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58화 (257/297)

# 258

현질 전사

-11권 10화

블라디미르 대령과 그 부대원들을 몰살시킨 것은 사방으로 쏘아져 나간 일종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창이었다.

사람 하나쯤은 우습게 꿰뚫을 수 있는 크기에 성벽조차 무너트릴 강도를 한 창 수백 개가 일시에 발사되어 나갔으니 남아나는 게 있을 리 없었다.

<정대식 님, 괜찮으십니까?>

엔트로피가 정대식에게로 가까이 접근하자 마기전이 울렁거렸다.

그게 물러서라고 경고라도 하듯이 그 모양을 바꾸었다.

정대식의 어깨와 팔뚝, 가슴팍으로 가시 같은 것이 삐죽삐죽 돋아났다.

엔트로피는 자신이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일시에 쏘아져 나올 것을 알았다.

<정대식 님, 정신 차리십시오.>

엔트로피는 적정한 거리를 두고 몇 번이나 정대식을 불렀다.

그제야 정대식이 눈을 깜박거리더니 정신을 차렸다.

그는 눈앞에 선 엔트로피를 보고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곧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엔트로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블라디미르 대령은?"

<죽었습니다.>

"죽었다고?"

정대식은 오래지 않아 주변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발견했다.

그 광경을 보고 정대식은 입을 꽉 다물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자들을 몰살시킨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정대식은 제 몸을 감싸고 있는 마기전을 내려다보았다.

"마기전이......."

<또다시 진화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 지구상에 유일무이한 여신급 무기입니다.>

정대식은 잠시 아연실색하여 마기전을 내려다보았다.

마기전은 기기묘묘한 빛을 띤 채 정대식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천천히 정대식의 신체를 감싸고 흐르는 마기전은 마치 그 자체로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정대식은 무언가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기전이 레전드급이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과 같이 느껴졌다.

오히려 마기전이 자신의 신체와 하나가 되었기에, 벌거벗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 위력이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은 조금 전에 일어난 일만 봐도 자명했다. 거기다 진짜로 놀라운 것은 단순히 그 위력이 아니었다.

'마력이...... 마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어! 오히려 더 채워졌잖아?'

조금 전 분노로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정대식은 광범위한 공격을 가했다.

원래 마력 소모가 극심한 마기전의 특징대로라면 지금쯤 마력을 다량 소비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마력이 도로 차올라 있으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적을 처치하면 할수록 마력을 보충할 수 있는 건가?'

그렇다면 마기전을 착용하고 싸우는 이상, 결코 지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끝도 없이 공격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이니 실로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후의 전쟁을 앞두고 마기전이 여신급으로 진화한 것은 반길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기전이 진화한 순간이 분노에 사로잡힌 때였다는 사실과 그것을 사용할 때 자각이 없었다는 사실이 찜찜했다.

사방팔방에 죽어 자빠진 시체를 보니 착잡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블라디미르 대령은 미하일 소령을 인질로 붙잡고 내게 7성 무구를 내놓으라 협박하려 들었을 때 이러한 결과를 예측했어야 했다.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몬스터도 아닌 사람을 죽이다니.......'

정대식은 씁쓸한 표정으로 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창백했고 좀 질린 것 같아 보였다.

정대식은 말없이 앞장을 서며 말했다.

"키예프는 건너뛰어 가겠다. 고생스럽겠지만 휴식은 다음 도시에서 취하기로 하지. 서지원, 공간 이동을 하자."

서지원이 주춤거리며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고, 곧 도시 건너편으로 이어진 통로를 열었다.

"공간 이동!"

펜리르 부대는 일제히 그곳으로 뛰어들었고,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남았다.

* * *

펜리르 부대는 키예프를 벗어난 곳에 있는 작은 마을 외곽 빈집에서 야영을 했다.

비록 뜨거운 물에 샤워하거나 푹신한 침대에 눕지는 못해도 꿀맛 같은 휴식이었다.

부대원들을 쉴 수 있게 두고 정대식은 잠시 밖에서 혼자 걸었다.

체르노보그로 인해 빛 한 점 없이 어두운 하늘에 익숙하다 보니, 구름 사이로 보이는 달과 별이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밤하늘이 아름답다고 감탄하기에는 마음속의 고민이 깊었다.

정대식은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엔트로피를 불렀다.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블라디미르 대령을 죽인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군. 그 하나라면 모를까 특공대원들까지 모조리 몰살시켰으니, 러시아 정부에서 어떻게 나올지 염려스러워."

<아마 순순히 넘어가려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블라디미르 대령은 어떻게 우크라이나에 먼저 도착해 있었을까? 그는 러시아 군인이잖아?"

<정대식 님이 블라디보스토크로 순순히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요. 우크라이나 정부와도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겁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도 제대로 된 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기에는 무리가 뒤따르는 상태니까요.>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면 러시아 측에서도 우릴 어쩌지는 못할 거야. 진짜 걱정되는 것은 사실상 7성 무구야. 블라디미르 대령이 국경을 넘으면서까지 7성 무구를 탈취하려 드는 것을 보면, 이걸 노리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광필두를 제압하고 7성 무구를 빼앗은 것까지는 좋은데, 그 처분이 적잖이 난감했다.

