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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238화 (237/297)

# 238

현질 전사

-10권 15화

그의 탈라리아가 빛을 뿌리며 기철민의 날개가 되어주자 거대하게 빛나는 칼날, 티르브링어가 솟구쳐 나와 발록의 목을 노렸다.

"천래일섬!"

콰르르르르르르!

정대식은 은신으로 나머지 일행을 숨기고 발록의 뒤쪽으로 이동하면서 잘하면 기철민이 발록을 처치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대와는 달리 티르브링어는 발록의 급소로 파고들지 못했다.

도중에 불의 채찍이 티르브링어를 휘감아 버렸던 것이다.

그러자 티르브링어에 실렸던 기철민의 마력이 펑! 하고 터져 올랐다.

파르르르르르!

사방에 불똥과 마력의 빛이 휘날리는 가운데 정대식은 안전하게 허미래와 서지원, 그리고 미하일 소령과 함께 발록의 뒤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허미래와 서지원이 본격적으로 실력발휘를 하기 시작했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허미래가 엄청난 중력의 힘을 발록의 몸에 실어버리자 발록이 별안간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임을 그쳤다.

놈은 사방에서 덤벼드는 적들을 물리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그를 짓누르는 중력이 지나치게 무거워진 바람에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서지원이 발록으로부터 사력을 빨아들였다.

곧 서지원의 온몸에서 불길이 펄펄 일어나며 그의 이마에 발록과 같은 뿔이 스스슥 돋아나기 시작했다.

"대장님......! 발록의 힘이 워낙에 강대해서 제가 마력으로 흡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서지원이 하는 말에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미하일 소령!"

정대식은 미하일 소령의 등에 손을 대고 외쳤다.

"마력 접속!"

"허억!"

미하일 소령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뱉으며 온몸에 힘을 줬다.

정대식은 전신의 털을 빳빳하게 곤두세우며 꿈틀거리는 야성을 억누르려 애쓰는 미하일 소령에게 말했다.

「두려워 말고 자신을 해방시키십시오! 제가 거들겠습니다!」

그러자 미하일 소령이 괴성을 내뱉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뿌드득, 뿌드드득!

정대식의 강대한 마력을 받아들인 미하일 소령의 모습이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태껏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이성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려 한 마리의 거대한 곰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억센 털이 가시처럼 솟아나며 그의 체구가 김송근이 만들어내는 거대 분신만큼이나 커다래졌다.

더불어 발톱도 이빨도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사납고 날카로워졌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

발록을 보고 울부짖는 미하일 소령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백 퍼센트 몬스터화 해버린 모습에서 인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인간으로는 되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보였으나, 정대식은 다음 스킬을 사용했다.

"마력 전이!"

정대식은 그가 체르노보그와의 일전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스킬을 사용했다.

마력 전이.

마력 접속은 정대식의 마력을 상대방에게로 옮기거나, 혹은 상대방의 마력을 정대식에게로 옮기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마력 전이는 타인의 마력을 정대식의 것처럼, 혹은 정대식의 마력을 타인의 것처럼 이전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즉, 순수한 마력뿐만 아니라 그 마력이 가진 성질까지도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미하일 소령에게 마력 전이를 사용하자 정대식 또한 리칸트로피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정대식도 위어베어로 변신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정대식은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변신의 충동을 제어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성을 자유롭게 놓아주었고 곧 그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며 한 마리의 위어베어로 변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매우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몹시 자유로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동시에 호승심이 찾아들어 정대식은 망설일 것 없이 발록에게로 덤벼들었다.

"크와아아아아앙!"

그가 울부짖으며 발록에게 달라붙자 미하일 소령이 변신한 위어베어도 질 새라 발록의 등을 덮쳐 그 목덜미를 깨물었다.

발록은 온몸에서 불꽃을 방출하며 그들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발록에게는 허미래의 강력한 디버프가 걸려 있었고 서지원에게 이미 그 힘을 상당 부분 빼앗긴 상태였던 것이다.

빠지직, 빠직!

발록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단단한 장갑이 위어베어의 엄청난 무는 힘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거칠게 발록의 어깻죽지를 떼어버리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가 비록 위어베어가 되어 이성이 날아갔다고 할지언정 전투에 대한 본능은 남아있는바, 스킬을 쓰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강화 강력권!"

위어베어가 된 상태에서 꽂아 넣는 강화 강력권은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뻐-엉!

무언가 폭발하듯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발록의 명치 부분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정대식은 거기에다 대고 확인사살을 했다.

"강화 무적권!"

뻐버버버버버버버벙!

정대식의 주먹이 발록의 전신에 작렬하자, 검은 장갑이 조각조각 깨어져 나가며 발록의 몸이 한 덩어리의 불꽃이 되어 산산이 흩어져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발록의 단말마가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고 남은 것은 우르르 쏟아지는 불덩이들이었다.

개중 하나는 채찍의 손잡이로 변했으며 하나는 갑옷으로, 다른 하나는 붉은 돌로 변했다.

완전히 발록을 처치한 셈이었으나, 부대원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미하일 소령뿐만 아니라 정대식까지 위어베어가 되어 완전히 몬스터화 해버렸으니 걱정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에 두 사람이 이성을 차리지 못한다면 부대원들을 공격하게 될 것이고 어쩌면 서로 간에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정대식은 그런 계산도 없이 마력 전이를 쓰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또 다른 이성이 하나 더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엔트로피였다.

엔트로피는 정대식의 분신이자 그와 의식을 공유하는 존재였다.

엔트로피는 각성을 쓰면서 야성에 파묻혀 있는 정대식의 의식을 끌어냈다.

