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현질 전사
-10권 16화
엔트로피는 재빨리 각성 스킬로 미하일 소령을 정신 차리게 하고 그가 포션을 섭취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틈을 타 서지원이 남아있는 두 마리 석상들이 다른 싸움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공간 마법을 시전했다.
"공간 왜곡!"
석상들은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뱅뱅 맴을 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자신의 몸을 감싼 발록의 갑주를 한번 시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보다 더 좋은지 보자.'
정대식은 허리춤에서 발록의 채찍을 빼 들고 석상에게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허공으로 발을 차 날아오르며 발록의 채찍을 휘둘렀다.
휘리리리리리리!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채찍은 적의 크기에 맞게 길게 늘어나더니 곧 불꽃을 내뿜으며 화르르륵 불타올랐다.
그 채찍이 석상을 후려치자 석상의 표면이 짐승의 발톱에 긁힌 것처럼 패더니 그 자리가 화르륵 타들어 갔다.
곧 정대식을 발견하고 분노한 석상이 주먹을 내질렀고, 정대식은 한쪽 팔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다.
그러자 주먹이 명중한 자리에서 발록의 갑주가 펑! 하고 불길을 토해냈다.
"그워어어어어어!"
곧 갑주에 닿은 석상의 주먹이 불꽃이 휩싸였다.
그냥 불꽃이 아닌, 무저갱이 불꽃이었기에 주먹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바스러져 내렸다.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버리는 말 그대로 지옥의 불길인 것이다.
정대식은 미소를 지으며 채찍을 휘감아 들었다.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와 같이 SSS급이라 그 위력이 제법이군! 블랙 드래곤 스킨 아머와는 또 다른 맛이 있는데?'
그때였다.
꽈르르르르르릉!
별안간 벼락이 내리치며 고막이 터질 듯 진동을 했다.
깜짝 놀란 정대식이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리자 이재우가 만들어낸 골리앗이 시커멓게 타버린 것이 보였다.
그 앞에 선 석상이 기묘하게 생긴 돌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뇌전이 빠직빠직 소리를 내며 불타고 있었다.
뿐만이랴,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것은 그 석상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김송근과 싸우던 두 번째 석상도 위기에 몰리자 별안간 세 번째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거기에서 레이저나 플라스마와 같아 보이는 광선이 쏟아져 나오며 분신 하나를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식겁한 김송근이 황급히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했고, 세 번째 석상도 엄청난 바람을 내뿜어 기철민을 허공에서 날려버렸다.
"으악!"
탈라리아를 쓰느라 공중에서 날아다니던 기철민은 거기에 휘말려 순식간에 회랑 저 끝으로 떠밀려가 처박혔다.
네 번째 석상의 능력은 불꽃인 듯했다. 그 석상이 발을 구르자 전신에서 뜨거운 불길이 확 솟구쳤다.
때마침 고덕화가 주특기인 바람 공격을 가하던 참이었으므로, 그 불길이 배로 커지며 도로 고덕화를 덮쳤다.
"으윽!"
나머지 석상들도 질세라 제각각 능력을 선보였다.
다른 한 놈은 대지의 속성인 것 같았고, 마지막 한 놈은 물 속성인 것 같았다.
서지원의 공간 왜곡에 걸려들어 있던 놈들이 땅을 뒤엎고 눈보라를 부르며 그 효과를 상쇄해 버렸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미하일 소령이 소리를 쳤다.
「이놈들은 아무래도 판테온의 주신들과 같은 능력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판테온이라고요?」
「천둥과 번개의 페룬, 태양의 다지보그, 바람의 스트리보그, 대지의 모코쉬, 지하세계와 물의 벨레스, 불의 시마르글과 같아 보입니다!」
정대식은 재빨리 관측 스킬을 사용했다. 미하일 소령이 옳았다.
이놈들은 고렘과 같이 만들어진 마법 생명체로 한 마리 한 마리가 10성급에 준하는 놈들이었다.
무생물이라서 약점이라 할 만한 것도 딱히 없었으며 방어력 공격력이 고루 높았으며 체급에 걸맞은 무장을 완벽히 갖추고 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놈들이 각자의 능력을 쓸 수 있는 것은 손에 든 아이템 덕분이었다.
페룬은 돌도끼를, 다지보그는 이마에 눈처럼 보이는 써클렛을, 스트리보그는 망토를, 모코쉬는 지팡이를, 벨레스는 삼지창을, 시마르글은 망치를 가지고 있었다.
놈들에게서 그 아이템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그 전력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정대식은 재빨리 상황판단을 하고 명령을 내렸다.
"이놈들은 10성급이니 한꺼번에 상대할 수 없다. 내가 허미래와 서지원을 지원하여 시간을 벌 테니 한 마리씩 차례대로 처치해라!"
"알겠습니다!"
"엔트로피, 너는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알겠습니다.>
"그럼 간다, 허미래, 서지원! 마력 접속!"
정대식은 그들에게 자신의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 방대한 양에 놀란 두 사람은 움찔했지만 곧 페룬을 제외한 나머지 석상들을 옭아매기 위한 디버프와 공간 마법을 차례대로 사용했다.
"와이어!"
"공간 분리!"
허미래의 와이어에 묶인 석상들은 서지원의 공간 분리로 인해 아예 페룬과 부대원들이 전투를 벌이는 곳에 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원래는 공간 분리를 넓은 범위에서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 사용할 수는 없었으나 정대식이 가진 마력을 나누어주고 있기에 서지원은 마법을 시동한 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의 일을 쉽게 하기 위하여 허미래도 입술을 질끈 깨물어 버텼고, 그러는 동안 기철민을 중심으로 하여 부대원들이 페룬에게로 돌격했다.
