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현질 전사
-8권 13화
"우어어어어어엉!"
대략 3.5m 정도의 크기에,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새카만 몸뚱이를 하고 있는 돌덩어리가 언덕 위에서 입이라고 할 만한 것을 열어 울부짖었다.
그것은 돌덩이를 쌓아 만든 인형 같은 것으로, 생긴 것은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에다 몸을 붙여 놓은 것과 같았다.
대부분의 골렘 종류들은 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화산 골렘은 다른 골렘보다 더 상대하기가 골치 아팠다.
보통의 골렘들은 무식하게 생긴 외양에 걸맞는 파괴력과 방어력을 자랑하는 편이었으나, 기본적으로는 지능이 좀 달리는 편이라 능력 자체가 대단하지는 않았다.
같은 사이즈라면 거인 쪽이 더 상대하기가 까다롭다는 말이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화산 골렘이나 천둥 골렘, 투명 골렘처럼 특수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골렘이 있었다.
개중 하나인 화산 골렘은 불 그 자체라 일컬어도 될 만큼 자유자재로 불을 다뤘다.
"그워어어어어어!"
언덕 위쪽에 서서 위치상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화산 골렘은 커다란 불덩이를 토해 정대식 쪽으로 던졌다.
그 불덩이는 비탈에 자라난 풀들을 새카맣게 태우며 덩치를 점점 불렸다.
멀리서도 그 열기가 화끈하게 느껴져, 정대식은 즉시 엔트로피를 향해 외쳤다.
"엔트로피, 운디네 소환 스킬을 레벨 10으로 올려, 그리고 곧장 운다인 소환 스킬을 획득해!"
<운디네 소환 스킬을 Lv1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90억을 차감합니다.>
<운다인 소환 스킬을 획득하고 1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다시 운다인 소환 스킬을 레벨 1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엔다이론 소환 스킬을 획득해!"
<운다인 소환 스킬을 Lv10으로 업그레이드하고 90억을 차감합니다.>
<엔다이론 소환 스킬을 획득하고 1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엔다이론, 소환!"
파아아아아앗!
정대식의 눈앞에 푸른 베일로 얼굴을 가린 소녀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딱 봐도 정령이라는 느낌이라 정대식은 그 짧은 찰나에 감탄을 흘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엔다이론이 눈앞에 날아드는 불덩이를 후려쳤다.
콰과과광! 콰아아아아!
불과 물이 맞부딪치며 흡사 폭발이 일어나듯이 굉음이 일었다.
곧 엄청난 열기를 품은 증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엔다이론의 베일이 정대식을 스치자 금세 그 열기가 가라앉아 버렸다.
정대식은 엔다이론의 소환이 해제되지 않은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역시, 상급 정령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
정대식은 불덩이가 소용없게 된 것을 보고 이쪽으로 쿵쾅거리며 달려오는 화산 골렘을 손짓했다.
"엔다이론! 가서 놈을 충분히 식혀 놔!"
쏴아아아아아!
허공에 물살과 같은 흔적을 일으키며 엔다이론이 화산 골렘을 향해 날아갔다.
곧 그녀가 회오리치는 물의 기둥이 되어 화산 골렘을 휩쓸었다.
퍼어어엉!
화산 골렘은 전신에서 폭발하듯 불길을 피워 올렸다.
그 불길이 물의 기둥으로 휩쓸리고 다시금 증기와 폭음이 일었다.
콰우우우우우!
소란이 가라앉고 나서 보니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화산 골렘은 젖은 채로 검게 식어 있었다.
쉬익거리며 아직도 증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는 있었으나 당분간은 불을 피워 올릴 수 없는 게 분명해 보였다.
화산 골렘은 식어 버린 불을 쏴 대는 대신 육탄 공격에 나섰다.
놈은 허공으로 높이 뛰었다가, 굉음을 내며 정대식의 앞에 내려앉았다.
꽈르릉!
바윗덩어리가 허공에서 뛰어내리자 바닥이 요란하게 울리며 풀과 흙으로 뒤덮여 있던 보드라운 땅이 푹 꺼졌다.
그런 식으로 정대식의 코앞에 다다른 화산 골렘은 거대한 주먹을 그에게로 날려 왔다.
정대식은 그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친절하게 똑같은 주먹으로 맞아 주었다.
"강력권!"
강화를 쓸 필요도 없었다.
펜리르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정대식 역시 부단한 훈련을 통해 신체 상태를 최상급으로 끌어올려 놓은 상태였다.
현재 그의 근력 수치는 26, 마력은 42, 체력은 43, 오감은 20, 민첩은 25, 행운도 25였다.
이미 보통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레벨 2에 불과한 강철 신체의 효과도 한층 강해져, 정대식은 금강불괴를 연상케 할 만큼의 몸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주먹도 그냥 주먹이 아니었다.
꽈아아아앙!
커다란 돌덩어리 두 개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농경 지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화산 골렘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천천히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그 주먹에 금이 쩌적, 가며 손등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산산조각 나 부서져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화산 골렘은 반 토막이 난 주먹을 보고 분노의 소리를 내질렀다.
"그워어어어어엉!"
귀를 틀어막아야 마땅한 고함 앞에서도 정대식은 태연했다.