<정대식 님, 정신 차리십시오. 정대식 님!>

정대식은 엔트로피의 부름에 따라 제정신을 차리고 변신을 해제시켰다.

이성이 돌아오며 자연스레 그의 모습이 위어베어에서 인간으로 변했다.

남은 것은 미하일 소령이었으나 정대식에게 마력 전이 능력이 있는 이상 그것도 문제없었다.

정대식은 엔트로피에게 각성을 쓰라고 지시하고 그에게 자신의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로 인해 흉포한 야성으로 가득 찬 그의 능력을 중화하여 그가 이성을 되찾을 수 있게끔 도왔다.

"으윽."

곧 미하일 소령도 제정신을 되찾아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정대식은 허미래에게 그를 좀 살펴주라 말한 뒤 발록을 처치하고 획득한 아이템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각각 발록의 채찍과 갑주, 그리고 불꽃의 심장이었다.

마침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던 상태였기에, 정대식은 그것을 벗어던지고 발록의 갑주를 차렸다.

그런 뒤 채찍을 허리춤에 찔러넣고 감정 스킬로 불꽃의 심장을 살폈다.

'불꽃의 심장으로는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를 불러낼 수 있군! 비록 일회성이라고는 하나 요긴하게 쓸 수 있겠어.'

정대식은 그것을 아공간에 챙겨 넣고 나머지 부대원들을 살폈다.

"다들 무사한가?"

모두의 얼굴을 보아하니 약간의 부상은 입었을지언정 크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려 10성급의 발록을 상대하고 이 정도라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정대식은 든든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길을 서두르지. 엔트로피!"

<예.>

엔트로피는 바닥을 가리켰고, 정대식은 어느새 그 바닥에 새겨진 커다란 문양을 발견했다. 발록이 죽고 나자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한 그것이 점점 밝아지면서 오래지 않아 그 위에 늘어선 부대원들을 집어삼켜 어디론가 옮겼다.

* * *

그들이 다음으로 다다른 곳은 거대한 지하 궁전이었다.

칠흑같이 새카만 돌로 지어진 건축물은 지하에 자리해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고개를 아무리 쳐들어도 천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에, 어둠 속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 회랑이 보였다.

그 회랑을 따라 늘어선 열주들은 거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았는데, 그 외양이 범상치 않았다.

잭 어 랜턴의 빛에 드러나 보이는 그 모습이 근엄하고 강대하면서도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어쩐지, 이거 예감이 안 좋은데요."

이재우가 중얼거리기 무섭게 드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제일 앞줄에 선 기둥 석상의 눈동자가 돌아갔다.

곧 꽈드드드득! 하고 돌가루를 흩뿌리며 총 여섯 개의 석상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재우가 푸념을 내뱉으며 전투 준비를 했다.

허미래가 곧장 부대원들이 싸울 채비를 갖출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 디버프를 시전했다.

"포스 오브 그래비티!"

그녀가 목청 높여 소리를 치자 매우 광범위한 반중력장이 펼쳐졌다.

그러자 일제히 제가 서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던 석상들의 움직임이 늦춰졌다.

사지에 무거운 쇳덩이라도 매달고 있는 양 쉽게 팔다리를 놀리지 못했다.

그 틈을 타 품속에서 미리 그려둔 그림을 던지며 이재우가 자신의 구현화 능력을 사용했다.

"작품명, 다윗도 때려잡는 골리앗!"

쿠르르르르르르!

얄팍한 종이가 마력으로 부풀어 오르더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거의 석상들과 맞먹을 만한 크기의 거인이 나타난 것이다.

왜인지 애꾸눈을 한 그 거인은 손에는 거대한 방망이를 들고 있었고 등에는 대검과 방패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 골리앗이 곧장 제일 앞쪽에 서 있던 석상에게로 돌격했다.

골리앗이 첫 번째 석상과 함께 자빠지자 곧이어 김송근이 분신들을 만들어냈다.

"3분형, 거대화!"

쿠우우우우우!

무려 세 명이나 되는 거대 분신들이 나타나 두 번째 석상을 낚아챘다.

거인을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것처럼 분신들이 양쪽에서 한쪽 팔씩 붙잡고 석상의 명치를 후려치자 물 흐르듯 매끄럽게 마지막 분신이 같은 자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뻐억!

파스스스스!

석상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검은 돌가루가 우수수 쏟아졌다. 그러자 기철민이 그 두 석상 사이로 뛰쳐 들어가 세 번째 석상에게로 달려들었다.

"티르브링어!"

번-쩍!

그가 빼든 티르브링어의 칼날이 기둥만큼이나 커지며 눈 부신 빛을 뿌렸다.

어두컴컴한 지하에 있다가 그 빛을 보자 순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기철민은 그것을 곧장 세 번째 석상에게로 휘둘렀다.

"천광비검!"

꽈과과과광!

사방에 비산하는 빛을 꿰뚫고 고덕화가 바람처럼 날아 들어가 네 번째 석상에게 다다랐다.

"풍조우순!"

콰과과과과과과!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실라이론이 미친 듯이 날뛰는 광경이 보였다.

곧 다섯 번째 석상이 고덕화를 후려치려는 것을 미하일 소령이 뛰어들어가 막았다.

"크앗!"

정대식과 마력을 공유하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의 변신 단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보통 사람 덩치의 두 배 만한 위어베어로 변신한 상태였으나 크기만도 5m에 가까운 거인의 주먹을 받아낼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 결과, 미하일 소령이 비명을 내뱉으며 허공으로 나르는 것을 엔트로피가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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