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현질 전사
-9권 19화
「아직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만한 거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수가 많군요. 대략.......」
정대식이 말끝을 흐리자 미하일 소령이 재촉했다.
「대략 몇 마리쯤 됩니까?」
정대식은 대답을 내뱉으며 차 문을 벌컥 열었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말을 신호탄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안갯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차에 퍽퍽 소리를 내며 부딪쳤던 것이다.
점액질과 같은 그것이 차 바퀴에 엉겨 붙자 기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차가 덜컹거리며 흔들리다 제자리에 멈춰 섰고 급하게 달리던 뒤 차량은 그만 전복되고 말았다. 그러자 차 문을 박차고 거기에 타고 있던 부대원들이 뛰쳐나왔다.
"풍류운산!"
고덕화가 천강벽수선을 휘두르자 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비안개를 밀어냈다. 그러자 우르르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는 몬스터가 보였다.
「보댜노이!」
미하일 소령이 보댜노이라 부른 그 몬스터는 묘하게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개구리 형상의 이족보행형이었는데, 크기가 대략 1.5~2m 정도가 됐다.
민머리는 녹색이었고 전신은 풀뿌리 같은 갈색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가랑이 사이에서 그 묘한 점액질이 덩어리지고 있었다. 적당한 크기가 되면 놈들이 그걸 떼어내 이쪽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그만 군인 한 명이 거기에 직격당하고 말았다.
「우웁......!」
점액질이 군인의 머리를 뒤덮고 그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몸부림을 쳤다. 그런 그에게 허미래가 재빨리 달려가 처치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없애기가 쉽지 않은지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결국 군인의 숨이 넘어가려고 들어, 기철민이 뛰어가서 점액질에 티르빙을 들이댔다.
치이이이익!
티르빙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에 점액질이 타들어 가고 마침내 군인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점액질이 사라지기 무섭게 허리를 기역 자로 꺾고 꾸역꾸역 녹색의 액체를 토해냈다. 그러는 동안 보댜노이떼가 코앞까지 들이닥쳐 난전이 벌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벌어지려고 하다가 말았다.
"천수일도!"
콰과과과과과----아아아아앗!
기철민이 앞으로 발을 크게 내디디며 티르빙을 가로로 휘둘렀다. 그러자 티르빙에서 뻗어 나온 불타는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보댜노이 떼거지를 덮쳤다.
그러기 무섭게 보댜노이의 몸뚱이가 절반으로 갈라져 우르르 쓰러졌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바닥에 고여 있던 빗물이 증발하며 엄청난 양의 증기가 일었다.
푸확!
증기가 가라앉고 난 자리에는 찜솥에 들어앉은 개구리처럼 익어버린 보댜노이가 줄줄이 죽어있었다. 미처 검기가 닿지 않은 곳에 있던 보댜노이들도 그 증기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피부에 화상을 입고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굴렀다. 아무래도 불에 약한 모양이라 정대식은 화염 스크롤을 몽땅 끄집어내고 고덕화를 불렀다.
"고덕화!"
"예!"
스크롤을 보고 즉시 그의 의향을 깨달은 고덕화가 기술을 준비했다. 정대식은 그의 앞으로 나서 화염 스크롤을 한 번에 북 찢었다. 그러자 용의 불길처럼 뜨거운 화염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튀어나왔다.
콰르르르르르르!
거기에 고덕화가 실라이론을 불러내어 천강벽수선을 휘둘렀다.
"풍조우순!"
실라이론이 일으킨 메마른 바람이 화염을 싣고 날아가며 그 기세를 배로 불려놓았다. 뜨거운 열풍이 남아있는 보댜노이들을 덮쳤고,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최소 수백은 되는 보댜노이 떼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도망쳤다.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된 것을 보고 미하일 소령이 어렴풋이 감탄의 기색을 드러냈다.
