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51화 (250/297)

# 251

현질 전사

-11권 3화

그를 둘러싼 갑옷이 광필두를 구속하고 있는 마기장과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갑옷이 무지개색으로 어지럽게 번쩍이며 마기장을 파쇄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정대식은 광필두를 보고 물었다.

"왜 이능 파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지?"

광필두는 대답이 없었다.

그 대답을 대신 한 것은 정대식이었다.

"이쯤 되면 이능 파괴를 사용했어야 하는데. 그래야지 날 손쉽게 죽이고 마갑을 찾아갈 수 있을 거 아냐. 그런데 그러지 않고 있다는 것은...... 내게는 이능 파괴를 못 쓰는 거지?"

광필두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정대식은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일어나는 미묘한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역시 그렇군. 넌 내게 이능 파괴를 쓸 수 없어."

정대식은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머리 한구석으로 줄곧 광필두의 이능 파괴 능력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다.

보기에는 광필두가 아주 손쉽게 이능 파괴 능력을 남발하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어떤 한계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무얼까 줄곧 의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대원들의 이능은 손쉽게 빼앗아 놓고 하필 자신을 상대로는 이능 파괴를 섣불리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그 이유가 뭔지 대강 짐작이 됐다.

정대식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역시, 너는 상대방의 능력이 뭔지 모르면 그걸 파괴하지도 못하는 거야. 그래서 너와 싸운 자들만이 이능을 잃었지."

만약에 광필두의 이능 파괴 능력에 그런 한계가 없다면 굳이 힘들게 다른 각성자들과 싸우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로 인해 능력을 잃은 자들을 보면 전부 직접적으로 그와 대결한 적이 있었다.

"단순히 그 능력이 무엇인지 머리로 아는 것으로는 안 되는 거야. 그러니 최희와도 직접 대결한 후에나 능력을 빼앗을 수 있었겠지. 최희의 능력이 폭풍과 뇌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까. 아마 직접 그 능력을 경험해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 말에 광필두가 대꾸했다.

"그렇다. 내 능력은 상대의 이능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너에 대해서는 최희 못지않게 그 능력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전무후무한 올인원. 모든 종류의 이능을 다 가진 자."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나는 모든 종류의 이능을 다 갖고 있다. 그래서 내 이능은 파괴하지 못하는 건가?"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 단지 나는 기다린 것뿐이다. 네 짐작대로, 네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게 되기까지......."

정대식의 얼굴에 아차 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다음 순간, 광필두가 마기전의 속박을 부수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신께서 너의 능력을 거둘 것이다. 이능 파괴!"

* * *

"......."

"......."

주위가 고요한 가운데, 정대식은 멀뚱멀뚱 광필두를 쳐다보았다.

광필두는 그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으나, 점점 그 얼굴에 의혹이 짙어졌다.

그런 광필두를 코앞에 두고 정대식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지금 이능 파괴 쓴 거 맞지? 별 느낌이 없는데?"

정대식은 시험 삼아 능력을 써보았다.

"강력권!"

퍼어억!

강력권이 날아갔으나 강화가 되어있지 않아서인지 광필두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낭패감이 짙었다.

하도 돌부처 같은 표정이라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적잖이 당혹해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절로 웃음이 나려고 들었다.

"이봐, 광필두. 너는 내 능력이 뭔지 다 파악했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절대로 그럴 수가 없어."

정대식의 진짜 능력은 강화도, 변화도, 조작도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마력에는 엄밀히 말해 타고난 특질이란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은 신이 줬다기보다는 스스로 사들인 거였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다름 아닌 현질이다.

그는 돈으로 능력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그렇다 보니 누구도 그의 진짜 능력이 뭔지는 파악할 수 없을 터였다.

돈을 주고 능력을 구입할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렇기에 현질 능력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하는 것일 테다.

당연히 광필두도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없을 터.

정대식은 그를 보고 피식거리며 말했다.

"다시 해볼래? 이능 파괴 그거. 얼마든지 써봐. 어차피 내겐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듣고 비로소 광필두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나갔다.

"......이미 모든 종류의 능력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능가하는 또 다른 능력까지도 갖고 있다는 말인가?"

정대식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건 너 역시 마찬가지지. 이능 파괴 능력이라니. 그거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거 아냐?"

광필두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그의 몸짓에는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반대로 정대식의 기운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진지해지자 그의 영향력 또한 짙어지고 있었다.

"세상을 파괴하네 마네 하는 중2병스러운 생각은 이쯤해서 접는 게 좋을 거야.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순순히 7성 무구를 내놓고 사라져준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덤벼라."

광필두는 정공을 택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정대식도 그가 그럴 거라 생각했기에 두 번 항복을 권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를 빠드득 갈고 말했다.

"내 부대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이능을 빼앗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모든 능력을 잃어버린 채로 쓰러져 있는 부대원들을 보자 순수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정대식은 처음으로 금전적 이익이나 싸움의 목적 따위를 계산하지 않고 눈앞의 광필두를 쓰러트리는 데만 집중했다.

광필두를 굴복시킴으로 해서 얻는 게 하나도 없다 하더라도 그와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다.

오로지 광필두라는 적에게만 몰입한 그때.

파아아아앗!

마기전이 진화를 시작했다.

* * *

'어엇?'

정대식은 손끝에서부터 차오르는 에너지에 놀라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말초신경이 자리한 곳에서부터 세포의 빈 부분이 완벽하게 채워지듯 견고해지는 느낌이 났다.

동시에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근육과 같은 외피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마력의 빛을 띠고 있어 검은색에 가까운 짙푸른 색의 장갑이 팔꿈치를 타고 올라 어깨와 가슴, 목, 옆구리, 배를 감쌌다.

