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86화 (186/297)

# 186

현질 전사

-8권 12화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워킹 머맨들이 그 펄스에 직격당하자 감전당한 것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며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치 강력한 피어를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거 꽤 쓸 만한데?'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무기치고는 꽤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역시, 몬스터들에게 치명타를 입히지는 못했다.

겨우 수류탄 정도로는 잠깐 놈들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정도였고, 워킹 머맨들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파견대를 향해 뛰어 들어왔다.

그러나 이미 부대원들은 모든 준비가 끝난 뒤였다.

"풍창파벽!"

콰아아아아아!

천강벽수선의 바람이 워킹 머맨들을 휩쓸자 허미래가 곧장 네팅을 시전했다.

외인부대에서도 박무원과 함께 새로운 대원이 기관 산탄총과 땅을 꺼지게 하는 마법으로 워킹 머맨을 쓰러트렸다.

그러나 그 수가 워낙에 많았기에 곧 쓰러진 사체를 넘어 수백 마리의 워킹 머맨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그들을 향해 마주 달려 나가며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러냈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전투다, 가자!"

<알겠습니다. 교란.>

"마기력!"

정대식이 왼 주먹을 바닥으로 꽂아 넣자 마력이 전류와 같은 형태를 띠고 워킹 머맨들의 발모가지를 휘어잡았다.

걸어 다니는 머맨이다 보니 놈들은 실로 우스꽝스러운 꼴을 하고 있었다.

물고기 머리에 인간형의 상반신에다가 물고기의 하체에 짤막한 두 다리가 덧붙은 식이다.

크기는 대략 2m 정도로, 전신이 비늘로 덮여 있고 물고기 주둥이에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 있었다.

등지느러미와 아가미 주변, 배지느러미 주변으로도 가시가 돋아나 있어 아무리 잘 봐줘도 수족관용으로는 무리가 있어 봬는 외양이었다.

간혹 가다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다지 신통한 것은 아니었다.

병사에게서 빼앗은 자동 소총 따위를 들고 있기도 했으나 제대로 쓸 줄을 몰라서 몽둥이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잘 훈련된 상급의 헌터들과는 상대가 안 됐다.

"그워어어어어어!"

3단계 정도로 변신한 소강두가 울부짖으며 어그로를 끌었고, 정대식도 도발과 적의 집중으로 엔트로피와 함께 워킹 머맨의 주의를 붙잡아 놓았다.

그 틈을 타 근딜인 기철민과 김태희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천광비검!"

"거성진화!"

그들이 달려 나가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 피보라가 일었다.

워킹 머맨의 피는 푸른색이라 피보라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부족한 감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들의 활약이 덜해 보였다는 뜻은 아니다.

푸른 피가 잔인함에 대한 감각을 둔화시켜 놓기라도 한 것인지 두 사람은 폭풍같이 워킹 머맨을 휩쓸고 다녔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서 사방에 시체의 언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실력에 나머지 대원들은 그만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나중엔 아예 손을 놓고 두 사람이 워킹 머맨들을 도륙하는 광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달아나는 마지막 한 놈까지 끝까지 잡아 처치한 둘은 곧 푸른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로 대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뭐야, 왜 다들 그냥 보고만 있어?"

기철민은 입에 들어간 비늘 조각을 퉤 뱉어 내며 투덜거렸다.

김태희도 "비린내 나서 죽겠네" 하고 툴툴거렸다.

정대식은 운디네를 불러 그들의 몸을 씻겨 주며 말했다.

"너희 둘이 다 해 먹으니 나머지 대원들은 손 놓고 구경이나 하고 있을 수밖에."

정대식의 말에 기철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잘난 체를 했다.

"워킹 머맨이라니, 이건 뭐, 회 치는 기분도 안 드는데요?"

"전 생선을 싫어해서 저렇게 생긴 놈이 눈앞에 알짱거리는 걸 용서할 수 없어요."

김태희까지 한마디를 거들고 나서자 정대식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그들에게 가까이 서 있던 소강두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중얼거렸다.

"펜리르 부대가 이렇게나 강했다니. 몰랐어. 특히 기철민 너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기철민은 삐딱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왜 기를 쓰고 펜리르 부대에 들어왔는지 이해하겠지?"

"허 참, 그러네."

소강두가 혀를 내두르고 있자 뒤에서 김시온이 그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며 말했다.

"부러우면 너도 펜리르 부대로 가지 그러냐?"

"앗, 아닙니다! 전 외인부대가 좋습니다. 여기서 뼈를 묻을 겁니다!"

"너 같은 골칫거리는 이쪽에서 사양이다."

한마디 면박을 준 김시온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펜리르 부대의 공격력으로 봐서는 굳이 두 부대가 함께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능한 많은 몬스터를 도살하는 것이니 펜리르 부대와 외인부대가 나뉘어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다. 어차피 이 섬이 그리 크지 않으니 거리를 좀 벌려도 상관은 없겠지. 그러나 두 개로 나누는 게 아니라 셋으로 나누겠다."

"셋이라고요?"

"나도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피닉스 공격대가 농장 지대에서 내려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겠다고 했지만, 그쪽은 MFP가 설치될 곳을 방어해야 하니 버겁겠지. 내가 마우나로아 쪽으로 갈 테니 이쪽은 두 부대가 맡도록."