「과연...... 올인원의 위명이 헛된 것은 아니었군요.」
정대식은 그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는 별 힘도 쓰지 않았습니다. 다 제 부대원들이 한 일이죠.」
미하일 소령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부대원들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가 쳐다보는지도 모르고 이재우나 김송근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기철민에게 몰려가 그가 받은 무구가 대체 뭐냐고 캐물어 댔다.
기철민은 지나치게 자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쌀쌀맞게 그들을 뿌리쳤다. 그런 뒤 군인들을 도와 쓰러진 차를 일으키고 점액질을 제거하여 여행을 재촉했다.
Chapter 55. 계속되는 위험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황량한 벌판을 한참 동안 달린 끝에, 차는 깊은 숲 속에 들어섰다.
해가 져서 완전히 사방이 깜깜해진 데다가 숲 속인지라 길이 험했으므로 동이 틀 때까지는 야영을 하기로 했다.
군인들이 신속하게 천막을 치고 잘 준비를 했으나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야숙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날씨였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비가 점점 진눈깨비로 바뀌고 있어 추위도 더해지고 있었다.
결국 정대식이 마력장을 넓게 펼쳐 천막 주위를 감싸 바람과 냉기를 막았다. 미하일 소령은 머리 위에 드리운 마력장을 보고 약간은 꾸짖는 기색으로 말했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마력을 낭비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물론 정대식은 신경 쓰지 않았다.
「쉴 땐 제대로 쉬어야죠. 괜히 고생하다가 싸울 때 못 싸우게 되면 곤란합니다.」
그들은 간단히 식사를 하고 차를 끓여 마셨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정대식이 도시에서 비상식량과 맞바꾼 술을 꺼내 한 모금씩 돌려 마시고 몸을 데웠다.
불침번은 군인들이 돌아가며 서기로 했기에 부대원들은 전원 침낭 속에 기어들어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앞서 이재우가 볼일이 마렵다며 슬그머니 일어나 마력장 밖으로 벗어났다.
정대식은 금방 돌아오겠거니 하고 자리에 누웠다. 한데 눈을 감고 한참을 있어도 이재우가 돌아오는 기색이 없었다. 정대식은 혹시나 싶어서 엔트로피를 불러내 말했다.
"이재우 그 녀석이 뭘 하고 있는지 좀 보고 와."
<알겠습니다.>
엔트로피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눈을 감자 링크된 시야가 보였다.
캄캄한 숲 속에 이재우가 우두커니 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왜 그러나 싶어 엔트로피가 가까이 다가가자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보였다.
"......!"
정대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런 그를 보고 미하일 소령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정대식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쉽사리 자리에서 누울 수 없었다. 이재우가 목이 없는 시체들이 까마득히 높은 나뭇가지에 꼬치처럼 즐비하게 꿰어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해 있는 탓이었다. 정대식은 의식을 보내어 말했다.
'돌아오라고 해.'
<돌아오십시오.>
엔트로피가 느닷없이 말을 걸자 이재우는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다. 그가 허둥지둥 몸을 돌려 달려오는 것을 보고 정대식은 미하일 소령을 보고 말했다.
「장소 선택이 나빴던 것 같습니다. 이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긴 안전하지 않습니다.」
「안전하지 않다뇨? 충분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만.......」
「머리 위는 보질 않으신 것 같군요.」
정대식은 서둘러 침낭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쯤 땀범벅이 된 이재우가 당도해 헛소리를 했다.
"대장님! 보, 보셨습니까? 나, 나, 나무 위에 시체가......!"
"봤다. 아무래도 몬스터가 있는 것 같군. 자릴 옮기는 편이 좋겠어."
그러기가 무섭게 멀리서 불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꽤애애애애애액!"
머리 위로 숲에 드리운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어둠에는 횃불처럼 번뜩이는 두 개의 눈이 있었다. 그걸 보고 미하일 소령이 악을 썼다.
「그리핀, 그리핀이다-!」
* * *
콰과과과과!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날아들었다.
