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67화 (266/297)

# 267

현질 전사

-11권 19화

정확히는 휘두르려고 했다.

궁니르를 높이 치켜든 그 순간.

명치로 정대식의 주먹이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죽어라, 개새꺄."

정대식의 욕설이 들리기가 무섭게 뱃속이 확 뒤틀리며 뜨거운 것이 왈칵 치솟아 올랐다.

"컥."

피를 한 사발을 토해낸 광필두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에 그 충격도 만만찮았으나 광필두는 그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히 명치를 꿰뚫린 충격이 아니었다.

몸속의 마력이 모조리 뒤틀리며 장기가 헝클어지고 피가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컥, 커억!"

광필두는 몸부림을 치며 피를 연거푸 쏟아냈다.

그런 광필두를 정대식이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는 발끝으로 궁니르를 차내고 광필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아무리 궁니르라 하더라도 날 이기진 못해. 7성 무구를 다섯 개나 가지고도 날 이기지 못했잖아.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내게 덤빈 거냐?"

정대식의 물음에 광필두는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몸 상태가 아니기도 했고 본인도 왜 그랬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단지 정대식을 쓰러트리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다 소용없을 거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가 7성 무구 중 다섯 개를 가지고 있는 한은 영원히 7성 무구를 완성할 수도 없을 것이고, 그가 세상의 구원자를 자처하는 한은 파괴할 수도 없을 터였다.

정대식은 광필두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뒷일을 생각지 않을 수가 있었다.

오로지 눈앞의 목적만을 쫓아도 결국엔 정대식이 나타나서 제지할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자신의 능력을 쓰고 다녔다.

자신이 이능 파괴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 죽을 때까지 그 능력을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능 파괴 능력을 타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꼈던 탓이었다.

그런데 정대식의 존재를 깨닫고 나서 그런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기분이라, 광필두는 굳이 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냥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체념을 하려 했다.

그때, 정대식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품에서 약병을 꺼내 들었다.

죽으라고 할 땐 언제고, 막상 죽으려고 하니까 못 견디겠나 보았다.

자신을 또 살리려 드는 것을 알고 광필두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정대식은 이를 득득 갈며 광필두의 입에 포션을 들이붓고 말했다.

"기철민이 진짜로 죽었으면 너도 죽었어. 기철민이 목숨만은 살았으니 너도 살려주는 거다."

약 기운이 돌면서 몸에 혈류가 되돌아오고 고통이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완전 회복 포션까지는 아닌지 마력도 회복되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 없었다.

완전히 무력해진 광필두를 마기장으로 구속하며 정대식이 중얼거렸다.

"삼 세 번이라고. 이번이 두 번째다. 마지막은 얄짤없을 줄 알아."

광필두는 마음이 놓이기라도 했는지,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놓쳐 버렸다.

* * *

"쳇, 기절했네."

정대식은 투덜거리며 광필두를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사실 정대식이 인정이 넘쳐서 광필두를 살려준 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몬스터는 암만 죽여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상대가 인간이다 보니 소감이 달랐다.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살인을 하기는 싫다는 생각에 일단은 목숨만은 붙여 놓자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살아있는 쪽이 더 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불렀다.

"야, 엔트로피!"

<부르셨습니까, 정대식 님.>

"너는 내가 이렇게 싸우고 있는데 어째 코빼기도 안 보이냐."

괜히 투덜거리는 말을 듣고 엔트로피가 뾰족하게 답했다.

<그럼 부르지 그러셨습니까.>

"너 이제 자유의지가 있다며. 네 맘대로 나타났다 없어졌다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럼 안 불러도 나타나서 날 도와줘야지."

<굳이 도와줄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만.>

"뭐, 그건 그렇지?"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혼자 몸으로 소규모 던전 하나쯤은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이니 제아무리 궁니르를 가졌다 하더라도 광필두는 심심풀이도 되지 않았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것도 애당초 싸움의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다면 그럴 여유도 없었겠지만, 정대식이 일방적으로 광필두를 두드리는 꼴이었기에 죽이기까지 하려니까 좀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녀석이 또 도망치면 귀찮을 테니까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

<마기장에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도망칠 수 없을 텐데요.>

"그럼 계속 마기장을 유지해야 하잖아. 그런 귀찮은 짓을 언제까지 하란 말이야? 가서 재판도 받고 처벌도 받고 할 동안 계속 옆에 붙어 있으라는 말이야? 그런 거 말고, 좀 더 간편하고 영구적이고...... 이왕이면 도망칠 방법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는 말이지."

엔트로피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적당한 아이템이 있습니다만.>

"흥, 보나 안보나 또 한 100억쯤 하겠지?"

<아닙니다. 1조 정도 합니다.>

"우라지게 비싸네!"

<우는소리 하지 마십시오. 그 정도 자금은 충분하시지 않습니까?>

정대식은 인정하기 싫은 맘에 우물쭈물했다. 1000조를 모아야 하는 신세이다 보니 죽는소리가 절로 나왔다.

"젠장, 던전에 들어온 김에 몬스터 좀 때려잡고 가든가 해야지...... 그래야 돈을 벌 거 아냐? 아무튼, 그 아이템이란 게 뭔데?"

<절대복종의 문신입니다.>

"절대복종이라고?"

<예. 이 문신을 쌍방이 몸에 새기고 있으면 슬레이브 문신이 새겨진 쪽은 오너 쪽 문신이 새겨진 쪽의 뜻을 결코 거역할 수 없습니다.>

"뭐야, 그거 내 말만 듣는 서번트...... 꼭두각시 뭐 그런 게 된다는 거야?"

