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현질 전사
-8권 1화
Chapter 44. 휴가
슈우웃!
SJ1D 밖에서 대기 중이던 지원 팀은 던전의 입구에서 펜리르 부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대식 씨!"
지원 2팀의 팀장 범영우가 한달음에 달려와 그들을 맞았다.
범영우는 정대식을 비롯한 펜리르 부대원들을 살펴보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대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죠."
"브세슬라브를 잡지는 못했더라도 위험 등급 던전에서 사냥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올린 셈입니다. 펜리르는 이제 갓 생겨난 부대가 아닙니까?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번에는 꼭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범영우가 하는 말에 정대식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제 말이 기분 나쁘셨다면 미안합니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브세슬라브를 잡지 못했다고 하셔서요."
정대식이 되묻는 말을 듣고서야 범영우는 그가 무슨 소릴 하려는지 깨달았다.
범영우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횡설수설하듯 말을 이었다.
"......어? 도중에 돌아 나온 게 아닙니까? 저는...... 분명히 브세슬라브가 출몰한다는 숲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돌아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설마, 던전 공략에 성공했다는 말입니까?"
입을 쩍 벌리며 묻는 말에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브세슬라브를 처치해 마정석을 손에 넣었습니다. 보여 드릴까요?"
범영우는 기겁을 했다.
"아니, 어떻게? 브세슬라브는...... 위험 등급의 보스몬스터...... 무려 8성급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괴물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어떻게 펜리르 부대원들이 이렇게 하나같이 멀쩡합니까? 부상을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요?"
범영우는 브세슬라브를 상대한 펜리르 부대가 이토록 멀쩡한 게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8성급의 몬스터와 상대했으면 사망자는 없더라도 중상자나 최소한 부상자가 몇 명 정도는 나와야 했다.
사실 펜리르 부대 전원이 몰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브세슬라브를 죽이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놈과의 전투에서 부상조차 입지 않았다니?
제아무리 포션이 있다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이재우가 한마디 끼어들었다.
"부상이 없기는요! 여기 봐 보세요. 크게 긁혔잖아요! 이거 무지 아프다고요. 어쩌면 흉터가 남을지도 모른다고요."
익살을 부리며 엄살을 떠는 이재우를 기철민이 면박 줬다.
"지금 그걸 부상이라고 말하는 거냐?"
"부상은 부상이지!"
"그 정도가 부상이면 나는 아예 중상이겠군."
이재우에 비해서 기철민이 좀 더 다치긴 했다.
그래 봤자 피부가 좀 긁히고 위어울프에게 깨물려 생긴 생채기나 멍 정도라서 중상자라고 말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사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허미래가 울프헤딘에게 물려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정대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범영우에게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다행히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히야...... 정말...... 대단하시군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해 온 덕분이지요."
"훈련 좀 열심히 한다고 해서 8성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면, 저도 당장 지원 팀 때려치우고 사냥에 나서겠습니다."
범영우는 혀를 내두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펜리르 부대가 첫 임무로 이 던전에 들어간다고 들었을 때는 제2의 크툴루 참사가 일어나는 게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이 던전이 어떤 던전입니까? 무려 위험 등급 던전이라 어지간한 헌터들은 얼씬도 못하는 곳 아닙니까? 실력 꽤나 있다는 헌터들도 기껏해야 위어울프나 좀 때려잡는 데 그치곤 했었죠. 유명한 공격대들이 우르르 몰려와도 울프헤딘 한 마리 잡는 것도 버거워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첫 임무에 실패 없이 보스몹을 공략하다니...... 믿기지가 않는군요."
"그건 던전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면 알 겁니다."
"예에, 그렇겠죠."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 놓고도 미심쩍은지, 범영우는 몇 번이나 "진짜 공략이 된 게 맞는 거죠?" 하고 물어왔다.
나중엔 김송근이 "속고만 살았느냐"고 화를 내며 정대식에게 말했다.
"던전 공략의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걸 보여 주세요!"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하고 아공간에서 사파이어 마정석을 꺼내 보여 주었다.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마정석과는 달리, 사파이어 마정석은 돌이 아닌 보석처럼 눈부신 반짝임과 투명도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 크기 또한 성인 남자의 주먹보다 더 클 정도이니 지원 팀의 대원들뿐만 아니라 짐꾼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그 광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저 빛 좀 봐!"
"어이쿠, 눈이 다 부시네!"
"거의 주먹만 하잖아? 아니, 주먹보다 더 크네. 저렇게 큰 마정석은 처음 봐!"
"저건 가격이 얼마 정도 하려나? 적어도 백억은 하겠지?"
"백억이 뭐야, 수백억을 호가하겠지!"
정대식은 눈알이 빠질 지경이 되어 마정석을 쳐다보는 범영우에게 "이제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며 마정석을 도로 아공간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여운에 취해 꼼짝을 않고 있는 지원 팀을 재촉하며 말했다.
