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현질 전사
-8권 14화
아담은 정대식이 화산 골렘들이 여기로 오는 것을 발견하고 피닉스 공격대를 돕기 위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화산 골렘이라면 나타날 일 없을 겁니다. 방금 전에 다 처치했으니까요.」
「뭐라고요? 화산 골렘을 다 처치했다니......?」
「다른 잡몹들은 수가 많아 일일이 죽일 수 없었지만, 화산 골렘만큼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아담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지적했다.
「화산 골렘을 쓰러트리셨나 본데, 고원에 있는 골렘은 한 마리가 아닙니다.」
「예, 아주 바글바글하더군요. 원래 골렘은 혼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리를 짓는 놈들마냥 수십 마리가 있더군요.」
「그걸 아시는 분이 놈들을 다 처치했다고 허풍스런 소릴 한다는 말입니까?」
정대식이 잘난 체를 하느라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한 아담은 성을 낼 준비를 했다.
그러자 정대식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대꾸를 했다.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전 허풍을 떠는 게 아닙니다.」
「그럼 화산 골렘 수십 마리를 혼자서 다 처치했다는 말입니까?」
「꼭 그러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군요.」
정대식은 그를 못 미더워하는 아담에게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 표정을 보고 아담은 정대식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로 화산 골렘을 한 마리도 안 남기고 다 쓰러트렸다고요?」
「놈들을 놓치기엔 덩치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정확히 38마리. 이 섬에 있는 화산 골렘은 그놈들이 다인 것 같더군요.」
38마리!
아담은 입을 쩍 벌렸다.
그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옆의 부대장 역시도 마찬가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보면 둘이 나란히 턱이라도 빠졌다고 생각할 만한 광경이었다.
정대식은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말했다.
「화산 골렘이라 상대하기가 제법 까다롭기는 했습니다.」
아담은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어떻게 그놈들을 쓰러트린 겁니까?」
「정령의 도움이 컸습니다. 상급 물의 정령이 없었더라면 제아무리 저라도 뜨거운 맛 좀 봤겠죠.」
「상급 정령이라고요? 당신, 정령 술사였습니까?」
「엄밀히 말해서 아닙니다.」
「상급 정령을 부리면서 정령 술사가 아니라고요?」
「모르실 리 없을 텐데요? 전 올인원입니다. 모든 능력을 다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그제야 아담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깨달았다.
올인원이라는 게 어떤 존재인지를 말이다.
올인원이라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모든 능력을 다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각성자라는 뜻이다.
그러니 정령 술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령을 불러내어 수족같이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놀랍...... 놀랍군요. 정령 술사가 와도 혼자서는 그 많은 숫자의 화산 골렘을 상대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예, 정령만으로는 부족했지요.」
제아무리 정령이 화산 골렘의 불을 빼앗는다 하더라도 골렘은 골렘이다.
별다른 능력이 없어도 이미 강하다는 말이다.
그 무식한 주먹에 한 대 맞으면 어지간한 사람은 피떡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다 전신이 강철이나 다름없는 바윗덩이로 이루어져 있고, 엄밀히 말해 생물이라기보다는 무생물에 가까우니 부수기도 쉽지 않다.
놈들을 박살 낼 수 있는 공격력이 있어야지만이 쓰러트리는 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정대식은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그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면서도,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어쨌든 화산 골렘은 염려할 필요가 없으니 작전을 좀 수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내륙 쪽은 저희 파견대가 커버할 테니, 피닉스 공격대는 항구 쪽을 신경 쓰는 편이 좋겠습니다.」
「해안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때였다.
아담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전 구역 반대편에서 고함 소리가 울렸다.
「카니발 옥토퍼스다! 식인 문어가 온다!」
* * *
본디 작전 구역은 해변에서 떨어져 있었고, 해안의 몬스터들은 어지간해서는 내륙 쪽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담도 파견대를 카마코우로 보냈던 것인데, 정대식이 지나치게 일을 잘해 주었던 모양이다.
육상형 몬스터가 대거 도륙당하자 해상형 몬스터가 해안을 벗어나 안쪽으로까지 기어들어 온 것이다.
아담은 황급히 피닉스 공격대 전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버퍼들은 작전 구역 주변으로 방어막을 쳐라! 특히 MFP가 파괴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 그리고 원딜들이 MFP 주변을 지켜라! 탱커와 원딜들은 나를 따라라!」
아담은 방향을 바꾸어 해안 쪽을 향해 달렸다.
그러자 옆에 정대식이 따라붙어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아뇨, 정대식 씨는 후방을 지켜 주십시오. 말씀드렸다시피 여기 몬스터들은 지들끼리 연계해서 마치 군대처럼 작전을 벌일 줄 압니다. 식인 문어를 보내 놓고 배후를 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 분신을 남겨 놓고 가겠습니다. 엔트로피!」
아담은 정대식이 서번트라고 소개한 어린 소녀를 곁에서 떼어 놓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 서번트는 곁에서 떼어 놓아도 되는 것입니까?」
「옆에 붙어 있어야지만 쓸모가 있다면 서번트로서의 활용도가 크게 줄어들죠.」
소환 술사나 연금술사, 마법사 등등 많은 종류의 능력자들이 골렘이나 호문클루스, 패밀리어 등 여러 종류의 서번트를 부리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꼭두각시에 가까웠다.
주체가 되는 마스터가 곁에서 마력을 공급해 주며 일일이 지시를 내려 주어야 하는 관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서번트를 떨어트려 놓는 것을 보면, 그것을 다루는 정대식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소리였다.