정대식은 고덕화를 손짓해 불렀다.

"나와 합류할 때까지 네가 임시로 펜리르 부대를 맡아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각 방향으로 흩어지자. 30분마다 엔트로피로 통신하겠다. 그럼......."

정대식은 가볍게 땅을 박차 순식간에 나머지 대원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 * *

신속을 써서 내달리던 정대식은 어느 순간엔가 전나무 숲의 그늘이 그를 뒤 따라오는 것 같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그 그림자가 몬스터의 것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 때문이군.'

정대식은 경계심을 풀고 주위로 모여드는 그림자를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어둠 속에 녹아들 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정대식은 마치 물속을 미끄러져 가듯 숲 바닥에 깔린 어둠을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파앗!

과거 파인애플 농장이 있던 곳을 지나쳐 고원에 다다른 정대식은 어둠 속에서 뛰쳐나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화산 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양 떼나 소 떼가 아니었다.

목가적인 장소에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들은 전부 몬스터들이었다.

'온 천지가 몬스터라 주의 확장을 의식할 필요도 없군!'

주위에 인간이라고는 오로지 정대식뿐이었으므로 그는 도발이나 적의 집중을 사용하지도 않은 채 앞으로 돌격했다.

느닷없이 나타난 정대식을 한 박자 뒤늦게 발견한 몬스터 떼가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농경 지대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은 임프들이었다.

놈들은 키에 어울리지 않는 놀라운 점프력으로 꼽등이처럼 펄쩍거리고 뛰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수십 마리 임프가 달려오는 모습이 마치 벼룩 부대라도 되는 것 같았다.

정대식은 쓸데없는 잡몹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숲 속의 어둠을 끌어내었다.

그러자 짙은 그림자가 마치 안개처럼 그의 주변으로 어른거렸다.

정대식은 싸늘한 기운이 뒷목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고 달려오는 임프들을 향해 일갈했다.

"------------!"

크게 한 번 소리를 쳤을 뿐인데, 임프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 서서 파르르르 몸을 떨었다.

흡사 MFP 수류탄이 터졌을 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몇몇 심약한 놈들은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절명하거나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그러지 못한 놈들도 아우성을 치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리자, 거칠 것이 없어진 정대식은 천천히 걸어서 완만한 둔덕을 올라갔다.

그러자 별안간 구름 낀 산봉우리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에 짙은 안개가 찾아들었다.

비릿한 소금 냄새가 맡아지는 그 안개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대식은 삽시간에 한 치 앞도 알아볼 수 없는 안개에 휩싸여 생각했다.

'포그 세이렌인가?'

곧, 안개 속에서 파문이 일어나더니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포그 세이렌의 노랫소리였다.

엄밀히 말해 노랫소리라고 말할 만큼 듣기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미건조한 소음에 불과했다.

물론 정대식이 아무런 무구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맨몸으로 그 소리를 들었더라면 지금처럼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포그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피어와 마찬가지로 지독한 불쾌감과 공포심을 유발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를 걸치고 있는 정대식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가 갖추고 있는 가장 강력한 기능 중의 하나가 피어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였다.

블랙 드래곤에 준하는 몬스터라면 또 모를까?

어지간한 놈의 피어는 정대식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었다.

정대식은 정규 방송이 끝난 TV를 보듯이 지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포그 세이렌의 능력은 이게 다인가?"

굳이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엔트로피가 자신의 존재를 정대식에게 자각시키듯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포그 세이렌은 물리적인 힘도 행사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별안간 짙은 안개 속에서 꿈에 나올까 무서운 여자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꺄아아아아!"

다 썩어 문드러진 얼굴과 날카로운 손톱으로 정대식의 얼굴을 긁으려고 들었으나, 정대식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포그 세이렌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포그 세이렌이 드래곤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겁에 질려 신음했다.

"흐으으으으으."

안개 속으로 도망가는 포그 세이렌을 정대식은 굳이 뒤쫓지 않았다.

그냥, 어둠을 불러 사방에 자욱한 안개를 집어삼키게 했다.

"꺄아아아아아아!"

"흐으으으으으!"

도리어 블랙 드래곤의 공포에 사로잡힌 포그 세이렌들이 사방팔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임프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잡몹들은 상대할 가치조차 없었다.

당분간은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정대식이 굳이 혼자 몸으로 농경 지대에 나온 것은 MFP를 설치할 부대가 목적지에 당도했을 때 피닉스 공격대가 막아 내기에 힘겨울 만한 놈들을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안개가 말끔히 걷히고 어둠을 발밑의 그림자 속으로 내려보내자 다시금 시야가 트여, 가리는 게 없는 농장 지역의 풍경이 아주 잘 보였다.

덕분에 놈들을 애써 찾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언덕배기 위에 우뚝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덩어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저거로군!'

빈 들판에는 갖은 종류의 임프들과 포그 세이렌이 득시글거렸으나 그것들은 수준을 따지자면 2, 3성급에 불과한 잡몹 중의 잡몹이었다.

위협이 될 만한 진정한 골칫거리는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화산 골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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