그러자 기철민이 부대장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한 지시를 정확히 내렸다.
"이재우와 김송근은 페룬이 능력을 쓰지 못하도록 봉쇄하는데 전력을 다해! 그리고 고덕화가 먼저 선공을 하고 나면 내가 곧장 이어서 일격을 날리겠다!"
고개를 끄덕인 이재우와 김송근이 각자 거병과 거대 분신을 불러내어 페룬에게로 달라붙었다.
몸으로 구현화 된 병사들이 페룬을 막고 나선 틈을 타 고덕화가 그가 자랑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백년풍진!"
콰르르르르르르르르!
순식간에 백 년의 세월이 페룬을 휩쓸자 제아무리 마법 병기라고 하더라도 멀쩡할 수는 없는 법.
칼끝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던 장갑이 부식되어 허물어지자 티르브링어의 눈부신 칼날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천노참격!"
번-쩍!
티르브링어의 칼날이 페룬의 모가지를 스치고 지나가자 거대한 머리통이 일격에 두 동강이 나며 그 반쪽이 아래로 굴러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피해 이재우와 김송근이 재빨리 물러섰고, 기철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티르브링어를 한 번 더 휘둘러 돌도끼를 든 손모가지를 잘라냈다.
그러자 그 손아귀에서 돌도끼가 굴러나오며 그 크기가 보통 사이즈로 줄어들었다.
기철민이 그것을 낚아채기가 무섭게 페룬 석상은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고,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페룬의 돌도끼와 같이 강력한 아이템이 더해진 덕분에 갈수록 펜리르 부대원들의 전력이 높아진 탓이었다.
"끝났다!"
마지막 시마르글까지 처치하고 났을 때 남은 것은 막대한 보상이었다.
자연의 힘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아이템이 여섯 개나 생겼으니 체르노보그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큰 보탬이 될 일이었다.
그 아이템을 현질 상점에다 팔면 분명 엄청난 금액을 벌어들일 수도 있겠지만, 정대식은 그것을 부대원들에게 고루 나누어주기로 했다.
부대원들의 실력이 놀랄 만큼 상승하여 어쩌면 자신이 상점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보다 부대원들의 전력을 높이는 편이 체르노보그 공략에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페룬의 돌도끼는 이재우, 다지보그의 써클렛은 기철민이, 스트리보그의 망토는 당연히 고덕화가 가져야겠지? 모코쉬의 지팡이는 서지원이, 벨레스의 삼지창은 허미래가, 시마르글의 망치는 김송근이 가지는 편이 좋겠다. 성능은 모두가 공평하게 SSS급이니 뭐가 더 좋다고 말할 순 없어. 하나같이 뛰어난 아이템이다."
모두가 SSS급 아이템이라는 사실에 기쁨을 숨기지 못했고 각자 주어진 아이템에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미하일 소령은 비록 아무런 아이템도 가지지 못했으나 그가 별다른 전력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딱히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써클렛을 착용해본 기철민이 말했다.
"던전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는 길목에 이와 같은 아이템이 있다니 어쩐지 의미심장한데요."
그 목소리에는 이만하면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릴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러나 정대식은 쉬이 들뜨지 않았다.
그는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어쩌면 이 모든 아이템을 다 합쳐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체르노보그가 강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체르노보그는 러시아 말로 어둠과 죽음의 신이다. 전무후무한 15성급의 괴물이니 방심은 금물이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템을 챙겨 들자,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바닥에 있는지도 몰랐던 문양이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곧, 그 빛이 일행을 삼켰고 그들은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Chapter 61. 체르노보그 공략
"여기는...... 어디지?"
"더 지하로 가는 거 아니었어?"
휘오오오오오오!
별안간 닥쳐드는 거센 바람에 몸을 낮춘 부대원들이 당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뜻밖에도 허공이었다.
정확히는 허공에 떠 있는 일종의 인공 섬과 같은 장소 위였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처럼 매끈한 바닥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그 밖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그리고 사방에선 폭풍이 몰아치고 있어 그들은 검은 재가 뒤섞인 세찬 바람에 노출된 채였다.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상황을 살피고 있던 정대식은 문득 마기전이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마기전에 박혀있는 마력석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대식은 무심코 마력석이 있는 왼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거기서 빛이 일점으로 쏘아져 나가 어딘가로 향했다.
"이건......?"
그 광경을 보고 엔트로피가 말했다.
<아무래도 나머지 마기전이 있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겠지?"
그 빛은 그들이 있는 인공섬 너머 허공으로 뻗어 있었다.
아마 폭풍이 몰아치는 저쪽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라, 정대식은 부대원들과 함께 그쪽으로 이동하려 몸을 돌렸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르르---------
어디선가 거대한 무언가가 폭풍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크나큰 장막이 펄럭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아무튼 무언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정대식의 모든 감각이 비명을 지르듯이 날카로워졌다.
"이 느낌은......!"
콰아아아아아!
굉음과 함께 별안간 암흑이 닥쳐왔다.
이미 사방이 어두웠으나 순간 눈이 멀어버렸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발을 띄우는 강풍이 몰아닥쳤다.
일순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이 강렬한 바람이었다.
그 가운데서 정대식은 몸을 낮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를 보려고 애썼다.
그게 느닷없이, 그것도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나타났기에 그 모습을 한눈에 살펴보기는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