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 전사-269화 (268/297)

# 269

현질 전사

-11권 21화

<북쪽으로 50km쯤 떨어진 곳에 스켈이 출현했고, 남동쪽으로 65km쯤 위치에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북쪽으로도 8성급 이상의 몬스터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젠장...... 뭐가 그렇게 많아? 막을 사람이 없는 데가 어딘데?"

<다 없습니다.>

"뭐? 헌터들은 다 어디 갔어?"

<헌터 개개인은 대피소를 보호하거나 산발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고, 공격대들은 지정된 던전 근처로 이동하여 싸우는 중입니다. 그러나 뛰쳐나온 몬스터들의 수가 워낙에 많다 보니 방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8, 9성급의 몬스터들이다 보니 막아내는 데도 한계가 있겠지요.>

"젠장. 쪽수부터 달린다 이거로군. 제일 피해 규모가 큰 건 어딘데?"

<그건...... 서북쪽인 것 같습니다.>

"거기 있는 건 뭐야?"

<정확히는 관찰할 수 없습니다만, 강령술사, 네크로맨서가 있는 모양입니다.>

"네크로맨서라고?"

<그 일대에 죽은 자들이 일어나 산 자들을 덮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죽은 자가 되어 급속도로 숫자를 불리고 있으니 조금만 있으면 그 부근이 언데드화 돼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선 안 되지. 그럼 일단 그쪽으로 먼저 가자!"

정대식은 엔트로피와 함께 다시금 몸을 날렸다.

* * *

용인에서 의왕과 군포 쪽으로 날아가던 정대식은 오래지 않아 엔트로피가 말한 난리통을 볼 수가 있었다.

버려진 차들이 길을 꽉 막고 있는 상태에서 좀비들이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여긴 대피소도 없어? 왜 다 밖으로 나와 있는 거지?"

정대식이 혀를 차며 하는 말에 엔트로피가 연기가 뭉게뭉게 일어나는 초등학교 쪽을 보고 말했다.

<대피소가 이미 습격을 당한 모양이군요.>

"방공호가 아니라 대피소가 아무 의미가 없군!"

정대식은 일단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천 마리의 짐승형 서번트를 추가로 더 만들어냈다.

그걸 사방에 풀어놓고 천리안을 뜬 채로 강령술사를 찾아 눈을 두리번거렸다.

"저기다!"

네크로맨서로 보이는 것은 이끼가 축축하게 낀 망토를 둘러쓴 기괴한 생명체였다. 어디 진흙 구덩이 속에서 건져낸 것처럼 생겼는데 풍기는 냄새가 지독했다.

"죽어라!"

정대식은 그놈에게 즉시 마력탄을 날렸으나 놀랍게도 그것은 공중에서 사멸해버렸다. 정대식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엔트로피가 경고를 해왔다.

<보통 몬스터가 아닙니다. 적어도 10등급은 넘는 놈입니다.>

"강하다 이거지?"

정대식은 입술을 비틀었다.

"어디 얼마나 강하나 볼까?"

맘 같아서는 마괴결로 흔적도 없이 박살을 내주고 싶었으나 싸움터가 시가지 한복판인지라 지나치게 파괴적인 능력은 쓸 수가 없었다. 정대식은 마기전으로 몸을 겹겹이 두른 후 주먹을 말아 쥐고 놈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네크로맨서 앞의 공간이 뚝 잘리더니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이건 뭐야?"

<거인 좀비입니다. 네크로맨서면서 죽은 자들을 소환하는 능력까지 있군요.>

"아주 가관이네, 강화 강력권!"

거인이든 뭐든 강화 강력권 한 방에 거인 좀비의 머리가 박살이 나 거꾸러졌다.

정대식은 거인이 쓰러지며 도시를 파괴하지 않도록 엔트로피에게 맡겨두고 곧장 네크로맨서에게 직진해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네크로맨서가 무슨 망토 같은 것을 불러냈다.

우우우우우웅!

이이이이이잉!

사람 손바닥만 한 독충이 무리를 지어 정대식에게로 덤벼들었다.

정대식은 주위로 마력을 폭발시켜 독충을 날려 보냈고 급한 대로 마기포를 써서 네크로맨서를 후려갈겼다.

그러나 마력 양이 부족했는지 네크로맨서는 방어막을 만들어내어 정대식의 공격을 튕겨냈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불러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궁!

