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현질 전사
-9권 23화
부대원들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어 쉽게 처리했다지만, 이놈들은 상당히 강했다. 최소한 3~4등급은 되는 놈들이었고 심심치 않게 5, 6등급짜리도 보였다. 그것들을 보며 정대식은 혀를 쯧 찼다.
'이놈의 땅덩어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지간한 던전의 보스몹은 될 법한 놈들이 지천으로 깔렸군!'
확실히 카잔으로 접근할수록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더 강해지고 있었다. 과연, 그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포로녜치와 그 성채 주변의 놈들은 얼마나 강할는지 은근히 걱정이 됐다. 체르노보그를 마주하기도 전에 부대원들 중 누구 한 명이 낙오하기라도 할까 봐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내 모든 전력을 다해서 펜리르 부대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야!'
사실 정대식 또한 부대원들 못지않게 피로한 상태였다.
정대식은 그들에게 계속해서 상태증진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온종일 마력을 소비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마력량이 50에까지 다다라 있다지만 여섯 명이나 되는 부대원들을 다 커버하려니 만만찮은 일이었다.
그 상태에서 군인들을 도와 몬스터를 사냥하기까지 했으니, 강행군인 것은 정대식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죽는소릴 할 순 없었다.
포로녜치의 성채가, 몬스터들의 왕국에 가까워지고 있는 탓이다.
* * *
"뀌아아아아악!"
단말마를 내지르며 최후의 한 마리가 죽어 자빠졌다. 그와 동시에 부대원들을 감싸고 있던 신묘한 빛이 사그라졌다. 그러자 부대원들이 일제히 정대식을 돌아보았다.
정대식은 애써 지친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어떤가?"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기철민이었다.
"방금 그것은......."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한 것이다."
카잔으로의 여정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정대식은 줄곧 궁리해왔던 새로운 전투 방식을 시험해 보았다.
비록 극심한 마력 소모가 있기는 했으나 성장한 부대원들의 실력과 맞물려 그 효과는 감탄할 만했다.
부대원들도 방금 자신들이 발휘한 능력이 실감이 나지 않는지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실질적인 감탄사를 내뱉은 것은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있었던 미하일 소령이었다.
「대단하군요. 단언컨대 마력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정대식은 겸양을 표시했다.
「마력량이 충분하다면 어느 공대장이나 궁리해볼 법한 방법이지요.」
「대부분은 그 대목을 해결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제가 쭉 지켜본 바로는 정대식 씨 당신뿐만 아니라 펜리르 부대원들까지 마력량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미하일 소령은 경악의 빛을 숨기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역시 제 착각이 아니었던 거군요.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마력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겁니까?」
정대식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미하일 소령이 못 믿겠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마력이라는 것은 타고나는 부분이 큰 법인데...... 어떻게 그걸 늘릴 수 있단 것인지. 저로선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올인원의 능력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인 겁니까?」
엄밀히 말해서는 올인원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상지정 상태증진 스킬을 획득한 덕분이다.
즉, 현질이 가능한 탓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으므로 정대식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카잔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정대식이 묻는 말에 미하일 소령이 답했다.
「내일 오전쯤이면 당도할 겁니다.」
정대식은 미하일 소령이 데려온 군인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부하들은 괜찮겠습니까?」
미하일 소령의 군인들은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정대식이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그들을 지켜주었으나 보고 겪어온 바가 워낙에 하드코어한 탓이었다.
암흑 영역에 가까워질수록 말도 안 되는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고 있었고, 더불어 그들의 전진속도도 느려지고 있었다.
특히 차를 놔두고 와야 했던 탓이 컸다.
갈수록 길이 험해지는 데다가 몬스터들이 쉴 새 없이 들이닥치니 차를 타고 이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돌아갈 길도 생각해야 했으므로, 그들은 도중에 차를 숨겨놓고 도보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몬스터를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미하일 소령은 반쯤 넋이 나가 이미 죽은 사람 같은 군인들의 얼굴을 무시하고 말했다.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이 저들의 사명입니다.」
정대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하게 말할까요? 지금 저들은 우리 가는 길에 방해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전멸을 했을 겁니다. 실제로도 사망자가 나왔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계속 입고 있지 않습니까? 거의 포션으로 연명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더 이상 길을 가는 것은 무리입니다.」
미하일 소령은 수치스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블라디미르 대령이 실력 있는 부하들이라고 장담해 보낸 자들이니만큼 부끄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여태껏 이곳까지 도달한 헌터들이 별로 없었다. 날고 긴다는 인물들도 대부분 카잔 가까이로 가지도 못하고 빈사 상태가 되어 되돌아가곤 했다.
펜리르 부대가 이곳까지 다다른 것도 기적과 같다고 할 만 한 일이었으므로, 더 이상 전력이 되지 못하는 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무리였다.
미하일 소령은 마지못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들은 이쯤 해서 돌려보내겠습니다.」
「사실 돌아가는 것도 무리일 겁니다. 차가 있는 곳까지 가게하고 그곳에서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정대식은 현질로 산 위장막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텐트 위에 두르고 있으면 완전히 기척을 가릴 수 있었으므로 몬스터들의 눈을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요전번 쉴 때도 마력장을 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하나 장만해 두었던 것이다.
