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76화 (176/297)

# 176

현질 전사

-8권 2화

"감염된 겁니까? 그런 겁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설령 감염됐다 하더라도 아무 문제없으니까 그 총 좀 내려놓으시면 좋겠군요."

정대식은 서둘러 각성 스킬을 쓰고 해독 포션을 부대원들에게 마시게 했다.

허미래나 이재우와 같이 본인의 마력량이 충분한 경우에는 금세 약발이 돌아서 얼굴이 원래대로 되돌아왔으나, 서지원과 고덕화, 김송근과 기철민 같은 경우에는 약발이 잘 먹지 않았다.

특히 기철민의 상태가 심해서 그는 몹시 투덜거리며 애꿎은 김태희에게 한마디를 했다.

"부대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넌 왜 멀쩡한 거야?"

김태희는 팔짱을 끼고 흐흥, 웃으며 잘난 체를 했다.

"그럼, 이 아리따운 얼굴에 시커먼 털이 부숭부숭 나야 속이 시원하겠어?"

기철민은 아리따운 얼굴 다 죽었다는 표정이 됐다.

확실히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김태희의 외양은 아리따운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다 늘어난 추리닝에 머리를 산발하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으니 제아무리 대단한 미인이라 하더라도 그 미모가 숨죽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김태희가 쓰고 있는 뿔테 안경에 약간의 마법적 조치가 취해져 있었다.

일종의 암시로 그녀의 인상이 보통 사람처럼 흐리게 보이는 것이다.

기철민은 상대를 말아야겠다며 고개를 돌려 버렸고, 상황이 진정된 것을 보고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범영우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브세슬라브와 격돌한 후유증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곧 괜찮아질 겁니다."

"때마침 던전에서 돌아 나온 참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산처럼 쌓인 위어울프의 사체를 보고 왔더니 소름이 쭉 끼쳐서......."

범영우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놀랍다는 투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던전에 들어가 봤더니 위어울프 사체가 셀 수 없이 많더군요. 아무래도 저희 팀만으로는 안 되겠습니다. 추가로 다른 지원 팀을 부르고 일꾼도 고용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시간이 걸립니다. 당장에 보스몹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저희가 작업을 마칠 때까지 좀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대식은 흔쾌히 알겠다 말을 하고 재정비를 한 대원들과 함께 지원 팀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들은 추가로 지원 2팀이 새로이 고용한 짐꾼들을 이끌고 도착해 작업을 할 동안 주변을 경계했다.

덕분에 회식은 다음 날로 미뤄야 했고, 부대원들은 이 점을 상당히 아쉬워했다.

사실 당일 날 시간이 났다 하더라도 회식을 하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얼굴에 검은 털이 난 상태로 길거리를 돌아다녔다간 사람들이 기겁했을 테니까 말이다.

* * *

브세슬라브의 심장을 섭취한 일로 다소 곤욕을 치르기는 했으나, 그 정도 불편쯤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브세슬라브의 심장이 소화, 흡수되면서 털이 나고 귀가 자라는 둥의 부작용도 사라졌고, 신체 상태가 월등해졌던 것이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마치 늑대들처럼 발이 빨라지고 귀와 눈이 밝아졌으며, 냄새와 기척에 민감해졌다.

김송근이 다른 부대원들 몰래 방귀를 뀌자 다들 코를 감싸 쥐고 자지러질 정도였다.

또한 같이 심장을 나눠 먹은 대원들 사이에 묘한 유대감이 생겨났다.

늑대 무리, 즉 Pack과 같이 동료들을 가족처럼 한 몸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더불어 정대식을 알파메일로 여기고 따르게 되었다.

정대식은 그 부분을 첫 번째 임무에서 얻게 된 가장 큰 성과로 여겼다.

두 번째 성과라고 할 만한 점은 역시, 마정석으로 인해 얻게 된 수입이었다.

강영후는 임무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몸소 한창 뒤처리 중인 SJ1D 앞으로 찾아와 펜리르 부대를 치하했다.

그 역시도 내심으론 펜리르 부대가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이루어 낸 결과를 못 믿어 하다가 던전 안에서 실려 나오는 엄청난 양의 위어울프 사체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 무뚝뚝한 얼굴에 만족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 틈을 타, 정대식은 강영후와 독대하여 마정석에 대한 권리를 협상했다.

"마정석을 개인적으로 갖겠다고?"

"엄밀히 말해서는 저희 펜리르 부대원들의 전력 증강을 위해 쓰고 싶다는 겁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강영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대식이 브세슬라브를 처치하고 획득한 사파이어급 스톤은 그 값어치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정확히 감정을 해 봐야 알겠지만 수백억을 호가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것을 단독으로 쓰겠다 하니 강영후로서는 멈칫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강영후는 턱을 쓰다듬으며 일단은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내 의사는 둘째 치고, 마정석은 국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앞날을 대비해 마정석에 투자를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더군. 물론 자력으로 획득한 마정석은 보유하고 있을 수 있지만, 타이탄 공격대는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지. 모두의 힘으로 획득한 마정석에 대한 대가는 공정하게 나누어야 한다."