거인 좀비 정도로는 안 되겠다 싶었나 보나.

이번엔 공간이 일그러지며 공기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불길한 기운이 잘린 공간 틈바구니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며, 지독한 시취가 코를 찔러 들어왔다.

"이번엔 또 뭐냐!"

크와------아아아아아아앙!

길쭉한 주둥이가 가장 먼저 보였다.

그다음에 시커멓게 불타는 안광과 반쯤 썩다 만 사지, 용수철처럼 뒤엉킨 털 같은 것들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왔다.

<저것은 굴라입니다. 적어도 12성급은 되는, 식인 구울의 모신입니다.>

"12성급이라고? 세상에!"

정대식은 12성급이나 되는 몬스터가 현실 세계에 나와 있는 광경을 보고 얼이 빠졌다.

체르노보그와 싸울 때는 던전 안이었기에 놈의 모습에 위화감이 크게 없었다.

자기 자신이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이건 12성급이라도 도시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기에 불길함이 강했다.

정대식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저게 12성급 몬스터라면 저쪽이 진짜 보스몹이라는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네크로맨서는 굴라를 소환하는 매개체일 뿐일 겁니다. 아마도 일정 조건을 채워야 하는 것이겠지요. 몇 명 이상의 언데드를 만들어야 한다든지.......>

"갈수록 태산이구만!"

그로 인해 상대해야 할 적이 둘로 늘었다.

하나는 10성급 네크로맨서, 다른 하나는 12성급 굴라였다.

정대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반경 몇 킬로미터를 완전히 박살 낼 수 있다면 두 놈을 한꺼번에 처치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시민들이 뒤섞여 있는 상태라 골치가 아팠다.

인명을 지키면서 언데드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언데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정대식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대식은 엔트로피를 돌아보고 말했다.

"완전 회복 포션을 먹이고 광필두를 깨워."

<정말이십니까?>

"그래. 우리 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놈들을 빨리 처치하고 다른 몬스터들도 잡아야 하니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해. 다행히 조금 전에 절대복종의 문신을 새겼으니 내 뜻을 거역하지는 못할 거 아냐? 그러니 잘 써먹어야지."

<알겠습니다.>

엔트로피는 서둘러 광필두를 깨웠다.

그는 퍼뜩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지 약간 멍한 기색이었으나 오래지 않아 눈앞에 벌어진 지옥도를 보고 상황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왜 나를 깨웠나 싶었더니만......."

"나도 네가 예뻐서 깨운 거 아니다. 자!"

정대식은 7성 무구를 아공간에서 꺼내 광필두에게 던져주었다.

델라니포스를 뺀 여섯 개의 무구 전부를 그에게 넘겨주자 광필두가 진심이냐는 듯이 몹시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대식은 그를 향해 내뱉었다.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지만 도망갈 생각일랑 말고 그걸 들고 싸워라. 7성 무구를 하나 빼고 다 갖고 있으니 적어도 10성급 네크로맨서쯤은 상대할 수 있겠지?"

"......가능하겠지."

"그럼 나는 12성급의 굴라를 상대하지. 가라!"

광필두가 그 말을 듣고 즉시 7성 무구들을 착용하고 네크로맨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정대식도 곧장 굴라에게로 주위를 돌렸고, 곧 굴라가 피어를 터트리는 광경을 보았다.

그워----------------어어어어-엉!

지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망자들의 신음과 같이 불길한 소리였다.

고막을 깨부수는 것 같은 파괴력은 없었으나 그보다 더 안 좋은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분명했다.

"젠장!"

굴라의 피어가 언데드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서번트들의 공격과 간신히 버티고 있던 헌터들의 반격으로 주춤하던 언데드들의 기세가 무시무시해진 것이다.

"크와아아악!"

"캬르르르륵!"

언데드들이 메뚜기 떼처럼 펄쩍펄쩍 뛰며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때문에 서번트나 헌터들이나 몹시 난감해하고 있었다.

굶주림에 사로잡힌 언데드들은 싸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더 많은 인육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도망치는 사람들의 뒤를 쫓고 있으니 막아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엔트로피!"

<예.>

정대식은 엔트로피가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 놓고 굴라에게로 달려들었다.

"마기포!"

퍼버버버버벙!

