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현질 전사
-9권 4화
광필두가 냉랭하게 하는 말에 설유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던 제이드는 다시금 갑옷에 시선을 주는 광필두에게 넌지시 물었다.
「약속한 대로 당신이 조디악 공격대에 갖고 있는 모든 권리를 제게 넘기시겠습니까?」
「그렇다.」
그러자 설유란이 끼어들어 말했다.
「제이드 씨! 이 계약을 취소해주세요. 당신은 조디악 공격대를 가질 수 없어요! 제아무리 공대장이 자신의 권리를 넘긴다고 하더라도, 팀장들과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지분이.......」
「미스 설,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내가 조디악 공격대의 지분을 20%쯤 사들였으니까 말이죠. 그것과 미스터 광이 포기하는 공대장의 지분을 합한다면 조디악 공격대는 온전히 내 소유가 맞습니다.」
「.......」
설유란이 한 방 맞은 표정이 되었다. 정대식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뭔가가 이상했다. 이쯤 되면 리즈가 나서 광필두의 제안을 압도할만한 조건을 제시해야만 했다.
그래야지 광필두가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를 손에 넣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리즈는 팔짱을 끼고 선 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정대식은 그를 곁눈질하며 의문을 떠올렸다.
'무슨 속셈이지?'
설유란이 당혹한 표정으로 물러나자 제이드가 광필두를 보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려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실을 납득하지 못한 공격대원들이 대거 이탈한다면 무늬만 조디악 공격대지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영향력보다 각 팀장의 입김이 더 세니 그들이 독립해버리면 알맹이를 다 뺏기는 셈이지요.」
「그래서, 거래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추가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추가적인 보상이라고?」
「실은 제 컬렉션에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당신이 좀 거들어주면 좋겠군요.」
제이드는 허공에 손가락을 두 번 튕기며 말했다.
「상자 결계 소환.」
슈웃!
아무것도 없던 제이드의 손안에 작은 나무 상자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표면에 마법구가 어지럽게 새겨진 그 나무 상자를 허공으로 집어 던지자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졌다.
"윽!"
정대식은 잠시 비틀거렸고, 곧이어 정신을 차렸을 땐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광필두가 상자 결계라 불리는 네모난 공간에 갇힌 채였다. 그 외 사람들은 바깥에 서 있었는데, 그 상자 결계와 현실 세계가 완전히 나뉘어 있어 무어라 할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이게 대체......?」
의문을 던지는 정대식을 보고 제이드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아, 염려하지 마십시오. 공간이 확실히 분리되어 있으니 결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 밖에서는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제가 어렵게 구한 물건 중의 하나죠.」
바로 광필두가 코앞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완전히 단절된 느낌이 났다. 흡사 조그마한 상자 안에 갇혀 있는 그를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다르게는 이차원의 공간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광필두가 바로 코앞에 서 있는 것과 같았으므로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이 기이했다.
광필두는 상자 안에서 서슬 퍼런 기색이 되어 말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그 시선이 똑바로 제이드를 향하는 것을 보아하니. 결계 안에서도 바깥의 상황을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제가 꼭 얻고 싶은 것이 있으니 거기에 도움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조디악 공격대에 얹어주는 덤이라고 생각해주시죠.」
제이드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담배 케이스 같은 작은 상자였는데, 거기에서 무언가를 쥐어내어 상자 결계 안으로 씨 뿌리듯 휙 던졌다.
「으음?!」
실제로도 씨 같아 보이기는 했다.
자두 씨만 한 하얀 무언가가 상자 결계 안 바닥을 굴렀다. 새하얗고 약간은 뾰족한 것이 꼭 이빨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곧 바닥으로 스스로 파고들더니,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떡잎인가 싶었던 잎사귀와 줄기가 순식간에 커지면서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변했다.
이윽고 그것이 성장을 멈추고 첫발을 떼었을 땐 상아로 만든 병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는 이성이 없었다. 밋밋한 얼굴에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동자만이 박혀있었다. 그것을 보고 설유란이 소리를 쳤다.
"용아병!"
"용아병이라고......?"
그게 뭔지 몰라서 혼잣말을 하자 옆에서 김태희가 짤막하게 설명했다.
"용의 이빨로 만들어내는 병사입니다. 다른 말로는 버서커라고도 부르죠."
"버서커! 그게 용 이빨로 만드는 거였어?"
"모든 버서커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게 원조라고 할 수 있죠. 한번 만들어내면 죽을 때까지 싸우고, 적을 처단한 뒤에도 형제들끼리 싸워 최후의 한 명만을 남깁니다."
"그 한 명이 남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또 다른 적을 찾아 나서죠."
김태희는 제이드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제이드가 얻고자 하는 것은 버서커의 갑옷일 겁니다. 입는 사람을 광전사로 만들어버리는 지극히 위험한 물건입니다만......."
"그걸 얻기 위해서 광필두를 저런 상황으로 만들었단 말이야?"
제이드가 던져 넣은 용의 이빨은 총 일곱 개였다.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버서커가 광필두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김태희는 그쪽으로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단순히 그 목적만은 아니겠지요. 어쩐지...... 광필두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내버려두는 게 이상하다 싶었어요."