"안에 들어가면 일거리가 많을 겁니다. 넋을 놓고 있다간 2박 3일 꼼짝 못할 지도 몰라요."
"그렇게 수확물이 많습니까?"
"가 보면 아실 겁니다."
정대식은 상품 가치가 없어 보이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상태가 좋은 부산물만 건져 나오는 게 좋을 거라고 충고했다.
펜리르 부대원들이 도륙한 위어울프가 몇 마리인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이니, 그걸 일일이 다 가지고 나오려다가는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몰랐다.
그 말에 범영우는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 부분은 염려하지 마시죠. 던전 공략이 안 됐으면 모를까, 마정석까지 획득했다면 부산물의 양이 얼마가 되어도 괜찮습니다. 이만한 수준의 던전이라면 몬스터 공백기가 길 테니까요. 힘들게 잡은 몬스터이니만큼, 본전을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먼 하이에나들이 이득을 보는 꼴은 못 보죠."
그것은 정대식 역시도 동의하는 바였다.
대형 정공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떡고물 받아먹을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는 놈들은 헌터라고 부르기도 싫었다.
놈들은 썩은 고기를 먹는 하이에나나 다를 바 없었고, 그런 놈들의 배를 불려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양이 너무 많았다.
지원 2팀과 몇십 명의 짐꾼들로는 무리다.
지원 팀을 하나 더 부르고 짐꾼도 추가로 고용을 하면 모를까.......
정대식은 범영우가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하고 직접 들어가 눈으로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 * *
정대식은 지원 팀에게 사냥 정보를 넘겨주고 베이스캠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무구와 장비를 벗어내고 간이 샤워실에서 몸을 닦은 뒤 곧장 식사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야마환 때문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정대식은 몸에 비누칠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비상식량을 박살 냈다.
어마무시하게 먹어 대는 정대식을 보고 같이 요기를 하러 모인 부대원들 중 서지원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범영우가 돌아오는 대로 어디 고깃집이라도 가야 할까 봐요. 저러다 대장님이 지원 팀 몫까지 다 작살내겠네요."
정대식은 에너지바를 입 안에 구겨 넣으며 대꾸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오늘은 회식이다. 메뉴는 한우로. 내가 쏘지."
"와아아아아!"
부대원들은 소고기 먹는 날이라고 기쁨에 차 환성을 질렀다.
오늘 그들이 해낸 일에 비하면 소고기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간의 훈련이 성과가 있어서, 오늘의 임무 수행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매우 흡족했다.
비록 허미래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는 하였으나, 위험 등급 던전에서 그 정도는 빈번한 일이었다.
범영우의 말대로 부대원 전원이 몰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니 허미래의 부상을 두고 임무의 내용이 부실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위어울프를 모조리 도륙했을 뿐만 아니라 울프헤딘도 단번에 처치를 했고, 특히 브세슬라브 공략에 있어서 다들 작전에 충실히 따라 줬다.
부대원 각자가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잘해 주었으므로, 마지막에 정대식이 부족한 공격력을 짜내어 놈을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여력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기에, 코앞에서 브세슬라브의 심장을 놓치고 그냥 돌아가는 실패를 겪지 않을 수가 있었다.
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봤을 때, 첫 번째 임무치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사냥이었다.
이대로라면 브세슬라브보다 더 사냥하기 어려운 보스몹에게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데 소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날뛰던 부대원들이 갑자기 이상한 짓을 했다.
"고기다, 고기!"
"회식이다, 회식!"
"부대장님 최고! 유후우!"
"와아아아!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
"우우우우우우우!"
별안간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부대원들이 한목소리로 하울링을 했던 것이다.
정대식은 깜짝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놀라기는 부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뜨악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질문을 주고받았다.
"너, 너 방금 뭐 한 거야?"
"뭐 하기는. 너도 했잖아?"
"내가 뭘?"
"'아우우우!' 하고......."
"아우우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
말을 하다가 이재우가 아우우, 하고 그 소리를 흉내 내자 질세라 다른 부대원들이 또다시 목청 높여 울부짖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막사를 박차고 범영우가 대원들을 거느리고 뛰어 들어왔다.
"뭡니까, 몬스터입니까?"
울어 젖히는 소리를 듣고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기라도 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색이 되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그에게 정대식은 몹시 머쓱해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 부대원들이 장난을 좀 친 겁니다."
"장난이라고요? 장난이라기에는......."
범영우는 몹시 요상한 표정으로 지적했다.
"펜리르 부대원들 상태가 좀 이상한데요?"
정대식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말에 수긍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어느새 부대원들의 귀 끝이 삐죽 자라난데다 온 얼굴에 털이 부숭부숭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혼자서만 멀쩡한 김태희가 말했다.
"브세슬라브 심장의 부작용이군."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허미래가 본인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어 보고는 기겁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
덩달아 서지원이 패닉에 빠지고, 김송근과 이재우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기철민이 소란을 떠는 둘에게 호통을 쳐 댔다.
사방이 시끄러워지자 범영우가 총부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