거기까지 말을 한 강영후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노골적으로 솔직해졌다.

"공격대는 돈이 많이 필요해.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인 마정석이 없으면 재정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완곡한 거절에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던전 안에서 쓰러트린 위어울프를 보셨을 텐데요?"

"엄청나더군."

"그 정도의 양이라면 어느 정도 구멍 난 수입을 메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죠. 마정석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것은 단지 부의 축적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재앙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까?"

핵심을 묻는 정대식의 질문에 강영후가 물러나 앉았다.

그는 간이 의자에 등을 깊숙이 묻은 채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 대답은 후자다. 이미 말했을 텐데. 난 헌터들의 존재 이유를 바로 세우고 싶다고."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확답을 받고 싶어 물어본 것입니다. 불쾌했다면 사과드리죠."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보단 무슨 이야길 하고 싶은 건지 말해 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제 대원들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 말이 허언이 아님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이미 그 증거를 보셨을 테니까요."

"확실히, 펜리르 부대원들의 스테이터스 등급이 한 단계씩 올랐지. 심지어는 확장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마력량까지 상승했더군."

"그렇습니다. 제 부대원들을 폄하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제 도움으로 강해지지 못했다면 브세슬라브를 잡는 것은 무리였을 겁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울프헤딘을 상대하는 데도 기진해 임무를 중도 포기하고 말았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제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대가로 마정석을 가지고 싶다?"

"그렇습니다. 그 조건을 들어주신다면, 펜리르 부대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은 위험 등급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서 획득할 수 있는 던전 자원이 타이탄 공격대에 부를 안겨 줄 것이니, 마정석의 정산금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는 문제였다.

정대식은 강영후가 이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타이탄 공격대를 탈퇴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마정석 없이는 현질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정대식에게는 갈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강영후가 정대식을 놓치기 싫다면 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정대식이 불공평한 제안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정대식의 말마따나 위험 등급의 던전을 공략해 나간다면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던전 자원의 값어치는 어마어마할 터였다.

강영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자네의 요구는 부당했던 적이 없지. 알겠네. 펜리르 부대가 획득하는 마정석에 한하여,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해 주지. 하지만 의문이로군. 마정석의 보유 여부가 어떻게 전력 증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

강영후는 정대식이 어떻게 마정석을 이용할 작정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대식이 마정석을 개인적으로 가져봤자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껏해야 공인거래소에 판매하여 현금화하는 것인데,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각성자의 전력을 증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타고난 마력량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부단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정대식은 마정석이 펜리르 부대원의 전력 증강 문제와 직결된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니, 내막을 모르는 강영후로서는 장한나와 마찬가지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대식 입으로 그것을 설명하는 건 무리였다.

사실 지금도 아슬아슬한 지경이었다.

만약 강영후가 정대식의 현질 능력을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그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대식은 엄중히 경고했다.

"제가 올인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신 것 같군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능력을 갖고 있는 셈이죠. 그러니 이해할 수 없으실 겁니다. 이해하셔도 안 되고요. 부디 저를 믿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하지 말아 주십시오."

정대식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강영후는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질문을 던졌다.

"올인원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자네는 어떤가?"

"예?"

무슨 소린지 몰라 반문하자 강영후가 입가에 쓴웃음을 띠우고 물었다.

"올인원이 되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했겠지. 그리고 개중엔 자네의 의지도 있었을 거야. 보다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 말일세."

정대식은 입술을 어물거리고 무어라 명확하게 대답을 못했다.

정대식이 올인원이 되려 한 것은 맞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강해지려는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었으니까.

강영후가 그런 것을 경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솔직해질 수가 없었다.

그 가운데 강영후의 물음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까지 강해져서 무엇이 되려는 것이지?"

"......."

"신이라도 되려는 것인가?"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아 정대식은 인상을 찌푸리며 얼른 말했다.

"강해지고자 하는 데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진짜 헌터라면 누구나 강해지기를 추구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정대식으로선 그럴싸한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최희나 기철민을 보면서 느껴 왔던 헌터의 기질, 본능을 자신의 것처럼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강영후가 손깍지를 끼며 느릿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난 궁금하군. 그 강함의 끝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야. 각성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인간을 초월한 강함을 갖고 있는 것인데...... 거기서 끝 간 데 없이 강해진다면? 신이라고 일컬어도 무리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

정대식의 말에도 강영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럼 그 신은 선한 신인가, 아니면 악한 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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