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15화 (215/297)

# 215

현질 전사

-9권 16화

열차의 차체 또한 휘청거리고 흔들리며 당장에라도 옆으로 쓰러질 듯했다.

이대로 가만있다가 열차가 전복되기라도 하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게 분명했다.

결국 정대식은 열차 바닥에 손을 갖다 붙이고 가진 마력을 뭉텅이로 짜냈다.

"강화!"

파아아아아아앗!

그와 접촉해 있는 곳에서부터 마력이 번져나가며 푸르스름한 빛이 열차를 감싸 안았다. 열차 칸이 워낙에 여러 개라 열차 전체를 강화하는데 꽤나 많은 마력이 소비되었다.

그러나 정대식의 처치가 효과가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극심하게 흔들리던 차체가 안정되면서 빠르게 속력이 느려졌던 것이다. 그리고 곧, 굉음과 함께 열차가 무언가와 부딪쳤다.

콰앙!

"으아악!"

지붕에 매달려 있던 용병들이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몸이 열차 밖으로 튕겨 나갔으나 와이어가 잡아주어 그들은 대롱대롱 매달렸다.

충돌의 충격으로 열차가 다시 한 번 거세게 흔들렸다. 아마 강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필경 열차가 뒤집히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열차는 넘어지는 대신 충격을 흘려보내고 속도를 마저 줄여 제자리에 멈춰 섰다.

쉬이이이이익-!

열차의 모든 기관이 일제히 김을 내뿜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정대식도 강화를 거두어들이고 몸을 일으켰다.

마력을 다량 소비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는 여유가 남아있었다. 여력이 없었다면 곤란했을 것이다. 열차가 멈춰서는 바람에 코카트리서스 떼에게 따라잡히고 만 것이다.

그 사실을 용병들도 알아차리고 그들은 열차에 묶어두었던 와이어를 풀었다. 그런 뒤 무장을 한 채로 열차 뒤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정대식도 그들을 도우려고 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미하일 소령이 달려와 그를 가로막았다.

「여기 계십시오. 바깥일은 용병들이 해결할 겁니다.」

「나가서 돕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건 그들의 일입니다. 조만간 열차가 다시 달릴 텐데 코카트리서스와 싸우다 보면 낙오될 수 있습니다.」

미하일 소령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철로를 치우는 대로 다시 출발하려는지 기차 앞쪽이 분주해졌다.

아마 기차와 부딪친 몬스터들의 잔해를 치우는 모양이었다. 곧 러시아어로 뭐라 뭐라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술렁거리던 승객들이 제자리에 앉았다. 정대식도 다시금 자리로 돌아가려 했으나 오감이 발달해있는 탓인지 멀리서 용병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일단 그것을 자각하고 나자 피 냄새가 어렴풋이 풍겨왔다.

'안 되겠군.'

정대식은 몸을 돌려 미하일 소령을 밀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곧 펜리르 부대원들도 그를 우르르 뒤따라 왔다. 그러자 미하일 소령이 짜증을 내며 쫓아 나와 그를 붙잡았다.

「곧 열차가 출발할 겁니다!」

정대식은 그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코카트리서스를 전멸시킬 테니 열차를 천천히 출발시키십시오. 부상자들을 놔두고 갈 순 없지 않습니까?」

미하일 소령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 되었으나 입을 꾹 다물고 기관실 쪽으로 갔다. 그를 보내놓고 정대식은 빠르게 달려 코카트리서스와 일전이 벌어지고 있는 열차 끄트머리로 달려갔다. 그러자 제일 뒤에 있는 열차 칸이 난장판이 되어 있는 광경이 보였다.

"끄르르르르르!"

「사, 살려줘!」

「도망쳐!」

코카트리서스 한 마리가 열차 안으로 난입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물어 죽이고 있었고, 앞쪽 칸의 승무원이 제일 뒤 칸과의 연결을 해제하려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나머지 승객들은 앞칸으로 건너가려고 하고 있었으며 앞칸 승객들은 그들이 건너오지 못하도록 문을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서 용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코카트리서스와 한창 싸우는 중이었다.