우두둑, 우두둑!
숲 나무의 잔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불타는 안광이 마력장 안에 있는 인간들을 훑었다.
'크다! 얼핏 봐도 최소한 6성급 이상은 되어 보이는군!'
이놈의 러시아는 어떻게 된 일인지 몬스터가 나타났다 하면 5성급 이상인 것 같았다. 정대식은 마력장을 강화하여 방어막을 치고 그리핀의 공격을 막아냈다.
"뀌에에에에엑!"
고막을 찢어놓는 그리핀의 울음소리가 사납게 울리며 놈의 발톱이 마력장을 후려쳤다.
카강!
무슨 포클레인 같은 발톱이 마력장을 후려치자 날카로운 소리가 나면서 마력장이 우우웅 흔들렸다. 동시에 그 충격이 고스란히 정대식을 강타했다.
"윽!"
퍼드드득!
제자리에서 날갯짓을 한 그리핀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금 마력장을 공략했다.
놈의 금강석처럼 단단해 보이는 부리가 마력장의 정수리로 내리꽂히자 일점으로 강타하는 강력한 충격에 결국 마력장이 파훼 되고 말았다.
"으윽!"
파앗!
마력장이 사라져버리기가 무섭게 그리핀의 발톱이 우와악 하고 쓰러지는 일행들을 덮쳤다. 놈이 한 번에 세 명이나 되는 군인들을 낚아채 날아오르려는 걸 허미래가 가로막았다.
"네팅!"
그리핀의 발목에 그물이 휘감기고 그 틈을 타서 기철민이 그리핀의 발목을 후려갈겼다.
쩌저정!
티르빙이 아니었더라면 흠집 하나 내지 못했겠지만, 티르빙이었기에 발목이 반쯤 갈라지며 금빛의 비늘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파바밧!
"캬아아아아!"
분노한 그리핀은 도망치는 대신 곧장 부리로 기철민을 쪼려고 했다. 그것을 김송근이 황급히 막아냈다.
"1분형 거상!"
그가 만들어낸 거대 분신이 그리핀의 목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러자 그리핀이 세차게 날갯짓을 했다.
파악!
그리핀의 날개 깃 끄트머리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것이 김송근의 분신을 종잇장처럼 북 찢어놓았다. 순식간에 김송근의 분신이 제자리에 흩어져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서지원이 나서 그리핀의 주위를 흩트려 놓았다.
"공간 왜곡!"
"교란!"
정대식까지 가세해 그리핀을 훼방 놓는 사이 고덕화의 백년풍진이 놈을 휩쓸고 지나쳤다.
우수수수!
그리핀의 깃털이 뽑혀나가 사방팔방에 흩날렸으나 치명상이 되지는 못했다. 그리핀은 분노해 날개를 거세게 휘둘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후욱!
놈이 한번 날개를 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바람이 일었다. 그러자 허공에 뜬 그리핀이 제자리에서 세차게 날갯짓을 하면서 피어가 분명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피이이이이이이이잇!"
콰과과과과과과과과!
그리핀의 날개 밑에서 소용돌이와 같은 날카로운 바람이 일어 일행을 덮쳤다.
우둑우둑!
사방팔방의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굵은 나무뿌리마저도 들썩이는 게 보였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전부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채 날려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 군인들이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허공을 날았다.
"으아아아악!"
그러기가 무섭게 그리핀의 꼬리가 날아들었다.
쉬쉬싯!
마치 표창과 같이 끝이 날카로운 꼬리가 허공을 나르던 군인들을 조각내놓았다.
파바밧!
사방팔방에 피와 살점이 비산했으나 바람에 몽땅 날아가 버려 흔적이 없었다. 순식간에 부하들을 셋이나 잃어버린 미하일 소령이 이성을 잃고 제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하일 소령!」
정대식이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소용없었다. 곧 미하일 소령의 모습이 변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