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현질 전사
-10권 14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불길한 예감 속에서 정대식이 입을 다물고 있자, 몬스터의 군대를 보고 놀란 것은 그뿐만이 아닌 듯, 펜리르 부대원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한탄을 늘어놓았다.
"히엑...... 저게 다 몇 마리야?"
"아주 무장까지 완벽하게 차리고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꼴이...... 완전 군대잖아?"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몬스터가 같이 있는 건 전에 본 적이 없어."
"체르노보그의 영향력 하에 있으니까 가능한 거겠지?"
"세상에, 저걸 뚫고 무슨 수로 던전에 들어가냐."
"던전 안에도 몬스터가 버글버글할 거 아냐?"
제각기 떠드는 말을 듣고 정대식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위가 조용해졌고, 정대식은 듀라한을 바라보았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알렉세이는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무래도 나 말고는 할 사람이 없어 보이는군요.」
「그렇습니다. 듀라한, 당신이 나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불평을 하고 싶은 모양새였다. 알렉세이가 정대식을 돕겠다고 나선 것은 체르노보그를 상대하는 것을 거들어주고 싶다는 것이었지, 방패막이나 되려던 것은 아니었을 테다. 하지만 정대식에게는 던전 입구로 들어갈 길을 뚫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일에 제격인 인물은 다름 아닌 듀라한이었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여러분은 때를 맞춰 던전으로 진입하십시오. 저도 가능한 한 몸을 빼내 뒤를 따르지요.」
정대식이 계획을 설명하자 부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지상 위를 자욱이 뒤덮고 있는 몬스터 떼를 바라보고 마른 침을 삼켰고, 정대식이 오래지 않아 신호를 내렸다.
"간다!"
그러기가 무섭게 듀라한이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던전 입구까지 너른 길이 생기며 주위의 몬스터가 몽땅 거꾸러져 버렸다.
곧, 던전 입구에서 몸을 돌린 듀라한이 외쳤다.
「오십시오!」
그쪽을 향해 펜리르 부대원들과 미하일 소령이 일제히 내달렸고, 곧 길 위로 쏟아지는 물살처럼 밀려드는 몬스터들을 가로막으러 듀라한이 순식간에 후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듀라한은 델라니포스에 어울리는 커다란 철창을 빼 들었다. 그것을 한번 휘두르자, 부챗살처럼 쏘아져 나가는 마력에 몬스터들이 우르르 쓰러졌다.
그 광경을 뒤로하고 펜리르 부대원들이 던전 입구로 뛰어들었다.
허미래와 서지원, 김송근과 이재우, 기철민과 고덕화를 차례대로 보내고 미하일 소령을 마지막으로 정대식도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발을 주춤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 보였다.
저쪽에서 게게네이스가 사방의 몬스터들을 걷어차며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도 듀라한이 씩 웃음 지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철창을 곧추세우고 소리쳤다.
「잡몹들뿐이라 시시하다 싶었는데, 마침 잘됐군!」
그가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가자 다시 한번 폭음이 일어나며 사방이 뻥 뚫렸다.
몬스터들이 와르르 쓰러진 자리에 게게네이스가 발길을 멈추었고 여덟 마리 뱀 중에 세 개의 머리가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다.
샤아아아아앗!
나머지 다섯 마리 뱀들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는 듀라한을 잡기 위해 뒤엉키는 가운데, 델라니포스가 번쩍이며 게게네이스의 몸을 타고 달려 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그러자 일순, 번개가 쳤을 때처럼 듀라한이 철창을 높이 치켜들어 게게네이스의 목을 베려 드는 장면이 눈에 꽂혀 들었다.
그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가는데, 엔트로피가 정대식을 재촉했다.
<가시죠.>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던전 입구로 발을 내디뎠다.
* * *
입구를 통과하자 던전을 통과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이질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쳤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던전 안이었다.
던전의 풍경은 똑같이 체르노보그의 영역이라서 그런 것인지 바깥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사방이 검은 재로 뒤덮여 있었는데, 시가지가 보이는 대신에 오래된 유적처럼 보이는 건물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건물 처마에 매달려 있던 가고일들이 일행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허공으로 날아올라 공격을 해댔다.
"캬아아아악!"
"끼루루루룩!"
가고일 정도는 이미 펜리르 부대의 적수가 못 되었기에 상황은 금방 정리가 되었다.
정대식은 죽은 가고일의 모가지를 떨쳐버리며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는 일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마기전의 나머지 파츠를 찾아 완성하는 것이다! 만약 마기전을 찾기도 전에 체르노보그를 맞닥뜨리면 좋지 않은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사실은......."
정대식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포로녜치와의 전투에서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가 손상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야마환 또한 말을 듣지 않으니 마기전을 갖추기 전까지는 여러분의 전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대식이 하는 말을 듣고 이재우가 주먹으로 가슴을 팡팡 쳤다.
"걱정하지 마십쇼! 이제 우리 실력도 대장님 못지않습니다?"
그 말에 김송근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렴요. 예전의 펜리르 부대가 아니라고요!"
큰소리를 치는 모습에 정대식은 피식 웃고 말했다.
"좋다. 여러분을 믿어보도록 하지. 그럼...... 엔트로피, 마기전의 위치가 어디로 감지되나?"
그 말을 듣는 즉시 다우징을 쓴 엔트로피가 길 안내를 도맡았다.
"이쪽입니다."
엔트로피는 검은 재가 눈처럼 휘날리는 길을 따라 펜리르 부대를 인도했다.