그는 주먹을 뿌득뿌득 어루만지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덤벼라, 돌 더미로 만들어 줄 테니까."
"우어어어어어어!"
다시 한 번, 쩌렁쩌렁한 굉음이 황무지를 가득 메웠다.
* * *
위이이이잉-.
키이이이잉-.
「이쪽으로! 이쪽으로!」
아담 커클랜드는 바지런히 오가는 군인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헬기로 내린 각종 중장비가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들을 밀어 버린 가운데 공병들이 MFP를 설치할 타워를 각 위치에 올리는 중이었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가는 것을 보아하니 여태까지는 계획에 차질이 없는 듯했다.
카마코우로 간 파견대가 제 역할을 잘해 준 모양인지, 헬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가는 와중에도 오아후 시티 주변으로는 이렇다 할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버진 크램이나 임프, 워킹 머맨 따위가 출현하기는 했으나 소수라서 금방 처치할 수가 있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파견대가 시간을 끄는 데도 한계가 있겠지. 몬스터들의 수가 워낙에 많으니 잡몹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지칠 것이다. 만약에 화산 골렘이 여기까지 내려온다면 골치 아파져. 놈들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니 멀리서 불덩어리를 던져 대면 답이 없다.'
사실 아담은 파견대에 그리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았다.
정대식이 올인원이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1세대 각성자인 그가 보기에 정대식은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각성자가 된 것조차 몇 년이 되질 않으니 제아무리 타고난 능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실전은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그가 8성급 몬스터인 브세슬라브를 쓰러트렸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눈으로 직접 정대식의 실력을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 섬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바글거리는 몬스터는 수천 마리다. 그들을 고작 14명의 인원이 상대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이지. 파견대가 다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농장 쪽에서 습격해 올 화산 골렘들은 피닉스 공격대가 방어하는 수밖에는 없어.'
아담은 자신이 쥐고 있는 무기를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니 정찰을 갔던 대원들이 드론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담은 그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주변 상황은 어떤가?」
「현재까지는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잡몹 몇 마리가 얼쩡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나 시끄러운데 다 파견대가 있는 곳으로 몰려갔는지 쥐 죽은 듯 잠잠합니다.」
「방심하지 마라. 놈들이 곧 몰려올 것이다. 경계를 철저히 하고 전투에 대비해!」
「예썰!」
피닉스 공격대는 다른 그 어느 공격대보다 방어 작전에 강했다.
사실 공격대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격대라는 것 자체는 무언가를 방어할 일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자기 몸 하나 지키면 모를까, 궁극적으로는 몬스터를 습격하여 사냥하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피닉스 공격대는 처지가 달랐다.
하와이 탈환 작전의 처음부터 함께해 왔기 때문이다.
호놀룰루에 처음 베이스캠프를 차린 것도, 그것을 방어 기지로까지 키워 낸 것도 피닉스 공격대의 공이 컸다.
그들은 군인들이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최전선에서 몬스터를 막아 내왔다.
그렇기에 공격보다는 방어에 특화된 특이한 성질을 갖게 된 것이다.
작전 구역을 둘러싸다시피 한 채로 늘어선 피닉스 공격대는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오랜 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지칠 법도 한데 단 한 사람도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막연한 의문이 피어오르는 것까지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대원들은 무의식중에 서로를 눈짓하며 말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왜 공세가 없지?'
지금쯤이면 몬스터가 떼거리로 나타나고도 남음이 있어야 했다.
제아무리 파견대가 어그로를 끈다 하더라도 수천 마리나 되는 몬스터들을 일일이 다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화산 골렘 한 마리쯤은 나타났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조용하기만 하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
그 침묵이 점차 피로와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은 아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숲을 쏘아보고 있었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이 침묵이 길조인지, 흉조인지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등줄기에 소름이 쭉 돋았다.
아담은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작적으로 자신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숲 저편에 무언가 있었다.
거대하고, 강력한.......
'어둠이다, 어둠이 이쪽을 보고 있다!'
아담은 어금니를 뿌드득 물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부대장이 의아한 듯이 물어왔다.
「왜 그러십니까?」
아담은 그리 묻는 부대장을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쳐다봤다.
어떻게 이렇게도 둔할 수가!
숲 속에 엄청난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데 전혀 눈치를 못 채다니!
아담은 무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돌격'을 외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아담을 경악하게 하던 어둠이 돌연 숲의 평범한 그림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는 얼굴을 한 사람이 타박타박 태연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
「이쪽은 별일 없습니까?」
아담은 엉겁결에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 말했다.
「저, 정대식?」
「예, 저 정대식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아담은 약간 얼이 빠진 채로 그를 쳐다봤다.
분명 예상치 못한 괴수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정대식이 나타나니까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러자 놀란 기색이 남아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정대식이 상황 설명을 했다.
「아, 성가신 잡몹들을 쫓아내느라고 살기를 좀 뿌렸더니.......」
아담은 몹시 민망한 기분이 되어 표정 관리를 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산 쪽에 있어야 할 분이 왜 이쪽으로 오신 겁니까?」
「거기에서는 파견대가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쪽에서 오는 겁니다.」
「마우나로아 쪽에서요? 혹 화산 골렘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