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80화 (180/297)

# 180

현질 전사

-8권 6화

"미심쩍은 부분이라고?"

정대식은 한미란이 해 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귀를 쫑긋 곤두세웠다.

최희의 입에서 과연 무슨 말이 나올지 노심초사해 있는데, 별안간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메뉴판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커피숍에 왔으면 커피를 마셔야겠지, 뭐가 좋을까?"

"커피라면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에 시켜도......."

"이야기가 길어질 거라서 그래."

확실히 커피숍에 들어온 이상 주문도 안 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기는 좀 그랬다.

정대식은 조급함을 억누르고 그녀와 제 몫의 커피를 주문했다.

곧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두 잔 나오고 정대식은 서둘러 목을 축이고 말했다.

"광필두의 어떤 점이 미심쩍다는 것이지?"

그러자 최희가 이야기를 계속하는 대신 전혀 맥락 없는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난리가 났던데?"

"난리? 무슨 난리?"

"스캔들 말이야."

"아, 영은하와......."

"그래, 그거."

최희가 늘어놓는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그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정대식은 그건 아무 근거 없는 기사라고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휴대폰이 삐리리 울렸다.

정대식은 곧장 착신 거절을 하려고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가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연락을 해 온 사람이 다름 아닌 영은하라, 정대식은 최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정대식 씨?

"아, 예. 영은하 씨."

영은하라는 이름을 듣고 곧장 최희의 눈초리가 뾰족해졌다.

"어제 스케줄은 잘 끝내셨어요?"

-네, 덕분에. 그보다......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사가 나와서요.

"아, 그거요? 봤습니다."

-저 때문에...... 죄송해요. 제가 폐를 끼쳐 드린 것 같네요.

"아닙니다. 저보다는 영은하 씨가 더 곤란하셨을 텐데요."

-저는 늘 겪는 일이지만 정대식 씨는 아니잖아요. 좋은 일을 많이 한 분이신데, 제 탓으로 괜한 오해를 사시는 것 같아 죄송해요.

영은하는 괜찮다는 정대식에게 한참이나 사과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혹 기자들이 들이닥치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당부하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내고 정대식은 휴대폰을 품속에 쑤셔 넣으며 사과를 했다.

"미안, 잠시 전화 좀 받느라......."

"영은하 씨라고?"

"그래. 어제 잠깐 마주친 일로 기사가 났으니 미안하다고 연락이 온 거야."

"정말 잠깐 마주친 거야? 실제로 그 애와 만나는 건 아니고?"

정대식은 그렇다고 대꾸하려다가 멈칫했다.

최희의 말투에 날이 서 있어 좀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는 것인데, 영은하 이야기를 꺼내며 추궁하듯이 말을 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정대식은 의자 뒤로 물러앉으며 말했다.

"만나든 아니든, 당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지."

그러자 당장에 최희가 화를 냈다.

"상관할 일이 아니라니! 그럼 내 동생은 어떡할 거야?"

정대식은 갑자기 튀어나온 최선 이야기에 당황했다.

"어떡할 거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앤 당신을 좋아하고 있단 말이야! 순진한 내 동생을 그렇게 꾀어 놓고선 이제 와 아이돌 따위나 만나며 나 몰라라 하시겠다, 이거야? 너, 죽고 싶어?"

정대식은 깜짝 놀라서 두 손을 저었다.

"잠깐만! 내가 언제 그랬다는 거야? 게다가 최선 씨가 날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정대식이 하는 말에 최희는 탁자를 쾅, 내리쳤다.

"그게 아니라면 왜 내 여동생이 그 귀한 마기전을 네게 넘겨줬겠어? 그게 아무한테나 막 주는 그런 물건인 줄 알아?"

"물론 내가 마기전을 받은 것은 맞지만...... 아무튼, 최선 씨는 날 좋아하지 않아."

정대식은 억울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최선이 했던 말을 내뱉어 버렸다.

"언니가 날 좋아하는 것 같으니 안 되겠다고 딱 잘라서 거절했다고!"

최희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어, 언니라니...... 내,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다고? 내 동생이 그렇게 말을 했어?"

정대식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그래, 그랬어."

정대식은 당장에 최희가 길길이 날뛸 줄 알았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내가 어떻게 네깟 놈을 좋아한다는 말이냐, 오히려 네가 날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닌 게 아니냐, 그런 소리를 내며 화를 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최희는 그러는 대신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우와.'

화톳불처럼 귀 끝까지 빨개져 보고 있는 정대식이 다 창피했다.

최희는 시뻘게진 뺨을 손등으로 쓸어 만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 내내내내가 너, 너너널 조, 조, 좋아한다고?"

"......물론 최선 씨가 오해한 거겠지만."

"그, 그래! 오해야, 오해!"

최희는 간신히 본인의 페이스를 회복하는 것 같았으나, 한 번 붉어진 얼굴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말했다.

"내, 내내내가 가, 같이 살자고, 뭐...... 그, 그런 소리를 한 건 사실이지만......."

"알고 있어. 올인원이 될 방법을 찾기 위해서 한 말일 뿐이잖아."

"겨, 결코 널, 널, 조, 조조조조조좋아한다거나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

"아냐, 아냐! 아니라고!"

"그래그래."

정대식은 귀를 후비적거리다 말했다.