<그런 종류의 아이템도 있습니다만, 이건 좀 다릅니다. 자유의지가 살아있는 가운데 오로지 정대식 님의 뜻에 반하는 일만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 그럼 광필두의 의식이 온전한 상태에서도 내가 가서 얌전히 처벌받으라고 하면 받는 거네?"

<그렇습니다.>

"오, 좋다! 그거 편하겠네."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사람을 좀비나 구울처럼 자유의지를 완전히 박탈해 놓는 것은 찜찜했다.

상태가 그래가지고 재판이나 처벌을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가격이 좀 있더라도 엔트로피가 말한 아이템을 쓰기로 하고 말했다.

"좋아, 그걸 구입하겠다."

<절대복종의 문신을 구입하고 1조 원을 차감합니다.>

엔트로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 아롱아롱 기묘한 글자 두 개가 떠올랐다.

개중 하나가 정대식의 손등에 날아와 박혔고 다른 하나가 광필두의 이마로 날아가 박혔다.

문신은 곧 흡수되어 사라졌으나 뭔지 모르게 그와 연결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됐나?"

<됐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서......."

그때였다.

별안간 땅이 우두두두두 떨리기 시작했다.

정대식은 어리둥절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사막 저편에서 시커먼 먹구름 같은 게 일어나는 광경이 보였다.

동시에 그쪽에서 몬스터들이 바글바글 몰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또 몬스터 브레이크야?"

정대식이 그렇게 물으며 엔트로피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눈을 번쩍 뜬 채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부터 눈부신 빛줄기가 그 눈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업그레이드를 할 때와 동일한 성질의 빛이라, 정대식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설마......?'

곧 이쪽으로 달려오던 몬스터 떼가 정대식에게까지 다다랐다.

놀랍게도 그 몬스터들은 정대식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괴성을 지르며 그를 지나쳐 달렸다.

그리고 사막의 지평선을 집어삼키며 엄청난 게 몰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크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그것은 일종의 회오리바람처럼 보였다.

모래 폭풍인 것 같았는데, 하늘이 닿을 듯 키 큰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던전에는 저 정도의 몬스터는 없었던 것 같았는데!'

비슷하게 모래 거인이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그건 좀 더 일반적인 크기에 모래로 만들어진 고렘과 같은 인상이었다.

그런데 저건 몬스터를 뛰어넘은 자연재해, 재앙에 가까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설마......?'

제발 아니기를 바라면서 주저하고 있노라니 엔트로피에게로 쏟아지던 빛이 뚝 그쳤다.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 엔트로피가 정대식을 보고 즉시 말했다.

<정대식 님, 시작됐습니다.>

정대식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딱 치며 한탄했다.

"설마가 역시가 된다더니만...... 예감이 맞았구나!"

<예, 라스트 몬스터 브레이크...... 최후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대식은 다가오는 모래 폭풍의 거인을 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직 레벨 10에 도달하려면 자금이 턱없이 모자라는데, 때가 지나치게 빨랐다.

"이게 마지막 몬스터 브레이크라면 이 던전뿐만 아니라 다른 던전에서도 이 난리가 났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모든 던전에서 모든 몬스터들이 뛰쳐나올 것입니다.>

"......빨리 던전에서 나가야겠군. 그 전에 이 녀석부터 처치해야겠어!"

정대식은 광필두를 엔트로피에게 떠맡기고 곧장 공격을 시작했다.

"마기파!"

마력의 파동이 파도처럼 밀려가 모래 폭풍을 두드렸다.

모래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며 하늘에 뜬 세 개의 태양을 가렸다.

그로 인해 사막에 어둠이 드리웠고, 그 어둠은 낯이 익었다.

체르노보그의 영향력 아래 있을 때처럼, 사방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정대식은 탄식을 삼켰다.

* * *

쿠오오오오오오오-!

모래 폭풍은 마기파를 얻어맞고 신체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기는 했으나 사방이 모래라서 그런 것인지 금세 원형으로 복구되었다.

그러면서 회오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으로 정대식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대식은 부유 신체로 두 발을 바닥 깊숙이 파묻고 버텼으나 오래지 않아 몸이 붕 날아올랐다.

그러기가 무섭게 회오리가 휘말려버렸다.

'크윽!'

회오리에 일단 휘말리고 나니 전신을 두드리는 날카로운 수억만 개의 모래알갱이가 느껴졌다.

마치 고덕화의 백년풍진을 계속해서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어지간한 사물이나 생물은 여기에 휘말리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터였다.

다행히 정대식은 마기전으로 신체를 보호하고 있었기에 그 지경이 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가 없는 것이, 몸이 회오리치는 팔뚝을 따라 놈의 중심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밖에서 볼 땐 몰랐는데, 모래 폭풍 거인의 가슴 중앙에 블랙홀처럼 시커먼 것이 보였다.

거기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다.

'저기를 노려야겠어!'

정대식은 몸을 있는 힘껏 웅크렸다. 그리고 두 손안에 자신이 가진 마력을 한계까지 압축하기 시작했다.

그가 쏟아붓는 마력이 한껏 응축되며 당장에라도 터질 듯 새파랗게 일렁거렸다.

곧 그 모양새가 일그러지더니 오래지 않아 모래 폭풍 거인의 가슴 중앙에 있는 블랙홀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모래 폭풍 거인의 가슴팍으로 끌려들어 가기 직전, 정대식은 그것을 터트렸다.

"마괴결!"

쿠우----------------------------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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