정대식은 일단 열차 안 상황이 제일 급하다 판단하고 곧장 스킬을 썼다.

"조준."

객실 안에서 난동을 부리는 코카트리서스를 노리고 정대식은 마기전을 쏘았다.

"마기포!"

콰아앗!

일점으로 쏘아져 나간 마기포가 조준을 따라 현란하게 움직이는 코카트리서스의 머리를 정확히 날려버렸다.

퍼억!

코카트리서스의 검은 피가 객실 안에 칠갑이 되고 한바탕 비명이 울렸다. 정대식은 몸을 돌리며 허미래에게 소리쳤다.

"가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승객들을 도로 태워!"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각자 흩어져서 코카트리서스를 죽인다!"

"예!"

펜리르 부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정대식은 용병 한 명을 물어서 집어 던지고 곧 도망치는 다른 용병의 머리를 쪼려는 코카트리서스에게 엔트로피를 날려 보냈다.

"엔트로피!"

<강화 강력권.>

퍼억!

코카트리서스를 주먹 한 방으로 날려 보내는 것을 확인하고 정대식은 또 다른 코카트리서스를 찾아 몸을 돌렸다. 시야에 수 마리의 코카트리서스가 한눈에 들어와 다중 조준으로 모조리 처치해버리려 하는데, 어째 빠른 속도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으음?'

"작품명, 바실리스크!"

이재우가 구현화 한 몬스터, 바실리스크가 코카트리서스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남아나는 게 없었다. 한 번에 세 마리의 코카트리서스를 육중한 몸으로 깔아뭉갠 바실리스크는 코카트리서스 한 마리는 꼬리로 칭칭 감아놓고 다른 한 마리는 통째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우두둑, 우두두둑!

"끼르르르륵!"

남아있는 다른 한 마리는 이재우가 직접 처치를 하고 있었다. 그는 구현화로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는 랜스를 집어 던져 코카트리서스의 모가지를 꿰뚫었다.

콰악!

곧 그 랜스가 부챗살처럼 쫙 펴지면서 코카트리서스의 목을 완전히 찢어놓았다.

촤아앗!

'구현화 한 무기인데 도중에 형태가 변화하는군! 이재우가 새로운 그림 형식을 찾아낸 모양인데?'

정대식이 감탄하는 새 실라이론과 한몸이 되어 움직이는 고덕화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원거리 공격수에 가까워 근거리에서는 취약한 점이 많았는데, 실라이론을 몸에 두르고 움직이자 그 몸놀림이 마치 바람 같았다. 천강벽수선 또한 단순한 부채가 아닌 바람칼을 두른 근접용 무기가 되어 제 위력을 톡톡히 발휘하고 있었다.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으로 코카트리서스를 한번 후려치자 놈의 근사한 벼슬과 깃털이 갈가리 찢겨나갔던 것이다.

쉬르르르-퍼억!

"뀌아아악!"

곧 몸을 한 바퀴 돌린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의 옆날로 코카트리서스의 머리를 목에서 완전히 분리해 놓았다.

쩌억!

실력이 상승한 것은 이재우나 고덕화뿐만이 아니었다. 김송근의 분신들도 열일하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낸 두 개의 분신이 마치 한 팀처럼 움직이는데 효율이 대단히 높았다.

"1호, 2호! 놈들을 잡아!"

분신들의 덩치가 커서 거인이나 다름없다 보니, 코카트리서스가 그 손아귀에 걸렸다 하면 남아나질 못했다.

1호 분신과 2호 분신이 코카트리서스의 모가지와 꼬리를 잡고 잡아당기자 그대로 몸이 두 쪽으로 찢어졌다.

그런 식으로 두 명이 한 마리씩 차례대로 처치하면서 코카트리서스의 수를 착실히 줄여나가고 있었다.

하나 누구보다 압도적인 것은 다름 아닌 서지원이었다.

그는 습격해오는 코카트리서스를 향해 어떤 짓도 하지 않았다.