"너같이 무서운 여잔 내 쪽에서 사양이다."

그 말에 별안간 최희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 벌겋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래지다니,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다.

그러나 그 덕분에 정대식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아차, 싶어서 "그게 아니고......" 하고 변명을 하려 했으나 이미 늦어 버렸다.

정대식은 다음에 일어난 일을 보고 놀라서 무슨 말을 더 하지도 못했다.

"무, 무서운...... 무섭다고, 내가?"

최희가 크게 뜬 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린 것이다.

순식간에 눈물방울이 크게 부풀어 올라 아래로 줄줄 흘러내려 무슨 안약이라도 때려 부은 것 같았다.

정대식은 소리도 안 내고 우는 최희를 보고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최희가 황급히 얼굴을 가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커피숍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대식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쫓아 나갔다.

"최희!"

정대식은 차 쪽으로 도망치는 최희의 손목을 붙잡아 돌렸다.

그리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최희를 보고 말했다.

"내 말이 상처가 됐다면 미안하군."

"상처라니? 내가 네깟 놈 말에 상처 같은 걸 받을 줄 알아?"

"그렇담 다행이지만......."

최희는 정대식의 손을 확 뿌리치고 달려가려고 했다.

정대식은 그런 최희를 놓아주지 않은 채로 물었다.

"광필두가 뭐 어쨌다는 거야? 하던 말은 마저 하고 가야지."

그러자 최희의 얼굴이 분노로 확 물들었다.

순간 정대식은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컴컴해지는 것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하늘 위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눈앞이 번쩍, 했다.

꽈르르르릉!

"으악!"

눈앞에 치는 번개를 보고 놀란 정대식이 엉겁결에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러자 손이 자유로워진 최희가 기세 좋게 정대식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쫘-악!

정대식의 고개가 홱 돌아가고, 코에서 코피가 팍 터졌다.

"우왁!"

그는 고개가 돌아가다 못해 바닥에 자빠질 듯 비틀거리느라 최희를 놓치고 말았다.

차로 간 그녀는 순식간에 액셀을 밟아 천둥, 번개가 작렬하는 저편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자세를 바로 한 정대식은 입 안에 흥건한 피를 뱉어 내며 중얼거렸다.

"저러니까 무섭지 않고 배겨?"

그나마 따귀 한 대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벼락이라도 맞았다가는 뼈도 못 추렸을 것이다.

한데 왜 최희가 그토록 성을 냈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없었다.

손목을 붙잡고 늘어져서 그랬나?

아니면 사과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아무튼 자연재해 같은 여자라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처량 맞게 천둥, 번개에 이어서 쏟아지는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았다.

* * *

정대식은 최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하여 곧장 장한나에게 연락을 취했다.

대화 도중에 최희가 돌아가 버려 그녀가 하다 만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장한나가 약간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광필두가 제이드 팔머와 접촉한 일을 어떻게 알고 있죠?

"어쩌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광필두가 조만간 팔머 가에 있는 갑옷을 가지러 갈 거라는 게 사실입니까?"

-현재로선 그래요. 그 이유가 아니고선 광필두가 팔머 가에서 열리는 자선 경매에 참가할 이유가 없거든요.

"자선 경매라고요?"

-팔머 가는 매년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자선 경매를 열어 불우 이웃을 도와요. 미국 상류층에 발을 들이고 싶다면 반드시 가야 하는 행사 중 하나로 꼽히죠. 광필두는 아마도 거기에서 7성 무구의 구입을 타진해 볼 거예요.

"구입을 타진한다는 말은, 그걸 돈 주고 사겠다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면 제이드 팔머에게서 갑옷을 얻어 낼 방법이 없죠. 여태까지와는 달리 제이드 팔머는 일반인이니까요.

제아무리 광필두라 하더라도 제이드 팔머에게서 강제로 세븐 스타를 빼앗아 올 수는 없었다.

헌터가 보통 사람을 대상으로 실력 행사를 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일이다.

만약 광필두가 갑옷을 갖기 위해 제이드 팔머를 공격하는 순간, 그는 범국제적인 공적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제이드 팔머는 돈이 아쉬울 리 없는 인물인데, 돈을 받고 그것을 내놓으려고 할까요? 어지간한 가격이 아니면 안 될 텐데요."

-그렇겠죠. 그리고 저희가 확인해 본 바로는 광필두에게 그만한 재산이 있지도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선 경매에 가겠다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 놓은 걸 보면 무슨 협상 카드가 있을 거예요.

광필두가 무슨 수를 써서든 제이든 팔머가 갖고 있는 무구를 가져올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화 된 듯했다.

정대식은 제이드 팔머가 마기전의 다른 파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광필두가 7성 무구를 모아 대서 그런가? 왠지 나도 마기전을 모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런데 그 생각을 장한나 역시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장한나는 수화기 저편에서 말을 꺼냈다.

-제이드 팔머는 정대식 씨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마기전의 다른 파츠를 갖고 있어요.

"예, 알고 있습니다. 레프트 퀴스라고 하더군요. 국가 기물 금고에 있던 라이트 퀴스의 다른 한 짝 말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것을 가지고 싶다고 한다면 저희 부처에서 그 금액을 지원해 드릴 수 있어요.

그건 정말이지 뜻밖의 이야기였다.

정대식은 놀라서 눈을 조금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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