덕분에 아담은 다시 한 번 정대식의 능력에 놀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감탄도 잠시.
곧 키 낮은 수풀을 헤치며 우르르 몰려오고 있는 카니발 옥토퍼스가 보였다.
빨간 몸체에 유난히도 큰 머리를 달고 있는 카니발 옥토퍼스는 보통 해변에 득실거렸는데, 놈들이 백사장을 벌겋게 뒤덮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놈들 때문에 인근의 갈매기가 사라질 정도이니 오죽하랴?
그러나 해안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상은 위험하지 않았다.
몸이 항상 젖어 있어야 해서 그런 것인지, 바닷가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버글버글하게 몰려오는 카니발 옥토퍼스를 보아하니, 대단히 잘못된 판단이었던 모양이다.
놈들은 전신을 겔처럼 번들거리는 점액질로 뒤덮어 보호하고 있었다.
거기에 수분을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이다.
'해안가를 못 벗어나는 게 아니라 안 벗어나고 있던 것뿐이었군!'
아담은 이를 갈며 원딜들에게 일제 사격을 명했다.
「퍼부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원딜들이 기관 산탄총을 꺼냈다.
피닉스 공격대는 기본적인 무구와 장비를 통일하고 있었기에, 일제히 총부리를 겨누는 모습이 흡사 군대와도 같았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
곧 총구에서 마력의 새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마력탄이 비처럼 쏘아져 나갔다.
퍼버버벅! 파밧! 퍼벅! 퍽퍽!
카니발 옥토퍼스의 굵직한 다리에 검은 피가 튀어 오르며 놈들이 괴로운 듯 몸을 뒤치었다.
"부그르르르르."
"부그르르르."
한데 이게 웬걸?
놈들의 몸을 뒤덮고 있는 점액질에는 살갗을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기능도 있는 듯 보였다.
피가 솟구치는 자리에서 거품이 끓어오르더니 점액질이 상처를 뒤덮으며 출혈이 멎어 버리는 게 아닌가!
상처를 점액으로 보호하며 카니발 옥토퍼스들이 꾸물꾸물 몰려왔다. 아담은 탱커들에게 MFP 수류탄을 투척하라고 외쳤다.
곧 MFP 수류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휘리리리릭- 빠지지지지직!
카니발 옥토퍼스 사이로 펄스가 흐르며 놈들이 괴로움에 몸을 뒤치었다.
그러느라고 놈들의 진군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 틈을 타 아담은 전투용으로 개조된 작살을 꺼내 들고 탱커들과 함께 앞으로 뛰쳐나가며 말했다.
「정대식 씨!」
「알겠습니다!」
상세한 지시 없이도 적절한 방향으로 달려 나간 정대식은 즉시 관측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을 통해 알아낸 결과, 이놈들의 약점은 머리와 다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눈 사이의 미간이었다.
화산 골렘과 싸우면서 상당량의 마력을 사용했기에, 마력을 마구잡이로 낭비할 수는 없었다.
아직 죽여야 할 몬스터의 수가 수백 마리는 남아 있었으므로, 정대식은 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다중 조준!"
정대식의 눈에만 보이는 포인트가 20마리 카니발 옥토퍼스의 미간에 표시되었다.
아까 화산 골렘과 싸우면서 이미 다중 조준을 레벨 2로 올려 둔 덕분이었다.
"마기장!"
정대식은 왼손을 휘둘러 구슬처럼 작은, 하지만 마력을 한 점으로 압축한 마기장을 날려 보냈다.
그러자 어김없이 포인트로 날아간 마기장이 카니발 옥토퍼스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퍼억!
카니발 옥토퍼스들은 얼기설기 서로가 엉겨 붙어 있어 정확한 지점을 저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몸 크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부위라면 더욱 그렇다.
카니발 옥토퍼스들은 커다란 눈이 양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기에 미간을 맞히기보다는 눈을 맞히게 되기가 더 쉬웠다.
애초에 카니발 옥토퍼스의 사팔뜨기 눈동자는 그다지 기능적이지가 않았기에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정대식의 공격은 놈들의 눈을 비껴가 정확히 미간에 적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력이 압축되어 있는 그 조그만 마기장은 카니발 옥토퍼스의 미간을 꿰뚫고 머릿속으로 들어간 순간, 폭탄처럼 터져 올랐다.
퍼버버버버벙!
카니발 옥토퍼스의 유달리도 커다랗고 둥근 머리통의 꼭대기가 수박처럼 터져 올랐다.
그러자 사방팔방으로 검은 피와 정체 모를 살덩어리, 그리고 새하얀 진주 같은 이빨들이 흩날렸다.
20마리나 되는 식인 문어가 한 번에 그런 식으로 폭사하자 한참 놈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던 피닉스 대원들이 놀라서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아담도 마찬가지라, 그는 폭탄이라도 집어삼킨 것처럼 카니발 옥토퍼스가 곤죽이 되어 버린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어떻게 한 번에 저 많은 숫자를......?'
놀랄 만한 일은 계속됐다.
정대식이 한 번 손끝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계속해서 여러 마리의 옥토퍼스들이 머리가 터져 우르르 죽는 것이다.
정대식은 그런 식으로 혼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식인 문어 떼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으아악!"
그 광경에 넋을 놓고 있던 아담은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탱커 중 한 명이 카니발 옥토퍼스의 다리에 휘감겨 놈에게 집어삼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카니발 옥토퍼스가 그 큰 머리를 열어 거대한 입을 드러냈던 것이다.
쩌-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