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20화 (220/297)

# 220

현질 전사

-9권 21화

「폐허를 지나치면 본격적으로 몬스터들이 덤비는데 성채 주위 안개에 숨어있는 루살까들이 가장 골치 아픕니다. 이놈들은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자와 같지만 하반신은 보통 온갖 괴물과 결합해 있지요. 미인계를 쓰는데다가 공격할 때마다 끔찍한 비명을 지르니까 역시 조심해야 합니다. 이 루살까들이 버티고 있는 안개 지대를 지나고 나면 비로소 성채가 나타날 겁니다.」

「성채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겠군요.」

「성채의 입구는 지브리니스라는 거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얼굴은 해골과 같고 손에 낫을 들고 있어 전형적인 사신의 모습을 하고 있지요. 이놈이 휘두르는 낫에 얻어맞으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갑니다. 성벽 위에 있는 바바야가가 이 영혼을 가져가는데 그리되면 두 번 다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성벽 위에 묶인 노예가 되어버리니까요.」

「그 바바야가라는 몬스터는 어떤 종류입니까?」

「마녀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력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한 마리가 수천 마리를 맞먹지요. 성급으로 따지자면 8성급 정도는 될 겁니다. 이것들이 성벽 위에 버티고 서서 쉴 새 없이 공격을 쏟아내니 성벽에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성벽에 가까이 다가간다 하더라도 바바야가가 강탈한 영혼으로 만든 노예들이 끓는 피와 기름을 들이부으니 성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성문은 지브리니스가 지키고 성벽은 바바야가가 지키고 있다는 거군요.」

「이 성채는 단 한 번도 뚫린 적이 없습니다. 모스크바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헌터들이 도전했지만 누구도 피의 왕자 포로녜치를 쓰러트리고 이곳을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이지요.」

미하일 소령이 경고하는 말에 정대식은 쉬이 답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포로녜치의 성채에 다다르는 것은 사흘 뒤라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미하일 소령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뭐가 충분하단 겁니까?」

정대식은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었다.

「펜리르 부대원들이 강해질 시간 말입니다.」

* * *

퍼어억!

"뀌에에엑!"

파악!

"캬아아아!"

사방팔방에서 마력의 빛이 번뜩이며 몬스터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주위가 온통 몬스터로 둘러싸인 가운데 펜리르 부대원들과 군인들이 필사적으로 놈들과 싸우고 있었다.

폴레비크라고 불리는 몬스터가 그들을 덮치고 있었는데, 이들은 마치 허수아비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쩍 마른 몸에 지푸라기가 달라붙은 것 같은 머리를 하고 흰 누더기와 같은 털로 감싸여 있었다.

이놈들은 마치 수탉 같은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집어 던졌는데 여기에 맞으면 술에 취한 것처럼 잠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럼 가까이 다가온 폴레비크가 봉두난발을 한 머리를 쩍 벌려 세모꼴의 길쭉한 입으로 머리를 물어 씹었다.

턱 힘이 상당히 세서 한번 물리면 두개골이 통째로 터져나갔다. 양쪽에 덜렁거리는 팔도 허술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위협적이었다.

이놈들은 날카로운 손가락을 먹잇감의 뱃속에 밀어 넣어 내장을 단번에 발라내는 재주가 있었다. 이런 놈들이 떼로 덤비니 다들 안 죽으려고 이를 악문 채로 싸우고 있었다.

물론, 제아무리 위협적이라고는 해도 4등급 수준의 몬스터인지라 단번에 몰살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상태증진 스킬을 통해 마력량만 50으로 뛰어오른 정대식이라면 마기력으로 단숨에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지 않고 난전이 벌어지도록 놔둔 것은 펜리르 부대원들이 대상지정 상태증진 스킬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스킬이 발동해 있을 때는 가급적 신체 활동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편이 효과가 좋았다. 그래야지만 한계치까지 소모된 기력이 다시금 회복되면서 그 최대치를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대식의 훈련은 언제나 혹독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실전인지 훈련인지 판가름할 수 없는 아수라장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천리동풍!"

퓨부부부부붓!

고덕화가 날린 바람 화살이 몰려오는 폴레비크를 휩쓸자 그 자리를 이재우가 만들어낸 구현체가 덮쳐들었다.

그가 구현화 한 것은 마치 거대한 도깨비처럼 생긴 거인인지라 허수아비와 같은 폴레비크를 흩어버리기에는 제격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거대한 방망이로 놈들의 몸뚱이를 후려치니 빠가가각 뼈 부러지는 소리가 울리며 폴레비크들이 허공으로 날았다.

그럼 고덕화의 실라이론이 그들을 더 높이 날려 보내버렸다.

"좋았어! 계속 간다!"

고덕화와 이재우가 의외의 조합을 이루는 가운데 혼자서도 서너 명의 몫을 해내는 인물도 있었다. 정대식이 준 리치 써클렛을 사용하게 된 후로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하게 된 서지원은 전장 한가운데를 누비는 사신과도 같았다.

서지원은 닥치는 대로 마력을 흡입하며 폴레비크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폴레비크가 별 힘도 쓰지 못하고 진짜 허수아비처럼 우수수 쓰러져 버렸다.

몬스터에게서 흡수한 사력이 서지원에게 악영향을 미칠 법도 하건만, 하와이에서 무슨 방법을 찾기라도 한 것이지 그는 그것을 쉬이 소화해내고 있었다.

