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
현질 전사
-11권 16화
광필두의 능력에 대해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던 것을 보면, 광필두는 강철우의 유지를 받들기 전까지는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로 인해 핍박받고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고 말했으니, 단지 이능 파괴자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겁을 집어먹은 자들이 많았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정대식이 그만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당장에 닥쳐들 몬스터 브레이크가 아닌, 그 너머를 보는지도 모른다.
만약 정대식이 몬스터 브레이크에서 인류를 구해내는 영웅이 된다면, 그가 세계의 권력을 장악하는 일은 아주 손쉬울 터였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만한 권력자가 될 테니 지금 세상의 권력을 움켜쥔 자들에게는 몬스터보다 그가 더 큰 적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정대식은 그런 상황까지도 다 예견을 하고 타이탄 공격대를 탈퇴하겠다고 한 것인가......?'
입맛이 쓴 것을 느끼고 기철민은 질문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기철민의 질문에 강영후는 간단히 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뻔하지 않은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강영후가 말을 이었다.
"몬스터를 때려잡는 일이지. 우리는 헌터니까."
단순명쾌한 말에 기철민은 복잡하던 심사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새삼 강영후에게 존경을 느꼈다.
"예, 우리는 헌터죠. 고로, 사냥하고......."
"고로, 존재하는 것이지."
짧은 다짐을 주고받은 두 헌터는 서로를 보고 씩 웃었다.
* * *
띠링띠링띠링!
띠링띠링띠링!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기철민은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타이탄 공격대의 비상연락망이 울리는 소리라 뿌연 눈을 비비며 황급히 메시지를 확인하자 지금 당장 무장을 갖추고 본사로 나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기철민은 서둘러 옷을 껴입고 장비를 챙긴 뒤 집 밖으로 나섰다.
차를 달려 급하게 펜리르 부대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미 고덕화와 서지원, 그리고 허미래가 도착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묻는 말에 그들 세 사람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자 아직 이재우와 김송근은 오기도 전인데 강영후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다 모였나?"
"아직입니다. 두 사람이 안 왔습니다만."
"기다릴 여유가 없군. 세 사람만이라도 지금 당장 출격해야겠다."
"예? 출격이라뇨? 설마 또 근방에서 몬스터 브레이크가?"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몬스터 브레이크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니 불길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강영후가 혀를 쯧 차면서 말했다.
"광필두가 도주했다."
"아이고."
기철민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잖아도 광필두가 갇혀 있는 속박의 구슬을 건넬 때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광필두가 조디악 공격대도 팔아버리고 혈혈단신이라고는 하지만, 그를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정대식의 말에 따르자면 라스베이거스에 있을 때 조디악 공격대 소속이었던 설유란과 그의 동생으로 보이는 광영식이 같이 있었다고 하니, 그들이 구하러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의 이능 파괴 능력을 이용하려 드는 자들일 가능성도 농후했다.
강영후가 하는 말을 듣고 고덕화는 답지 않게 거친 말을 했다.
"잡아다 준 고기를 지키지도 못해놓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다니, 뻔뻔하기 짝이 없군요."
"그나마 장한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우리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광필두의 도주 사실을 숨기느라 급급했을걸."
기철민은 솟구치는 화를 숨기지 않은 채로 물었다.
"지금 광필두는 어디 있습니까?"
"그것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다. 광필두가 사라진 시각은 약 세 시간 전, 광필두가 갇혀 있는 속박의 구슬을 보관 장소로 옮기다가 습격을 당한 모양이야. 속박의 구슬을 탈취해간 자들은 필시 뛰어난 능력자들로, 듣기로는 그들이 타고 있던 차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다더구만."
"광필두의 동생일 가능성이 큽니다. 광영식이라는 자에 대해 들은 바가 있어요."
"수집된 정보에 따르자면 인근에 마법사로 추정되는 여자도 목격이 되었다고 하니, 설유란과 광영식 그 두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그 두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봐야겠네요."
허미래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의 이능 파괴 능력을 탐하는 타국이나 제3의 세력이 조직적으로 광필두를 납치해갔다면 일이 더 골치 아팠을 테니까요."
"조직적 움직이었더라면 적어도 추적하기는 쉬웠겠지."
강영후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기철민은 불만을 토로했다.
"도대체 그놈의 각성자 범죄 대책반인지 나발이지 하는 놈들은 뭘 했답니까? 겨우 두 사람한테 당해서 광필두를 놓친 주제에 7성 무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다니."
"그러잖아도 장한나의 목소리가 죽을 맛이었지."
그거 하나는 통쾌하다는 듯 강영후가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서울 시내 지도를 펼치고 말했다.
"어찌 됐든 우리 타이탄 공격대의 능력을 이용해서 그들이 도망친 루트를 짚어봤다. 도주할 때 순간 이동 스크롤을 썼다 하니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지상의 CCTV에 찍힌 바가 없는 것을 보면 하수도나 지하 철로를 따라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강영후는 곧 사무실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인물을 불러들였다.
그는 다름 아닌 네크로맨서 유태훈이었다.
"외인부대의 유태훈은 다들 안면이 있겠지. 그가 추적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재우와 김송근 두 사람은 도착하는 대로 합류하라 이르지."
유태훈은 고개를 까닥해 보이고 말했다.
