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97화 (197/297)

# 197

현질 전사

-8권 23화

정대식은 허겁지겁 두 개를 더 먹었고, 요정의 빵 세 개를 해치우고 났을 땐 방금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되었다.

기아 상태에 이르렀던지라 깡말랐던 몸에 다시금 근육과 살이 차오르며 가히 해골바가지라 할 수 있었던 얼굴도 회복이 되었던 것이다.

더불어 바닥을 치고 있던 신체 상태 수치도 어느 정도 되돌아왔다.

정대식은 남은 빵을 전부 다 먹었고 그러고 나니까 거짓말처럼 허기가 가시며 그의 몸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왔다.

"어, 이거 좋은데? 요정의 빵만 있으면 야마환을 암만 써도 문제가 없겠어. 훈련 전에 먹어 두면 신체 상태를 향상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겠군."

효과가 좋은 것은 확실하지만 식비로 20억을 쓰다니 좀 어이가 없기는 했다.

정대식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링거를 뽑아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바깥이 웅성웅성하면서 곧 문이 열리고 펜리르 부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장님!"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우르르 몰려온 그들을 보고 간호사가 기겁해 달려와 소리를 쳤다.

"환자 있는 데 조용히 해 주세요!"

"아, 괜찮습니다. 다 나았어요."

간호사는 별안간 멀쩡해진 정대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간호사에게 괜찮으니까 나가 보란 식으로 미소를 지어 보인 정대식은 곧 몰려든 펜리르 부대원들을 보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한 명씩 올 것이지 뭐 하러 죄다 몰려온 거냐?"

그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보고 부대원들이 입을 꾹 다문 채로 쪼그라들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김태희였다.

그녀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말했다.

"요전번 대장님의 지시를 무시하고 개별 행동한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기철민과 대장님 사이에 모종의 오해를 만든 것도 제 불찰입니다. 괜한 분란을 일으킨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사과에 기철민이 곧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아닙니다. 앞뒤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멍청한 소리를 한 것은 접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기 무섭게 고덕화도 나서서 입을 열었다.

"......저 또한 잘못이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대장님을 신뢰하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들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나머지 대원들까지 잘못했다면서 고개를 수그려 보였다.

병실 안의 분위기가 침통한 가운데 정대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대원들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나서니 더 이상 모질게 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과 한마디에 마음이 물렁해져 어물쩍 이 일을 넘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정대식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냉정한 투로 말했다.

"너희들의 사과는 받아들이겠지만, 이번 일로 깨달은 바가 있다. 내가 너희들을 끝까지 이끌어 가겠다고 결정한 것은 사실이나, 내 도움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들이 날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라기보다는 판단의 문제이다. 너희들은 앞으로 갖추게 될 능력에 걸맞는 판단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정대식은 집중해서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부대원들의 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나는 몇 가지 용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떠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너희들은 이곳, 호놀룰루 방어 기지에 머무르며 피닉스 공격대를 도와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몬스터들을 박멸하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그 임무를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기를 바란다. 내가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 때, 너희들은 어떤 형태로든 개개인의 발전을 이루어 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보다 더 나은 펜리르 부대가 되기를 바란다."

정대식은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것은 명령이다."

그러자 펜리르 부대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정대식은 그들을 향해 한 번 빙긋 웃어 주고 곧 성가신 듯이 손짓했다.

"그럼 이제 다들 나가 봐. 다른 환자들에게 피해 주지 말고."

펜리르 부대원들은 아쉬운 듯이 미적거리며 정대식에게 과일 보따리나 음료수 팩, 초콜릿 상자 등 먹을거리를 한껏 떠안겨 놓고 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무심코 돌아보니 언제부터인지 아담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뒤늦게 그를 발견한 정대식은 서둘러 그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와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들어오시죠.」

그를 소파에 앉히고 정대식도 맞은편에 앉아서 펜리르 부대원들이 가져온 음료수를 권했다.

그것을 점잖게 사양하고 아담은 정대식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정대식 씨의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서 찾아왔는데 다행히 괜찮아지신 모양이군요.」

「예, 달리 부상을 입은 게 아니라 제가 쓴 능력의 후유증으로 인해 잠시 몸 상태가 악화되었던 것일 뿐입니다.」

「도대체 무슨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시면 그런 꼴이 되는 것입니까?」

아담은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대식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정대식 씨 덕분에 오랫동안 하와이를 지옥 섬으로 만들고 있던 헤르보르가 사라졌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야말로 피닉스 공격대가 파견대 대원인 네크로맨서를 잘 보호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전력을 다한 덕분에 그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한 상태입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지요. 저 헤르보르를 처치하는 데 단 한 사람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니.」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들이 많으니 사상자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아무튼,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제 오랜 숙원을 풀어 주신 것입니다.」

자리에 앉아서도 고개를 숙여 보인 아담은 곧 말을 이었다.

