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60화 (259/297)

# 260

현질 전사

-11권 12화

최희와 정대식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던 최선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애초에 광필두의 목적이 마갑이었으니까, 듀라한을 쫓아서 거기까지 간 것이로군요."

정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행히 때맞춰 정신을 차리고 광필두를 제압해 7성 무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새로이 획득하게 된 복구 능력으로 부대원들을 비롯하여 듀라한의 능력도 되돌려 주었고요."

정대식의 설명을 듣고 최희가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로 내 이능을 되찾아줄 수 있다는 말이야?"

"물론입니다."

"거짓말 아니지? 진짜지? 허풍이면 가만 안 둘 거야."

"설마 제가 이런 거로 허풍을 떨겠습니까?"

"그래...... 그럼......."

"예, 지금 당장 되돌려드리죠."

"지금 당장?"

"망설일 필요 뭐 있습니까?"

최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정대식과 마주 보고 섰다.

정대식은 그녀에게 의식을 집중하고 시동어를 입안으로 읊조렸다.

"복구."

우우우우우웅-------

그의 마력이 최희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녀는 결과가 두렵기라도 한지 눈을 꼭 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곧 빛이 가시고 정대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의 복구 스킬의 레벨은 30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스킬들의 레벨도 대폭 높여 놓았다.

체르노보그를 처치하고 상점 업그레이드를 하고 나서도 88조가 넘는 자금이 남아있었기에 맘 놓고 레벨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의 주요 스킬의 평균 레벨은 거의 30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최희의 능력이 되돌아오지 않을까 조금쯤 염려가 되었다.

부대원들에게 복구 스킬을 사용할 때는 시간차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희가 능력을 잃어버린 지는 벌써 며칠이 지났기에 호언장담을 한 것과는 달리 자신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만약에 능력이 되돌아오지 않을 시에는 복구 스킬을 더 업그레이드하면 될 일이다.

아직까지는 자금이 여유로운 덕분이다.

그래 봤자 만렙을 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정대식의 질문에 최희는 대답이 없었다.

눈을 감은 채로 눈꺼풀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정대식이 한 번 더 물었다.

"어떻습니까?"

"......."

그녀는 대답 대신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그러자 그 눈이 마력으로 번쩍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곧, 때아닌 날벼락이 떨어졌다.

쿠르르르르------------

콰과과과광!

느닷없이 거센 바람이 몰아치더니 저택의 큰 유리창들이 몽땅 깨졌다.

쨍그랑! 꽈지직! 쨍강! 파바바밧!

"으악!"

놀란 정대식이 어깨를 움츠렸고 최선이 비명을 올렸다.

"언니!"

그러기가 무섭게 마른하늘에 번개가 내리쳤다.

번-쩍!

꽈르르르르르르릉!

곧 엄청난 천둥이 울부짖으며 저택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난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연거푸 벼락이 내리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번-쩍!

빠지지지지직!

번갯불이 집안으로까지 흘러들어오는 가운데 그 소란 한가운데에서 최희가 경이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뇌전을 무슨 옷처럼 두르고 선 그녀가 환한 표정으로 크게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하하하하! 내 능력이 돌아왔어! 돌아왔다고!"

꽈르르르르르릉!

능력이 돌아온 게 어지간히도 기쁜지 그녀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다.

연거푸 내리치는 천둥 번개가 저택을 통째로 깨부술 것 같았기에 정대식과 최선이 아우성을 쳤다.

"아, 알겠으니까 그만해도 됩니다!"

"언니, 이제 그만해!"

"하하하하하!"

간신히 최희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바깥에 세찬 비가 쏟아졌다.

그녀의 능력에 이끌려온 먹구름이 뒤늦은 비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다.

유리창이 다 깨지고 물건들이 쓰러져 엉망진창이 된 거실에 비가 들이치는 가운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최희가 멋쩍은 듯이 말했다.

"이런, 난리 났네."

"언니!"

최선이 화가 난 듯 소리를 치고 최희는 짐짓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깨진 유리 조각을 털어내며 부스스 몸을 일으킨 정대식은 난장판이 된 집 안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내 능력이 복구라면 이것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레벨이 30이나 되는지라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이라면 이만한 규모도 복구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대식은 한번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았다.

"복구."

파아아아아아앗-!

그에게서 흘러나온 마력의 빛이 집 전체를 감싸고돌았다.

곧 마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듯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집 안으로 들이친 빗물들이 빠져나가고 깨진 유리창이 도로 붙었다.

이윽고 빛이 가셨을 땐 모든 것이 원상복구 되어있었다.

"와-!"

최선이 입을 크게 벌리고 감탄사를 내뱉는 가운데, 최희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원래대로 돌아갔잖아! 굉장해! 단순히 생체에만 작용하는 능력이 아니었군!"

"저도 지금 안 거지만 사물, 생물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사용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 너란 놈은...... 어디까지 강해질 참이야?"

최희는 몹시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능력을 되찾고 나니 잊혔던 호승심이 도로 되살아나는 모양이었다.

정대식은 너털웃음을 흘렸고 최희는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큰 은혜를 입게 되었군."

"아닙니다. 누군가 이능을 파괴한다면, 그것을 복구시킬 사람도 있어야겠지요."

"도대체 무슨 수로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해줄 말이 없겠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라 그렇습니다."

"체르노보그와의 전투로 얻은 것이 많나 보군."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 그만한 대가를 얻어야겠지요."

그렇게 그녀와 대화를 하고 있으니 좀 기분이 묘했다.