정대식이 준 아이템의 득을 많이 본 사람은 또 있었다. 다름 아닌 허미래였다. 그녀는 메이크 오버 덕분에 디버프와 버프의 능력을 한 번에 갖게 되었다. 그런 데다 본디 다양한 종류의 능력을 갖고 있다 보니 그 활약이 두드러져 보였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허미래의 디버프로 발이 무거워진 폴레비크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김송근의 거대 분신들이 그놈들을 박살 내놓았다.

김송근은 오직 두 채의 거대 분신만을 운용하고 있었는데, 네피림 블레스트 플레이트의 효과로 인해 그 크기는 이재우가 구현화 한 도깨비를 능가하는 규모였다.

그야말로 집채만 한 분신들이 폴레비크를 짓밟고 돌아다니니 김송근의 형태를 하고 있는 재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분신들이 데미지를 입을 만하면 허미래의 힐이 뿌려져 거의 무적에 가까운 조합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부쩍 달라진 인물은 기철민이었다. 그는 티르빙을 얻게 된 후로 범에 날개를 단 듯했다. 탈라리아로 가벼워진 몸으로 폴레비크의 머리 위를 넘나들며 티르빙을 휘두르면 폴레비크 수십 마리의 모가지가 떨어져 달아났다.

누가 보면 몬스터가 아니라 허수아비와 싸운다고 할 만큼 폴레비크가 그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폴레비크 무리가 그들을 덮친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전멸을 하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고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던 군인들과 미하일 소령이 그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하와이 제도를 탈환했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강 짐작하기는 했습니다만...... 굉장하군요.」

그의 칭찬에 정대식은 잘라 말했다.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 당도하기까지 부대원들이 강해질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부대원들의 실력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은데요.」

「기분 탓이 아닙니다. 펜리르 부대원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 성과는 성채에 다다랐을 때 확인해볼 수 있겠지요.」

미하일 소령은 그들의 실력을 보고 정말로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은 듯했다.

처음에는 블라디미르 대령의 명령을 받고 정대식을 따라오기는 했으나 그가 허튼짓을 못 하도록 감시한다는 기분이 컸던 것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정대식은 외국인이니 반드시 러시아 정부의 편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해관계에 따라서 얼마든지 듀라한과 손을 잡고 정권을 가로채려 할 수도 있으니, 정대식이 반군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려 하는 정대식의 태도가 진지하고 펜리르 부대원의 놀라운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모든 러시아인의 열망이라 할 수 있는 국토의 수복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처음에는 딱딱하던 미하일 소령의 태도가 매우 우호적으로 변했다.

「앞으로도 이런 전투가 여러 차례 반복될 겁니다. 이 근방은 이미 몬스터에게 잠식당해서 민가가 남아있질 않습니다.」

정대식은 미하일 소령이 우려하며 하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입니다. 많은 수의 몬스터가 부대원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러시아어로 이루어진 그 대화를 부대원들이 들었더라면 얼굴이 홀쭉해졌을 것이다.

그 이야기인즉슨, 어떤 몬스터를 만나든지 간에 정대식이 직접 나서지 않고 그들을 굴릴 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Chapter 56. 암해

"으아! 죽겠다!"

이재우가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벌렁 드러눕는 바람에 하마터면 기철민이 거기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기철민이 이를 드러내며 "비켜라. 밟고 간다."라고 하자 이재우가 바닥을 뒹굴거리며 어울리지 않게 앙탈을 부렸다.

"시러시러! 힘들어서 꼼짝도 못 하겠다고!"

"어디 진짜로 그런지 보자."

기철민이 얼굴을 사뿐히 즈려 밟으려 하자 이재우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오만상을 쓰며 죽겠다는 소리하길 그치지 않았다.

그러는 사람은 이재우뿐만이 아니었다. 김송근도 지쳐서 나자빠진 상태였고 서지원은 얼굴이 노랗게 뜬 채였다. 고덕화마저 고개를 처박은 채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있었으니 그들의 고됨이 얼마만 한지 짐작이 됐다.

그것은 사방에 널려있는 몬스터 시체만 봐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드문드문 덤불이 흩어져 있는 눈 쌓인 벌판에 몬스터 시체가 사방팔방에 깔렸었다.

종류도 각양각색이라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몬스터는 모조리 다 본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돌아보며 정대식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이게 돈으로 치면 다 얼마야?'

지원팀이나 짐꾼들이 없으니 몬스터를 아무리 잡아 죽여봤자 부산물을 발라내 갈 수가 없었다. 정대식이 아무리 아공간을 갖고 있다 해도 이 많은 수확물을 가져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러 가는 길인 것이다. 이런 몬스터 수백 마리보다 체르노보그 한 마리의 사체가 더 값어치 있을 터였으므로 쉬이 아공간에 뭘 채울 수가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상점에서 몬스터 부산물 판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점에 책정되어 있는 몬스터 부산물의 가격은 현실 세계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엔트로피의 말로는 지구에서 몬스터 부산물의 값어치가 고평가되어 있기 때문이라는데, 아무튼 간에 부산물 처리소에 갖다 파는 것과는 비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거의 3분의 1 정도밖에는 안 쳐줬다.

그런 데다가 부산물을 처리하는 데는 이래저래 시간이 제법 들었다. 상품성을 갖추려면 사체를 통째로 갖다 팔 수가 없었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돈 될 만한 부위를 발라내야 하는 관계로 지금은 그럴 상황이 못 되었다.

그래서 정대식은 정말 돈이 되겠다 싶은 것만 골라서 부산물을 처리해 판매하고 있었다. 덕분에 러시아에 오느라 이런저런 스킬을 획득한다고 쓴 돈의 대부분을 메운 상태였다.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까운 거지. 몬스터 사체를 다 버리고 가고 있으니 남 좋은 일만 하는 셈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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