「정대식 씨의 무구는 저희 방어 기지에 있는 대장간에서 보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대식은 조금 걱정이 되어 물었다.

「제 무구는 무사합니까?」

「마기전은 별다른 손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머 같은 경우에는 손상이 좀 있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소 시간이 걸릴 수는 있겠지만 재질이 재질이다 보니, 오래지 않아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담은 말꼬리를 끌며 무언가를 품속에서 끄집어냈다.

그것은 양피지와 비슷해 보이는 재질의 붕대로 둘둘 감아 놓은 작대기였다.

크기는 대략 40cm가량으로, 마치 칼처럼 생겼는데 아담은 그것을 무슨 신줏단지 다루듯이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게 뭡니까?」

정대식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티르빙입니다.」

정대식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티르빙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헤르보르가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헤르보르를 처치하고 남은 것은 이게 유일합니다.」

「그렇군요.」

「제 짐작으로는 적어도 최상급, 그러니까 SSS급의 무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응당 정대식 씨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대식 씨가 헤르보르를 쓰러트렸으니, 그로 인해 획득한 아이템은 정대식 씨의 소유여야 마땅하겠지요.」

「그렇군요.」

정대식은 조심스럽게 그걸 집어 들었다.

무언가 마법적 처치가 되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에 달구어져 있는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아담은 그런 정대식을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이외에도 이곳에서 정대식 씨가 해 주신 일에 대한 합당한 보수는 차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부족함이 없이 지급될 겁니다.」

「어차피 저는 한국에서 특정한 보수를 약속받고 온 것입니다.」

「그와는 별개로 미국에서 정대식 씨께 감사의 뜻을 표시할 겁니다. 부디 사양하지 마시죠.」

사양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정대식은 기대하겠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티르빙도 아공간에 잘 챙겨 넣고 물었다.

「처리 작업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일단 언데드 서펜트 같은 경우에는 네크로맨서의 도움을 받아 해안으로 끌어내어 처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언데드로 만들기 위해 형체를 온전히 남겨 둔 상태인지라, 몬스터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해양 몬스터 자체가 귀한데다가 초대형종이다 보니 전례 없는 일입니다. 동행하신 몬스터 연구 팀과 여기 방어 기지의 연구 팀이 힘을 합치게 될 것입니다.」

「헤르보르가 처치되고 나서 몬스터들의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까?」

「다른 섬은 대부분의 몬스터가 처치되어 조용한 상태입니다만, 하와이 섬에는 온갖 몬스터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상태입니다. 용암 슬라임에서부터 파이어 드레이크, 샐러맨더, 화산 골렘 등등, 각양각생의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리는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놈들을 퇴치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일은 저희 파견대가 남아서 도울 것입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김시온 씨가 임시 대장 역을 도맡을 겁니다.」

아담은 미리 언질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대식 씨가 7성 무구를 모으는 사내를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가렛 양이 동행한다고 들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을 한 명 더 데리고 가시지요. 안내역으로는 가렛 양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위험한 자를 만나러 가는데 호위할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몸은 제가 충분히 지킬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일반인인 가렛양이 함께 가니까 안전을 위해서 보디가드가 한 명 있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제 대원 중에서 한 사람을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몸을 추스르시는 대로 곧장 앤더슨 대위에게 헬기를 준비하여 목적지까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최소한 오늘은 여기에서 푹 쉬시고, 내일 제게나 앤더슨 대위 쪽으로 연락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 *

아담이 나가고 정대식은 도로 병상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티르빙을 꺼내어 만지작거렸다.

'이걸 어떡하지? 내가 써도 괜찮겠지만 내겐 이미 마기전이 있으니까 굳이 필요하지는 않는데. 그냥 경매에 내놔 볼까? 그럼 적어도 몇백억은 수입이 생길 테니까.......'

아무리 정대식이 돈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이런 진귀한 무구를 팔아치우려니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탓도 있었다.

이런 건 한 번 팔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두 번 다시는 구입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대식은 잠시 고민하다가 병실 한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던 엔트로피를 향해 말했다.

"야, 엔트로피. 이 무구는 값어치가 얼마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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