그들은 마치 도개교처럼 보이는 다리를 지나쳤고, 그러자 그 다리 끄트머리를 지키고 있던 두 마리의 케르베로스가 그들에게로 덤벼들었다.
케르베로스의 머리가 셋이니, 도합 여섯 개의 개 머리가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들 기세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기철민의 칼질 한방과 이재우가 구현화 한 거인의 망치에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이제 이쯤은 우리 상대가 못 되지!"
이재우가 기고만장해 외치는 소리를 듣고 기철민이 경고했다.
"이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정신 바짝 차려!"
일행은 다시 엔트로피를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엔트로피는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 건물의 깊은 곳으로 펜리르 부대를 안내했다.
가는 길목에서 온갖 종류의 몬스터들을 마주쳤으나 놈들을 상대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들은 속전속결로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점점 더 깊은 지하로 향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 던전은 지상보다 지하의 규모가 더 컸는데, 지하 도시라고 불리는 게 적합해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펜리르 부대는 거인이 밟았을 법한 계단을 따라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점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용암이다!"
그들은 나선형으로 이어진 엄청난 길이의 계단을 맞닥뜨리게 됐다.
송곳처럼 아래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그 계단의 끝에 거대한 회랑이 있었는데, 그 주위가 전부 용암이었다. 그리고 회랑에는 실로 엄청난 괴물이 한 마리 자리하고 있었다.
"저것은......."
"발록!"
서지원이 뇌까린 말을 완성한 사람은 고덕화였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돌로 된 왕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발록의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저놈을 쓰러트리지 않고서는 이곳을 지나갈 수 없는 모양이로군요."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보고 물었다.
"다른 길은 어차피 없겠지?"
엔트로피가 고개를 끄덕였고, 정대식은 재빨리 작전을 짰다.
"우선 이재우와 고덕화, 두 사람이 먼저 내려가서 발록의 시선을 끌어라. 두 사람은 계단을 쓰지 말고 허공을 날아다니며 놈을 교란해. 고덕화는 실라이론을 쓰도록 하고 이재우 너는 엔트로피가 도와줄 거다. 두 사람이 어그로를 끄는 동안 나머지는 발록의 주의를 피해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계단이 워낙 길다 보니 바닥에 닿기까지 들키지 않기는 무리겠지. 그럼 기철민과 김송근이 합세해서 발록을 공격하고, 서지원과 허미래, 그리고 미하일 소령은 나와 함께 은신으로 끝까지 몸을 숨은 채로 바닥까지 내려간다. 그런 뒤에 허미래가 발록의 움직임을 묶어놓고, 서지원이 가능한 한 발록의 전력을 다운시켜! 그럼 내가 미하일 소령과 함께 마지막 딜을 넣겠다."
정대식이 작전 사항을 미하일 소령에게 다시 설명하자 그가 몹시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저하고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내 힘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을 쓰려는 지는 모르겠지만, 구경만 하겠다고 따라온 것은 아니니 좋습니다. 시작하죠!」
그들은 계단에 진입했고 곧 엔트로피가 이재우를 껴안은 채로 허공에 몸을 띄웠다.
이재우는 좀 버둥거렸으나 변화 스킬을 쓴 엔트로피가 날개와 같은 모습이 되어 이재우와 결합하여 그는 곧 공중을 나는 데 익숙해졌다.
고덕화는 천강벽수선을 펼쳐 들고 실라이론의 도움을 받아 날았고, 두 사람은 곧 발록이 있는 곳으로 곧장 하강해 내려갔다.
그러자 둘의 기척을 알아차린 발록이 곧 감았던 눈을 뜨고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구구구궁-
쿠와아아아아아!
발록이 눈을 뜨자 놈의 눈과 코, 귓구멍 등에서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곧 발록이 허리춤에서 춤추듯 불타는 채찍을 꺼내 들어 둘을 낚아채기 위해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르르르!
흡사 불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것 같은 광경이었으나 둘은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비켜나며 발록의 시선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이재우가 구현화 해낸 종이 가고일들 수십 마리가 발록에게로 날아들었으며 고덕화가 그 움직임에 힘을 보태었다.
그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계단을 따라서 신속하게 아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계단이 아래서 위로 이어진 식이었으므로 그들은 적나라하게 발록과 이재우, 고덕화의 싸움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발록은 입에서 불을 토해내며 이재우가 만들어낸 가고일들을 몽땅 태워버렸다. 그리고 절묘한 솜씨로 채찍을 휘둘러 고덕화를 정확히 후려쳤다.
그 바람에 이재우가 주춤하자, 발록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펜리르 부대원의 존재를 깨달았다.
"크아아아아아앗!"
발록의 채찍이 계단을 후려치자 그것이 무슨 설탕 과자라도 되는 것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우와아아!"
"꺄악!"
계단이 와르르 부서지자 거기에 휘말려 부대원들도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정대식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력장을 확장해 그들을 안전하게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러자 작전대로 기철민과 김송근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3분형! 일점파격!"
김송근이 만들어낸 두 명의 거대 분신이 양쪽에서 발록의 한쪽 팔을 각자 움켜쥐며 오른쪽과 왼쪽 주먹을 똑같이 명치 쪽에 꽂아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한 명의 거대 분신이 똑같은 자리에 또 주먹을 움켜쥐었고, 분노한 듯 발록이 불길을 토해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기철민이 김송근의 거대 분신을 밟고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