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198화 (198/297)

# 198

현질 전사

-8권 24화

<거래된 적이 없는 무구이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뭐, 이런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볼 방법은 없는 건가?"

<감정 스킬을 획득하시면 됩니다.>

"감정 스킬! 그래, 그게 있었지?"

정대식은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감정 스킬을 획득해 봐."

<감정 스킬을 획득하고 천만 원을 차감합니다.>

정대식은 곧장 감정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감정."

우웅-.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맴돌면서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대식은 감정 스킬을 발동한 채로 티르빙을 바라보았고, 그러자 티르빙 위에 M이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정대식은 기대에 찬 채 더 많은 정보가 나타나길 기다렸으나 애석하게도 그게 끝이었다.

그는 곧장 엔트로피를 돌아보며 불만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고작 급수 표시밖에는 안 되잖아?"

<겨우 Lv1 스킬에서 무엇을 기대하시는 겁니까?>

"쳇, 알겠다. 10억을 써서 감정 스킬을 업그레이드해."

<감정 스킬을 Lv2로 업그레이드하고 10억을 차감합니다.>

"으음...... 감정!"

정대식은 다시 한 번 감정 스킬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티르빙의 성능에 대한 정보가 추가로 떠올라 있었다.

"용암의 결정체로 만들어진 무기. 모든 것을 불태우는 강력한 화염이 깃들어 있다. 사용자의 마력에 따라 그 크기와 형태가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끝이야? 이 정도는 나도 말할 수 있겠다! 이걸 겨우 정보라고......!"

<돈을 좀 더 쓰시는 게 어떻습니까?>

엔트로피의 충고에 정대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구시렁거렸다.

한참을 돈 잡아먹는 괴물이니, 자신이 화수분인 줄 아느냐느니 투덜거리다가 마지못해 30억을 더 투자했다.

<감정 스킬을 Lv5로 업그레이드 하고 30억을 차감합니다.>

감정 스킬에 무려 40억이나 되는 돈을 투자하고 났더니만 좀 후회가 됐다.

'강철 신체나 무적권도 레벨 5가 안 되는데 기껏 감정 따위에 돈을 이만큼이나 쓰다니. 최근 잔고가 넉넉해서 방심했다.'

정대식은 혀를 차며 다시 감정 스킬을 발동했다.

돈을 30억이나 더 투자한 보람이 있어서 그런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상세한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흠! 스킬 업그레이드를 안 했으면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 있기는 하군. 이건 진화 형태의 무구다. 사용자의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성장이 가능한 무구로...... 세상에!'

정대식은 새삼 티르빙을 바라보았다.

'잘만 하면 가드니스급으로도 진화가 가능하잖아?'

티르빙은 총 다섯 단계를 거쳐 그 모습이 변모하는 무구였다.

티클과 티레크를 거쳐 티르빙, 티르브링어, 티르벵거로 진화를 하는데 이건 이미 세 단계까지 마쳐진 상태였다.

두 단계만 더 거치면 가드니스급의 티르벵거로 변하여 신물이 되는 것이었다.

최종 단계의 티르벵거가 되면 영혼까지도 말살시킬 수 있는 지옥 불 중의 지옥 불을 뿜어낼 수 있게 되는 모양이었다.

언데드는 물론이거니와 드래곤까지도 벨 수 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무구라고 할 수 있었다.

'이건 돈을 주고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설령 내가 쓰지 않더라도 갖고 있어야 하는 무구다...... 하지만 이만한 성능의 무기를 쓰지도 않고 처박아 두는 것은 낭비에 가깝지. 걸맞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 제대로 쓰이게끔 해야 해.'

정대식은 문득 생각했다.

'펜리르 부대원들 중 한 명에게 이걸 준다면?'

순간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티르빙을 가질 만한 사람이라면 기철민뿐이겠지. 비록 그가 타고난 능력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그만큼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녀석이다. 내가 준 탈라리아에 티르빙까지 갖추게 된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거야.'

정대식은 티르빙을 만지작거리다가 마음을 정했다.

'지금 당장은 기철민이 티르빙을 가질 만한 인물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제이드 팔머를 만나고 돌아와서 그가 얼마나 강해져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야. 잘못된 사람에게 건네주느니 그냥 아공간에서 썩도록 내버려 두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니까.'

* * *

막상 병실에 누워서 푹 쉬려니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엔트로피가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 주는 것도 아니고 해서, 정대식은 그녀를 돌려보낸 뒤 홀로 병실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한국과는 다른 상쾌한 공기가 주변을 맴돌아 정대식은 산책이나 할까, 하고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래 봤자 방어 기지 안이라서 영 운치가 나지 않았다.

정대식은 그래도 하와이에 왔는데 밤바다라도 구경해 볼까, 하는 생각으로 조금 달렸다.

가볍게 발을 박차는 것만으로도 몸이 몇 미터씩 쑥쑥 달려 나가 순식간에 이름 모를 해변에 다다랐다.

캄캄한 바다에 뭐 볼 게 있으려나 싶었는데, 막상 백사장에 발을 내딛고 보니 마침 만월이 뜬 때라 주위가 제법 밝았다.

정대식은 답지 않게 감상적인 기분으로 모래를 밟았다.

그리고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김태희가 백사장 저편에 서 있었다.