발끝에서부터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 종아리와 무릎, 허벅지와 둔부가 전부 뒤덮였다.

이윽고 마기전의 진화가 끝났을 때 정대식은 전신에 딱 맞는 갑옷을 걸친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대식의 신체와 완벽히 일체화가 되어있었고, 정대식의 근육과 힘줄, 연골과 뼈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의 결합을 탄력 있으면서도 강력하게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정대식은 온몸에 힘이 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감탄했다.

'이건 강철 신체나 완전 신체와는 또 다르다! 단순히 외부로부터의 공격에서 나를 보호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 육체 자체를 강화해주고 있어!'

정대식의 변화를 보고 멈칫했던 광필두는 곧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딜라이트 소드를 휘둘러왔다.

정대식은 마기장을 펼쳐 그 공격을 막을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 팔을 들어 올렸다.

까가강!

정대식의 팔이 딜라이트 소드와 부딪치자 마력의 푸른 불꽃이 일어나며 불똥이 사방팔방으로 휘날렸다.

그러나 딜라이트 소드는 정대식의 신체를 침범하지 못했다.

딜라이드 소드와 맞부딪친 자리에 파동과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 공격을 도로 튕겨내고 있었다.

"으윽!"

광필두는 그 충격으로 하마터면 딜라이트 소드를 놓칠 뻔하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정대식은 그런 광필두에게 가볍게 마기장을 몇 방 날려주고 앞으로 성큼 뛰었다.

그러면서 허리를 틀어 킥을 날렸다.

그의 발이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발에서 마력이 사출되며 그 속력과 위력이 몇 곱절로 더해졌다.

뻐어어억-!

광필두가 거기에 얻어맞자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가 무지갯빛으로 번쩍거리며 그 충격을 상쇄해냈다.

그러나 잠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정대식은 그 틈을 타 광필두의 안면에 잽을 날렸다.

퍼버벅!

가볍게 얼굴을 몇 번 얻어맞은 광필두가 곧 검으로 옆구리를 찔러 들어왔다.

카가가강!

딜라이트 소드의 날이 옆구리에 긁히며 불똥을 피워 올렸고 정대식은 왼팔을 옆구리에 딱 붙여 날을 제 몸에다 고정했다.

그 상태로 오른손을 들어 광필두의 안면에 공격을 가했다.

"강화 강력권!"

뻐어어어어어억!

흡사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나며 광필두의 모가지가 홱 돌아갔다.

제아무리 7성 무구의 갑옷을 걸치고 있다 하더라도 레전드급의 무기에 멀쩡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주먹이라면 또 모를까, 강화를 더한 강력권이다 보니 그 충격이 브릴리언트 아우라 아머의 방어력을 뚫고 전해지는 것이다.

"큭!"

광필두가 외마디 신음을 내뱉으며 발로 정대식의 발등을 콱 밟았다.

그리고 정대식이 잠시 휘청이는 틈을 타 딜라이트 소드를 끄집어내고 기기묘묘한 검술로 연거푸 정대식을 찔러 들어왔다.

쩡! 쩌엉! 쩌러렁!

광필두의 공격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인지라 정대식은 몇 번을 그냥 얻어맞았다.

그러나 가볍게 주먹으로 치는 정도의 데미지가 전부였다.

그를 감싸고 있는 마기전이 공격을 모조리 튕겨냈기 때문이다.

더불어 손괴 신체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광필두에게도 그만한 충격이 전해지고 있을 터였다.

공격은 그리 길지 못했고, 쉬이 지쳐버린 광필두에게 마기포를 내쏘았다.

퍼어어어어어엉!

"크악!"

비명을 내뱉은 광필두가 저만치 날아가 처박혔다.

검은 재 속에 구름 같은 연기를 일으키며 처박힌 광필두는 금세 움직이지 못했다.

정대식은 널브러진 광필두를 보고 씩 웃었다.

승기가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는지 자명한 상황이었다.

정대식은 다시 한번 말했다.

"마지막으로 권유한다. 7성 무구를 내놓고 썩 꺼져! 그렇다면 널 잡아다 각성자 연맹에 갖다 바치지는 않겠다. 그래도 평생을 도망자로 살아야겠지만, 바닷속에 처박히는 것보다는 낫잖아?"

각성자 연맹이나 헌협이 공공의 적으로 지명한 범죄자의 경우, 태평양 한가운데 있다는 각성자 전용 감옥에 갇혀 온갖 실험에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죽기보다 더한 처지라 하니 그 취급이 어떤지 알 만했다.

특히 광필두의 경우 이능 파괴라는 전례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실험실에서 그의 뼛골까지 빨아내려고 들 터였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앉은 광필두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앉은 채로 무언가를 뒤적거렸다.

뭘 하는 건가 싶었으나 뭘 하는 건지 궁금해서 굳이 훼방을 놓지 않았다. 설령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린다 한들 다 이겨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능 파괴가 통하지 않는 이상, 마기전의 진화를 이루어낸 정대식을 광필두가 쓰러트릴 방법은 없었다.

그러자 광필두가 무슨 가루 같은 걸 꺼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물도 없이 그것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 방법만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 비기를 쓰겠다 이거냐?"

정대식이 이죽거리는 소리를 듣고 광필두가 몸을 일으켰다.

곧, 그의 사지가 비틀리고 광필두가 괴성을 내뱉으며 몸을 쥐어뜯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광필두의 몸이 경련하며 순식간에 두 배쯤 되는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근육들이 스테로이드를 사발로 주입한 것처럼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라났으며 힘줄과 혈관이 도드라지며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동시에 그의 마력들이 정전기처럼 전신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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