쏘아져 나간 마기포가 굴라의 전신을 두드리자 두부처럼 부서져 내리는 살 속에서 대머리독수리처럼 생긴 언데드 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정대식에게로 날아들며 놀랍게도 입에서 마력탄과 비슷한 것을 쏴댔다.

정대식은 마기장을 둘러 그 공격을 막아내고 마기파로 단번에 조무래기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전신에 마력을 쏟아부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곧, 그는 굴라에게로 뛰어들었다.

"하아아압!"

정대식은 팔을 십자로 교차하면서 굴라의 가슴팍에 몸을 부딪쳤다.

정확히는 그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대로 굴라의 몸체 정 중앙까지 파고 들어간 상태에서 마괴결을 만들어내었다.

쿠르르르르르르-----------!

품 안에서 한껏 응축된 마력을 정대식은 일시에 터트렸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파바바바바바바밧!

그러자 마괴결의 마력이 굴라의 온몸을 헤집으며 퍼져나갔고 곧 굴라의 썩은 몸이 안쪽에서부터 터져 오르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굴라의 단말마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정대식은 퍽 하고 터지는 굴라의 가슴팍에서 튕겨 밖으로 굴러왔다.

사실상 마괴결에 가장 가까이 있던 것은 그였기에 그에게 닥친 충격도 만만찮았다.

그러나 정대식에게는 마기전이 있었고 스스로 마력을 끌어모아 회복하는 능력으로 정대식은 금방 그 충격에서 회복했다.

그리고 굴라의 몸을 뚫고 나와 사방으로 퍼지려 드는 거대한 파괴력을 황급히 막아냈다.

"마기장!"

정대식은 엄청난 크기의 마기장을 만들어내어 굴라의 주변에 둘렀다.

그러자 정대식이 터트린 마괴결의 파괴력이 마기장을 뒤흔들었다.

굴라의 몸을 이미 한번 뚫고 나온 힘인지라 마기장을 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기장은 굴라의 파편과 서서히 상쇄되어 가는 마력으로 극심하게 요동쳤다.

정대식은 진땀을 흘리며 마기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몬스터 죽이는 것보다 내 힘을 자제하는 게 더 힘들군!'

이윽고 굴라가 완전히 사라지고 정대식이 풀어놓았던 마괴결의 에너지도 가라앉자 정대식은 마기장을 거두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굴라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굴라가 남겨 놓은 아이템만이 있을 뿐이었다.

정대식은 그쪽으로 다가가서 굴라의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오브제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걸 아공간으로 던져놓고 아직도 네크로맨서와 싸우고 있는 광필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도와줘야 하나?'

7성 무구 중 갑옷이 눈 부신 빛을 뿌리는 바람에 광필두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빛 덩어리처럼 보였고 오래지 않아 거기에서 딜라이트 소드라고 짐작되는 빛이 솟구쳐 나왔다.

그게 네크로맨서를 후려치자 네크로맨서의 방어막이 기어코 깨져버렸다.

연이어 궁니르가 날아가 네크로맨서의 머리통을 꿰뚫었고, 놈은 갑자기 연기처럼 폭삭 무너져 사라져버렸다.

정대식이 싸움이 끝났음을 알고 그쪽으로 다가가자 광필두가 번쩍거리는 마력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죽은 자리에는 그 이끼 덮인 망토만이 남아있었다.

정대식은 그것을 챙겨 들고 광필두를 보며 이죽거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광필두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왜 내게 7성 무구를 되돌려 준 거냐."

정대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예 돌려준 거 아냐. 임시로 빌려준 거지."

"너 정도면 이 정도 몬스터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을 텐데."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였잖아. 몬스터를 죽일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간 일대가 모조리 날아가 버렸겠지. 여긴 던전이 아니라고. 그런 식으로 싸울 순 없어."

"그래서 7성 무구를 돌려줬단 말인가?"

"이미 말했지만 돌려준 거 아니고 빌려준 거다. 어차피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야."

"......네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보험도 없이 널 풀어줬을까 봐?"

정대식은 망토를 아공간에 던져 넣고 광필두를 턱짓해 말했다.

"됐고, 입씨름할 시간 없다. 홀로그램 맵 있냐?"

"없다."

정대식은 품에서 홀로그램 맵을 꺼냈다.

그리고 스켈이 있는 곳을 표시해 던져주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