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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 전사-271화 (270/297)

# 271

현질 전사

-11권 23화

기철민은 빠른 속도로 차를 달리다가 문득 땅이 쿵쿵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웬 코카트리스 한 마리가 차를 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기철민은 잇새로 혀 차는 소리를 내뱉으며 액셀을 한껏 밟았다.

그러나 코카트리스가 더 빨랐다.

콰앙!

천장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차가 아래로 푹 내려앉았다.

기철민은 우그러진 천장을 뚫고 들어온 코카트리스의 날카로운 발톱을 보고 자동 소총을 휘갈겼다.

투두두두두두두!

곧 코카트리스의 발톱이 뽑혀 나갔으나 대신에 앞 유리창이 콰창 깨졌다.

그리고 코카트리스의 무지막지한 부리가 머리를 쪼려고 들어 핸들을 놓고 옆으로 몸을 눕히는 수밖에 없었다.

부우웅!

제멋대로 달려나간 차가 길가에 주차된 다른 차량에 들이받았고, 그 기세에 코카트리스가 튕겨났다.

기철민은 찌그러진 문짝을 걷어차며 밖으로 달려나가며 총을 쐈다.

그러나 코카트리스의 강철 같은 깃털에 일반적인 마력탄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차라리 육탄전으로 싸우는 게 낫겠다 싶어서 기철민은 총을 뒤로 돌리고 나이프를 꺼냈다.

군용 나이프처럼 생겼지만 몬스터 사냥용인지라 크기가 두 배 만 한 나이프의 날이 희끄무레한 햇살을 받아 번뜩였다.

그 빛에 자극받기라도 한 듯 코카트리스가 제자리에서 발길질을 하다 덤벼들었다.

"끼루루루루루!"

기철민은 몸을 깊숙이 숙이면서 앞으로 굴렀다.

그리고 있는 힘껏 상반신을 세우며 나이프를 코카트리스의 목 밑에 찔렀다.

동시에 거기로 마력을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퍼억!

코카트리스의 뒤통수가 뚫리며 놈이 깃털을 부르르 떨었다.

곧 코카트리스가 옆으로 자빠지고 기철민은 숨을 몰아쉬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 분명했다.

기철민은 소음을 듣고 몰려오는 코카트리스와 그사이에 섞여서 달려오고 있는 고르곤을 보고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이놈의 몬스터들은 정도라는 게 없구만. 고르곤까지 있어?"

고르곤은 7성급은 되는 몬스터로 어지간한 던전에서는 보스몹 취급을 받는 강력한 놈이었다.

그런데 코카트리스 떼에 뒤섞여 달려오는 모습을 보노라니 기가 안 찰 수가 없었다.

기막힌 기분과는 별개로 상황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장비가 지나치게 부실해서 자동 소총이나 몬스터 사냥칼 하나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오냐, 죽어보자! 이래 보여도 한번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라고!"

기철민이 되지도 않는 호기를 부리며 이를 갈던 그때.

콰르르르르르르르-----------------

별안간 세찬 폭풍이 들이닥쳤다. 기철민은 하마터면 공중으로 떠밀릴 뻔하고 황급히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손을 뻗쳐 옆에 처박힌 차 사이드미러를 붙잡았다.

마력을 다리에 흘려보내 몸을 바닥에 단단히 붙이고 있는데, 바람이 교묘하게 방향을 뒤틀었다.

그러면서 한층 거세어졌다.

곧 그 바람이 칼날과 같이 얼어붙어 코카트리스 떼와 고르곤을 후려쳤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비명을 지르며 날뛰는 바람을 뒤따라 느닷없는 번개가 내리쳤다.

꽈르르르르릉! 꽈릉! 콰직! 꽈과광!

쉴 새 없이 번쩍이며 내리꽂히는 번개며 얼음 폭풍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오래지 않아 허공에서 온몸에 뇌전을 두르고 있는 인영이 내려왔다.

호리호리한 뒷모습이 한주먹거리도 안 될 것처럼 보였으나 그 강력함은 확실히 남달랐다.