「이걸 쓰면 몬스터들의 습격을 피해 은신하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제 부하들에게 전해주도록 하지요.」
말하는 것이 이상해 정대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미하일 소령은 같이 가지 않으실 겁니까?」
미하일 소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스크바의 운명이 걸린 일을 나 몰라라 할 순 없죠. 저는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미하일 소령.......」
「저를 지켜주려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력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언정 폐는 끼치지 않겠습니다.」
미하일 소령의 뜻이 확고했으므로 말릴 수 없어 보였다. 그리고 미하일 소령은 실력이 제법 있었으므로 정대식은 그의 동행을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하들을 돌려보내고 길을 서두르지요.」
미하일 소령의 명령을 듣고 군인들은 눈에 띄게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들끼리만 펜리르 부대의 귀환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대식을 따라 몬스터의 왕국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잠시 후, 군인들이 펜리르 부대의 건승을 기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가고 나서 펜리르 부대도 갈 길을 재촉했다. 두 발로 걸어서 이동하는 만큼 꾸물거릴 겨를이 없었다.
* * *
얼마나 걸었을까.
황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갈라지고 깨진 아스팔트 길 위에 버려지고 망가진 자동차가 버려져 있었고 주변으로는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걸을 수 없게 된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걷던 일행은 이 난리통에 살아남은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생명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말라비틀어진 고목이라고는 하지만 나무를 보니까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발길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미하일 소령이 제지를 하고 나섰다.
「잠시만요. 뭐가 좀 이상합니다.」
정대식이 의아해 물었다.
「왜 그러지?」
「이런 데 나무가 있다니 이상해서요, 함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정대식은 주의 확장으로도 별다른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저건 괜찮아. 몬스터라면 내가 알아차릴 수 있다.」
미하일 소령이 미심쩍어해 정대식은 일행을 기다리게 하고 혼자서 나무 가까이 다가갔다.
역시나 별다름이 없는 것 같아 나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부대원들을 불러들이려던 그때.
콰과과과과!
느닷없이 땅속에서 나무뿌리 수십 개가 채찍처럼 튀어나왔다. 동시에 나뭇가지들도 촉수처럼 휘어지며 정대식을 습격해왔다.
휘리리릭!
정대식은 반사적으로 발을 박차 올랐다.
파앗!
그러자 그의 발밑에 반딧불처럼 마력의 빛이 고이며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날아올랐다. 그의 양다리에 마기전을 착용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본디 그는 라이트 퀴스 한 짝만을 갖고 있어 다리 쪽의 마기전은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팔 부위의 파츠와는 달리 다리 쪽 파츠는 두 개를 다 갖추지 않으면 거의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스베이거스에서 나머지 레프트 퀴스를 획득한 덕분에 균형이 맞게 되었다.
양다리의 파츠는 팔 쪽 파츠와 마찬가지로 마력을 분출할 수 있었으나 그 기능의 방향이 약간 달랐다.
뱀브레이스로 마기장과 마기력, 마기포와 같은 원거리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다면, 퀴스로는 허공을 날거나 마기별과 같은 근거리 공격이 가능했다.
부유신체와 결합하자 정대식은 마치 허공을 떠다니는 먼지처럼 가볍게 수십 방향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이건 식인 식물인가?'
정대식의 생각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주위의 땅이 쩌저적 갈라지며 뿌리가 더 멀리 뻗어 나가 부대원들을 공격했다. 그러자 부대원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뿌리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풍창파벽!"
"10분형!"
"디스터브!"
"작품명, 전정가위!"
"천광쇄도!"
퍼버버벙! 콰과과광!
번-쩍! 쿠과아아아!
펜리르 부대의 공격이 일제히 쏟아지기 무섭게 나무는 순식간에 가지와 뿌리를 다 잃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후두두 떨렸고, 곧 땅속에서 본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캬아아아아아!"
나무는 먹이를 유혹하기 위한 일종의 위장일 뿐이고 진짜는 지하에 묻혀 있었나 보다.
거대한 입 주변으로 수십 가닥의 나무뿌리와 같은 촉수가 뻗어 나와 부대원들을 공격했다. 그걸 보고 이재우가 소리를 쳤다.
"기철민! 둘로 갈라버려!"
기철민이 기세 좋게 티르빙을 휘둘렀다.
"오케이!"
번-쩍!
티르빙이 번개가 내리치듯 눈 부신 빛을 내뿜는 가운데 기철민이 그것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리쳤다.
탈라리아로 인해 그의 공격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했다.
"천래일섬!"
콰과과과-----!
그의 공격이 수십만 개의 이빨로 뒤덮인 식인 식물의 주둥아리를 완전히 쪼개버렸다. 동시에 그 뒤에 붙어있는 뇌도 갈라버려 놈은 녹색 피를 쏟으며 절명해버렸다.
그 몬스터를 죽이고 나서야 정대식은 뭔가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어째서 주의 확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