들이 다 해 처먹는구만!"

정대식은 당장이라도 앞으로 뛰쳐나갈 기세인 두 사람을 점잖게 만류했다.

"아직 아냐. 너희들의 능력은 울프헤딘을 상대할 때를 대비해서 아껴 둬라. 위어울프는 저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까."

정대식의 저지에 이재우와 김송근은 잠자코 있었으나 새 아이템으로 실력 발휘를 하고 싶어 안달인 게 분명했다.

김태희와 기철민이 위어울프를 때려잡는 걸 보며 감탄인지, 경탄인지 모를 소리를 연신 내뱉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덤벼든 위어울프를 모조리 처치해 버렸던 것이다.

"흐음, 쓸 만하네."

김태희가 업그레이드된 절구를 휘돌리며 하는 말에 기철민은 씩 웃으며 한마디를 보탰다.

"범에 날개를 단 격이지."

신이 난 두 사람을 불러들인 정대식은 부대원들과 함께 위어울프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 곳을 지나쳤다.

일대의 위어울프가 모조리 덤벼들었는데 다 처치해 버리는 바람에 한동안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주의 집중에 무언가 감지되어 엔트로피를 날려 보냈더니 링크된 시야로 새로운 위어울프 무리가 보였다.

"또 떼거리로 온다."

정대식은 기철민과 김태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더 싸울 수 있겠지?"

기철민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고, 김태희는 자신만만하다 못해 심드렁한 기색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보고 정대식은 말했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놈을 우리가 먼저 치겠다. 은신!"

정대식은 나머지 부대원들을 약간 뒤에서 따르게 하고 김태희, 기철민 두 명과 함께 위어울프 떼가 몰려오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은신 스킬로 몸을 숨긴 채, 부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도약한다, 가운데서부터 도륙해!"

"예!"

다음 순간, 땅을 박차 허공으로 높이 솟구친 세 사람은 위어울프 떼의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그들은 즉시 세 방향으로 나뉘어 서로 등을 맞댄 채 덤벼드는 위어울프들을 끝장내기 시작했다.

<신속.>

"무적권!"

"천랑비검!"

"우주 충돌!"

콰과과과광!

"캐애애앵!"

"꺄우우우웅!"

위어울프의 울음소리와 비명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가운데 셋은 폭풍처럼 위어울프 떼를 세 쪽으로 갈라놓았다.

곧 펜리르 부대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던 위어울프들이 모조리 방향을 선회하여 세 사람을 잡으려고 떼거리로 달려들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마치 파도처럼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위어울프들을 그들은 쉬지 않고 때리고, 베고, 후려쳤다.

퍼억! 쿠과광! 퍼버버벅! 콰아아앙!

한동안 마력의 빛이 번쩍이며 굉음이 울렸다.

그 소리가 가라앉고 났을 때 두 발로 선 위어울프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제자리에 선 것은 세 명의 헌터, 정대식, 기철민, 김태희뿐이었다.

그때쯤 뒤따라오던 나머지 부대원들이 도착해 또다시 사방에 가득한 위어울프 시체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한 마리도 안 남기고 다 죽이냐?"

"이놈들 가죽 다 벗기려면 지원 팀을 모조리 불러와도 안 되겠는데?"

"짐꾼들 고용비가 더 나오겠네!"

"우리 몫도 좀 남겨 주면 어디가 덧나?"

감탄과 불평을 번갈아 하는 나머지 부대원들을 보고 기철민과 김태희는 새침을 떨었다.

펜리르 부대는 다시금 대형을 유지한 채 사방에 가득한 위어울프 시체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 * *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위어울프 떼가 등장하기는 했으나 기철민과 김태희의 공세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정대식과 허미래가 약간 거들어 주기만 하는 것으로 거칠 게 없이 날뛰어 A 구역에 바글거리던 위어울프가 멸절한 것 같았다.

덕분에 표지석까지 가는 데는 한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대략 네 시간 30분쯤 걸려 목적한 장소에 다다랐다.

흰 벌판 위에 우뚝 솟아난 표지석은 A 구역과 E, D, 이렇게 세 구역이 마주한 곳이었다.

즉, 몬스터들의 영역이 맞붙은 경계였으므로 세이브 포인트로 설정해도 무방했다.