"썬더 앤 라이트닝 리콜!"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그녀가 내뻗은 호라갈레스에서 눈을 멀게 하는 뇌전이 코카트리스 떼를 가르고 고르곤에게로 날아갔다.

사방에 있는 것들이 몽땅 타버리는 느낌이 나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기철민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앞으로 거꾸러졌고 그 상태로 한동안 버텼다.

잠시 후.

"괜찮아?"

머리카락이 다 뽑힐 것 같은 강풍이 가라앉고 빛이 사그라져 기철민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사뿐 내려앉는 최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김태희일 때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였다.

국가에서 증정받았다는 쉬라즈 실버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스크롤로 도배된 외투와 자그만 포션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허리띠를 두른 채 호라갈레스를 들고 있었다.

호라갈레스는 아직도 빠직빠직 불꽃을 튀겨 올리고 있어 섣불리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괘, 괜찮습니다."

"다른 대원들은 다 어딜 가고 혼자 있는 거지?"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 혹시 타이탄 부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지금 저쪽에서 쏟아져 나오는 리저드맨과 오크 부대와 싸우고 있는 중이야. 잔챙이도 다 처리하지 못했는데 보스몹이 튀어나와서 싸움이 길어지고 있어."

"보스몹이라고요?"

"오크 킹이야. 놈이 나타나니까 오크 놈들이 더 날뛰고 있는지라...... 그쪽으로 데려다줄까?"

"그래 주면 고맙겠습니다."

최희는 기철민을 무슨 짚단처럼 달랑 들어 옆구리에 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공중으로 치솟아 올라 다시 땅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급격한 기압차에 귀가 먹먹해지며 속이 뒤집혔다.

그제야 기철민은 자신이 수액을 맞으면서 오래 굶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윽.'

최희는 곧장 기철민을 오크 부대와 공격대가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가지로 데려다주었다.

각 부대가 위치를 지키며 오크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전방에 강영후가 나가 있는 게 보였다.

그가 팔을 한번 휘두르자 전열이 얼어붙으며 오크들이 박살 나는 게 보였다.

그런 오크들을 뛰어넘으며 덩치가 유별난 놈들이 쌍 도끼 같은 무시무시한 무기를 휘두르면서 들이닥치고 있었다.

각 부대가 강영후의 지휘를 따라 물밀 듯 몰려드는 오크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곧, 오크들의 왼쪽에서 소요가 일어나며 그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외인부대가 기습을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아악!"

"크캬아아악!"

오크들이 서로 뒤엉키며 아수라장이 되자 뒤쪽에 버티고 섰던 오크 킹이 고함을 쳤다.

"크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울음소리를 듣고 몸을 부르르 떤 오크들이 다시금 기세를 되찾고 미친 듯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느닷없이 허공에 나타난 대원들이 오크 킹을 둘러싸고 직접 공략을 시도했다.

그들의 낯익은 모습에 기철민은 눈을 크게 떴다.

'펜리르 부대인가?'

펜리르 부대가 오크 킹을 상대하는 동안 타이탄 공격대가 오크 떼를 작살내기 시작했다.

버퍼들과 디버퍼, 그리고 원딜의 공세가 퍼붓는 가운데 탱커와 근들이 일제히 오크들을 한 길목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마법이 터져 오르며 오크 수십 마리가 순식간에 피떡이 됐다.

파바바바바바밧!

"크아아아아아!"

오크들의 단말마가 줄을 잇는 가운데 별안간 오크 킹이 서 있던 자리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렸다.

기철민은 익숙한 마력의 흐름에 그것이 고덕화의 공격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곧 분노한 오크 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으나 그것은 아까처럼 위력적이지가 못했다.

"끄아아아아아!"

연이어 김송근의 거대 분신이 나타나 오크 킹을 겁박했고, 막타가 터졌다.

콰콰콰콰쾅! 꽈꽈광!

폭음과 함께 오크 킹의 머리가 날아가는 광경이 보였다.

