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
현질 전사
-8권 7화
"예상 못한 말인데요? 제게 마기전의 다른 파츠를 사 주겠다고요? 정부에서요?"
-그래요.
"광필두를 견제하기 위함입니까?"
-지금 당장 광필두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니까, 견제라고 말을 하긴 좀 그렇기는 한데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네요. 아무튼, 공짜로 그걸 사 주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조건이 있어요.
"조건이라면......."
-정대식 씨의 펜리르 부대가 맡아 주었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타이탄 공격대를 통해 조만간 전달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거기까지 말을 하고 나자 장한나가 불쑥 질문을 던져 왔다.
-휴가시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별일 없으면 들르지 그래요?
어디를, 어떻게 들르라는 것인지는 명백했다.
장한나는 정대식이 누구와 스캔들이 터지든 눈곱만큼도 신경을 안 쓰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쿨한 태도가 맘 편하기는 하지만, 오늘 최희와 여러 일이 있다 보니 썩 그러겠다는 대답이 안 나왔다.
"달리 예정이 있어서 어렵겠네요."
-그래요, 그럼. 담에 보죠.
장한나에게는 무슨 예정이 있는 것처럼 말을 했으나 실은 아무런 계획도 없었기 때문에, 정대식은 허탈해하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차에 앉은 채로 얼얼하게 아픈 입 안을 살펴보았다.
"아야야...... 완전 진심으로 때렸구만."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노라니 누가 밖에서 똑똑, 차창을 두드렸다.
다름 아닌 엔트로피인지라 정대식은 차 문을 열어 주고 보조석에 올라타는 그녀를 보고 말했다.
"너, 다 보고 있었지?"
<다 보고 있었다는 말은 적합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고 답을 하겠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맞을 짓을 했지? 난 들은 대로 말했을 뿐이라고. 그게 뭐가 그리 큰 잘못이야?"
그러자 엔트로피가 몹시 한심스런 얼굴을 했다.
<정말로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내가 무서운 여자는 취향이 아니라고 말해서 화가 났나? 근데 날 좋아하지도 않는다면 그 말에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없잖아. 설마 진짜로 날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말이야? 그 최희가?"
혼자서 반문을 한 정대식은 스스로 답했다.
"그렇담 내 얼굴을 이렇게 칠 리가 없지. 그리고 무서운 여자라는 말에 화가 났다면 그때 얼굴을 쳤어야지. 왜 광필두 이야기를 묻는 말에 때리느냔 말이야."
<.......>
"야, 그렇게 한심하다는 식으로 쳐다만 보지 말고 뭐라고 말을 좀 해 봐."
<한심하다는 식으로 쳐다본 적 없습니다.>
"그럼 그냥 말을 해 보든가."
<별로 해 드릴 말도 없습니다.>
"왜?"
<말해 봤자 모르실 게 뻔해서요.>
"지금 너, 내가 멍청하단 소릴 하는 거냐?"
정대식이 애꿎은 엔트로피를 붙잡고 화를 내고 있노라니 다시 벨 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공격대에서 지급받은 단말기를 통한 강영후의 연락이었다.
-휴가 기간에 연락해서 미안하군. 괜찮다면 잠시 타이탄 공격대에 들러 줄 수 있겠는가? 상의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정대식은 그게 장한나가 언급했던 자세한 내용과 관련 있는 이야기일 거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곧장 타이탄 공격대로 가겠다고 대답하고 액셀을 밟아 길을 달렸다.
* * *
"잘 와 줬어. 다시 한 번 쉬는 날에 연락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정대식은 강영후의 사무실에 앉아 그를 마주 보았다.
짧게 안부를 물어본 강영후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방금 전에 확관청에서 타이탄 공격대로, 정확히는 펜리르 부대로 공식 임무 요청이 들어왔네."
"무슨 내용입니까?"
"하와이로 가 달라는 내용이더군."
"하와이요?"
정대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와이는 지난 1차 몬스터 브레이크 때 몬스터에게 빼앗겨 아직까지 복구를 못하고 있는 곳이었다.
지구 곳곳에는 이처럼 던전 밖으로 튀어나온 몬스터가 둥지를 튼 바람에 인간이 살 수 없게 된 빼앗긴 땅이 여러 군데가 있었다.
특히 고립된 지역인 섬이나 험지가 그렇게 된 경우가 많았다.
하와이는 개중 대표적인 장소로, 미국에게는 가까운 시일 내 반드시 되찾아야 할 국토였다.
"알다시피 미국은 하와이 주를 수복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 결과, 카우아이와 오아후를 되찾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아직까지 인근의 다른 섬들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지. 그 바람에 간신히 되찾은 섬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번 3차 몬스터 브레이크 때 이 부근의 지역도 피해를 본 모양이야. 군함 여러 척이 소실되었고 호놀룰루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부대까지도 공격당했다더군. 그래서 빠른 시일 내 하와이 제도 전체를 수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
"한데 어떻게 우리 정부에서 그 일을 거들게 된 겁니까?"
"우리에게도 되찾아야 할 섬이 있으니까."
"제주도 말이군요."
강영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울릉도와 독도는 둘째치고서라도, 제주도 역시 하와이처럼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 땅이지. 지금은 완전히 몬스터 소굴이 되어 인간은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어 버렸다지만, 계속해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야. 그런데 이번에 미국 정부에서 몬스터를 대상으로 하는 신무기를 개발했다더군."
"신무기라고요?"