정대식은 김태희가 생략한 말이 무언지 알 수 있었다.
'함정이다.'
광필두는 전투 준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는 정대식이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장 차림이었고, 그 어떤 무장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방비한 그를 향해서 버서커들이 돌격했다. 버서커들은 갑옷과 원방패, 그리고 장검으로 무장한 상태였고 보통 사람 두 배쯤 되는 체격을 갖고 있었다. 인간치고는 거한인 광필두를 웃돌 정도였다.
부웅- 콰앙!
광필두는 방패를 휘두르며 칼을 날려오는 버서커들을 피해 몸을 날렸다. 그 체구치고는 대단히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제자리에서 반 바퀴를 돌며 공격을 피한 광필두는 팔꿈치를 날려 버서커의 안면을 가격하고 그대로 다시 반 바퀴를 돌며 주먹을 내뻗었다.
꽈앙!
광필두의 주먹이 버서커에게 직격했으나 몬스터가 달리 몬스터겠는가.
버서커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고 광필두를 향해 덤벼드는데 숫자가 많다 보니 그 공격을 피하기도 벅차 보였다. 그러자 광영식이 제이드에게 고함을 질렀다.
"버서커를 쓰러트려 주길 원한다면서 왜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 거예요? 맨몸으론 불리해요!"
항변하는 광영식을 제이드가 빤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 눈길을 받고 광영식은 움찔했다. 그는 곧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자신의 능력을 쓰려고 했다. 주변에 수두룩한 갑옷들이 그의 마력을 받아 움찔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리즈가 긴 드레스 자락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 광영식 쪽으로 던졌다.
촤아아악!
빛나는 밧줄과 같은 그것이 광영식에게 칭칭 감겼고, 그러자 광영식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크아악!"
비명을 지르는 광영식을 보고 리즈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건 마력에 반응하여 고통을 주는 구속구입니다. 마력만 쓰지 않으면 되니까 섣부른 짓 하지 말아요.」
느닷없는 상황에 정대식은 깜짝 놀라 외쳤다.
「리즈! 어린애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무리 어린애라도 이능을 갖고 있는 이상은 위험합니다. 설유란, 당신도 움직이지 말아요. 오늘 아침 먹은 독을 치료하고 싶다면 말이에요.」
설유란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입을 틀어막은 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나한테 뭘 먹인 거지?」
「바실리스크의 독입니다. 해독제는 상황이 끝나고 나면 지급해드릴 거예요. 설마, 독으로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광필두를 구하려 하지는 않겠죠? 그는 조디악 공격대를 팔아넘기려 한 사람입니다. 당신들을 배신하려고 했다고요.」
리즈가 하는 말을 듣고 정대식은 이 모든 게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이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정대식을 보고 리즈는 정중하게 말했다.
「미리 설명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만, 보안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보안이라니? 이게 무슨 작전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미 정부와 한국 정부의 합의하에, 이것은 미 정부와 한국 정부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작전입니다. 국제 헌터 협회와 각성자 총연맹은 한 개인이 7성 무구를 완성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PCC와 각성자 조직실 주도하에 여기 있는 제이드 팔머 씨의 도움을 받아 광필두 씨를 제거하고 7성 무구를 회수키로 하였습니다.」
정대식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래요. 만에 하나 작전에 착오가 있을 시, 정대식 씨가 광필두 씨를 처치해주셔야겠습니다.」
리즈가 하는 말에 정대식은 어이없는 기분을 느꼈다.
「난 그런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와이 제도의 탈환을 도운 것으로 내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만에 하나의 상황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사실상 정대식 씨의 힘을 빌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저 함정이 광필두를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란 말입니까?」
「버서커는 한 마리가 5성급에 필적하는 몬스터입니다. 그걸 7마리나 상대하려면 어지간한 상태로는 무리지요. 게다가 상자 결계는 결코 깨트릴 수 없는 절대 봉인입니다. 맨몸으로는 저곳에서 살아나올 수 없어요.」
정대식의 얼굴이 절로 찌그러졌다. 제아무리 미래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속여 저런 지경으로 몰고 가다니. 비겁하고 치졸하게 느껴졌다.
「꼭 이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7성 무구는 완성되지 못할 겁니다. 마지막 하나는 행방조차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광필두가 그걸 다 모아서 무엇을 하려는지도 모르는데, 제거를 하다니......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마지막 무구가 실종 상태라고는 하나 찾고자 한다면 못 찾을 것도 없겠죠. 만약 한 인간이 여신급에 달하는 강력한 힘을 손아귀에 넣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한 인간의 의지에만 맡겨둔다는 것은 지나치게 위험한 생각 아닌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일 필요까진 없지 않습니까?」
「저희도 이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모든 협상을 다 거절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7성 무구를 모으겠다고 천명했으니, 제거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단지 그를 제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는 이미 7성 무구를 가진 헌터를 셋이나 무력화시켰습니다.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이능을 잃었고, 마지막 한 명은 이성을 잃어버렸으니 셋이나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 말을 듣고 김태희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이능을 잃다니...... 은퇴한 여진주 씨의 이능이 소실된 게 확실해요?」
리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진주 씨는 앙갚음을 당할까 봐 본인이 이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있었습니다만, 첩보에 따르자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김태희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