정대식은 기울어져 있는 표지석의 바닥을 파내고 위장막을 덮어 간이 쉼터를 마련했다.

거기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볼일을 보는 둥, 두 시간가량 휴식을 취하고 장비를 한 번 더 점검한 뒤 갈 길을 재촉했다.

위어울프를 닥치는 대로 쓰러트리며 전진했던 A 구역과는 달리, E와 D 구역의 경계를 지날 때는 기척을 죽이고 신중히 발길을 옮겼다.

정대식이 먼저 경고한 바와 같이 경계를 따라 걷는 것은 몬스터를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했으나, 때로는 위험이 가중되기도 했다.

울프헤딘을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한꺼번에 마주쳤다가는 제아무리 펜리르 부대라고 할지라도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브세슬라브 공략이 목표였으므로 전력을 아끼기 위해서 가급적 울프헤딘을 피해 간다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부대원들은 침묵한 채로 흩날리는 진눈깨비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온 사방이 새하얀 벌판을 계속해서 걷다 보니 지루하기도 지루하고, 착시 현상이 일어나려고 들었다.

결국 피로감을 참지 못한 이재우가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고글을 쓰고 있는데도 눈이 아프네. 이런 눈밭을 헤매느니 차라리 정글이 더 나은 것 같아."

그 말에 김송근이 곧장 핀잔을 주었다.

"지난번 훈련 때 정글에 들어갔다가 죽겠다고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부렸던 사람이 누구더라?"

"그건 정글이 짜증 난 게 아니라 달라붙는 벌레가 짜증 났던 거야. 거기 모기인지 뭔지, 한 번 물리면 지독하게 가렵다는 거 잘 알고 있잖아?"

"정글과 모기는 한 세트지. 별개로 놓고 생각하면 안 되지."

"어이구, 그래. 너 잘났다."

이재우와 김송근이 쓸데없는 입씨름을 하자 기철민이 나직하게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그래. 떠들어라, 떠들어. 아주 울프헤딘을 큰 소리로 부르지 그러냐?"

"온 데가 눈인데 울프헤딘이 어디 있다고 그래? 뭔 말을 못하게 해."

이재우가 구시렁거리자 서지원이 끼어들어 말했다.

"울프헤딘은 거인 종류니까 아마 귀가 어두울 거야. 대부분 거인들은 좀 둔하더라고. 눈도 나빠서 바로 발밑에 있는 것도 못 알아보고 그랬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걸?"

서지원이 하는 말에 이재우가 반색해 질문을 던졌다.

"그래! 너, 프랑켄슈타인 부대였지? 스톤 자이언트를 공략한 적이 있잖아? 그때의 경험담인가?"

"맞아. 스톤 자이언트는 돌로 만들어진 주제에 재생력이 있어서 쓰러트리기가 만만찮았지. 머리까지 돌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 멍청해서 그나마 잡기가 수월했어. 가장 잡기 힘들었던 건 클라우드 자이언트였는데......."

주절주절 떠드는 서지원의 말을 듣고 있던 김태희가 이야기를 뚝 끊었다.

"멍청이들, 울프헤딘은 그냥 거인이 아냐. 놈들은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고 늑대로 변신할 수가 있다고. 그런데 귀가 어둡다고?"

코웃음을 치며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서지원은 얼굴이 눈송이만큼이나 창백해져 입을 다물었다.

정대식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어. 우리 목소리가 어느 정도는 파묻힌다고 해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그보다 날씨가 점점 나빠지는데......."

행여 눈 폭풍에 고립될까 염려하는 정대식을 보고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거기에서 훈풍이 불어 나오며 진눈깨비가 섞인 찬바람을 밀어냈다.

"제가 맞바람을 일으켜 눈보라를 밀어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날씨가 궂을 때 경계를 빨리 지나가는 게 어떨까요?"

"음, 눈보라가 심해지면 내가 마기장을 펼쳐도 되고. 고덕화 말대로 서두르는 편이 좋겠다."

펜리르 부대는 점차 거세지는 바람을 뚫고 발길을 옮겼다.

그때, 매우 가까운 곳에서 피어가 섞인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

한 마리가 아니었다.

최소한 두 마리 이상으로 추정되는 울음소리가 눈보라를 뚫고 쩌렁쩌렁하게 귓전을 울려왔다.

정대식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주의를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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