"NNEMP(Non-nuclear EMP, 비핵 전자기파)를 개조해 만들어 낸 것으로, 특수한 전파를 발산해 몬스터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던데? 마력 없이도 말이야. 하와이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무기 덕분이라는군."
"그렇군요."
"그 무기를 도입할 수만 있다면 제주도를 수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지 모르는 몬스터 브레이크로부터 도시를 지킬 수 있게 돼."
"그럼, 우리나라에서 하와이 제도의 수복을 도와주면 그 신무기를 제공해 주겠다는 겁니까?"
"단순히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고 했다는군. 그래서 청와대가 미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확관청에 이 일을 맡겼고, 그게 여기로 오게 된 거지."
정대식은 손깍지를 끼고 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을 저희 펜리르 부대에게 맡겨 주시려는 겁니까?"
"확관청에서 펜리르 부대를 지목해 요청한 일이야. 아마 브세슬라브를 쓰러트렸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것이겠지."
"하와이 제도를 장악하고 있는 몬스터들이 위험 등급 던전의 몬스터들과 견줄 만큼 위험합니까?"
"맞아. 그래서 미 정부 소속의 특수부도 함부로 손을 못 대고 우리나라에 도움을 요청해 온 것이다."
"그렇군요."
강영후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썩 내키는 임무는 아니야. 이 임무엔 성가신 일이 하나 더 따라붙어 있거든."
"그게 뭐죠?"
"괴수 정보실의 몬스터 조사 팀이 따라붙게 될 거야."
"몬스터 조사 팀이라면 예전에......."
"그래. 천군만마 공격대에 의뢰를 한 적이 있는 그곳이다. 몬스터 도감 편찬 사업에 참여를 하고 있지. 외인부대가 그 일을 도맡았던 후에, 타이탄 공격대로 몇 번인가 몬스터 조사 팀의 의뢰가 있었어. 그렇다 보니 미국에 펜리르 부대를 파견 보내는 김에 겸사겸사, 몬스터 조사 팀도 보내려는 거지."
"위험한 곳으로 가는데 성가신 짐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거군요."
"펜리르 부대 외에 외인부대가 추가로 합류하게 될 테지만 성가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게다가 알다시피 던전 밖으로 뛰쳐나온 몬스터들은 쓰러트려 봤자 마정석을 얻을 수가 없어. 아무래도 수입이 줄어들기 마련이지. 미 정부 쪽에서 그런 점까지 감안해 보수를 챙겨 주기는 하겠지만......."
"정부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지원 임무이니 벌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겠죠."
"그래."
정대식은 깍지 낀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실은 이 임무에 대해 미리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래?"
"제가 이 임무를 맡아 주면 제가 보유하고 있는 무구를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더군요."
"그 마기전이라는 무구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 생각엔 광필두를 견제하려는 카드로 저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광필두가 7성 무구 중 갑옷을 획득하기 위해 조만간 미국으로 갈 테니까요."
"광필두가 미국으로 간다고? 7성 무구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어허......."
강영후는 탄식을 내뱉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정대식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7성 무구 중의 하나인 갑옷과 제 마기전의 한 파츠를 제이드 팔머라는 거부가 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하와이 임무를 맡아 주면 그 파츠의 구입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그럼 갈 수밖에 없는 건가?"
"제 생각엔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펜리르 부대로 온 요청이니, 부대장인 자네가 결정하는 것이 맞겠지."
"감사합니다."
"외인부대와 함께 지원 2팀을 딸려 보내도록 하지. 사실 지원 팀을 하나 더 붙여 줘야겠지만 인력이 달려서 말이야. 펜리르 부대가 잡아들이는 몬스터 수가 심상찮아서 지원 팀들의 원성이 자자해. 지원 팀의 수를 늘릴 때까지는 지원 2팀으로 참아 주게. 어차피 미 정부의 요청으로 가는 것이니 필요한 일체는 그쪽에서 제공하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외인부대와 지원 2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단, 임무는 확실히 분리해 주십시오."
"알겠네. 몬스터 조사 팀은 외인부대가 도맡도록 하지. 그럼 휴가가 끝나는 즉시 이 임무의 총 책임자가 되어 떠나도록 하게."
"예."
정대식은 힘차게 대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 * *
하와이 임무를 수락하고 나니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최희의 문제였다.
그녀가 표면상으로는 김태희로 같은 부대에 있으니 어떤 문제가 있으면 임무를 도맡기 전에 해결을 하는 편이 좋을 터였다.
더불어 하다 만 광필두의 이야기도 뭔지 궁금했다.
그래서 연락을 안 받는 최희를 직접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최 씨 자매의 대저택으로 향하는 길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뭘 그렇게까지 잘못을 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뺨을 얻어맞을 이유가 뭐냐고? 사실을 놓고 보면 최희가 나한테 사과하러 와야 하는 거 아냐? 부대장인 내 연락도 죄다 씹고,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야?"
버럭거리는 정대식을 보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엔트로피가 한마디를 했다.
<그럼 굳이 찾아가 만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부대원과 앙금이 있는 상태에서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싫단 말이야."
<그렇담 가서 만나야겠지요.>
"에이잇, 광필두 문제만 아니면 굳이 찾아가기까지는 안 할 텐데. 엔트로피! 정말 너 짚이는 데 없어? 검색으로도 걸리는 게 없냐고?"
<온라인상으로는 광필두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있던 정보도 삭제되고 있는 판국이라.>
"있던 정보까지 삭제가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