"그럼 서두를까?"
기철민과 허미래, 그리고 고덕화는 서둘러 그와 함께 광필두의 추적에 나섰다.
그들은 광필두가 사라진 장소로 신속하게 이동했다.
주변으로 이미 경찰을 비롯하여 각성자 범죄 전담반에서 나온 이능 추적대의 추적자들이 투입돼 주위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이제나저제나 타이탄 공격대의 지원을 기다리던 장한나가 세 사람이 도착하는 광경을 보고 버선발로 달려 나왔다.
"펜리르 부대원들이죠? 잘 와주었어요!"
기철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말했다.
"인사는 생략합시다. 광필두가 어디로 도망갔는지는 알겠습니까?"
"현재 지하 노선을 통해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어요."
"그쯤은 우리도 이미 짐작하고 있는 바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구체적인 위치입니다. 지금 어딨냐는 말이지요."
장한나는 대답을 못 했고 기철민은 빈정거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 속박의 구슬에 갇혀 아무 힘도 못 쓰는 광필두를 놓쳐 놓고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파악을 못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듣기로는 겨우 두 사람이 광필두를 데리고 달아나고 있는 모양인데. 아! 아니면 설마 각성자 범죄 조사관들이 광필두의 능력에 겁을 집어먹기라도 한 겁니까? 그래서 추적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거라면......."
장한나는 분하다는 듯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기철민은 기분 같아서는 속을 아주 박박 긁어놓고 싶었으나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서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유태훈을 돌아보았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추적하는 수밖에...... 어이, 네크로맨서."
유태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정신 집중을 위해 눈을 내리감았다.
기철민은 네크로맨서가 어떻게 도망자를 추적한다는 것인지 궁금증을 느꼈으나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찍찍찍.......
찌지지직! 찍찍!
사방에 유태훈의 마력이 묘한 빛을 띤 채로 번진다 싶더니만, 꺼림칙한 소음이 들려왔다.
곧 여기저기서 질겁하고 비명을 질러대어 소란이 일었다.
"으아악!"
"쥐다! 쥐!"
"고양이도 있는데......? 으아악!"
"끄악, 저리 가!"
허미래는 사방팔방에서 모여드는 좀비 떼 아닌 좀비 떼를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고덕화의 등에 올라타고 싶다는 눈치로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
낯빛이 창백하기는 고덕화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기철민도 사방에서 풍기는 썩은 내를 견디기 힘들었으나 유태훈은 네크로맨서답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눈을 파랗게 빛내며 도시 밑바닥에서 모아들인 쥐와 고양이, 그리고 개 사체로 만들어낸 좀비들을 보고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설유란과 광영식, 그리고 광필두를 추적한다."
그의 말을 듣고 좀비들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주로 쥐로 이루어진 좀비 떼가 다시금 지하로 기어들어 가 사라졌고, 유태훈은 자신의 서번트들이 무슨 흔적이라도 찾아내길 기다리며 의식을 집중하고 있었다.
기철민은 그런 유태훈의 능력에 적잖이 놀랐다.
전 재산을 털다시피 해서 언데드 퀸의 심장을 구입했다고 하더니만, 그 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한 것 같았다.
일전에 씨 서펜트를 조종한 것도 그렇고, 지금 역시도 그렇다.
쥐나 고양이 따위의 소동물을 다스리는 게 씨 서펜트와 같이 거대한 몬스터를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쉽겠지만, 지금 유태훈은 광필두의 흔적을 추적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상당히 먼 거리까지 자신의 능력을 뻗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한 지역구 정도는 커버할 수 있는 경지인 것 같아 적잖이 감탄이 들었다.
기철민 역시도 수차례의 훈련과 원정, 실전 경험, 그리고 탈라리아와 티르브링어의 보유로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강해졌으나 그것은 전부 정대식의 덕분이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기철민은 아직까지도 별 볼 일 없는 딜러로 썰자팟이나 막공을 전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받은 것에 비해서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나 새삼 반성이 되었다.
'광필두...... 그자를 반드시 잡겠다!'
기철민은 그와의 일전에서 겪어야 했던 수모를 상기하며 각오를 다졌다.
그때, 유태훈이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찾았다."
"어디지?"
기철민의 질문에 유태훈이 서울 시내 홀로 맵을 띄우고 한 장소를 표시했다.
그들은 이미 강남을 넘어 서울 시내 외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여기다."
기철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덕화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고덕화가 허미래를 번쩍 들어 옆구리에 꼈다.
"꺅!"
허미래가 작게 소리를 지르며 고덕화에게 매달렸고, 천강벽수선을 펼쳐 들어 실라이론을 불러낸 그가 곧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철민도 탈라리아를 착용하고 허공을 박차 강을 건너기 위해 몸을 날렸다.
* * *
강을 지나 서초구를 날다 보니 유태훈의 도움인지 좀비 쥐 떼들이 지상으로 올라와 일제히 한쪽으로 달리는 게 보였다.
그들을 따라서 상가 옥상을 건너다니던 기철민은 오래지 않아서 톨게이트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빨간색 소형차 한 대를 발견했다.
"저건가?"
기철민은 몸을 날려 그 소형차 위에 내려섰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소형차 지붕에 달라붙은 그는 몸을 숙여 앞 유리에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