겉보기로는 그냥 그래 보였다. 덤벼드는 코카트리서스를 보고 피하지 않는 모습에 용병들이 소리를 질렀다.

「뭘 하는 거야!」

「피해!」

하지만 그에게로 돌진해가는 코카트리서스는 도중에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몇 마리가 달려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서지원이 리치 써클렛을 이용해 닥치는 대로 코카트리서스의 사력을 흡수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마력 흡입."

쏴아아아앗!

"크에엑!"

"캬앗!"

코카트리서스는 단말마를 내지르며 제자리에서 거꾸러져 그대로 죽었다. 그 광경을 보고 용병들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이라면 몬스터에게서 흡수한 사력을 소화해내지 못하여 본인의 마력이 오염되어버렸겠지만 지금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의 살갗이 코카트리서스의 깃털처럼 푸들푸들 일어나고 있어도 평온한 모습으로 흡입한 사력을 도로 쏟아냈다.

"캬아앗!"

서지원의 위력을 보고 주춤거리던 코카트리서스에게 일시에 그 사력을 모조리 쏟아 넣자, 그걸 감당하지 못한 코카트리서스가 풍선처럼 펑! 하고 터져버렸다.

촤아아악!

"윽."

정대식은 사방팔방에 코카트리서스의 잔해가 비산하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비처럼 쏟아지는 코카트리서스의 피와 살점 사이에 고요히 서 있는 서지원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으스스하기까지 했다.

'다들 하와이 제도에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던 모양이군.'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정대식은 문득 빈자리를 느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기철민은 어디로 갔지?'

정대식은 즉시 엔트로피를 날려 보냈다.

'혹시 기차 앞으로 갔나?'

신속하게 앞쪽으로 날아간 엔트로피를 통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정대식은 기차 앞머리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는 몬스터의 정체를 깨닫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트롤! 기차에 치인 것이 트롤이었나! ......게다가 저건 이두 트롤이잖아?'

트롤은 놀라운 재생력을 가지고 있어 처치하기가 골치 아픈 몬스터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회복이 빠르다 하더라도 머리가 약점이라 거길 베어버리면 그대로 죽어버리곤 했는데, 간혹 가다가 이두나 삼두와 같은 기형 트롤이 나타나고는 했다.

이런 놈들은 여러 개의 머리 중 하나가 베여도 나머지가 살아있어서 처치하기가 더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상황인지라, 덩치가 산만한 이두 트롤이 기차에 치인 몸을 빠르게 회복하고 철로를 복구하려던 작업자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기철민이 거기서 홀로 트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다소 버거워 보였다.

"천광쇄도!"

기철민은 트롤의 머리를 베어버리려 애를 쓰고 있었으나 그게 두 개다 보니 쉽지 않았다. 단번에 트롤 머리 두 개를 다 베어버려야 하는데, 트롤이 바보도 아니고 머리를 베어주십사하고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기철민은 트롤이 기차를 엎어버리거나 파괴하지 못하도록 그것을 가로막은 채 서 있었으므로,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았다.

정대식은 즉시 몸을 날려 기차 앞쪽으로 향했다.

'내가 가야겠군!'

신속 스킬로 순식간에 열차 앞머리에 도착한 정대식은 트롤을 상대로 애를 먹고 있는 기철민을 향해 소리쳤다.

"기차는 내가 지킬 테니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싸워라!"

과연, 기철민이다.

그는 정대식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쓸데없이 뒤를 돌아보거나 하는 낭비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즉시 몸을 날려 이두 트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가 땅을 박차는데 정대식에게서 받은 아이템, 탈라리아가 빛을 발하며 그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공중에 높이 떠오른 기철민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처럼 이두 트롤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천노참격!"

꽈과과광!

그가 불러일으킨 마력이 검기처럼 칼에 덧씌워지며 공기가 마찰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트롤은 머리 위로 팔을 엇갈려 그 공격을 막아냈다.

쩌억!

촤앗!

살과 뼈가 갈라지며 피가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잘린 이두 트롤의 두 팔이 바닥을 구르고 바닥에 착지한 기철민이 얼른 거리를 벌리며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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