곧 오크 킹이 녹색 피를 흩뿌리며 앞으로 거꾸러졌고 오크들은 빠르게 전의를 잃어갔다.

놈들이 사방팔방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강영후가 끝까지 추격해 처치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뒤쪽으로 물러나다가 뒤늦게 기철민과 최희의 모습을 발견했다.

"기철민? 정신을 차렸나 보군."

"아, 예."

기철민은 그에게 고개를 꾸벅였고 강영후와 최희도 익숙한 듯 눈인사를 나누었다.

강영후는 방어구를 벗고 피와 땀으로 젖은 얼굴을 닦아내며 말했다.

"벌써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 아직 몸이 성치 않을 텐데."

"아뇨, 지나치게 멀쩡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를 좀 알고 싶어서요."

"아, 자네가 죽을 뻔한 일 말인가."

"예에. 혹시 허미래가 저를 살렸습니까?"

최근 디버퍼와 버퍼의 능력을 한 몸에 갖추게 된 허미래는 기철민과 마찬가지로 그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렇다면 다 죽어가는 저를 살릴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영후는 고개를 저었다.

"듣기로는 자네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더군. 현장에 있던 허미래가 응급처치를 하기는 했으나...... 신체의 절반 가까이가 손실되어 다른 사람을 부르는 수밖에는 없었어."

"다른 사람이라면......?"

그때, 강영후의 뒤쪽에서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다.

"저예요."

기철민은 어리둥절해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기철민은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최희와 혈연관계에 있다는 소문만을 익히 들어왔을 뿐, 펜리르 부대원도 아니었고 접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최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저 애가 널 살렸어. 주로 버퍼로 활동하고는 있지만 저 애의 능력은 힐러에 더 가깝지."

힐의 능력이라면 허미래도 갖고 있다.

원래부터 마력 양을 타고난 그녀는 힐러로서도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허미래가 회복시키지 못한 것을 그녀가 회복을 시켰다 하니, 의아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만 한 수준이기에? 허미래보다 더 강력한 힐러란 말이지?'

의문이 들었으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능력을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실례일 터였다.

게다가 강영후도 그렇고 최희도 그렇고 그녀의 능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을 꺼리는 기색이었다.

"저를 구해주셨다니, 미처 몰랐습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목숨을 빚졌네요."

최선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펜리르 부대장인 정대식 씨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고요."

"예?"

"정대식 씨가 언니의 능력을 되돌려 주었잖아요. 거기에 보답은 못 하더라도, 정대식 씨의 부대원인 기철민 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 예."

기철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연거푸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였고, 그러자 최선이 걱정스러운 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으세요? 제가 이렇게까지 제 능력을 많이 써본 적이 없어서."

기철민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토록 뛰어난 힐을 갖고 있다면 왜 쓰지를 않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최선이 다른 부대에서도 힐러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는 둥의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한 것 같았다.

"예, 뭐. 멀쩡합니다. 실력이 대단하신가 봐요."

기철민이 팔을 붕붕 돌려 보이며 하는 말에 강영후가 나섰다.

"그렇담 다행이군. 어떻게 해도 인원이 모자라는 참이니 자네도 전투에 합류해 줘야겠어."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상황이 심각한가 보네요."

강영후는 인상을 찡그렸다.

"심각한 정도가 아니야. ......이러다간 1차 몬스터 브레이크를 뛰어넘는 재앙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새로 생긴 던전이 많은데 거기에서 몽땅 몬스터들이 뛰쳐나왔으니, 전혀 통제가 안 되고 있어."

"통제가 안 된다면......."

"사방팔방에서 몬스터들이 난립하고 있는데 어느 곳 하나 방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다간 서울까지 장악당할 판국이야."

강영후가 하는 말을 듣고 기철민이 물었다.

"그렇다면 정대식은...... 우리 대장님은 어디 계신 겁니까? 소식을 모르고 계신 겁니까?"

강영후는 고개를 흔들었고, 기철민은 연거푸 광필두의 행방도 물어보았으나 모른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광필두가 도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규모 몬스터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바람에 추적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태를 보아하니 광필두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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