"김태희?"

정대식이 혼잣말을 하자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뭐죠, 설마 절 따라오신 건가요?"

정대식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우연이야. 산책이나 할까 하다가......."

"산책을 하기에는 너무 멀리 나온 거 아닌가요?"

"그러는 넌, 여기까지 웬일이지?"

"마찬가지예요. 잠이 오질 않아서 좀 걷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마침 잘됐군.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뭐죠?"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난 내일 미국 본토로 떠난다. 제이드 팔머의 자선 경매가 열리는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마기전의 다른 파츠를 구하고 광필두를 만나게 될 거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김태희를 보고 정대식이 부탁을 꺼냈다.

"그 여행길에 동행해 줬으면 하는데."

김태희는 뜻밖의 이야기라는 듯 눈을 조금 크게 떴다.

곧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확실히 거기 가서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혼자인 것보다는 둘이 낫겠죠."

"이왕이면 광필두를 확실하게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카드를 들고 가는 게 좋겠지."

"모르는 일이죠. 광필두는 7성 무구를 가진 헌터를 셋이나 처치했어요. 만약 이능을 파괴하는 그의 능력이 사실이라면 저인들 안전하겠어요?"

"슈퍼스타 최희가 우는 소릴 다하는군."

"그 여행길엔 김태희가 아닌 최희가 동행하는 건가요?"

"김태희로 동행하는 게 좋겠지. 최희가 동행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질 테니까."

정대식이 하는 말에 순간 김태희가, 아니 최희가 발끈했다.

"지금 날 골칫거리 취급하는 거야?"

정대식은 너스레를 떨었다.

"어어, 지금 대장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남들 있을 때나 대장이지."

"나를 속이고 내 부대에 들어온 것은 네 선택이었어."

"흥, 그렇긴 하지."

"그래서, 정체를 숨기고 펜리르 부대에 잠입한 보람은 있었나?"

"솔직히 말해서 아직까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나날이 커져만 가는 네 능력에 대해서는 놀라울 따름이야."

최희는 문득 정대식에게 바짝 다가들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강해진 것이지?"

"그야...... 올인원이니까?"

최희가 가까이 다가오자 김태희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도 눈이 어지러웠다.

밤이라 어두워서 그런 것인지 최희는 변장용의 두꺼운 뿔테 안경을 벗고 있었던 것이다.

매번 산발로 묶은 머리도 풀어헤치고 있어서 달빛 아래 떠오른 얼굴에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정대식이 고개를 돌리며 대충 대답하자 최희는 질세라 그의 시선을 쫓으며 말했다.

"특히 엔트로피와 기철민이 합체한 모습은 인상적이었어."

"그렇다면 앞으로의 내 구상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겠군."

"펜리르 부대를 전부 네 마력으로 무장시킬 생각인가?"

"그렇다. 내 구현과 변화 능력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물론 엄청난 마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앞으로 마력량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테니까."

"요즘의 행보를 보면 본인이 강해지는 것보다는 부대원들을 강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던데?"

"어차피 내 부대원들이고 종국에는 내 전력이 될 사람들이니까."

"자신이 가진 능력을 타인과 나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말해 봐, 무슨 속셈이 있는 거야?"

"속셈이랄 것도 없어."

정대식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만의 하나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뿐이다."

"만의 하나의 사태라고?"

"최후의 전쟁...... 그러니까 모든 던전이 터지는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최희는 모르겠지만 정대식은 이미 엔트로피에게 최후의 전쟁에 대한 예고를 들은 뒤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와 같은 재난이 닥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대식이 유별난 정의감이나 사명감을 갖고 있는 탓이 아니었다.

최후의 전쟁에서 지면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니,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

세계가 망해 버리면 돈으로 세상을 갖겠다는 야심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거기에서 이겨야지만이 전쟁에서 창출되는 부와 명예를 가지고 은퇴하여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순전히 본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정대식을 보고 최희는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도 강영후와 비슷한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강영후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래. 강영후는 헌터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잖아?"

"평소에 날 어떻게 보고 있기에 그런 소릴 하지? 강영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정대식이 하는 말을 듣고 최희가 코웃음을 쳤다.

"아니, 강영후와는 완전 다르지. 보통의 헌터와도 다른 사람이야. 분명히 봤거든. 내가 강해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지었던 표정을 말이야."

"내......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 되어 정대식은 찔끔했다.

그는 뒷걸음질을 쳐 최희에게서 거리를 좀 벌리고 말했다.

"......모든 헌터가 다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

"아무튼, 난 느낄 수 있어. 당신이 다른 헌터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거."

최희는 흥미로 눈을 번쩍이며 물러선 정대식에게 다가섰다.

"도대체 당신의 비밀이 뭐지?"

정대식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

그는 거의 자신의 비밀을 말할 뻔했다.

밤하늘에 뜬 보름달과 그 아래 빛나는 최희의 기막힌 미모에 순간 홀릴 뻔한 것이다.

다행히도 혀를 깨물 뻔한 끝에 간신히 나오려던 말을 집어삼켰다.

현질에 대한 것은 결코 말할 수 없었다.

엄청난 대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정대식은 눈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비밀이라니. 난 그런 것 없어."

"그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진짜 목적이 뭐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