한때 김태희로 자신의 부대원이었는데, 이제 다시 최희로 돌아가서 거만한 태도로 반말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와의 관계가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자신은 이제 막 타이탄 공격대에 들어간 애송이이고, 최희는 대한민국 유일한 SS급 헌터, 영원한 슈퍼스타로 느껴졌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정대식은 이미 최희를 추월한 상태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여전히 그녀를 우러르고 있었다.

그녀는 정대식이 이해 못 할 헌터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고 전투에서 기쁨을 누리는 인물들 말이다.

최후의 전쟁에서 끝까지 남아 싸울 이들도 최희와 같은 사람들일 터였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최후의 전쟁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어떤 강대한 적이 나타나든지 간에, 나와 함께 싸워줄 이들이 있을 것이다.'

최희는 멀쩡해진 소파에 털썩 앉아 맨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정대식에게 체르노보그와의 싸움에 대해서 털어놓아 보라고 말했다.

정대식은 러시아에 도착해서 블라디미르 대령과 만난 일, 그와의 협상을 통해 체르노보그를 처치하기로 결정한 일, 그리고 듀라한과 만난 일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최희와 최선은 리액션이 좋았기에 그 긴 이야기를 어렵잖게 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대령과 키예프에서 마주치게 된 이야기를 하려니 말이 쉽게 안 나왔다.

체르노보그를 쓰러트린 것은 확실히 영웅적인 행위였으나 블라디미르 대령과 그 수하들을 몰살시킨 게 잘한 짓인 양 말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블라디미르 대령이 내게서 7성 무구를 빼앗으려 했을 때는 그러한 결과를 예상했겠지요. 하지만 내가 내 정신이었더라면 그자를 죽이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하일 소령이 희생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니 분노를 참을 수 없었어요. 자각도 없이 힘을 써버렸고 그로 인해 수십 명의 사람을......."

"정대식 씨."

최선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정대식의 손을 붙잡아 왔다.

최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정대식을 보고 혀를 쯧 찼다.

"그런 걸 가지고 마음이 약해지다니, 아직 멀었어. 강함이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강해질수록 내가 무언가를 지킬 수도 있지만, 그만큼 없애버리기도 쉬운 법이지. 어차피 블라디미르 대령 그자가 7성 무구를 빼앗아 세계 정복을 하고자 결심했을 때는, 목숨을 아끼지 않기로 각오한 것이다. 분수도 모르고 허랑방탕한 꿈을 꾼 대가일 뿐이니 신경 쓰지 마. 그게 그렇게나 신경이 쓰인다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생각을 해. 실제로 넌 날 구했잖아?"

"제가 말입니까?"

정대식의 반문에 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네가 내 능력을 돌려주지 못했더라면 난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적어도 나에게 너는 구세주나 마찬가지야."

최희는 문득 정대식을 강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블라디미르 대령에게 너는 심판자였지만, 나에게는 구세주야. 그러니까 마음이 약해지거나 흔들릴 때는 이 점을 명심하도록 해."

정대식은 최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정대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7성 무구 중 무려 다섯 개나 되는 무구를 가지고 있는 데다가, 마기전을 여신급 무기로 진화시켰고 기존의 능력 또한 믿기지 않을 만큼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즉, 정대식은 더 이상 대적할 자가 없는 강자였다.

그가 광필두나 블라디미르 대령과 같이 허튼 야망을 품게 된다면 그야말로 전 지구의 재앙이 된다.

설령 정대식이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한순간의 방황이나 좌절로 그리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희는 그 점을 말하고 있었다.

정대식은 손을 깍지 끼고 말했다.

"......적어도 지금은 심판자로서 괜한 짐을 짊어지고 싶지는 않군요. 아무튼, 부탁드릴 일이 좀 있습니다."

"뭐지?"

정대식은 최희를 보고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블라디미르 대령과 그 수하들을 죽인 일로 러시아 정부 측에서 우리 정부와 각성자 연맹, 헌협 측에 강력히 항의를 할 것입니다.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는 몰라도 제가 7성 무구를 내놓지 않는 이상, 다들 저를 잠재적인 악으로 여길 테니 여러 가지 압박이 뒤따를 겁니다. 특히 제가 속해있는 타이탄 공격대에 그 책임을 물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거기로 돌아갈 펜리르 부대원들도 그렇고요. 그러니 가능한 그들을 지켜주십시오."

정대식이 하는 말을 듣고 최희는 미간을 찡그렸다.

"네가 7성 무구를 갖고 있겠다는 것은...... 역시, 그게 필요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대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체르노보그를 처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았습니다. 새로운 던전이 생겨나 그 안에서 몬스터들이 뛰쳐나오는 광경을요. 국지적인 몬스터 브레이크가 줄을 잇고 있으니 조만간 더 큰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체르노보그와 같은 놈들을 또다시 상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저는 마지막 7성 무구인 궁니르를 확보해둘 참입니다."

"그렇다면 델라니포스는? 마갑은 여전히 듀라한이 갖고 있잖아?"

"듀라한이라면 제게 진 빚이 있지요. 제가 마갑을 필요로 하면 얼마든지 그것을 내어줄 겁니다. 아니면...... 그가 7성 무구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고요."

정대식에게는 이미 마기전이 있었으므로 굳이 7성 무구를 소유할 필요가 없었다.

7성 무구까지 독차지하고서 모든 일을 다 감당하기보다는, 최후의 전쟁 때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워줄 전우를 필요로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