이대로 7성 무구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각성자 연맹이나 헌터 협회, 혹은 한국 정부에서 7성 무구를 내놓으라고 할 가능성이 컸다.

정대식이 굳이 7성 무구를 갖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은 적잖이 꺼림칙했다.

무려 다섯 개나 되는 7성 무구가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누구에게 넘겨도 뒤탈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말고는 7성 무구를 안전하게 지켜낼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군. 국가 기물 금고도 일전에 광필두의 습격으로 탈탈 털렸을 테고."

<하지만 정대식 님이 7성 무구를 갖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광필두가 7성 무구를 모으는데 그렇게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으니까. 이미 올인원인 데다가 여신급 무구를 갖고 있는 내가 7성 무구까지 갖고 있다고 하면 다들 긴장하겠지."

<무력으로 7성 무구를 빼앗으려 들지도 모릅니다.>

정대식은 코웃음을 쳤다.

"무력이라고?"

정대식은 사실상 자신이 세계 최강에 한없이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블라디미르 대령 역시도 파워 랭킹 10위권에 항상 드는 인물이었고 듀라한이나 광필두와는 달리 공식 랭킹에서도 그 순위가 상당히 높았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정대식의 발끝조차 못 건드리는 상태가 되었다.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리고 9레벨이 되었을 때 이미 인간 중에서는 대적할 자가 없어진 것이다.

<물론 정대식 님에게 무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까운 일이겠으나 블라디미르 대령과 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려 드는 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래. 내가 타이탄 공격대에 적을 두고 펜리르 부대를 거느리고 있으니 그들을 이용하여 7성 무구를 빼앗으려 들지도 모르지. 설령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대원들은 흔들릴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인척 등을 인질로 붙잡거나 혹은 막대한 대가를 제의하며, 정대식을 배신하고 7성 무구를 넘기라는 식의 유혹이 있으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대식은 부대원들을 그렇게 애꿎은 처지에 놓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아까 블라디미르 대령과 그 부하들을 몰살시키고 나서 본 부대원들의 표정도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정대식의 강함이 인간의 수준을 넘어 괴물에 이르다 보니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

정대식은 한동안 들판을 서성이다 야영지로 돌아왔다.

밤이 늦어 부대원들은 이미 깊이 잠이 든 상태였다.

불침번인 기철민만이 깨어 있었다.

"고생이 많군."

정대식이 하는 말에 기철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들 식사는 잘 했고?"

"예, 여기 대장님 몫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래, 고맙다."

정대식은 간단히 식사를 하고 빈 그릇을 닦아놓았다.

그리고 타닥타닥 튀는 모닥불을 보고 앉아 있는데 말이 쉽사리 안 나왔다.

그러나 지금 당장 해야 할 말이었으므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기철민, 아무래도 나는 혼자 떠나야겠다."

기철민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황 판단이 빠른 인물답게 금세 평정을 되찾고 말했다.

"저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이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너희들을 다 데리고는 행적을 숨기기가 어려울 테니까. 게다가 너희들에게 부탁할 일도 있다."

"그게 뭡니까?"

"공대장님께 전해라. 7성 무구는 내가 갖고 있겠다고."

정대식의 말에 기철민이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왜 굳이 7성 무구를 갖고 있으시려는 겁니까? 대장님껜 이미 마기전이 있잖아요? 대장님이 7성 무구까지 갖고 계신다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억측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기철민의 지적이 옳았으나 정대식은 다른 점을 지적했다.

"7성 무구는 최초의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던전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던 존재들로부터 인류를 지켜냈다.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으니, 그 쓰임이 필요할 때가 조만간 올 것이다."

정대식이 말하는 뉘앙스에서 미묘한 것을 느꼈는지 기철민이 말했다.

"설마, 조만간 대규모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하시는 겁니까?"

정대식은 솔직히 대답했다.

"국지적인 몬스터 브레이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게다가 새로운 던전이 대거 나타난 건 또 어떻고? 나는 조만간 1차 몬스터 브레이크를 능가하는 거대한 몬스터 웨이브가 들이닥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가......."

기철민은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중얼거렸으나 정대식의 말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곧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대장님은 7성 무구가 그때를 대비한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이미 한번 그 위력을 발휘해낸 전력이 있으니 나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은 7성 무구를 봉인해 놓을 수 없어. 그렇다고 내가 7성 무구를 갖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7성 무구에 걸맞은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것입니까?"

"지금은 새 주인을 찾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니야. 당장은 눈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 7성 무구를 가지려 드는 자들이 많을 테니까. 진짜 위협이 닥쳐들었을 때만 7성 무구의 주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블라디미르 대령과 같이 어리석은 자들로부터 7성 무구를 지키겠다. 그걸 위해선 당분간 몸을 숨기고 있는 편이 낫겠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